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2010

생각지 않은 늦잠이 가져다 준 즐거움

<아침 6시20분, 학교에 가는 강산이. 스쿨 버스가 오는 바람에 서둘러 찍어 사진이 흐릿합니다.>

엊그제 아침, 정신 없이 자고 있는데 누군가 방문을 여는 인기척에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보통은 남편이 새벽 기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소리, 그리고 나서 조금 있다가 강산이를 깨우기 위해 울리는 셀폰의 알람 소리에 깊은 새벽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듯 뒤척거려야 할 시간이라 그랬는지, 방문을 여는 소리를 들은 것도 아닌데 강산이가 들어오면서 바뀐 방안 공기의 느낌만으로 잠이 확 깼습니다.
“엄마, 나 학교 가야 돼.”
“…. 엉?”
셀폰의 시간을 확인해 보니 6시 45분.
스쿨 버스가 불 꺼진 집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떠난 지 25분이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이 교회에 가느라 왔다 갔다 한 것도 모르겠고 5시 30분에 울렸어야 할 알람도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셀폰은 제대로 켜 있는데….

우리가 사는 카운티의 고등학교가 시작하는 시간은 7시 10분쯤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강산이가 순조롭게 준비를 하고, 학교에 데려다 주면 그다지 늦지 않을 시간입니다.
다만 학교에서 아침 식사 할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강산이네 반 친구들과 선생님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함께 먹습니다.
아침 먹는 시간에 학교에 한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일찍 등교한 학생들 대부분이 아침을 학교에서 먹는 것 같았습니다.
강산이는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한 잔 가득 먹고 학교에 가서 또 아침을 먹나 봅니다.
학교에서 무엇을 먹는지 궁금한데, 그때 자세히 볼걸 그랬습니다.

스쿨 버스를 놓치고 늦잠을 잔 것이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강산이가 학교에 가기 위해 엄마를 깨웠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줄 몰랐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그 날이 학교에 가야 하는 날임을 알고, 다른 날과는 달리 계속 잠을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야 한다는 상황을 판단해서, 말로 엄마를 깨운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가 “엄마” 하고 처음으로 말을 했을 때나 첫 걸음을 걸었을 때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리고 기억 속에서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 짓는 것을 압니다.
저는 그 기쁨과 웃음을, 며칠 있으면 열 일곱 살이 되는 아들에게서 지금도 선물로 받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언제나 기쁨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몇 달 동안 강산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환경에 적응하라고 무턱대고 던져놓은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깝고 속상했더랬습니다.
이해의 정도나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학교에 가기 싫은 이유를 강산이의 감정 표현으로 어림 짐작했어야 했기에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학교 생활이 어떤지 말로 잘 해주지는 않지만, 어느새 혼란스러움이 아닌 친밀함을 만들어 가는 강산이가 대견스럽습니다.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미국 생활을 시작하기는 마찬가지였던 강윤이도 별탈 없이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어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구겨진 종이 조각을 장난 삼아 친구에게 던지거나 점심 시간에 카페테리아 가다가 복도에서 떠들다 걸려서 작은 벌칙을 받았을 때, 이제껏 경험해온 학교 생활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기도 스트레스가 많았을 텐데, 잘 견디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나름 학교 성적에도 관심을 갖고 목표한 점수를 유지하려는 모습도 종~종 봅니다.
아직 ESOL 반(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영어 공부하는 반)에 참여하기 때문에 너그러이 봐주는 과목이 있어서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 강윤이가 아니라고 소리를 지를 것 같은데요? ㅋㅋㅋ
그래도 강윤이는 수학을 정말 잘 합니다!!!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는 선생님의 인정을 받아 같은 반 친구들이 바이올린 연습할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학생이 학교 선생님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신감을 주기도 하고 학교에 갈 맛(!)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며칠 전에는 아빠에게 전화해서 집에 올 때 엄마 생일 케이크를 사오시라, 귀띔을 했다고 합니다.
짜아식!

강산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만 닦고 나갈 마음으로, 학교 현관에서 내려줄 테니 혼자 들어가, 라고 했습니다.
강산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싫답니다.
교실까지 함께 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강산이는 자기 교실이 어디인지 잘 찾아 다닙니다.
학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갔더니, 담임 선생님은 강산이가 행사 장소를 알고 있으니 강산이를 따라가라고 할 정도입니다.
“강산아, 혼자 들어가도 돼.”
무슨 생각인지 금방 고개를 끄덕입니다.

스쿨 버스, 부모와 학생들의 등교 차량으로 붐비는 학교 앞이 한산합니다.
차가 학교 앞에 멈추자 혼자 내립니다.
웃으며 손을 흔들고 학교 건물을 향해 걸어갑니다.
어느 만큼 가다가 뒤돌아 보고 엄마가 탄 자동차가 그대로 있으니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고 있으니, 건물로 들어가서 차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제 갈 길을 다시 가면서 어서 가라고 머리 뒤로 손을 흔듭니다.

강산이나 강윤이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관리를 하며 커가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생각지 않은 늦잠이 커가는 자녀들을 느껴 보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다니, 사는 것이 날마다 새롭습니다.
엊그제도 그리고 오늘도 저는 기쁨과 감사를 선택해봅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3:19-23)

<눈이 조금 왔는데 더불어 기온이 뚝 떨어져서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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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슷한 연령의 자식들을 거두고 있는 부모로서 많은 공감을 느끼고 갑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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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oldman님,
    반갑습니다.
    oldman님께서도 늘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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