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서는 날마다 말씀을 읽기 위하여 말씀묵상집 『기쁨의
언덕으로』를 사용하고
있다. 『기쁨의 언덕으로』는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발행되는 말씀묵상집이다.
사순절이나 대강절 같이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는 말씀을 보게 되는 때를 제외하고는 새벽기도 시간에도 『기쁨의
언덕으로』에 나와 있는 말씀을 나눈다.
올해는 온 교우가 더 적극적으로 성경을 읽기 위하여 매주 성경문제지를 만들어 성경공부를 한다. 교우들은 그 문제지를 집으로 가져가 일주일 동안 성경을 읽고 문제에 답을 달아 온다. 그 성경 문제지의 내용도 『기쁨의 언덕으로』에서 제시되는 말씀을 따라가고
있다.
이번 주에 읽은 출애굽기 17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후 아말렉과
싸운 이야기가 나온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긴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붙들고 있었고, 여호수아는
용감히 싸워 아말렉을 무찌른다. 이 이야기를 읽다가 고등학교 체력장 때의 일이 생각이 났다.
다른 종목들이 다 치러지고 오래 달리기가 체력장 평가의 마지막 종목이었다. 학급에서 사용하는 번호 순서대로 운동장 트랙을 따라 달렸다. 체육
선생님뿐 아니라 고 3 담임 선생님들도 나오셔서 체력장 결과를 기록하셨다. 대입 시험에서는 1, 2점이 당락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적어도 체력장 점수에서는 인정을 넉넉히 베푸셨다.
내 순서가 되어 오래 달리기를 시작했다. 얼마큼
달렸을까?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다리는 몸에 붙어있기는
한 것인지 느껴지지 않고, 얼굴은 달아올라 불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30대에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나의 폐활량이 보통에 못 미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갔다. 뒤쳐져서 창피하다거나 20점을 받지 못할까 걱정된다거나, 뛰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때였다.
“가자!”
친구 두 명이 달려와 내 양쪽에서 팔짱을 끼었다(친구
한 명은 얼굴이 기억나는데 다른 한 친구는 기억에 없다. 아쉽다). 친구들이 날 붙잡고 함께 달려주어서 남은 거리를 마저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800M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나서 운동장
한가운데 놓여 있던 하얀 매트리스에 난 한참을 누워있었다. ET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국사 선생님이
죽었나 살았나 내려다 보셨다(실제로 1994년 체력장 평가
때 학생이 사망한 뒤로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내 인생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을지 모를 체력장 점수 20점을 그렇게 얻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을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다. 얼굴을 아는 친구 Y는 운동장에서 헤매고 있는 날 보고 도와주고자 나섰을 것이다. Y는
그런 의리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 친구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계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Y와 가까이 지내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행복하다.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돕는 이야기와 체력장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견주어 보고자 함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온 위대한 지도자나 평범한 나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게 된다. 그럴 때 만나는 가족, 친구, 교우들의 관심과 도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지치고 힘들 때 “가자!” 하며
붙들어주는 이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솟기도 한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깊든 얕든, 도움을 주고 받는 그 순간만큼은 감동이다. 거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빌어주는 기도가 보태어지면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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