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는 내가 노래를 꽤 잘 부르는 줄 알았다.
이미 다섯 살 즈음에 대중가요의 제목만 대면 노래를 줄줄이 불러댔다고 친지 어르신들은 두고두고 얘기해 주셨다. 또 내 세상의 삼분의 일-가정, 학교, 교회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을 차지하는 교회에서 찬송 부르기 대회를
하면 상을 제법 받곤 하였다. 중, 고등부 시절에는 이웃
교회와 연합으로 찬송 부르기 대회를 해도 상 받는 자리에 한번씩 불려 나가곤 했다.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상을 두루두루 나눠 주었다 해도, 스스로 노래를 잘 하는 줄 착각할 만큼 격려를 많이
받았다.
그러다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누가 보아도 노래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면서 내 노래 실력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음역도 엄청 좁고, 음정과 가락을 익히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닌 사람이란 걸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노래 부르는 실력이
별로 없다는 걸 알아갈 청년 시절에 교회 성가대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노래는 좀 못 불러도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는 청년이었기에 성가대 자리라도 채우라고 성가대원을 시켜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성가대에 참여하지 못하다가 지금 다니는 교회의 성가대를 4 년째 하고 있다. 와우! 지금도
여전히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나 성가대에 참여하는 태도는 청년 시절과 달라진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노력을 조금 더 한다는 것이다. 다같이
연습하는 시간에 음정을 다 익히지 못하니 집에 악보를 가져와서 한두 번이라도 연습을 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음정이 불안한 곳에서는 붕어 같이 입만 벙긋거려야 하기 때문이다(지휘자나 성가대를 바라보는 교인들도
이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지 늘 궁금하다. 그래도 물어볼 수는 없다.
만일 그들이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면 난 더 이상 성가대에 설 수 없을 것 같다).
두 번째, 가사를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청년 때와는 달라진 점이다. 성경 말씀으로 가사를 삼은 것도 좋고, 찬송가를 편곡한 것도 좋고, 새로운 내용의 가사도 다 좋다. 예배 드릴 때 들려질 성가 곡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많다. 우리 교회 성가대에 참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날 찬양을 할 때였다. “어버이의 그 사랑 나 어릴 때 몰랐으나 어른 되어 이제서야 그 사랑 알게 됐네”라는 가사에 목이 턱 막혀 노래를 부르지 못한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함께 살았던 할머니 생각이 나서였다. 할머니께서 베풀어주신 그 사랑을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께 잘 해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 뒤로는 감정에 치우쳐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으나 마음 속으로는 울컥 울컥 하는 위로와 믿음을 주는 가사를 만날 때가 있다. “주 찬양해 주 찬양해”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사를 부를 때는 마치 천사들의 손에 들려진 나팔이라도 된 양 입을 쩍쩍 벌려 본다. 복식호흡으로 내는 소리가 나오기는커녕 목을 쥐어짜는 소리가 나올지라도 말이다.
세 번째는 여러 사람이 내는 음이 조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즐겁다. 새로운 곡을 받으면 곡이 예쁘네, 어렵네, 재미없네,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삐죽삐죽 울퉁불퉁 제 각각의 소리를 내는 것 같아도 여러 주에 걸쳐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파트마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동시에 다른 파트와
화음이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 교회 성가대원은 아홉 내지 열 명 남짓이다. 웅장한 소리가 나올만한 인원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성가대원 가운데
서운해 할 사람이 있을 지 모르나 노래 부르는 실력이 특출한 사람 없이 다 그만 그만 한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건가, 싶기도 하다.
우리 성가대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최고의 성가대이며 어려운 곡일수록 더
잘 부르는 성가대로 우리끼리(!) 인정한다. 우리 성가대는
나같이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참여할 수 있고, 성가대원이 되고 싶은 교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좋다. 우리끼리 인정하는 최고의 성가대의 한 사람으로써, 주일 예배에서
성가를 부를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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