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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2025

맛있는 우정




  다녀온 한국 여행은 명절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지인들과는 짬을 내어 만날 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삶의 굴곡이 생길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다. 특히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털어놓고 투정을 부린다. 그들과 쌓은 우정은 우리 부부에게 자산이다.

남편과 아들과 나는 약속이 먼저 잡힌 Y부부를 만나러 갔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가족을 그들의 일터와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들은 워낙 정갈하고 세련되어서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서는데 주춤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세련됨을 엿보고 싶고, 거기서 문화적인 신선함을 발견하곤 한다.

Y부부는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일터인 교회를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여전히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고 있었다. 새로운 예배실을 꾸미는 일과 건물 유지를 위한 청소도 몸소 감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배실에 가보았다. 앞쪽에 불을 켜자 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십자가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투명하고 광택이 나는 바닥에 십자가가 어렸다.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비치는 십자가가 기도하는 사람 사람에게 흘러가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느낌을 말하자 물과 빛을 표현하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알려주었다.

며칠 ,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S부부가 일하는 교회를 찾았다. S 남편의 의형제다. 나는 7 전에 S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남편은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가보고 싶어했다. S 십자가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책을 쓰는 사람이다. S 아내 R 들꽃을 찍는 사진 작가이다. R 자신의 사진과 들꽃 이야기로 책을 펴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했다.

S 길을 걷다가도 메모를 한다고 R 알려주었다.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나 자료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S 습관과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 쓰는 솜씨를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습관의 바탕에는 관심사를 나눈 사람과의 관계를 정성스럽게 이어가는 성품이 배어 있다. 교회 개혁이나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일을 생각하고, 살고 있고, 글솜씨가 있으니 그의 글은 살아서 독자에게 닿는다. 은퇴 후에 작가로 살면서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는 S 소망은 한가로움이 아닌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부모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P부부와 만났다. P부부는 부모님을 보살피는 일들을 먼저 하라며 그런 후에 만나자고 우리를 배려했다. P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와 만난 사람의 신상을 기억하고 세세한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이어간다. P 아내 K P 사람에 대한 관심과 기억력은 하늘이 주신 거라고 말한다. P 한때 공황장애가 와서 무기력증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는 그가 공황장애로 얼마나 힘들었을 상상이 되었다.

P 건강을 회복해가는 중이고 요즘은 시니어한테 관심을 쏟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P 일하는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오케스트라, 카페, 십자가 전시관 등으로 봉사한다. 최근에는 지역내 시니어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여러 일들을 벌이고 있다. 동네를 걷다가 시니어들끼리 만나면 수다도 떨고 함께 식사도 하는 생활을 권장한다. 하루에 번씩 전화로 시니어의 안부를 챙기고 식자재와 생활용품을 나누어 쓰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시니어가 많은지라 P 실천이 같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 부부와의 만남도 빼놓을 없다. 부부는 농촌지역에서 교인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다른 부부는 도시에서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한다. 그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동기들과는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만난 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맛있다. 손수 음식을 만들든 식당을 고르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식탁이 건강하고 맛날 밖에. 우리들의 우정이 식탁에서 만들어진다고 정도다. 식탁 위에는 음식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타인을 돌보는 따뜻한 삶이 함께 차려진다. 그렇게 나누는 삶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살아갈 힘을 공급하는 맛있는 우정으로 거듭난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6/07/2024

모든 여행의 끝





나무에 물이 올라 초록이 무성한 계절이다. 이렇게 좋은 때에 우리는 켄터키 윌리엄스타운에 있는 노아의 방주(Ark Encounter)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미국으로 이민 40여년이 넘은 70 여인 , 중년 명과 삼십 청년이 일행이었다. 개인이나 가족 중심의 속에서 한인 이민자들을 이웃으로 만날 있는 같은 교회 멤버들이다. 이런 인원 구성으로 자동차로 편도 12시간, 2 3일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을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가 묵직한 고급형 에스유브이(SUV) 도시 건물들 사이를 부드럽게 헤치고 나가 트인 고속도로를 올라탔다. 고흐의 그림에서 듯한 커다란 뭉게구름이 줄지어 우리를 반겼다. 여인이 하늘의 구름이 엄청 멋있다고 운을 떼었다. 구름에서 시작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래전 교회에서 갔던 선교여행이나 재미있었던 행사들을 소환해 동질감을 고취시켰다. 일방적인 사랑을 받았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50여년 연애사에는 아직도 풋풋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다들 입담이 좋아서 이야기에 진지하게 빠져 들어갈 즈음에는 기막힌 유머로 분위기를 밝게 반전시키는 묘기 자랑 시간 같았다. 웃음 파도가 없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한편, 연륜이 주는 깊은 통찰력은 예리하면서도 무겁지 않았다. 여인은 자신의 할머니께서 자주 쓰시던 말씀을 들려주었다. 뻐기다 뽀개진다. 그는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았으나 모든 일에 겸손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좋았던 과거 시절도 자랑할 것이 되며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도 자랑할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새겨들었다.

나이가 들면 여성들은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며 휴게소나 주유소에 들를 때마다 우리는 우르르 몰려 다녔다. 거리를 짧게 짧게 나누어 쉬어 가는 바람에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음식점에서는 음식을 다양하게 시켜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 스테이크 집에서도 여러 스테이크를 맛보았을 아니라 애틀랜타 한인 마트에서 사온 , 떡볶이, 순대, 오징어 숙회를 호텔 방에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분주한 아침 시간에 본인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멋있게 꾸며주어 하루를 기분 좋게 열어주었다. 처진 머리카락을 브러시로 웨이브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헤어스프레이로 예쁘게 올려 주기도 하였다. 손으로는 헤어스프레이를 뿌리고 손으로는 분말이 얼굴에 튀지 않도록 막는 손짓이 마치 엄마 같았다

우리 일행의 팀워크는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에서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각자 살아온 일상을 넘어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다른 형태의 가족이었다.

애틀랜타에 들러 한식도 먹고 커다란 한인 마트에 들러 보들보들한 떡과 약간의 식재료 구입은 셋째 날의 주요 일정이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맘껏 있는 대도시 한인 마트에 대한 부러움이 항상 있어서 그걸 조금 해소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밤운전을 해야만 하고 밤중에나 도착하여 피곤할 것이 뻔했다.

누군가 여행 일정을 하루 늘려보자고 제안했다.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비즈니스 경영자나 애완견을 돌봐야 하는 이들은 여기저기 연락을 해보더니 제안을 받아들였다. 모두 시간을 좀더 같이 보내도 좋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서로의 상황을 배려하고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기꺼이 따르는 멋있는 추억이 생겼다.

우리 여행의 목적지인 노아의 방주는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규모와 과학적인 장치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행이 그렇듯 노아의 방주를 반환점 삼아 우리가 사는 곳으로 돌아왔다

T. S. 엘리엇은 우리의 모든 탐험의 끝은 출발한 그곳에 도착하는 ,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되는 이라고 썼던가. 뉴올리언스의 참전 용사를 기념하는 넓은 도로 안쪽에 자리잡은 바랜 십자가와 한인교회 간판, 사계절 근사한 남천나무가 반기는 그곳에서 나는 새로움을 찾는다

즐거운 추억을 공유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공감이 깊어지고 속에서 피어나는 친밀함이 환하게 빛나기를 빌어본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