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2008

저는 어미입니다


사람들은 가정, 직장, 교회, 친구, 동호회 따위에서 그 역할에 맞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여성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합니다.
여성학, 여성신학, 여성해방에 관심이 있을 때는 그리고 결혼해서도 한참 동안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이기보다 의식적으로 제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팔,구년 전쯤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을 읽을 즈음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을 읽는 동안 내가 목사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엄마이고 교회에서 사모인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축복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상담에서 사용하는 "통합(integration)"의 과정이라고 쳐주신다면 제가 그 언저리쯤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어제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강산이가 흥얼흥얼 찬양을 합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 주를 찬양하리
햇빛 찬란한 낮에 주를 찬양하리
별빛 반짝일 때에 주를 찬양하리
캄캄한 밤에도 주를 나 찬양하리라”
한국에서 할머니들 오시면 불러드리겠답니다.

오늘은 “일어나라 일어나라” 해도 꿈지럭대더니 결국은 스쿨버스를 놓쳤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먼저 가라 했더니 “~bring him" 뭐라고 합니다.
나보고 데리고 오겠냐고 하는 것 같아 “그러겠다”고 얼떨결에 대답했습니다.

버스가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텐데 강산이 방에 가보니 부시럭 부시럭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모른 척하고 “너 오늘 학교 안가지?” 하고는 켜있던 전등을 다 껐습니다.
그런데 계속 소리가 들리는걸 보면 먹고 씻고 입고 있나 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 차고로 나가는 문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 날까 싶어 얼른 뒤따라 내려가며 ‘이걸 그냥.... 아까 버스 기사한테 대답만 안했으면...’ 해봅니다.

아침 나절, 블로그에 올릴 글 끄적거리는 걸 일찍 마치고 싶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결국은 관두고 말았습니다.
열다섯 살이나 된 아들 녀석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녀석 애기가 빠지면 이제는 글을 쓰는 것도, 저를 설명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회화 수업(Conversation Class)에서 간단한 시험을 본다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다른 질문을 하고 그걸로 대화를 이어가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우리 아이들이 잘 다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물론 버벅 버벅...
그랬더니 질문을 바꿔서 “네 형제 자매가 있느냐? 그들과 싸운 적이 없느냐?”합니다.
뭐 싸운 기억이 별로 없어서 “내 동생들은 착하다” 그랬습니다.
그러자 “네 아이들은 안 싸우냐?”고 또 묻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예스” 하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 아들이 장애가 있는데...”
여기까지 대답하니까 이 사실을 아는 선생님은 얼른 말을 받아 “그 아이는 상냥하고(sweet) 그래서..."합니다.
저는 “맞다(sure)" 하고 대화 아닌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 수업 시간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긴장이 풀리면서 제 자신이 참 답답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은 몇 살이냐? 어떤 상황에서 잘 싸우냐?” 라고 다시 물어서 말을 이어가든지, 아니면 옆 친구가 눈치 주는 것처럼 “예스” 대답해 놓고 쉬운 말로 적당히 꾸며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융통성하고는 담 쌓고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제가 조금 특별한 강산이의 엄마가 분명합니다.
그걸 핑계로 저의 부족함이나 게으름을 이해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 삶이라는 것이죠!^^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강산이가 여느 때보다 한 시간이나 빠르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버스 시간을 새롭게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강산이는 들어오면서부터 제 눈치를 봅니다.
아침에 일어난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 한편 기분이 괜찮습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이 글을 계속 쓰고 있으려니까 옷 갈아입고 내려오며 “엄마한테 사과해야지~” 라며 혼잣말 하는 것이 들립니다.
학교에서 선물로 받은 지팡이 사탕과 브라우니라는 빵을 제 옆에 살짝 갖다놓으며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그러더니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뭐라고 합니다.
저는 어디 다쳤나 싶어 “왜?” 그랬습니다.
강산이는 저의 손가락을 끌어다가 자기 새끼손가락으로 감싸 쥡니다.
“학교 일찍 안 돼.”
“학교 일찍 간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끄떡끄떡 합니다.
‘이 녀석아, 그 말이 그 말이야.’
강산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이 고마워 코끝이 시큰합니다.

이만큼 글을 쓰기까지-보기에는 몇 글자 되지 않아 보여도 저한테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강산이는 아직도 조용합니다.
“강산이 이리 와. 강산이 엄마하고 약속한 거 사진으로 찍어놔야겠어.”
“힝~”하고 오더니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내일 토요일 한국학교 갈 거야? 이건 뭐야?”
“강윤이는 크니까 좋겠다. 나도 크고 싶어.”
“학교 끝나고 할머니 오시면 공항 가?”하며 상황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줄줄이 합니다.
대충 대답을 해주었는데 엄마 마음이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엄마 스마일~”합니다.
‘야, 이 녀석아, 너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계단 내려갈 때 화 다 풀렸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웃는 자가 마지막까지 살아 남는다-메리 페티본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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