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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2024

멀어도 가까운





모처럼 아들이 사는 조지아 동쪽으로 길을 나섰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시작하여 다섯 주를 거쳐가는 여정이었다.

우리가 지나던 고속도로는 온통 베인 풀의 신선함으로 가득했다. 고속도로 갓길과 중앙 분리대 잔디 위에는 잔디 깎는 기계를 장착한 트랙터가 엄청 많았다. 어느 곳에는 여덟 대가 대씩 나란히 움직이며 풀을 깎았다

어디는 대가, 어디는 대에 개의 잔디 깎는 기계를 매달고 작업하고 있었다. 풀은 깎여 나가면서도 이렇게까지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다니, 가는 나로서는 풀과 그것을 다듬는 일을 하는 분들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아들이 사는 도시에 가까워지자 해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달큰한 꿀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유로운 기운이 가득한 듯했다.

드디어 고속도로를 벗어났고 아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출구 주변에서 흔히 있는 주유소가 나타났다. 친숙한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는 같아 그것 마저도 반가웠다.

날씨는 화창하고 도로는 막힘이 없어 힘들이지 않고 아들네 도착했다. 자동차로 10 시간 걸리는 거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들이 집밖으로 나와 포옹으로 아빠와 , 그리고 엄마를 맞이했다.  아들 얼굴을 보니 그냥 좋았다. 밤이 깊어져 자리에 들었는데, 낯선 자리가 주는 선잠을 피할 없었다. 하지만 정도 피로감은 아들을 만난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들네 가면서 뭔가 선물을 하고 싶어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실내 식물을 달라고 대답했다. 의외였다.

아들이 우리 집에서 이사 나갈 내가 키우던 식물을 준다고 했더니 질색하였다. 자신이 그것을 가져가면 죽일 것이 뻔하다며 극구 사양했다

나는 집안에 초록빛 생명이 있으면 보기에도 좋고 공기 정화도 해주어서 좋다는 이유로 아들을 설득했다. 아들은 못이기는 척했고, 나는 지지플랜트 화분 하나를 아들에게 안겨주는데 성공했다.

아들은 꼼꼼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식물을 맡겨도 걱정은 되었다. 자신이 식물을 보살피는데 서툴다는 것을 아니까 나름 키워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애쓸 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화분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새싹이 나와서 줄기가 커다랗게 뻗었는데 어떻게 세워줘야 하느냐, 화분 공간이 빽빽한데 괜찮냐며 식물 소식을 가끔 전해주었다.

아들네 도착한 다음 , 실내 식물을 사러 농원에 갔다. 아들은 나에게서 받은 지지플랜트를 분갈이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화분에 뿌리를 나누어 심고 싶은데, 엄마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나는 그래 그러자,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들의 변화를 기특하게 여기는 나의 마음은 실내 식물과 화분 갈이에 필요한 물품을 선물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나는 실내 식물을 보기에 좋은 중간 크기로 사려고 했더니 아들은 작은 것을 선택했다. 작은 것부터 키워보고 싶다며.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피스 릴리와 골든 포토스를 골라주었다.

하나 화분, 아프리칸 바이올렛도 선물했다. 이것은 전에 지인에게서 받은 것을 번식시킨 것이다

지인에게 받았을 때는 손톱만한 이파리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까 잎이 진초록이 되면서 넓어졌다. 그리고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꽃이 한참 동안 피어 기쁨을 주었다. 나는 화사한 기쁨을 아들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분갈이를 뒤뜰에 그늘 지는 시간을 골라 시작했다. 겨우 화분 몇개를 다루는 일이고 단순한 과정의 분갈이인데도 아들은 일에 관심있게 참여하였다. 자신의 화분이라 그런지 시켜도 투덜대지 않고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녀석의 변화에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식물을 다루는 놀이가 아주 즐거웠다. 아들도 식물을 돌보는 내내 즐겁기를 바란다. 실내 식물을 키우는 일이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지구 환경을 해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실천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가볍게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었다. 아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고 남은 식구들은 뒷정리를 하고 길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번에는 아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3/20/2024

식물과 이사 이야기




사람은 적어도 두 번은 이사한다. 어머니의 태에서 세상으로,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나는 그중 한 번을 포함하여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 번 이사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이사는 아무런 짐이 없으나 살아가는 동안 이사할 때는 이런저런 짐들과 함께 다닌다. 그런데 어떤 이사를 하든 아무 짐이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식물이다.

얼마 전 텃밭에서 살던 파와 부추 몇 뿌리를 화분으로 옮겼다. 나무를 심었던 두 개의 커다란 화분이 다른 식물을 품으려 기다리는 듯 보였다. 하나에는 텃밭에서 이사한 실파와 한인마트에서 이사한 대파를 섞어 심었다. 다른 하나에는 이파리가 넓적한 부추와 여리여리한 부추를 심었다.

파는 처음 심을 때 온통 마트에서 이사했고, 부추는 지인들의 텃밭에서 나의 텃밭으로 오래전에 이사한 녀석들이다. 이파리가 넓적한 부추는 Z가 한국에 계신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다. Z는 꽤 튼실한 부추라며 나에게 그것을 나눠주었다. Z의 말처럼 이파리도 뿌리도 건강미가 넘치는 부추다. 이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긴 꽃대를 올려 하얀 별처럼 생긴 꽃송이를 터트린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부추꽃은 점점 까맣고 옹골찬 씨앗으로 에너지를 모아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 그렇게 Z로부터 온 부추는 퍼지고 퍼져서 다른 집들로 이사하기도 했다.

또, 이파리가 가는 부추는 식물을 야무지게 키우는 A의 텃밭에 살았었다. A는 한 번 키운 식물들에서 꼭 씨를 받아 다음 해 텃밭을 만들었다. 고추는 물론이고 토마토, 오이에서도 씨를 받아냈다. A의 솜씨는 어려서부터 농사하시는 부모님을 도와 식물을 돌본 덕분이라고 했다. 그의 손에서 식물들이 생명을 이어가는 재미난 실험을 구경했었다. A가 비닐하우스에서 씨를 뿌려 키우던 여린 부추를 나눠주었다. 그것들이 나에게 이사할 때는 그 모양새가 Z의 건장한 부추와 사뭇 달랐다. A의 부추는 먹잘 것이 없을 정도로 작고 가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두 종류의 부추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해졌다. 재미있는 텃밭 생활이다.

파나 부추는 한번 심어놓고 새로운 흙이나 거름을 더해주면 싱싱하게 이파리를 올려 자신을 내어준다. 이번에 그들을 텃밭에서 화분으로 이사시키면서도 신선한 흙과 닭똥을 발효시킨 거름을 선물로 주었다. 아, 그것을 심기 하루 전에 할 일이 있다. 파와 부추의 초록색 부분을 잘라내고 뿌리도 1.5cm 정도로 다듬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서 있는 힘을 다해 생명을 이어가도록 자극하기 위해서다. 짤막한 파와 부추를 그릇에 담아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물을 부어준다. 하루가 지나면 이파리가 나오는 부분에 초록빛이 돈다. 생명을 이어가려는 모양이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이사는 변화의 계기를 준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는 물리적인 자리 옮김이다. 파와 부추는 텃밭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다가 화분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옮겨졌다. 식물에 덜 자연스러운 환경이지만 나의 보살핌을 더욱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이사다.

이사는 생존이다. 살아갈 환경을 찾아가는 일이다. 식물은 자연에 의지해서, 그리고 사람은 나름의 선택으로 살 곳을 찾아 나선다. 식물은 신이 창조한 자연과 우주에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은 이사하면서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신의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한다. 나의 의지보다는 신에게 삶을 맡기려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식물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화분에서 식물이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란다.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위해 어떤 짐도 만들지 않고 생명을 충실하게 이어가는 식물의 단순함이 필요에 따라 유익한 혹은 무익한 짐들을 복잡하게 쌓아놓은 내 환경 속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자연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속을 알차게 채워가면서도 그 능력을 뽐내지 않는 식물의 겸손함에 조용히 스며들고 싶다. 

날이 따듯해지면 농원으로 나들이를 가 보련다. 다른 빈 화분으로 피튜니아나 마리골드나 제라늄같이 그만그만하게 섞여 살만한 꽃들을 데려와야겠다. 저마다 모양과 색깔이 다른 채소와 꽃의 어우러진 모습을 그려본다. 반짝이는 하늘 아래에서 그들이 만들어낼 변주가 들어봄 직한 재즈 가락이 되어 흘러가는 상상에 빠진다. 벌써 어깨가 들썩거린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12/29/2023

갓, 너 살아 있었구나!




나에게 갓씨가 조금 있다. 이 씨앗은 이웃집 여인이 나눠준 것이다. 여인은 씨앗에 담긴 그의 어머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오신 여인의 친정어머니는 그의 텃밭에 갓을 심으셨단다. 어머니는 갓을 솜씨 좋게 키우셨고 씨까지 받으셨다. 이 갓씨를 어머니는 딸에게 남겨주시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여인은 나에게 한번 심어보라며 솜털이 부숭부숭 붙어 있는 씨앗을 건네주었다. 

이듬해 봄, 나는 상추씨를 뿌리면서 그 옆에 갓씨도 뿌렸다. 나는 무슨 일인지 갓씨를 쑥갓씨라고 찰떡같이 믿고 뿌렸다. 쑥갓은 상추와 잘 어울리는 쌈 채소이고 생선 찌개 비린내도 잡아주는 향기 좋고 부드러운 채소다. 그뿐 아니라 쑥갓을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도 정말 맛있다. 기억 속에 있는 온갖 좋은 쑥갓 맛을 상상하며 즐겁게 씨를 뿌렸다. 

그런데 잘 자라는 상추와는 달리 시간이 한참 지나도 쑥갓씨를 뿌린 쪽에서는 싹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 그해 봄에 나는 쑥갓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어설픈 일꾼이라 씨앗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을 수도 있고 씨앗의 생명이 한 해뿐인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다.

어느 날 여인은 나를 초대하여 향과 맛을 첨가한 그만의 커피와 수제 치즈케이크를 내놓았다. 우리는 점잖게 수다를 떨었다. 수다 속에 싹 트지 않은 쑥갓씨 이야기도 걸려 나왔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맘대로 갓씨를 쑥갓씨로 착각했다는 것을. 그래도 그렇지, 씨가 발아조차 안 된 것은 의문으로 남았다.

여인의 어머니 이야기는 기억하면서 쑥갓 먹을 생각에 씨앗의 이름을 바꾸다니 참 어이가 없었다. 앞으로는 나의 식욕이 기억을 조작하는 일이 없길 바라면서 씨앗 봉투에 '갓'이라고 분명하게 적어 놓았다. 그해 봄에 뿌리고 남은 갓 씨는 나의 씨앗 서랍에서 그렇게 2년쯤 잠들어 있었다. 

올해 9월 초순, 여름내 깻잎을 내어주던 들깨를 뽑아내고 흙에 퇴비를 넉넉히 섞은 다음 갓씨를 뿌렸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갓씨를 뿌려보았다. 봄에는 갓 키우기에 실패했지만, 가을에는 성공할지 궁금했다. 혹시, 아주 혹시라도 갓이 자라준다면 갓김치 담그기를 시도해보리라.

나는 놀이터에서 물놀이하듯 텃밭 여기저기에 물을 주었다. 나는 체력 단련장에서 운동하듯 잡초를 뽑으며 허리를 구푸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배움터에서 지식과 깨달음을 얻듯 식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인터넷을 기웃거렸다.

씨를 뿌린 지 보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갓이 드디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갓, 너 살아 있었구나! 갓의 어린 잎은 여리여리 보라색이었다가 자라면서 자주색으로 짙어졌다. 잎사귀도 시원스럽게 넓어졌다. 어찌나 싱싱해 보이던지 쌈을 싸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파리를 몇 개 뜯었다. 줄기에 잔가시가 있어 손에 거슬리기는 했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텃밭에서 막 가져온 자색 갓은 아삭하고 톡 쏘는 매콤한 맛이 났다. 아주 신선하고 매력이 넘쳤다. 겨잣과에 속하는 식물이라서 겨자채와 비슷한 맛이 났다. 남편과 나는 별 반찬이 없어 밥상이 심심한 날에는 갓을 몇 장 뜯어 왔다. 거기다 쌈장과 밥을 얹어 입안 가득 물고는 '음~, 음~' 감탄사를 날렸다. 떡볶이에도 파와 함께 갓을 잘라 넣었더니 나름 잘 어울렸다. 우리는 갓이 온전히 자랄 틈을 주지 않고 뜯어다 먹었다. 갓김치는 담그기는 이다음으로 미뤄두었다.

나는 예쁘게 생긴 갓잎을 몇 장 거두어 갓씨를 나눠준 이웃집 여인에게 주었다. 당신이 나에게 준 씨에서 나온 갓이라고 알려주었다. 건강한 음식을 좋아하는 그는 오늘 저녁은 고기를 구워야겠다며 좋아했다. 

씨앗은 그 작은 공간에 생명을 담고 있다가 적당한 환경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씨앗은 사람에 대한 편견도 없다. 여인의 어머니 손에서도 잘 자랐고 내 손에서도 자라주었다. 씨앗은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씨앗은 천천히 느긋하게 기다리는 기쁨을 선사한다. 씨앗에서 다시 씨앗을 얻기까지 긴 호흡을 요구한다. 이제 갓씨가 아주 조금 남았다. 갓들아, 그저 살아서 씨를 좀 남겨주겠니?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5/28/2023

예감




식물에게 물 주려고 그 집에 들렀다. 부부가 사는 그 집에는 일 년 전부터 키우는 식물이 한 그루 있다. 그 아내에게 부탁을 받고 물 주러 간 첫날, 집주인이 잘 보살폈다는 걸 금방 알아챘다. 커다란 잎사귀는 연둣빛이 선명하고 길게 자라 늘어진 줄기는 튼실했다.

그들이 집을 비운 지 두어 달이 지났다. 그 남편이 매우 아파서 치료하러 다른 도시로 갔기 때문이다. 그는 병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중이고 그의 아내는 남편을 가엾이 여기며 정성을 다해 간호 중이다. 아내는 자기가 키우던 식물도 내내 살아있길 바랐다. 아내는 식물에게 일주일에 한 번쯤은 물을 주어야 한다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 부부가 건강하게 몽고메리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물을 화분에 골고루 뿌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블라운트 문화 공원에 있는 자동차 도로로 가면 시간은 비슷하게 걸려도 가로질러 가는 느낌이고 탁 트인 공원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어 그 길을 선택했다. 사실 얼마 전에 알게 된 셰익스피어 정원에 다시 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자동차가 먼저 가닿은 곳은 몽고메리 미술관 옆에 있는 조각 정원이었다. 여길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이쪽으로 들어서 버렸다. 

조각 정원은 어떻게 꾸며 놓았을까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내친김에 둘러보았다. 미국 남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과 곳곳에 있는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어도 15분 정도면 충분한 아담한 정원이다. 햇빛에 고스란히 노출된 정원은 한적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었다. 나는 마음에 둔 다른 정원으로 얼른 가고파서 서둘러 나왔다. 그곳 조형물 가운데 4점은 그곳에 늘 있는 작품이고 나머지 5점은 현재 전시하다가 바뀔 작품이라는 것을 나중에 웹사이트에서 알게 되었다. 아주 가끔 온라인으로 확인해서 작품이 바뀌면 다시 들려볼 만하겠다.

원래 가려고 했던 셰익스피어 정원은 다른 날도 얼마든지 가볼 수 있으련만 첫인상이 이국적이어서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동네 친구들의 제안으로 이 정원에서 그들을 만났다. 앨라배마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극장 옆에 이런 정원이 있는 줄 몰랐다. 운동 삼아 공원에서 걸을 때 극장 앞을 지나가면서도 보지 못했었다. 정원에 처음 들어서는데 마치 비밀의 정원 혹은 비밀의 원형 극장에 온 것 같았다.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친구들이라 정원을 둘러볼 짬 없이 모임만 하고 헤어지는 바람에 그 정원에 미련이 남았다. 무슨 꽃이 피었나 살펴보고 나무 아래 벤치에도 앉아보고 싶었다.

찬찬히 둘러보니 키가 큰 나무들이 줄지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서 더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보인다. 짚으로 지붕을 인 쉘터는 잘 가꾼 꽃밭이 둘러싸고 있다. 꽃밭에는 허니서클, 메리골드, 노란 나리꽃, 이름 모르는 보라색 작은 꽃, 로즈메리가 자연스럽게 어울려 있다. 나무 그늘을 좋아하는 양치류와 헬레보루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팬데믹 초기, 집 밖을 나가기 두려울 때 유튜브에서 정원 가꾸는 영상을 어찌나 보았던지 새로 알게 된 꽃을 실제 정원에서 발견하고 이름을 기억해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정원 한쪽 출입구 앞에 있는 화장실마저도 초가지붕을 얹은 시골 부잣집 창고 같았다. 일보러 들어가서 너무 침침하여 어리둥절하다가, 이게 영국식 화장실인가 생각하다가, 너무 의미 부여를 하는 머릿속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동네 친구들은 이 정원을 이미 사용하고 있었고 나만 뒤늦게 알게 된 곳이니 호들갑스럽게 얘기할 거리도 아니다. 그렇다 해도 나는 가끔 이 정원에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2016년 보스턴 여행을 하고 내려오면서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주변 건물들이 역사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한참을 걸어서 다녀보았는데, 건물들 사이로 여러 형태의 자그만 정원(공원)들이 참 많아서 흥미로웠다. 몽고메리 셰익스피어 정원이 필라델피아에서 보았던 정원의 분위기와 겹치면서 어디 멀리 여행 온 기분이 들었던 걸까. 

되돌아 나오는데 벤치에 앉아 혼자서 뭔가를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점심시간인가 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9/24/2021

내면이 풍요로운 정원사를 만나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3.


묵직하고 끈끈하던 새벽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손바닥만한 텃밭에 물 주러 나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봄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내주던 식물들이 부추는 씨앗으로, 고추는 열매에 고운 색을 입히며 한 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해충 탓에 일부 이파리가 누렇게 변해가는 가지는 아직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어 애처롭다.

올해 이른 봄, 거의 일 년 만에 자동차로 두 시간 반쯤 걸리는 애틀랜타를 방문했었다. 코로나19 백신을 언제 맞게 될지 모르던 때였으니 움츠러든 몸과 마음은 큰 도시에서도 여전히 편안치 않았다. 그나마 한인마트에서 고추와 가지 모종을 만난 것은 큰 선물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보통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꽃샘추위가 지나갔다고 여긴다. 그래서 채소든 꽃이나 나무든 편안한 마음으로 심어도 좋다. 그걸 알면서도 부활절이 한 달이나 남은 3월 초에 멀리서 고이 모셔온 모종을 심었다. 설마 했던 추위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정원용 천으로 모종을 덮었다 벗기는 수고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겨우겨우 살려낸 고추와 가지는 자연에 이미 적응이 되었는지 얼른얼른 자랐다. 열매도 생각보다 빨리, 많이 열리기 시작했다. S 권사님께서 백 세를 누리시고 돌아가시기 몇 년 전 고추나무 한 그루에서 3, 400개의 열매를 땄노라며 놀라워하신 적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고추나무가 권사님의 것과 같은 종류일지도 모르겠다. 가지나무도 그에 뒤질세라 열매를 바쁘게 내어놓았다. 한번 가지를 따고 이틀이 지나 돌아보면 다시 한가득 품고 있었다. 열매 거두는 재미가 쏠쏠했다.

"살아가면서 힘겨운 상황에 부닥칠 때 비로소 사람의 본성은 감춰지지 않고 드러난다. 각자가 정신적이나 이상적인 것과 맺고 있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비록 맛을 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익숙하게 뒷받침해주던 외적인 삶이 사라지거나 흔들릴 때 비로소 그 모든 것은 참모습을 드러낸다"(본문 중에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1899년부터 1955년 사이에 쓴 글들 가운데 21편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헤세는 평생 정원을 가꾸면서 영감과 쉼을 얻었다. 그는 소설가, 시인, 화가이면서 정원사로서 이사하는 집마다 정원에서 온갖 종류의 식물을 보살폈다. 헤세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그의 작품이나 반전 활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정원이 주는 낭만과 멋을 누렸다.

나도 꽃이나 채소를 키워보고 싶어 몇 번 시도했으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 일생에 이곳이 내 집이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집에서 얼마 동안 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머무름, 지속하려는 나의 기질을 억누르며 교회를 따라 삶의 자리를 옮겨 다녔다. 헤세처럼 정원을 꾸며보고 싶다면 어느 뜰에서든 할 일을 찾아 기쁨을 누리련만 난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디 정원뿐일까. 재미는 사라지고 의무만 남은 일이.

몽고메리 집으로 이사하고는 전과 달리 나무(!)를 심었다. 늘 주저하다가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였다. 감나무, 동백나무, 배롱나무, 회양목, 뿔남천. 그것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지만 아직 연약한 상태다. 텃밭에는 교우들이 나누어준 것까지 모두 고추나무, 가지나무, 부추, 깻잎, , 방울토마토, 애플민트, 미나리가 살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때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눈이 피곤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고 맑아진다. 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은 설령 흥미 없게 보이거나 흉측해 보이더라도 그 나름대로 생생한 면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본문 중에서).


*이 글은 모바일 앱 '바이블 25'와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8/12/2018

여름을 함께 보낸 바질

<바질 꽃>




타주에 사는 친구는 식물이 예쁘고 쓸모 있게 자라도록 보살피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초여름, 그이 집에 놀러 갔을 전에 받아 씨로 싹을 틔운 것이라며 바질 모종을 한 움큼 싸주었다



비교적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자란 것들이라 더위가 길고 심한 이곳에서 자랄지 궁금했다
그런데 바질이 자라주었다
이파리는 때때로 따서 먹기도 하고 생선 구울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바질 페스토라는 파스타 요리를 하면 좋겠지만 나만 먹을 분명하여 그만두었다.



겨울 동안 사용할 바질도 말리고 있다
꽃이 피기 직전의 잎이 가장 향이 좋다고 한다
꽃이 피는 중에라도 가벼운 바람만 스쳐도 제 향기를 감추지 못한다.
베인 풀에서 나는 풀 향이 응축된 ... 
산이는 치과 냄새가 난단다.



키는 80-90센티미터쯤 되고 꽃도 계속 피고 진다
꽃이 엄청 작은데도 벌들이 제법 날아든다
친구에게 그러했듯이 나에게도 씨를 내어 주려나,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