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2019

우리들의 시간이 쌓여 가는 어느 봄날




주일 점심은 비빔밥. 교회 대청소를 하려면 힘을 써야 하는데 비빔밥은 꽤 든든한 한 끼였다. 식사가 끝남과 동시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변신을 한 교우들이 저마다 청소 도구를 들고 어딘가로 흩어졌다. 갈 곳을 못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이는 나뿐인 것 같았다.

여성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방과 화장실 쪽에서 정리하고 쓸고 닦았다. 다른 화장실 쪽에는 중고등부 아이들이 매달렸다.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일찌감치 끼지 못한 이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로 한 쪽으로 물러나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예배실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비눗물을 풀어 친교실 바닥을 닦기도 했다. 여러 방들은 그저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 두서너 명이 들러 청소한 흔적을 남겼다.

건물 밖에서는 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전지가위의 철컥거리는 소리가 풀을 깎는 기계 소리에 묻혀버렸다. 짤린 풀과 마른 검불은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의 옷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 열심히 일한 표시였다. 교회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그늘진 작은 정원의 풀과 멋없이 길쭉하게 자라버린 장미 나무가 깔끔하게 이발을 했다. 올해 부활절 맞이 바깥 청소 절반의 완성!

또 다른 절반의 완성은 놀이터였다. 얼마간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해지고 벌레와 개미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생겨서 놀이터를 벌레로부터 되찾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모아 잡초를 제거하고 벌레들을 물리치고 바닥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아동부 교사들의 바람대로 한 쪽에 모래 놀이터가 될 공간도 확보되었다. 일이 이 정도로 진척되었으니 다시 사용할 날이 멀지 않았다

가장 많은 인원이 놀이터 일을 도왔다. 따끈따끈한 햇볕 아래에서 하는 힘든 일이었다. 사람들은 놀이터 쪽에 가서 잠시만 거들어도 얼굴이 벌개지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니 너덧 시간씩 일한 교인들의 수고가 짐작된다. 바깥일을 한 그들을 위해 팝씨클이며 김치전, 피자로 새참을 내준 이들도 있어 청소의 마무리가 넉넉한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부활절을 준비하는 일이니 몸은 힘들어도 뿌듯한 마음으로 헤어질 시간. 거의 돌아가고 몇 사람 남지 않았다. 남편은 고향에서 모내기 하다가 온 사람처럼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옷을 벗어 둔 담임목사실 쪽으로 가는 것 같더니 금방 돌아와서는 방문이 잠겼다는 것이었다. 따로 갖고 있는 열쇠는 없단다. 내 가방도 거기에 있었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은 플라스틱 카드를 문틈으로 밀어 넣어 보기도 하고, 열쇠 구멍에 뾰족한 걸 넣어 돌려보기도 하고, 건물 밖 창문을 달싹여도 보았으나 그 방으로 들어갈 수가 보이지 않았다. 문이 열려야 우리 세 식구가 갈 수 있으므로 남은 이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모두 피곤한 상태일 텐데 그런데 묘하게 걱정이 안 되었다. 하다하다 안 열리면 남아 있는 누군가 우릴 재워주겠지, 그리고 다음 날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뭐, 하는 근거 없는 여유가 있었다.  

누군가는 잠긴 문고리와 씨름하며 땀을 또 흘렸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마치 자기 방문이 잠긴 것처럼 안타까워하며 문 여는데 도움이 될 듯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렸다. 소용에 닿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교회 건물주인 성공회 교인들이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오후에 주일 예배를 드린다. 이제는 실내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햇빛이 엷어지고 있었다. 바람은 불고 있으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부드럽게 머물렀다. 정리된 화단 쪽에서는 베인 풀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돕던 교우들 몇이 끝까지 같이 있지 못해 미안하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 목사네와 김 장로님은 교회 건물 앞 돌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뿌리가 뻗으며 돌테이블을 밀어내 쓰러져 있던 것을 얼마 전 목사님 두 분이 바로잡아 놓았다. 삽으로 뿌리를 자르고 테이블 받침을 다시 흙 속에 묻어두었다. 하지만 어떤 테이블과 벤치는 아직도 삐뚜름하다.

교회 건물을 관리하는 어니스트가 온다고 하여 두서없는 얘기 보따리를 하나씩 끌러가며 기다렸다. 온다고 한 시간을 훨씬 넘겨 도착한 어니스트는 100개도 넘어 보이는 열쇠 꾸러미와 공구가 들어 있을 법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몇 사람의 예상대로 그는 문을 열지 못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너무 웃겼다. 그래도 우리를 도와주러 온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김 장로님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체와 관련 있는 열쇠공에게 이미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였다. 어니스트에게 먼저 기회를 준 것뿐이었다. 돌테이블에 둘러 앉아 가난한 사람들처럼 아무런 상차림도 없이 오로지 얘기만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쯤 더 기다려 장로님이 섭외한 사람이 도착했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열쇠공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최후에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마침내 문을 열었다. 그는 영업 비밀이라며 그 마지막 방법을 목사님들과 장로님에게 알려주었다. 어쨌든 문은 열렸고 장로님으로부터 수고비를 받아 휑하니 떠났다. 장로님도 그제서야 바쁘게 길을 나섰다.

아침 1부 예배부터 거의 열두 시간만에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마치 아늑한 봄날 오후에 의리로 뭉친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닥 피곤하지도 않았다. 교회 청소를 열심히 안 한 모양이다. 문이 어떻게 잠겼는지 모르지만 그 일로 인해 우리들의 시간이 돌테이블 위에 한 켜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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