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2024

함께 글쓰는 좋은 사람들





나는 나이 50대 후반에 동호회가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서다. 취미가 같으니 도모하는 일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내가 참여하는 몽고메리 글쓰기 모임은 시작한 지 2주년을 맞아 동인지를 만들기로 했다. 동인지에는 만날 때마다 20분 동안 쓴 글 두 편과 애틀랜타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각자의 글 가운데 일곱 편을 골라 싣기로 했다.

우리는 수요일에 만나면 지난 한 주간 있었던 개인의 일상과 관심사를 이야기한다. 한 시간쯤 시간이 흐르면 이젠 글을 쓸 차례다. 조그만 쪽지를 하나씩 받아서 글의 소재가 될만한 단어를 적는다. 쪽지는 단어가 안 보이도록 작게 접고 회원 가운데 한 명이 제비를 뽑는다. 그 뽑힌 단어가 그 날 글쓰기의 소재다. 소재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내용에서 가져올 때가 많다. 그래서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이 여러 개 나오면 우리는 한바탕 웃는다. 

자, 20분 시작합니다! 타이머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타이머가 20분이 흘렀다고 삑삑 울려대면 글쓰기를 멈춘다. 몇몇 회원들은 오늘은 소재에서 연상되는 것이 없어서 글쓰기가 어려웠다고 말하든가 글 전개가 맘에 차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나도 내가 쓴 글에 대한 기대를 낮추기 위해 두 가지 행동 중 하나가 저절로 나온다. 소심한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어떤 일에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접근하는 것이 잘난 척하다가 실수하는 것보다 그런대로 괜찮다. 시간 내에 글쓰기의 마무리가 안 된 사람은 머리와 손을 바쁘게 움직여 몇 글자를 더 적기도 한다. 글을 잘 써보려는 귀여운 열심이다. 

이렇게 쓴 글은 옆 사람이 받아서 목청을 가다듬고 정성껏 낭독한다. 글에 대해 평가는 하지 않는다. 공감하는 부분에서 감탄하는 소리를 내거나 나도 그래, 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글쓰기 공부는 각자의 몫이고, 20분 글쓰기는 자신에게 쌓인 생각과 경험과 통찰을 끌어내는 힘을 길러준다.

 20분 동안 쓴 글 가운데 동인지에 싣기로 한 공통 소재는 '10년 뒤'다. 나머지 하나는 각자가 싣고 싶은 걸 선택하면 된다. 20분 안에 급하게 쓴 글을 그대로 싣기로 했다. 그런데 '10년 뒤' 글을 쓸 때 참여하지 않았던 회원들은 집에서 써오기로 했다. 동인지 글 마감일은 2월 15일인데 그들은 벌써 글을 다 써왔다. 한 사람은 10년 뒤 보태니컬 예술가로서 입지를 견고히 하는 꿈을 썼고, 다른 한 사람은 질병 때문에 큰 수술을 받고 보니 10년 뒤가 아닌 오늘을 소중하게 살아내겠다는 다짐의 글을 썼다. 다들 글을 잘 써서 우리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진심이 가득하다.

마감일까지 글이 다 모이면 한국에 있는 K에게 글을 보낼 것이다. K는 몽고메리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글쓰기 모임 회원이다. 삶의 자리가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모임 회원이다. K가 글을 받아서 편집하고 출판하는 일을 도맡는다. 동인지가 나오기까지 그의 많은 수고가 남았다.

 우리 모임에는 이렇듯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J는 그의 집을 지난해까지 모임 장소로 열어주었다. 그의 집에 찾아오는 우리를 마치 천사를 대접하는 심정으로 맞이한다는 걸 알고 감탄했다. 회원들은 새로운 모임 장소를 정하거나 모임을 위해 음식을 가져오거나 회원들의 노트가 들어 있는 가방을 맡아 나르는 등 말 없는 봉사를 이어간다. 글쓰기나 낚시, 등산, 배드민턴 등 동호회에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헌신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여럿이 함께하면서 몰랐던 지식이나 상식을 배우고, 좋아하는 일을 점점 잘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 사람들은 몸 아프고 마음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살아갈 힘을 주는 격려를 슬쩍 흘린다. 그들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라도 우리 모임 회원으로 가까이 둔다. 그들은 만났다가 헤어져도 다시 만난다고 믿는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처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좋은 사람들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