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증축 중인 친교실> |
2018년 4월27일은
나의 조국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는 날이었다. 그 역사적인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곳은 한국과 13시간 차이가 나기에 26일 저녁 식사 후에 조그만 아이패드 스크린을 앞에 두고 앉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을 향해 자동차로 이동하는 장면부터 보기 시작했다. 가슴이 설레었다. 남과 북의 최고 지도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무척 기대가 되었다.
드디어 두 지도자가 만나 두 손을 꼭 잡을 때는 약간(!) 목이 메면서 감격스러웠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궁금함이 있었다. 몸짓, 말투, 목소리에도
집중이 되었다. 유머가 있고 생각에 여유가 있는 젊은 지도자로구나 여겨졌다. 북한에 대한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기분 좋게 잠 자러 들어갔다. 물론 남편은 졸면서도 밤이 새도록 아이패드를
켜놓고 그 앞을 지켰다.
새벽기도 갈 시간보다 조금 일찍 잠이 깨었다. 엉겁결에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회담
일정이 잘 진행되고 있음이 확실했다. 들뜬 기분으로 교회에 다녀왔다.
아침을 먹으면서는, 정성스레 잘 준비된 잔칫집에서 격조 높게 손님 접대를 하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랑스러웠다. 8천만 동포의 염원을 담아, 우리 겨레가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전환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직장 생활한다고 미루고 쌓아두었던 지난 3년의 개인적인 삶을 정리하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내
삶이 곧 교회와 붙어있는 신앙생활이다 보니 교회 얘기가 주가 되었다. 미우나 고우나, 좌절이 되거나 희망이 있거나 교회는 내 삶터다. 우리교회도 새로운
사명으로 초대받고 있는 전환시대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 사명을 분별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우리교회 얘기를 좀 더 해보련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 미주연회 동남부지방 실행부 회의를 거쳐
우리교회는 2016년 1월,
거의 15여 년 만에 교단 재허입이 결정되었다. 지방
목사님들은 교회의 상처가 치유되고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교회를 받아주셨다. 남편도 당시
25년 목회를 한 교단 정회원의 자격을 회복하였다.
친교실 증축을 위한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바닥을 콘크리트로 채우는 기초 공사가 시작되었다. 기존 건물 밖에
콘크리트 바닥만이 마련되었을 뿐인데 교회는 기대감으로 들썩였다. 거리에 세워진 오래된 교회 간판도 바꾸었다. 새롭고 산뜻했다. 전교인 야외 예배도 오랜만에 드렸다. 장소 섭외가 늦어져 교회 마당에 있는 쉘터에서 모였다. 우리교회는
터가 넓어서 큼직한 쉘터도 지어져 있다. 하필이면 그날 소나기가 세게 내렸는데, 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고 맛있는 시간을 보냈다.
2016년 4월에 증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겨우 두 달여 만에 친교실은 확장되었다. 또 한 달쯤 뒤에는 준공검사도 끝났다. 넓어진 친교실에 들어갈 비품들을 마련하느라 건축비가 좀 더 들어갔으나, 에어컨디셔너
구입과 설치, 새 건물에 비해 바래 보이는 곳에 페인트 칠하기 따위는 자원하여 봉사하였다. 어려운 과정 속에서 건축이 마무리 되었음을 아는 교우들은 그들대로, 새로
들어와서 건축되는 기쁨을 짧게 맛본 교우들은 그들대로 하나님이 우리교회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하였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2014년 8월 폐암 말기라고 진단받았던 양권사님은 암이 온몸으로 전이가 계속 되는 상황이나 지금까지도 주일예배에 꼭 참여하신다.
결국 2015년 1월에 선포된 교회의 두 가지 목표, 친교실 증축과 교단 가입은 2016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교회 차원에서 큰 일이 다 끝난
듯 했는데 2016년 12월에 열린 교인 총회에서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쯤에서 거참! 일 많은 교회네, 하면서 진부한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십 년 넘겨 살면서
이런 일을 들어본 적이 없으며 나눌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교회가 처음 지어질 때 은행으로부터 받은 융자금이 2017년을 앞두고 5만불(5천5백만원쯤)이 남아 있었다. 우리교회가 받은 융자는 몇 년마다 재융자를 받아야 했다. 재융자를
받기 위해서는 보증인도 필요하고 처리과정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게 필요했다. 예산도 적은 교회에서 재융자에
드는 비용과 이자가 아까웠다. 남편은 교우들 가운데 교회에게 5만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것으로 은행 융자금을 갚고, 돈은
빌려준 교우에게는 3년 안에 갚되 이자는 주지 않는 조건이었다.
이번에는 선뜻 나서는 분들이 있었다. 남편은 한, 두 분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섯 명이 만불 씩 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남편을 포함하여 다섯 교우들이 금방 채워졌다. 모두
친교실 증축에 필요한 기도, 재정, 봉사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헌신한 교우들이었다. 교회와 교우들 사이에 차용증서도 쓰고 공증도 받았다. 교회에서 갚아주는 순서는 서로의 형편을 고려해 구두로 정하고 공증해 놓았다.
교회에서 돈 거래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하며 질색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증축과 교단가입, 대출금
상환은 우리교회가 딛고 일어서야 할 절박한 문제였고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남편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빌려주는 사람은 못 받을 것으로 알고 빌려주고, 받는
사람은 꼭 갚을 마음으로 받으라고. 정말 감사하게도, 3년
안에 다섯 명에게 갚기로 한 5만불을 단지 1년 동안에 다
갚아 버렸다!
남편은 제일교회에서 경험한 일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도 외에는 없어. 때가 찼을 때 그 때를
분별하고, 비전과 당위를 가지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되는 거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믿음으로 선언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야 해.”
불확실하고 위험한 순간들을 교우들과 함께 극복해나가면서 교회, 목사, 그리고 교우들간에 신뢰가 형성되었다. 더욱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나 우리교회를 진리와 번영으로 가는 전환점에 올려 놓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판문점에서 발표된 남북공동선언문을 들어보니 남편이 한 말을
일반 언어로 풀어놓은 듯 했다. 역사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분별하며,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비슷한 모양이다. 요즘 정치적 상황을 두고 ‘불가역’ 이란 말을 종종 듣게 된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 원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동선언문에서 “나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교회도 불가역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고, 지나간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신앙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은 전환시대다. 이제는 교회 건물이 아니라 교회의 몸인 우리가 새로 지어져야 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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