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2008

value free


일주일째 한쪽 귀가 은근히 불편합니다.
다른 곳이 아프면 그런가 보다 할텐데 귀가 아프니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그 귀는 팔년 전쯤 크게 치료한 경험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요즘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귀가 아픈 쪽 잇몸과 눈도 덩달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다가 증상이 확실히 드러나면 일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약을 먹든 병원을 가든 빨리 상황을 개선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주말에 아프면 병원에도 갈 수 없다며 남편이 서두르는 바람에 지난주에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
다른 데는 아무 이상이 없고 입 안에 피곤하거나 하면 생기는 궤양 때문에 다른 곳에 통증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진찰 결과가 나왔습니다.
입 안 상처를 치료하는 처방전도 받아왔습니다.

입 안에 생기는 상처쯤이야 수없이 겪어본 것이라 약이 굳이 필요할까 싶어 약을 사지 않고 주일을 넘겼습니다.
말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상처가 따끔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귀도 편안치가 않습니다.
결국은 어제 남편이 출근하면서 처방전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귀만 아프지 않았으면 버틸 수 있었는데....’

어제 점심때가 조금 지나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약값이 원래 이렇게 비싼거야?”
“얼만데?”
“44불이 넘어.”
“어 이상하다. 선생님이 4불쯤 할거라고 그랬는데. 벌써 계산했지?”
약국에 가서 다시 물어볼 처지도 아니고 처방전에 따라 준 약은 환불이 안될거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좋은 약을 쓰게 되었습니다.
잠자기 전 이를 닦고 튜브에 담긴 그 약을 짜내어 잇몸과 혀의 상처에 바르는 순간 마취가 되면서 통증이 바로 사라졌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약을 또 발라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참 신기합니다.

이곳 병원비와 약값이 엄청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비단 그것 뿐만 아니라 한국 물건을 파는 마트에 가도 한국 가격보다 한배 반이나 두배 가량 비싼 것을 보게 됩니다.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책 사는 즐거움도 접어두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쑥날쑥 할 때는 한국을 떠나올 때 선배 목사님이 말씀해 주신 “value free”가 기억납니다.
아마도 한국과 미국 살림살이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테니까요.

남편과 함께 코칭 세미나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사람의 의식과 능력이 발전하는 단계에 대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무의식 무능력 상태로 있다가(무의식/무능력),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식이 생기나 아직은 무능력 상태로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타보겠다는 의식은 있는데 자전거를 운전할 줄 모르는 때입니다(의식/무능력).
의식한대로 연습을 열심히 해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의식/능력).
그러다 몸에 익숙해지면 자전거를 잘 타보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무의식/능력).

이곳 살림살이는 의식/무능력 상태이면서 동시에 의식/능력 단계로 올라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바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자동으로 한국과 가격 비교가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이런 상황을 미리 아시고 한 말씀이겠거니 하면서 마음을 넉넉히 가져보아도 말입니다.
이제 반년쯤 지내고 보니 한 걸음 한 걸음 뒤뚱뒤뚱 이곳 형편에 맞게 살림이 꾸려지는 듯도 합니다.

한편 살림이야 제게 주어진 고유한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 그렇다 쳐도 다른 일에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릴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능력을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인으로서 이곳에서 사는 것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가치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럴 때 해주실 무슨 말씀 없으세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 /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9-14)

댓글 1개:

  1. 누나, 태석이야.
    아프지 말고...
    즐거운 추석 보내.
    매형, 강산, 강윤이 한테도 인사 전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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