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2024

모든 여행의 끝





나무에 물이 올라 초록이 무성한 계절이다. 이렇게 좋은 때에 우리는 켄터키 윌리엄스타운에 있는 노아의 방주(Ark Encounter)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미국으로 이민 40여년이 넘은 70 여인 , 중년 명과 삼십 청년이 일행이었다. 개인이나 가족 중심의 속에서 한인 이민자들을 이웃으로 만날 있는 같은 교회 멤버들이다. 이런 인원 구성으로 자동차로 편도 12시간, 2 3일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을까 살짝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가 묵직한 고급형 에스유브이(SUV) 도시 건물들 사이를 부드럽게 헤치고 나가 트인 고속도로를 올라탔다. 고흐의 그림에서 듯한 커다란 뭉게구름이 줄지어 우리를 반겼다. 여인이 하늘의 구름이 엄청 멋있다고 운을 떼었다. 구름에서 시작한 우리들의 이야기는 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래전 교회에서 갔던 선교여행이나 재미있었던 행사들을 소환해 동질감을 고취시켰다. 일방적인 사랑을 받았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50여년 연애사에는 아직도 풋풋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다들 입담이 좋아서 이야기에 진지하게 빠져 들어갈 즈음에는 기막힌 유머로 분위기를 밝게 반전시키는 묘기 자랑 시간 같았다. 웃음 파도가 없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한편, 연륜이 주는 깊은 통찰력은 예리하면서도 무겁지 않았다. 여인은 자신의 할머니께서 자주 쓰시던 말씀을 들려주었다. 뻐기다 뽀개진다. 그는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았으나 모든 일에 겸손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좋았던 과거 시절도 자랑할 것이 되며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도 자랑할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새겨들었다.

나이가 들면 여성들은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며 휴게소나 주유소에 들를 때마다 우리는 우르르 몰려 다녔다. 거리를 짧게 짧게 나누어 쉬어 가는 바람에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음식점에서는 음식을 다양하게 시켜서 나누어 먹기도 했다. 스테이크 집에서도 여러 스테이크를 맛보았을 아니라 애틀랜타 한인 마트에서 사온 , 떡볶이, 순대, 오징어 숙회를 호텔 방에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분주한 아침 시간에 본인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멋있게 꾸며주어 하루를 기분 좋게 열어주었다. 처진 머리카락을 브러시로 웨이브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헤어스프레이로 예쁘게 올려 주기도 하였다. 손으로는 헤어스프레이를 뿌리고 손으로는 분말이 얼굴에 튀지 않도록 막는 손짓이 마치 엄마 같았다

우리 일행의 팀워크는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에서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각자 살아온 일상을 넘어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다른 형태의 가족이었다.

애틀랜타에 들러 한식도 먹고 커다란 한인 마트에 들러 보들보들한 떡과 약간의 식재료 구입은 셋째 날의 주요 일정이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맘껏 있는 대도시 한인 마트에 대한 부러움이 항상 있어서 그걸 조금 해소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밤운전을 해야만 하고 밤중에나 도착하여 피곤할 것이 뻔했다.

누군가 여행 일정을 하루 늘려보자고 제안했다. 쉽지 않은 제안이었다. 비즈니스 경영자나 애완견을 돌봐야 하는 이들은 여기저기 연락을 해보더니 제안을 받아들였다. 모두 시간을 좀더 같이 보내도 좋겠다는 의사표시였다. 서로의 상황을 배려하고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기꺼이 따르는 멋있는 추억이 생겼다.

우리 여행의 목적지인 노아의 방주는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규모와 과학적인 장치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행이 그렇듯 노아의 방주를 반환점 삼아 우리가 사는 곳으로 돌아왔다

T. S. 엘리엇은 우리의 모든 탐험의 끝은 출발한 그곳에 도착하는 , 그리고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되는 이라고 썼던가. 뉴올리언스의 참전 용사를 기념하는 넓은 도로 안쪽에 자리잡은 바랜 십자가와 한인교회 간판, 사계절 근사한 남천나무가 반기는 그곳에서 나는 새로움을 찾는다

즐거운 추억을 공유한 우리는 서로에 대한 공감이 깊어지고 속에서 피어나는 친밀함이 환하게 빛나기를 빌어본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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