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2019

이런 소리들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잠이 설핏 깼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이젠 일어날 때 되지 않았어?, 남편이 낮은 소리로 깨웠다. 먼저 들은 소리는 남편이 교회 가려고 일어나 준비한 것이었고, 다음 것은 자신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려주는 소리다. 콩 자루가 굴러떨어지듯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늘 하던 대로 준비를 마치고 교회로 갔다.

계절이 바뀌고 있는지 밖은 어두웠다. 얼마 전부터 남편 자동차에 있는 시계가 무슨 이유인지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시간대는 달라도 분은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기에 흘깃 숫자를 읽었다. 평상시보다 몇 분 빠르게 교회로 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제일 먼저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 현관문 안쪽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며 친교하는 커다란 원형 탁자들과 의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에 대한 첫인상을 주는 곳이다. 제자리를 벗어난 의자들만이라도 탁자 아래로 쏙쏙 밀어 넣었다. 어수선한 분위기보다는 단정한 것이 나으므로. 이번엔 정수기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쌓여있던 일회용 컵들은 다 사용되고 하나만 남아 있었다. 별로 손댈 것이 없네.

아무도 없는 예배실, 익숙한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허리가 아프지 않도록 의자 등받이를 최대한 의지했다. 편안하게 또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으려나. 아직 예배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예배를 시작해야 할 시간도 지난 것 같았다.

'월요일 지나 화요일 새벽까지 모두가 피곤한 모양이군.‘

'주여, 우리와 함께. 우리 교회와 함께...‘

정적 속에 눈을 감고 있으니 더이상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빠르게 튕기는 기타 소리의 알람 때문에 눈을 떠야 했다. 어이쿠, 왜 이 시간에 알람이? 얼른 가방을 뒤져 알람을 껐다. 그때 난 봤다. 익숙한 숫자의 나열을. 이제야 집에서 일어날 시간을 알려주는 숫자였다.

"여보!“

이번엔 내가 예배실 앞쪽에 앉은 남편을 낮은 소리로 불렀다.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돌아보는 남편에게 벽에 걸린 시계를 보라고 가리켰다. 천천히 자신의 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왜 안 바뀌었지?"

전날 반가운 몇몇 목회자 부부들을 만나기 위해 조지아주 콜럼버스에 다녀왔다. 지금 살고 있는 앨라배마주 경계를 넘어 조지아주로 들어서면 셀폰이나 자동차의 시계가 한 시간 빠르게 자동으로 바뀐다. 네 개의 시간대를 가진 미국에서 그중 한 경계를 넘나들며 다니는 일이 자주 있다. 조지아주로 넘어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으니 셀폰이 자기가 알아서 시간대를 고쳤어야 했는데 조지아주 시간을 그대로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이없게도 남편 것만.

이젠 기대가 생겼다. 조금 더 있으니 부목사님도 오시고 집사님도 오셨다. 남편은 새벽 말씀을 나누던 중 이래저래 한 시간 일찍 나왔노라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도 새벽 기도에 안 오길래 기도가 더욱 간절히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번엔 같이 기도하자며 여느 때처럼 소리를 내어 기도를 시작했다. 난 이미 한 시간을 기도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뻐근하게 느껴졌다. 예배실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아직도 날이 샐 줄 모르고 어두웠다. 밖을 보니 그새 비가 꽤 내렸나 보다. 그래서 더 어두웠는지.

온통 교회 생각으로 가득한 남편은 초저녁 곯아떨어졌다가도 한밤중에 일어나 기도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다시 교회에 간다. 이런 일이 잦다. 시간을 혼동할 만했다.

회계사무실에서 3년 일하는 동안 2개의 주황색 형광펜을 오롯이 썼더랬다. 자신의 색으로 주변을 도드라지게 밝혀주는 형광펜. 노란색 형광펜을 일반적으로 많이 쓰기에 주황색 형광펜이 그어지는 곳은 더 눈에 띈다. 주황색 형광펜은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자신의 잉크를 온전히 소모하며 나를 도왔다. 그 공로를 인정하여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남편을 보면 그 주황색 형광펜이 자꾸 생각난다.

오전 내내 흐려 쌀국수가 생각났다. 남편과 산이, 부목사님과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부목사님이 말했다.

"목사님, 새벽에 한 시간 일찍 나오셔서 피곤하시겠어요.“

", 잠잘 때가 아니다. 기도해라. 그런 신호였나 봐.“

식당에서 우리의 음식값을 대신 내어준 교우, 교회를 위해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나눠주는 교우, 교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교우... 그들의 목소리가 천사의 소리로 들린다는 남편. 자신의 새벽 알람 소리도 천사의 소리였다고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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