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2010

고난 묵상이 아니라 제 기도를 드려도 될까요

<못을 받은 다음 날, 못이 들어있던 아이들 봉투를 살펴보니 두 녀석 모두 어디다 못을 두었는지 빈 봉투만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못을 간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이었지만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아이들과 함께 저녁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절제하거나 나쁜 습관을 버리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간으로 삼자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지난 해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아마도), 무엇을 실천했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주변의 몇몇 집사님들은 커피도 끊어보고, 한국 드라마도 끊어보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사순절을 보낼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습니다.
무엇 하나 포기 하고 싶지 않은 나태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어찌할거나….





설교가 끝나고 재의 수요일 예전으로 죄를 회개하면서 잿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주셨습니다.
모두가 차례로 줄을 서서 조용히 그 예식에 참여했습니다.
강윤이가 먼저 서고 강산이, 제가 뒤를 이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점점 차례가 다가오자 강산이가 무슨 맘이 들었는지 얼른 제 뒤로 자리를 옮깁니다.
자기가 아는 교우가 눈에 띄었는지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하기도 합니다.
웃고 그럴 분위기가 아닌데 말이죠.

게다가 강산이는 자기 이마에 십자가를 받고는 큰소리로 “아유~” “에이~” 하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 죄를 고백하며 숙연한 분위기에서 십자가를 받고 있는데 어찌 당황스럽던지요.
강산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느낌이 있었나봅니다.
이그그.

집에 돌아와 자기 이마에 그어진 십자가들을 거울로 비춰보며, 강윤이는 자기 십자가는 아래 한쪽이 없다는 둥, 강산이는 “닦어?, 하지마?” 물으며 재미있어 합니다.
아이들은 제가 느끼는 십자가의 무게만큼 무겁지 않은가 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며 무엇으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것인가 보다 주님께 바라는 기도 제목이 더 선명해지니, 이런 저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래도 너그러이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1서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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