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5/2019

다시 말 걸기



지난 6월 하순경, 어거스타시온감리교회에서 목회자들 모임이 있었다. 그 교회는 앞으로 2년 동안 감리사를 맡으신 목사님이 일하시는 곳이다. 취임식은 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교역자회의를 그 교회에서 한 것이었다. 여러 교회를 돌보는 감리사 직분도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며 교회나 교인에게 부담되는 취임식을 하지 않기로 하신 것 같았다.

워낙 땅이 넓은 나라이기에 같은 지방이라 해도 교회들은 멀리 뚝뚝 떨어져 있다. 지방 행사를 하려면 반나절 혹은 하룻낮 동안 자동차로 운전하여 모이니 보통은 하룻밤을 묵어가며 만나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만나면 서로 얼굴 보며 안부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귀하다.

그래서였을까? 교역자회의를 마친 다음 날 감리사님은 헤어지기 전에 볼링을 치자고 제안하셨다. 그러면 점심도 대접하시겠다며.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냥 헤어지기 아쉬우셨나 보다. 아주 먼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분들은 동참하고 싶어도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형편이 허락하는 분들이 남게 되었다.

난 참 운동을 못 한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발야구를 종종 했었는데 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라 게임 규칙을 잘 이해해서 그나마 껴주었다. 운동회 때 달리기는 항상 꼴찌에서 두 번째. 네 명이 달리든 여덟 명이 달리든. 둥그렇게 서서 자유 배구를 하면 공이 다른 데로 튕겨가게 하든지 공 잡으려고 뒷걸음질 치다 자빠지기 일쑤였고. 탁구를 해도 공이 오고 가길 서너 번 넘긴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이력으로 볼 때 볼링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결코 먼저 나서서 하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보아 그냥 하는 거다.

목사님들과 떨어져 사모님들은 아이들과 섞여 두 레인을 차지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언제 볼링공을 잡아보았는지 기억도 없으나 몇 번 해 본 솜씨로 공을 굴렸다. 웬일로 공이 레인을 벗어나지 않고 핀들을 몇 개씩 쓰러트렸다. 스트라이크도 있었다. 별일이었다.

한 게임이 끝나고 게임이 좀 되는 날인 듯싶어 한 번 더 도전했다. 그럼 그렇지. 내 손을 떠난 공은 대부분 레인을 벗어나 도랑에 빠져 부끄러운 듯 달아났고 겨우 빵점만 면하였다. 차라리 첫판에 이랬으면 두 번째는 아예 나서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첫판은 엉망이더라도 두 번째가 좀 더 낫든지. 공을 굴리고 돌아서 자리로 들어올 때마다 점수는 상관없는 척하려 해도 얼굴 표정이 자꾸 어색해졌다. 레인 위에서 자리로 돌아오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몸에 힘도 점점 빠지면서 점수를 올리는 일보다 주변으로 관심이 흩어졌다. 슬쩍 옆 레인의 점수판을 보니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점수가 보였다. 누구지? 부목사님의 아들 결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결이. 결이는 볼링을 처음 해보는 것 같았다. 결이의 표정으로 봐서 그 녀석도 고전 중인 듯했다. 남 일이 아니었다. 나이 많은 내가 짐짓 여유를 부리며 결이에게 말을 걸었다.

"결이, 나랑 비슷한데! 우리 하이파이브하자.“

결이는 수줍게 미소지으며 내가 먼저 내민 손을 부끄럽지 않게 해 주었다. 결이도 공이 맘처럼 굴러가 주질 않아 속상해하던 참에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내가 말을 걸어 주어 마음이 조금 풀렸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결이가 있어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무엇이든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공감하며 말 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하다.

남편과 아이들은 자주 볼링장을 다닌다. 나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만 난 안 간다. 이러다 언젠가 맘 내키는 날 가게 되면 다시 한번 공을 굴려보아야지. 그리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옆 사람에게 또 말을 걸어야겠다. 잘 되든 안 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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