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인플루엔셜, 2021.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아빠의 직장을 따라 인천 변두리로 이사를 했다. 도롯가에 코스모스가 가득 핀 계절이었다. 한 계절이 지나 눈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햇볕이 따사로운 날, 뒤뜰에서 새로 사귄 옆집 언니 H와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언니, 여기 교회는 어디에 있어?“
시내에 살 때 어느 교회에 다녔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동네 언니들의 손에 이끌려 성탄절에 곱게 단장하고 율동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신앙 추억이 없는데 왜 교회에 가려는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H는 자신이 다니던 감리교회를 알려주었다. 아이 걸음으로 30분 넘게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다.
일곱 살의 나는 은근히 독립심이 강했나 보다. 감리교회를 찾아가 예배드리기 시작했고, 그곳이 나의 모교회로 마음에 남아있으며, 감리교 신학을 배우고, 감리교 목사를 만나 결혼하여 살고 있다. H 언니와 놀았던 그 장면은 마치 스노우 글로브(Snow Globe)에 담겨 있는 듯해서 꺼내 볼 때마다 따뜻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나이가 들어 이 기억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상상을 하나 추가했다. 동네에는 나와 동갑내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나 친구의 언니에게 교회에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면 그 자매가 다니던 교회를 소개받았을 것이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성당이었다. 만일 성당의 위치를 먼저 알게 되었다면 난 수녀가 되었을까? 신부님을 흠모하며 마음앓이 했으려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밤 12시,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에게 열리는 신비로운 곳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 시드는 11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해고된 날에 키우던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고, 단 한 명뿐인 피아노 레슨 수강생도 그만둔다. 노라는 도통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죽기에 딱 좋은 때, 라고 결정하고 유서를 남긴다.
그 순간 노라는 중학교 때 좋아했던 사서가 있는 자정의 도서관으로 이동한다. 거기서는 후회스러운 선택을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그 삶이 진정으로 좋다면 그곳에 남을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실망감을 느끼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바꿔보고 싶은 또 다른 인생, 계속 진행 중인 미래를 여러 차례 살아본다. 양자물리학의 양자 중첩에 근거하여 여러 우주에 동시에 존재하는 삶들이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런 이야기는 마치 한여름 스릴러 드라마나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법하다. 나에겐 엄청 흥미로운 장르다.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볼 기회를 잡았다는 측면에서는 노라가 부러울 지경이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펼치면 노라와 사서가 체스를 두는 장면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얼마 전에 시청한 미국 드라마 "퀸스 갬빗(Queen's Gambit, 2020)"에서 엘리자베스 하먼이 학교 지하실에서 체스 배우는 모습이 연상되어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한편, 삶을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이야기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을 다시 보고 싶게 했다.
오늘의 나는 맘에 들든 그렇지 않든 선택의 결과물이다. 인생은 아쉽게도 다시 살아볼 기회가 없으니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싶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나 위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끄는 대로 다녀보고 그들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도 좋겠다.
이왕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얘기를 나누는 판이니···, 목사의 아내가 아니라 초등학교 교사, 신발디자이너, 식물원관리자, 탐정소설가 등등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공상만으로도 웃음이 실실 삐져나온다.
오! 수요예배에 갈 시간이다.
*이 글은 모바일 앱 '바이블 25'와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