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3/2010

김치 맛이 깊어져 간다면

엄마께

안녕하세요?
한국은 많이 덥고 비도 많이 오는 것 같은데 가족들 모두 어떻게 지내세요?

조카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지 꽤 여러 날 되었네요.
엄마나 어머님이나 아이들 돌보느라 수고했다, 말씀해 주셨는데 아이들이 저한테 준 것도 많아요.
많이 웃게도 해주었고, 말도 많이 하게 해주었고, 김치도(!) 여러 번 담그게 해주었요.

한국에서는 어머님이 김치가 떨어지지 않게 담궈 주셔서 내가 김치를 해 볼 기회를 주시지 않았잖아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서는 왠지 김치는 직접 만들어 먹어야 될 것 같아 엄마한테 몇 번씩 전화해서 물어보고 그랬구요.
하지만 두어 번 만든 김치가 도무지 맛이 없어서 찌개로 끓여 먹었어요.
그래서 김치 만들기를 일찌감치 그만두고, 그 동안 식품점에서 파는 김치를 사다 먹거나 누군가 김치를 나눠주면 큰 선물 받은 것처럼 좋아하며 맛있게 먹었어요.

그러다가 올 여름 조카들이 온다기에 직접 담근 김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김치 담그기에 다시 도전을 했어요.
먼저 조금 쉬운 겉절이를 했어요.
바로 이어 배추 2포기를 잘라서 담그는 김치를 해 보았어요.
그런데 김치 냄새가 이상한 거에요.
새우젓과 까나라리 액젓을 넣었는데, 그 중 까나리 액젓이 오래 되어 그런가 하고 새 액젓을 사서 다시 담궈보았어요.
그래도 김치 맛이 산뜻하지가 않았어요.
엄마한테 전화로 물어봤더니 여름 김치에는 새우젓을 넣지 않는다고 알려주셨잖아요.
양파도 넣고, 설탕도 조금 넣어보라고요.

엄마의 충고에 힘입어 큰 맘먹고 배추 1상자를 샀어요.
크고 작은 배추 9포기 가운데 상한 것을 다듬어 버리고, 완전히 상한 1포기도 버리고 5포기를 새우젓을 넣지 않고 만들었어요.
아이들 보고도 맛과 간을 보아달라고 했더니,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둥 익으면 맛이 있을 것 같다는 둥 하며 저한테 용기를 줬어요.

네 번째 담근 김치는 제법 향이나 색깔이 김치 같아서 밥상에 자신 있게 내놓았어요.
그런데 김치가 별로 인기가 없는 거에요.
아이들이 하는 말이 시골 할머니가 담궈 주신 아삭아삭한 김치가 먹고 싶다, 그러는 거에요.
이그그. --;;

그래서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얘들아, 남아 있는 배추로 다시 한번 만들어줄게.” *^^*

이번에는 새우젓도 넣지 않고, 까나리 액젓이 아니라 교회 권사님이 알려주신 어떤 액젓을 넣고, 양파와 설탕을 넣어 남아 있던 배추 3포기로 뚝딱 김치를 만들었어요.
두 달이 채 안 되는 동안 김치를 다섯 번째 해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는 거에요. ㅎㅎㅎ

제가 먹어본 바로는 김치 맛이 훨씬 나아졌어요.
가족 누구도 맛있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지만요. *^^*

엄마, 나 시간 나면 김치 또 담글 거에요.
어쩌면 사다 먹을지도 모르구요.
어쨌든 내가 담근 김치 맛이 깊어져 간다면, 그건 미국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될 거에요.
엄마나 어머님처럼 맛난 김치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요.

엄마,
오늘 따라 엄마가 해준 마늘쫑 조림도 먹고 싶고, 고추장으로 양념한 시금치 무침도 먹고 싶고, 명절 뒤에 남은 음식을 모아 끓인 잡탕찌개도 먹고 싶네.
먹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더 먹고 싶다.
나중에 한국 가면 많이 많이 먹어야지~.

가족 모두 건강하세요.
이제 말복도 지났으니 곧 서늘한 바람 불겠죠.

여러 모로 모자란 딸 올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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