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2008

변화가 많았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누군가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제 사진기는 너무 낡아서...>

올해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인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던 해입니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전혀 낯선 나라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어 당황스럽고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알게 된 교우들과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데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과 조금 특별한 강산이 덕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아주 잠깐 동안 같아서, 정말 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후회가 덜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마무리 될 때든지, 요즘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라야 정신 차리고 이런 다짐도 해보지만 마음과는 달리 생활 속에서 느슨해질 때가 많습니다.
뭔가 보려고 길을 나섰으나 정확히 무엇을 보고자함인지 모르거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자신과 자주 마주치는걸 보면 그렇습니다.

성탄절 아침입니다.
딱히 무엇을 할 계획이 없는지라 잠 자리에 그저 누워있었습니다.
남편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서야 몸이 움직여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일을 하는 동안 이번엔 반대로 남편이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강산이는 자기 방에서 음악 듣느라 보이지도 않습니다.
언젠가 강산이에게 CD에 담긴 찬양을 맘대로 들을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사주마 약속했던 것을 이번 성탄에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소유의 조그만 CD 플레이어를 가지고는 한나절 동안 방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강윤이는 컴퓨터 게임.
언제나 봐왔던 것과 비슷한 성탄절 풍경입니다.

어느 정도 잤는지 남편은 점심 먹고 어디든 나갔다오자며 스모키 마운틴을 제안합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러자 했습니다.
점심 먹고 탁자 위에 놓인 과자, 쵸코파이, 바나나 2개, 그리고 물과 쥬스를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성탄절에는 식당이나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하고 스모키 마운틴까지 두 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라고 하니 저녁 식사는 집에 와서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날씨가 꼭 봄 같습니다.
그런데 북쪽에 있는 그 산에 가면 눈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북조지아 어딘가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본 것도 같아 더 북쪽인 그곳에 가면 정말 눈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고 갑니다.
그리고 또 하나 조지아의 경계를 지나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가보는 것이니 그곳은 뭐가 다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자동차로 어느 정도 달리다보니 단조로운 고속도로와는 달리 마을 풍경이 도로 가까이에 있어서 눈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441번 도로라고 하는데 왕복 8차선 혹은 4차선의 지방 도로(?)쯤 되는가 봅니다.
북조지아와 맞닿아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모습은 그다지 특이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고 단지 산이 가깝고 많아 보였습니다.
멀리 산 꼭대기를 눈길이 닿는 곳까지 바라보았으나 쌓인 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을 알려주는 GPS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휑하니 뚫린 도로를 달려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t.) 국립공원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성탄절을 제외하고는 늘 문을 연다는 방문자 센터에 내려 보니 화장실 말고는 문이 모두 닫혀있습니다.
알고 왔으니 망정이지 서운할 뻔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주유소와 와플 하우스만 영업을 하고 “모든” 상가들에 불이 꺼져 있습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산을 얼른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산 쪽으로 길을 잡고 차가 달리는데 GPS가 자꾸 돌아가라고 합니다.
목적지를 스모키 마운틴 파크라고 분명히 입력하고 왔는데 산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니 어찌된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산으로 계속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GPS 말씀대로(--;;) 다시 내려 왔습니다.
GPS가 알려주는 곳은 아무래도 방문자 센터인 것 같습니다.
결국은 입력한 목적지를 지우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올라가고 또 올라가도 그저 산길이고 가끔씩 가드 레일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있을 뿐입니다.
GPS에도 길만 표시될 뿐 아무 정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어, 이제 내리막 길이야! 이대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데? 다시 돌아가자!!”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면서도 미리 계획되거나 확실한 정보가 없으면 어설퍼지는 저의 자연스러운 한 마디였습니다.
“저것 봐. 차들이 줄줄이 내려오네.”
내려가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 저에게는 올라가는 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새 내려가는 자동차에는 전조등이 켜져 있습니다.
“조금만 더 가보고.”
요즘 들어 제 의견을 대놓고 무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말입니다.
“아빠, 그냥 계속 가! 쭉쭉쭉.”
뭘 안다고 계속 가라는 것인지 강윤이는 끝까지 가봐야 된다고 우깁니다.

잠깐 다시 오르막 길이어서 강윤이 말이 맞나 싶은데 다시 내리막 길이 이어지고...
그러더니 이럴 수가...
“이걸 못보고 갈 뻔 했네. 오길 잘 했지?”
의기양양한 남편과 강윤이의 말입니다.
“그러게.”
산 정상의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꽤 여러 대의 차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붉은 노을이 멀리 산 끄트머리에 걸린 풍경을 보며 저마다의 언어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화가가 그려놓은듯 색깔이 점점 옅어지는 산 너머 산을 보니 장엄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해의 마감을 멋있게 사진으로 남겨보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 곁을 지나 전망대처럼 보이는 곳으로 나아가는데 익숙한 언어도 들립니다.
남편은 그들에게 “안녕하세요” 합니다.
그들도 “안녕하세요”로 답합니다.
강산이는 자꾸 “야호”해보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의식되어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일 년 내내 안개가 껴있는 큰 산답게 어둠이 내리는 속도가 빠릅니다.
이제는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하니 도착하기 까지 4시간쯤 걸리는 것으로 나옵니다.
올라갔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오는데 아무 불빛이 없습니다.
오고 가는 차들의 불빛만 있을 뿐입니다.
산을 다 내려온 다음, 남편은 운전하면서 차의 전조등을 껐다가 얼른 다시 켜봅니다.
또 한 번.
얼마나 어두운지 보려는 것이랍니다.
정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입니다.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집에 돌아왔는데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없습니다.
늦은 밤, 저녁으로 라면을 먹으면서도 즐겁습니다.

각자의 기질대로 제 역할을 하며 조화를 이뤄내는 가족이 있어 행복합니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같이 걸어 가는 가족이 있어 좋습니다.

여전히 서툴고 어설프지만 올 한해를 발판 삼아 예수님 은혜 안에서 영과 육이 더욱 성숙해지길 소망합니다.
GPS나 자동차 전조등보다 더욱 자세하고 밝게 우리 갈 길을 인도하시고 비춰주시는 주님이 계시니, 새해에도 그 분만 믿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렵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시25: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12/19/2008

빈 마음으로 맞이하는 성탄절

<강산이가 교회 Jubilee에서 만든 카드입니다.>

곧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빨강과 초록빛의 성탄 장식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좋은 소식을, 큰 선물을 주실 것을 바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선물을 주셨고, 새롭고 놀라운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넉넉한 분임을 믿기에 언제나 이 맘 때가 되면 들뜨는가 봅니다.
또 그 선물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풍성하게 여겨집니다.

아기 예수님이 찾아오실 수 있도록 마음 한 구석 치워놓으려 합니다.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구주의 나심을 전해주었을 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2:15,16,20)

12/12/2008

저는 어미입니다


사람들은 가정, 직장, 교회, 친구, 동호회 따위에서 그 역할에 맞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여성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합니다.
여성학, 여성신학, 여성해방에 관심이 있을 때는 그리고 결혼해서도 한참 동안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이기보다 의식적으로 제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팔,구년 전쯤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을 읽을 즈음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을 읽는 동안 내가 목사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엄마이고 교회에서 사모인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축복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상담에서 사용하는 "통합(integration)"의 과정이라고 쳐주신다면 제가 그 언저리쯤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어제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강산이가 흥얼흥얼 찬양을 합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 주를 찬양하리
햇빛 찬란한 낮에 주를 찬양하리
별빛 반짝일 때에 주를 찬양하리
캄캄한 밤에도 주를 나 찬양하리라”
한국에서 할머니들 오시면 불러드리겠답니다.

오늘은 “일어나라 일어나라” 해도 꿈지럭대더니 결국은 스쿨버스를 놓쳤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먼저 가라 했더니 “~bring him" 뭐라고 합니다.
나보고 데리고 오겠냐고 하는 것 같아 “그러겠다”고 얼떨결에 대답했습니다.

버스가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텐데 강산이 방에 가보니 부시럭 부시럭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모른 척하고 “너 오늘 학교 안가지?” 하고는 켜있던 전등을 다 껐습니다.
그런데 계속 소리가 들리는걸 보면 먹고 씻고 입고 있나 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 차고로 나가는 문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 날까 싶어 얼른 뒤따라 내려가며 ‘이걸 그냥.... 아까 버스 기사한테 대답만 안했으면...’ 해봅니다.

아침 나절, 블로그에 올릴 글 끄적거리는 걸 일찍 마치고 싶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결국은 관두고 말았습니다.
열다섯 살이나 된 아들 녀석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녀석 애기가 빠지면 이제는 글을 쓰는 것도, 저를 설명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회화 수업(Conversation Class)에서 간단한 시험을 본다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다른 질문을 하고 그걸로 대화를 이어가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우리 아이들이 잘 다투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물론 버벅 버벅...
그랬더니 질문을 바꿔서 “네 형제 자매가 있느냐? 그들과 싸운 적이 없느냐?”합니다.
뭐 싸운 기억이 별로 없어서 “내 동생들은 착하다” 그랬습니다.
그러자 “네 아이들은 안 싸우냐?”고 또 묻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예스” 하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 아들이 장애가 있는데...”
여기까지 대답하니까 이 사실을 아는 선생님은 얼른 말을 받아 “그 아이는 상냥하고(sweet) 그래서..."합니다.
저는 “맞다(sure)" 하고 대화 아닌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 수업 시간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긴장이 풀리면서 제 자신이 참 답답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은 몇 살이냐? 어떤 상황에서 잘 싸우냐?” 라고 다시 물어서 말을 이어가든지, 아니면 옆 친구가 눈치 주는 것처럼 “예스” 대답해 놓고 쉬운 말로 적당히 꾸며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융통성하고는 담 쌓고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든 제가 조금 특별한 강산이의 엄마가 분명합니다.
그걸 핑계로 저의 부족함이나 게으름을 이해받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 삶이라는 것이죠!^^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은 강산이가 여느 때보다 한 시간이나 빠르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버스 시간을 새롭게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다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강산이는 들어오면서부터 제 눈치를 봅니다.
아침에 일어난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 한편 기분이 괜찮습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이 글을 계속 쓰고 있으려니까 옷 갈아입고 내려오며 “엄마한테 사과해야지~” 라며 혼잣말 하는 것이 들립니다.
학교에서 선물로 받은 지팡이 사탕과 브라우니라는 빵을 제 옆에 살짝 갖다놓으며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그러더니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뭐라고 합니다.
저는 어디 다쳤나 싶어 “왜?” 그랬습니다.
강산이는 저의 손가락을 끌어다가 자기 새끼손가락으로 감싸 쥡니다.
“학교 일찍 안 돼.”
“학교 일찍 간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끄떡끄떡 합니다.
‘이 녀석아, 그 말이 그 말이야.’
강산이가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이 고마워 코끝이 시큰합니다.

이만큼 글을 쓰기까지-보기에는 몇 글자 되지 않아 보여도 저한테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강산이는 아직도 조용합니다.
“강산이 이리 와. 강산이 엄마하고 약속한 거 사진으로 찍어놔야겠어.”
“힝~”하고 오더니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내일 토요일 한국학교 갈 거야? 이건 뭐야?”
“강윤이는 크니까 좋겠다. 나도 크고 싶어.”
“학교 끝나고 할머니 오시면 공항 가?”하며 상황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를 줄줄이 합니다.
대충 대답을 해주었는데 엄마 마음이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엄마 스마일~”합니다.
‘야, 이 녀석아, 너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계단 내려갈 때 화 다 풀렸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웃는 자가 마지막까지 살아 남는다-메리 페티본 풀

12/05/2008

수다스럽고 뇌쇄적인 여행을 다녀와서


이 나라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꿈만 같습니다.

이 곳에 오면서 여러 가지 기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서도 가까이 지내던 친구네 가족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나 아이들까지도 모두 똑같이 “만남”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찾아가면 되겠지만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 집까지 가는데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운전하는 여건이 좋을 경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10시간 정도의 운전은 할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들끼리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주고 받다가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가네 그들이 오네 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네가 플로리다로 여행을 가면서 가고 오는 길에 우리 집에서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게다가 더욱 먼 곳에 사는 친구도 함께 플로리다로 여행을 하기 위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풀어 있었는데, 플로리다에서 머무를 집에 방이 여럿이라며 여건이 되면 여행을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제안이었지만 혹시라도 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할 수 있는 3일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얼씨구!!! ㅋ ㅋ ㅋ’

친구네 두 가족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먹을 것들을 사서 먼저 플로리다로 출발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늦게 그들과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교회에서 무슨 교육이 있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과 저는 저녁을 먹고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새벽 일찍이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짐 챙겨서 교회로 9시까지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윤이가 바라던 대로 밤에 출발할 모양입니다.

우리는 밤10시 가까이 되어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소풍 떠나는 들뜬 마음이 차 안 가득합니다.
자야할 시간에 운전하는 것이니 졸음을 이겨야 하고, 어두워서 바깥 풍경은 감상할 수 없지만, 친구들과 더불어 새롭게 경험하게 될 낯선 곳에 대한 기대가 우리를 즐겁게 했습니다.
플로리다 어딘가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기까지 아이들은 그 즐거움을 꿈나라로 가지고 가고, 저는 조수석에서 졸고, 남편이 쬐끔(!) 고생했습니다.

졸린 남편을 도와 두어 시간 운전하던 것을 다시 남편에게 돌려주고 마지막으로 쉬기 위해 Rest Area에서 차를 멈추고 내렸습니다.
그 때 문득 밤새 달려온 것이 눈 한번 질끈 감았다 뜬 것처럼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서 나온 지니가 우리를 뚝딱 데려다 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황금빛의 신선한 아침 햇살이 열대 나무 사이사이로 비춰지며 나니아 나라 이야기에서 나오는 디고리 커크 교수네 집에 있던 옷장을 열고 전혀 다른 나라로 나온 것 같기도 했습니다.
밤새 수고한 값으로 찬란한 아침을 고스란히 맞이하는 기쁨과 함께 플로리다에서 보낼 수 있는 하루를 벌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간을 아끼기 위해 밤에 출발하는 것을 동료 목사님이 제안해 주셨다고 합니다.
이 기회에 감사를...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친구 부부를 만난 곳도 역시 환상적이었습니다.
엄청 좋은 집을 통째로 거저 내어주신 알지 못하는 그 분께도 역시 감사를...

*Siesta Key Beach에서



*Organic Orange Picking



그리고
이틀 동안 새롭고, 여유롭고, 낭만적이고,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들은 우리보다 하루 더 남아 올랜도 디즈니 월드 가운데 한 곳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먼저 올라가더라도 아이들은 나두고 가라고 합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집에 돌아온 후 그리고 친구들이 우리 교회에서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고 떠난 후 저는 며칠 동안 플로리다에서 느꼈던 감상들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방마다 꺼내놓은 이불들도 치우지 못하고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했던 것들이 객관적으로 보면 뭐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오래 사귄 친구들이 주는 편안함이 보태져서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무척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월요일이 되어 아이들은 학교 가야하고 저 또한 영어 수업 들으러 가야 하니까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같이 영어 수업 듣는 여행을 많이 한 어떤 이에게 플로리다에 다녀왔다니까 자기도 가보았다며 그곳의 느낌을 이야기 합니다.
“그곳은 연인과 가면 딱 좋을 곳이야. 뇌쇄(惱殺)적이지 않아?”
저는 “뇌쇄”라는 말의 뜻을 몰라 얼른 호응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애가 타도록 몹시 괴롭힘”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행을 많이 한 사람답게 적절하고 멋있는 표현도 할 줄 아는가 봅니다.

여행하면서 얻은 좋은 추억들은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하고, 그래서 일상을 살아내는 힘이 되기도 하고, 지금 여기의 삶을 소중하게 여길줄도 알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3-15)

11/21/2008

작은 승리의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으며


“강산아 스쿨버스 오고 있어.”
어디쯤 오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말입니다.
“시간 다 됐어. 이거 봐. 빨리 해야 돼.”
시간이 나오는 쪽을 보여주며 셀폰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서두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렇게 재촉을 할 때는 정말 스쿨버스 올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강산이는 자기 리듬대로 움직입니다.
해뜨는 시간이 늦어져 새벽 어둠이 더욱 짙어서 그런지 강산이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더욱 어려워합니다.
밤에 늦어도 9시면 자도록 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이쯤 되면 제 속이 한번 홀딱 뒤집어집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스쿨버스를 꼭 타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접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태워다 주자.”
이 생각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쯤 학교에 못가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학교 못갔다고 강산이가 그걸로 자극을 받을지, 늦으면 아빠차 타고 가면 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있는지...

이런 긴장 속에서 강산이가 학교 가는 스쿨버스를 타고 나면 하루의 1/3은 성공한 듯이 여겨집니다.
길을 돌아 나가는 스쿨버스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선생님, 친구들, 버스 기사와 행복하고 유익한 하루되길 바라는 마음을 주님께 살짝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나면 날마다 시간을 지켜서 스쿨버스를 타는 이 경험들이 소중한 것이고 이 성공의 경험들이 쌓이면 조금 더 어렵고 큰일에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강윤이에게도 마찬가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자기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에 관심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도 배우고 있으며, 또 열심히 해서 교회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도 함께 연주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숙제를 하려면 강윤이와 제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사전을 찾아가며 긴 시간을 써야했습니다.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아직도 한계가 있지만 엄마 공부하는 시간에 방해 되지 않으려고 숙제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강윤이 모습도 흐뭇합니다.

이곳에서 자란 나무들은 키가 큽니다.
아마 햇빛이 잘 비춰주고 영양분이 많은 좋은 흙에 심겨져 있어서 그런가봅니다.
그런데 바람이 조금 세게 불면 나무가 잘 쓰러집니다.
짧은 제 생각에는 나무들이 굳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메마른 곳에 있는 나무들은 물을 찾아 땅 속으로 깊이깊이 뿌리를 내려야만 하고 키도 그리 크지 않지만 왠만한 비바람에도 든든하게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넉넉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살면서 어렵고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적당히 타협해서 문제를 덮는다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실망한다거나 목표가 너무 멀어 보여 포기한다면, 어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를 극복한 사람은, 그래서 승리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좀 더 강하고 안정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만나는 어려움을 대신 살아주는 부모가 아니라 그들이 언제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줄 것입니다.
작은 일에도 승리하는 경험을 쌓아가도록 도울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크게 쓰임받는 리더가 되도록 도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자신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신앙인의 모델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37:3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11/14/2008

아닌 척 하지만...

휴우~
밤 10시나 11시쯤 잠이 들었다가 새벽 2, 3시에 깨서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에는 거의 날마다 새벽에 깨서 뒤척이곤 했습니다.
잠 잘 자는 것이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축복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나름대로 판단하기는 낮에 집 안에 있다 보니 운동량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다행히 언제부턴가 그런대로 잘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잠이 깨서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잠 들어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만 가지 생각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 합니다.
지금 돌아보니 들락날락 하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아직 하지 못해서 해야 할 일들이거나 마음속에 꺼림칙하게 남아 있던 기억들인 것 같습니다.
결론도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다가 몸이 지쳐 버릴 때쯤 되어서야 저를 놓아줍니다.
겨우 잠들었나 싶다가 강산이 학교 갈 시간이 되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오죽하면 오늘은 강산이 스쿨버스가 오는 6시10분쯤 깨는 바람에 스쿨버스를 타지 못했습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여섯 주가 지났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들을 배울 때마다 이것을 사용해서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얼마나 착한 학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단어나 숙어를 사전에서 찾아놓고, 조금 긴 내용은 미리 읽어보고, 문제가 나오면 몇 개 풀어놓기도 하고 말이죠.
그날 배운 어휘를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보는 숙제나 workbook 숙제도 빠트리지 않고 해갑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이 보통 하는 말이 제게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이렇게 했으면 하버드 갔겠다.”

그러나 지난날 시험 치기 위해 배운 것과는 달리 생활 속에서 사용할 언어를 배워가는 것이 무슨 차이인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걸음에 달려가 영어를 정복해야겠다는 부질없는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 기회가 주어졌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정도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런데도 잠 못 이루는 오늘 새벽, 저를 괴롭힌 것은 영어가 주는 무게감이었습니다.
책에 나와 있는 주제나 상황을 보고 대화를 만들어내는 Conversation 시간은 조금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책에 나와 있는 질문에 나름대로 답을 준비해 가지만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적습니다.
무작위로 뽑힌 사람들과 그룹이 되어 대화를 만들다보니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려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내가 생각한대로 대화를 이끌어가거나 새로운 상황에 맞게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또 ESL 시간에는 미리 풀어보지 못한 문제를 풀 때는 해석하느라 대답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나 원 참!!!

이런 제 자신을 긍휼히 여기며 이렇게 저렇게 위로도 해보고 변명도 해봅니다.
‘여럿이 우리 말로 대화를 할 때도 이야기 하는 사이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데 영어로 말하는 것에는 더욱 그렇지 뭐.
아무리 죽기 살기로 해보고 싶어도 입이 안떨어지는 걸 어떻게 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잖아.
나도 우리 말로 하면 내 의견 정도는 얘기할 수 있다고.
아, 답답....’
당장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생각들은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아닌 척 하지만 이것도 욕심인가 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
“Find rest, O my soul, in God alone; my hope comes from him.”(Psalms 62:5)

11/07/2008

여러가지 빛깔을 가진 가을의 한 풍경

<집 앞에서 아침에 찍은 사진. 다른 곳에서도 찍고 싶었는데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요즘은 단풍든 나무들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식탁에 앉아있어도, 차를 타고 달려도, 교회를 가도, 공부하는 곳 언저리에도 여러 가지 색깔의 나뭇잎들이 온통 제 마음을 빼앗습니다.
나뭇잎 색은 어찌 그리 다채롭고 신비한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정말 솜씨가 좋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차를 타고 달리며 보았던 불타듯 빨간 빛의 나무와 신비로운 주홍빛이 쏟아져 내리는 키가 엄청 큰 나무가 자꾸 떠올라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그러다 중간시험 공부해야 하는 것이 생각나거나 공과금 내야 할 날짜가 생각나거나.... 하면 정신이 바짝 듭니다.
어느 때보다 요즘 살아가는 삶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새 시간은 저 멀리 가있고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때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오늘은 한국으로 들어가시는 어느 사모님과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사귐도 많지 않았지만 가신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시작하고 끝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색깔의 삶을 만들어내는가 봅니다.

오래 전 대학 입학시험을 치루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시를 하나 적어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새로운 사역의 길 떠나시는 그 사모님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적어봅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F. R. Havergal

어두운 후에 빛이오며
바람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있네.

연약한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받고
눈물난 후에 웃음있고
씨뿌린 후에 추수하네.

괴로운 후에 평안하며
슬퍼한 후에 기쁨있고
멀어진 후에 가까우며
고독한 후에 친구있네.

고통한 후에 기쁨있고
십자가 후에 면류관과
숨이진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는 진리로다.
(찬송가535장)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10/31/2008

쥬빌리(JUBILEE) 나들이


자랑스러운 동생에게

지난 주일에는 우리 교회 장애우 사역팀 쥬빌리(JUBILEE)에서 드림랜드(DREAM LAND)로 소풍(FIELD TRIP)을 갔다 왔어.
동생에게 아직 쥬빌리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우리 교회 쥬빌리에서는 주일마다 장애우 친구들과 함께 예배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있어.
선생님들은 일찍 오셔서 2부(9:45) 예배를 드리고 우리 친구들을 맞이하셔.
얼마 전부터 11시에 모여서 음악 치료도 하고 만들기 시간도 갖고 있어.
아마 요즘은 그 시간에 성탄절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뭔가 준비하는 것 같아.
나도 무척 궁금한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줄게.

동생도 알다시피 우리 쥬빌리에 나오는 친구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깨끗하고 신비로운 녀석들이야.
우리 친구들 가운데 20대 청년이 4명이 있고 3명은 중,고등 학생이야.
또 전도사님과 일곱 분의 선생님이 계시는데 장애우 사역의 전문가들이고 사랑과 능숙한 솜씨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셔.

선생님들은 우리 친구들에게 예배하는 것과 성경에 대해 잘 가르치려는 열정이 대단하셔.
설교할 때도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 시청각 자료들을 사용해보기도 하고, 올 가을 성경공부는 내용을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있어.
12주 동안 출애굽기에 대해 배우고 활동한 자료를 친구들마다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로 했어.
우리 친구들이 자기가 만든 책을 언제고 펴보면 출애굽기의 말씀이 생각나길 바라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활동이야.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활동한 자료를 전시(?)해서 쥬빌리 사역에 대해 더욱 알릴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어.
감사하게도 이 프로젝트 활동을 위해서 몇 분의 선생님과 교우들이 따로 수고를 하고 계셔.

강산이가 쥬빌리에 함께 하면서 존중받는 예배자의 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예배하길 원하는 다른 장애우들도 이렇게 예배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

쥬빌리 소개가 길었지?

이번 소풍은 우리 교회에서 올해 새로 사들인 꿈의 땅 “드림랜드”로 갔어.
교회에서 넉넉잡아 한 시간 걸리는 곳에 있는데, 원래 주인이 골프장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곳이래.
땅이 잘 닦여있고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던 건물을 깨끗하게 수리해 놓아서 밥 해먹으며 하룻밤 묵을 수도 있어.
우리는 거기서 예배, 성경 공부를 마치고 점심을 먹게 되었어.
다들 점심시간이 지나 밥을 먹게 되어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몰라.


그런데 신기한 일이 있었다!
점심 준비를 하는데 우리 모두가 먹기에는 쌀이 부족했는지, 밥을 할 큰 솥이 없었는지 그랬어.
그곳에 있는 전기밥솥에 밥을 하면서 모두가 먹기에는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어.
시간이 되어 밥을 먹으러 가보니까 누구의 지혜인지 밥을 개인 접시에 미리 나누어 놓았더라구.
가족들이 준비한 핫도그, 돼지불고기, 닭조림, 샐러드, 과일, 빵, 파이, 여러 가지 음료수와 함께 두런두런 얘기들 나누며 먹고 싶은 만큼 가져다 먹었어.
누가 밥을 더 찾으면 어떻게 하나 속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어.
바로 눈치 없는 김강산. **!
조금 나중에 도착할 가족들을 위해 남겨놓은 밥이 있었는데 어느 선생님이 선뜻 그 밥을 덜어주셨어.

어떻게 되었게?
모두 배부르게 식사 시간을 즐겼고 오히려 가져간 음식은 남아서 나누어 가져왔어.
동생, 난 오병이어가 생각나더라.
예수님이 축복 기도하시고 오천 명이 원하는 만큼 먹었는데도 열 두 바구니가 남은 말씀 말이야.

잘 먹고, 깔깔 대며 재미있는 몇 가지 놀이를 하고 나서 건물 바깥으로 나와 보물찾기를 했어.
날씨가 어찌 좋던지 함께 간 가족들도 모두 나와 보물 찾는 기쁨을 누렸어.
아참, 몸이 아픈 친구는 안타깝지만 나오지 못했고.
그렇지만 선물은 모두에게 나눠 주었고 즐거운 한 때를 보냈어.

교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깐 잠을 청하는 선생님들을 보니까, 부족한 내 아이를 존중해 주고 사랑으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주심에 더없이 고맙더라.

아마 동생이 가르치고 있는 학교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일거야.
장애우와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장애우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동생과 서방님은 나에게 큰 자랑거리야.

날이 많이 차가워져 가는데, 동생 몸 사랑하고 알뜰히 살펴서 감기 걸리지 말고.

아틀란타에서.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원대로 주시다 /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6:9,11-13)

10/24/2008

"내가 말을 잘 못하대"

<교회 앞에서 지난 3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엊그제 수요일 예배 때 남편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목회/선교 비전 트립과 서울 창천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수요 예배 인도와 설교 때문에 주일 저녁부터 긴장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설교를 워낙 은혜롭고 감동있게 하시는 터라 금방 비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처럼 설교하는 기회이니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편은 나름 고민을 하다가 가을이고 하니 시와 노래가 있는 예배는 어떨까 묻습니다.
“글쎄....”
이러면 어떨지 저러면 어떨지 물어올 때마다 저는 대답을 선뜻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왠지 모험하는 것 같아 불안했고, 또 예배 준비에 대해 저에게 물어봐 주는 것이 고마워서 남편 마음 상하지 않게 대답하려니까 자꾸 “글쎄”만 나왔습니다.
남편 덕분에 저도 덩달아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지 않은 체하고 있었습니다.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자리에 앉고 보니 슬슬 긴장감이 더해 옵니다.
“하나님 오늘 김성은 목사가 설교를 합니다.
예배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성령께서 붙잡아 주셔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려는 주님의 말씀이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게 도와주세요.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있게 해주세요.”

남편의 마음도 헤아리려 하고 남편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려 하니 이쯤 되면 괜찮은 아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배가 시작 되면 목사님의 말씀을 기도한 것처럼 은혜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꾸 반복하는 말들, 잘못 사용된 단어나 조사(助詞) 같은 것들을 더 크게 듣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더 조마조마 해집니다.
기도 따로, 흘러가는 제 마음 따로의 모습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자기 오늘 어땠냐고 또 묻습니다.
주제넘게 얘기하자면 전하고자 했던 설교의 내용도 좋았고 웃음도 있었고 뜨겁게 기도도 했습니다.
그래서 잘 했노라 몇 번을 얘기한 다음에 하고 싶은 말을 조금(!) 했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자기 설교 녹음된 것을 다시 들었다며 너스레를 떱니다.
“내가 말을 잘 못하대.”
지난날에는 이름난 목사들을 들이대며 “***도 설교할 때 말은 어눌했지만 열정적이다”며 스스로 자기 편을 들더니 이번에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설교가 단순히 언어나 비언어-몸짓, 음성 따위-로만 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설교에는 성경 말씀에다가 자신과 공동체의 경험, 신앙 전통, 신학, 세계관.... 따위가 녹아들어간,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가르침일 것입니다.

제가 감사한 것은 남편이 자신의 부족함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와서 달라진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을 쓰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빚어가시고, 남편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성숙해가고, 그래서 저도 옆에서 슬쩍 끼어 더불어 믿음이 자라나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시25:5)

10/09/2008

호랑이 그리는 영어공부

오늘이 4일째.
그래도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Community College-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단과대학인가요 아니면 전문대학?-의 평생교육(Continuing Education)원에서 하는 영어반에 들어갔습니다.
큰맘 먹고 일주일에 4일이나 가야하고 교육비도 어느 정도 내는 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9월 중순에 받은 레벨 테스트(Level Test)에 따라 회화반과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반에 이틀씩 나가게 됩니다.

가을 학기(Fall Quarter)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조금 일찍 도착해서 교실에 가보았더니 두어 사람만 와 있었습니다.
어디에 앉을지 교실을 둘러보면서 보통 때는 눈에 띠지 않을만한 자리를 골랐을 텐데, ‘뒤로 물러서지 말자’ 하며 선생님 책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영어를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 어눌하기에 회화를 많이 하는 반이 필요할 것 같았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기에 그다지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이 시작되고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보니 문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표현을 다들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렇게까지 못하는데.’
거기서 기가 한번 죽었습니다.

선생님이 부르는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다들 마치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를 부르겠구나. 기죽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을 자신 있게 하자’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바로 코앞에 앉은 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저는 다시 용기를 내어 “Excuse me" 하고 아직 내 소개를 하지 않았다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그랬냐며 얼굴 표정으로 해보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름 목소리를 보통 때보다 크게 하여 서너 문장으로 제 소개를 해보았습니다.
소개를 마치자 선생님은 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젠장. 다른 사람한테는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만...’
선생님이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았다 해도 소심한 저는 여기서 기가 또 한번 죽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윤이가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세 시간 동안의 공부를 마치고 모처럼 남편과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주자 남편은 어느 영어 강사가 한 말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생결단, 체면불구, 초지일관!!!”
이곳에 오기 위해서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순간부터 되지 않는 영어 실력을 알기에 영어와 관련된 체면은 그때부터 없었으며,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도 그때부터 놓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의 마음은 아니었나 봅니다.
‘적당히(?) 하다보면 되겠지’ 했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영어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살기 힘들거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죽기 살기로 해야 되려나 봅니다.

나이 사십 넘어 살면서 그래도 많이 담대해졌는지 되든 되지 않든 화요일에 몇 마디 더 하고, 수요일에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부러 손들고 말하고, 오늘은 미국 와서 아마 영어로 제일 많이 말한 것 같습니다.
같은 아시아인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사람들과 남미, 유럽 사람들과도 몇 마디(!) 주고 받았습니다.
물론 수업 시간에 해야만 하는 활동이었어요.*^^*

지켜보아 주세요.
호랑이를 그리고자 하니 못 그려도 고양이는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착한 척을 좀 하려고 합니다.
학교 가는 길에 아직 자가용이 없는 어떤 분을 제 차에 태워드리기로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여러 가지 도움을 참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다 되갚을 수는 없을 것 같고,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면 마음의 빚을 조금 덜 수 있을까 싶어서요.
또 혼자 있기 즐겨하고 계획된 틀 안에 있는 것을 편안해 하면서 안으로 잦아드는 제 자신의 기질에 도전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제 블로그에 글 올리는 것을 할 수만 있다면 수요일에 하고 싶었는데 목요일이나 금요일로 바꾸어야겠습니다.
그런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니지만, 고맙게도 저희 가족을 기억하고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예의를 차리고 싶어서 알려드립니다.
살아가는 얘기를 일주일에 하나씩이라도 쓸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6-7)

10/01/2008

강산이도 추남(秋男)

강산이도 가을을 타는지 “비행기 타고~ 한국 가면~” 이라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찬양을 부르다가 할머니들이 좋아하셨던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이 나오면 그러고, 어린이 가요를 듣다가 삼촌하고 기타치고 싶다고 그러고, 음식을 먹다가도 그럽니다.

어제도 강산이가 한국 가고 싶다고 하길래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강산이 **** 하이 스쿨 좋다고 했잖아. 영어도 배우고 농구도 하고 공원도 가고. 한국 가면 **** 하이 스쿨 못가는데 괜찮아?”
“.....”
뜻밖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래도 한국 좋아”라고 하든지 선택하기 어려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르든지 할텐데 생각해 보더니 아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올 2월 이곳에 와서 학교에 갔을 때는 5월에 학사일정이 끝나니까 학년 끝자락에 편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7학년 특수학급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정말 낯선 교육 환경에 전이해(pre-understanding) 없이 놓여지게 된 것이죠.
말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부부도 이곳 교육 현장을 경험한 바가 없기에 ‘어디가나 진실하려는 마음은 마음과 통하게 돼있다’는 어줍잖은 신념만 가지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짧은 몇 주 동안 강산이가 학교에서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와 의사소통은 잘되지 않았고 어줍은 신념 한쪽 귀퉁이는 깨어지고 그랬습니다.

어쨌든 며칠 밖에 다니지 않은 중학교이지만 고등학교에 적응하는데 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이곳 학교 환경을 경험하는 기회였고 개별교육프로그램(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IEP)을 위한 평가도 때에 맞게 되었습니다.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도 만나서 강산이가 학교에 대해 마음을 여는데 큰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개학하고 두 주 동안 통학을 도우며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 버스 기사들을 멀리서 볼 기회가 되었는데 친밀감있고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아닌 선생님들도 강산이나 저에게 늘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강산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특수학급은 융통성있게(flexible) 운영되고 있는 듯 합니다.
IEP 평가가 끝나고 고등학교를 미리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그 때 살펴본 바로는, 학교에 도착해서는 자기 반으로 먼저 가고 운동할 때, 컴퓨터 할 때, 공부할 때...에 따라 여러 선생님들과 각 각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일반 학급 학생들(Peer leaders)이 와서 도와주기도 하나 봅니다.
강산이가 이따금 “영어 친구 좋아” 하는데 그 친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특수학급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서 자립과 직업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카페에서는 커피와 머핀 같은 빵을 구워 파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할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한 달에 얼마씩(20불쯤) 미리 학교로 보내면 카페에서 일한 댓가로 하루에 1불씩 받게 되고 그것을 가지고 예산을 세우고 지출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강산이는 아직 카페 일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는 식탁을 치우고 닦기, 간단한 설거지를 할 수 있습니다.
학교 카페에서도 잘 배워서 강산이가 만들어주는 아침 커피와 빵을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좋겠다” 벌써 커피향이 집 안에 가득한 기분입니다.

강산이는 학교에서 주는 유인물을 편지라고 하며 전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집에서 학교로 보내기 위해 써주는 메모도 편지라며 좋아하기 때문에 편지가 있는 날은 학교 보내기가 수월합니다.
엊그제 강산이가 가져온 편지를 보니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9월 한달 동안 여러 가지 활동(Community Skills) 한 것을 알았습니다.
볼링도 하고, 카운티 공공 버스도 타보고, 영화도 보고, 대형 할인 마트에도 가보고, 공원에도 가고요.
거기에 20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0월은 더 바쁠거라면서 일정을 알려주었습니다.
October9 Varsity Volleyball Game
October10 Special Olympics Basketball Skills
October17 Swimming at Bogan Park
October24 Swimming at Bogan Park
October25 Homecoming Dance
November7 Football Game

특수교육의 목표가 사회에 적응하여 직업을 갖고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학문적인 부분도 그 목표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요즘 강산이가 숙제를 가끔 가져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강산이가 영어로 된 문장을 읽고 문장과 관련된 그림과 줄긋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억양까지 넣어가며 읽는 것이 제법이었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이렇게 배우다 보면 더욱 놀랄 일이 많을 것이라고 욕심을 내어봅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밀알 선교단에서 장애인 교육법안과 개별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장애우를 둔 부모의 권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도 참여해서 하나 하나 알아가려고 합니다.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과 함께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계절을 강산이가 맘껏 누리면서 키도, 지혜와 지식도,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도 쑥쑥 컸으면 좋겠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6-9)

9/24/2008

"왜 에덴의 동쪽이야?"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드라마를 보고 나서 강윤이가 무심코 한 말입니다.
강윤이에게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강윤이가 드라마에 열중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그 드라마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 컸나 싶기도 합니다.
“야아~ 그 정도야?”
사실은 저도 다음 내용이 엄청 궁금하면서도 짐짓 아닌 척 한마디 해봅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방송을 다(?)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위성방송으로 시청이 가능하고 위성방송을 설치해 주는 곳에 신청을 하면 되나 봅니다.
저도 유선 방송으로 미국 방송만 볼 것인지 위성을 연결해 한국 방송도 볼 것인지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유선 방송을 선택했습니다-이것이 맞는 말인지....
어쨌든 한국 방송을 연결하면 아무래도 텔레비전 보는 시간도 많아질 것 같고 또 영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것 같아서입니다.
그리고 정말 보고 싶은 한국 방송이 있으면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요즘 한국 방송을 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웃기 위해서입니다.
“무한도전”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거의 빼놓지 않고 봅니다.
보면서 눈물이 날 지경으로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손뼉도 치면서 즐거워합니다.
그 방송의 기획이나 캐릭터들이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작가들의 설정에 의해 꾸며진 내용이라 해도 웃기로 작정하고 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을 보며 웃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영어가 주는 긴장감을 풀고 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영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영어 한마디라도 건져볼까 싶어 미국 드라마나 만화 영화를 포함한 영화를 나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보다보면 어느 때는 짜증이 확 몰려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드라마 분위기로 내용을 때려 맞추며 극 전개의 실마리가 될 만한 말을 들어보려고 집중하다보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를 보면 그런 노력 필요 없이 극중 인물들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끼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니 행복해지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배경으로 나오는 곳곳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엄청난(^.^) 이유를 달고 일주일에 한두 번 보는 한국 방송인데 어느 날 남편이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 남편이 보기에 드라마 내용이 시답지 않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가만히 있을 저와 강윤이가 아닙니다.
남편 자신이 재미있는 방송은 어떻게 해서든 보면서 우리한테 그럴 수는 없지요.
다다다다~
남편이 우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주전 알게 된 드라마를 남편이 열심을 내어보는 것입니다.
물론 저나 아이들도 함께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같이 보는 날이면 강윤이는 학교 갔다 와서 숙제를 다 해놓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날도 그렇게 일찍 할 일 끝내놓고 놀면 좋으련만....
그리고는 강윤이는 아빠가 집에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의리없게 혼자 보기 없기”를 제가 선언했거든요.

어제 밤 “에덴의 동쪽”을 열심히 보는데 강윤이는 모르는 단어를 자꾸 물어봅니다.
“엄마 진골, 성골이 뭐야? 열외가 뭐야?”
“몰라, 몰라.”
드라마가 뭐라고 아이가 물어보는데 대답도 해주지 않고 그냥 봅니다.
그랬는데도 한편이 다 끝나고 나니까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며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묻습니다.
“왜 에덴의 동쪽이야? 동쪽에 뭐가 있어?”
“쫓겨난 사람들이 동쪽에 살았나보지” 남편의 말입니다.
“아냐, 그쪽에 선악과가 있었나? 생명나무는 동산 가운데 있고” 제 말입니다.
푸하하하.
성경을 찾아보고 “아빠 말이 맞네” 합니다.
“그러면 남쪽 북쪽 서쪽에는 사람들이 안살았어?”
“어 그게 아니고 우리 사람들이 사는 곳을 상징적으로 에덴의 동쪽이라고 한 것 같애. 우리는 다 죄인이잖아.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잖아.”
강윤이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덧붙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동철이도 회장도 다 죄를 짓잖아. 엄마도 너도. (남편을 가리키며) 목사님도 말이야.”
그러자 “그래도 목사님은 아니잖아” 합니다.
웃기기도 하고 설명이 길어질듯도 하여 적당히 얼버무려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드라마 한편으로 이렇게 심오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다음 주 살아갈 것을 기대하기도 하니 이것이 뭔 사치스러운 행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8-9)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3-24)

9/17/2008

살면서...

<이곳 생활방식에 따라 세탁기와 건조기가 늘 함께 있습니다.>

쿵덕 쿵덕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아래층에서 들으면 마치 방앗간 떡 찧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습니다.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이 더운 날 오후가 되면 세탁기가 있는 위층이 더욱 더워지고 올라가기 싫어집니다.
그러기 전에 모아진 빨래를 해치우려고 세탁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엊그제 추석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늘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명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부설 기관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유치원, 방과 후 학교, 노인 대학, 한국학교...
에~, 또...
토요일에는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에서 추석 행사를 했습니다.
제기 차기, 송편 만들기, 민요 배우기와 민속 춤, 사물놀이 공연도 있었습니다.
주일 점심 식사 때는 송편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한국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이한 것이 있었다면 주일 저녁 집에 들어온 남편이 먼저 인터넷 전화를 연결한 것입니다.
“추석인데 한국에 전화했어?”
아직 안했을 거라는 확신과 더불어 주일이 주는 긴장감이 해소되는 주일 저녁에 느껴지는 피곤과 짜증이 말 속에 묻어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하는 시간은 주로 월요일 아침이나 저녁이고 그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저인데 이럴 땐 그 공(功)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명절을 함께 보내던 자녀들 없이 쓸쓸한 명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모님에 대한 염려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월요일마다 전화를 드렸다 하더라도 명절이니 그 당일에 전화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면서 계속 느끼는 것인데, 일이 생기면 그 일을 빨리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남편과 일이 주어지면 꾸준히 해나가는 저와 천생연분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같이 살면서 남편은 저에게서 성실함을 배우고, 저는 남편에게서 뛰어난 능률(能率)을 배울 수 있으니 참으로 환상적인 부부입니다.ㅋㅋㅋ

명절을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싶습니다.
때가 되면 으레 치루고 지나가는 명절은 별로입니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만나서 음식 만들어 먹으며 사는 얘기 나누고 친척과 이웃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담아 선물도 하는, 마음이 담긴 명절이라야 제 맛이 납니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이 서로 배우고 감싸주면서 “우리” 가족, “우리” 친척, “우리”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명절이 주는 의미도 가볍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명절 지내는 재미를 느끼려는 순간 한국을 떠나온 것 같습니다.
동생들네나 우리네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저들끼리 잘 어울려 놀고, 가족이 모여 할 수 있는 재미난 일도 만들어 해볼 수 있는 참에 헤어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더 큰 것을 도모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여기며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면서 가족 간의 정이 더욱 두터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곳에서 처음 명절을 보내면서, 조금은 쓸쓸했을 부모님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시댁에서 음식 만드느라 혼자 애썼을 동생과 보나마나 형의 빈자리가 표나지 않게 하려고 많이 웃고 떠들었을 서방님과 예희, 예람이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그리고 아빠 칠순 잔치 준비하는데 누나 대신 책임져야할 부담을 떠맡은 막내 동생과 동생댁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영어를 아주 잘한다는 일곱 살 된 준서와 준민이도 보고 싶고.

"너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고 있는 동안 사람은 정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낀다. -모파상이 한 말이래요.

9/10/2008

value free


일주일째 한쪽 귀가 은근히 불편합니다.
다른 곳이 아프면 그런가 보다 할텐데 귀가 아프니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그 귀는 팔년 전쯤 크게 치료한 경험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요즘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귀가 아픈 쪽 잇몸과 눈도 덩달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다가 증상이 확실히 드러나면 일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약을 먹든 병원을 가든 빨리 상황을 개선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주말에 아프면 병원에도 갈 수 없다며 남편이 서두르는 바람에 지난주에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
다른 데는 아무 이상이 없고 입 안에 피곤하거나 하면 생기는 궤양 때문에 다른 곳에 통증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진찰 결과가 나왔습니다.
입 안 상처를 치료하는 처방전도 받아왔습니다.

입 안에 생기는 상처쯤이야 수없이 겪어본 것이라 약이 굳이 필요할까 싶어 약을 사지 않고 주일을 넘겼습니다.
말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상처가 따끔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귀도 편안치가 않습니다.
결국은 어제 남편이 출근하면서 처방전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귀만 아프지 않았으면 버틸 수 있었는데....’

어제 점심때가 조금 지나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약값이 원래 이렇게 비싼거야?”
“얼만데?”
“44불이 넘어.”
“어 이상하다. 선생님이 4불쯤 할거라고 그랬는데. 벌써 계산했지?”
약국에 가서 다시 물어볼 처지도 아니고 처방전에 따라 준 약은 환불이 안될거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좋은 약을 쓰게 되었습니다.
잠자기 전 이를 닦고 튜브에 담긴 그 약을 짜내어 잇몸과 혀의 상처에 바르는 순간 마취가 되면서 통증이 바로 사라졌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약을 또 발라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참 신기합니다.

이곳 병원비와 약값이 엄청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비단 그것 뿐만 아니라 한국 물건을 파는 마트에 가도 한국 가격보다 한배 반이나 두배 가량 비싼 것을 보게 됩니다.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책 사는 즐거움도 접어두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쑥날쑥 할 때는 한국을 떠나올 때 선배 목사님이 말씀해 주신 “value free”가 기억납니다.
아마도 한국과 미국 살림살이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테니까요.

남편과 함께 코칭 세미나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사람의 의식과 능력이 발전하는 단계에 대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무의식 무능력 상태로 있다가(무의식/무능력),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식이 생기나 아직은 무능력 상태로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타보겠다는 의식은 있는데 자전거를 운전할 줄 모르는 때입니다(의식/무능력).
의식한대로 연습을 열심히 해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의식/능력).
그러다 몸에 익숙해지면 자전거를 잘 타보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무의식/능력).

이곳 살림살이는 의식/무능력 상태이면서 동시에 의식/능력 단계로 올라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바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자동으로 한국과 가격 비교가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이런 상황을 미리 아시고 한 말씀이겠거니 하면서 마음을 넉넉히 가져보아도 말입니다.
이제 반년쯤 지내고 보니 한 걸음 한 걸음 뒤뚱뒤뚱 이곳 형편에 맞게 살림이 꾸려지는 듯도 합니다.

한편 살림이야 제게 주어진 고유한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 그렇다 쳐도 다른 일에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릴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능력을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인으로서 이곳에서 사는 것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가치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럴 때 해주실 무슨 말씀 없으세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 /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9-14)

9/03/2008

예술이 되는 요리


언젠가 남편이 영화를 보자고 합니다.
세미나 갔다 오다가 어느 목사님이 괜찮은 영화라고 소개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 OK입니다.
쉬는 날이나 시간의 짬이 생겨도 특별한 놀거리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는 영화 보는 것이 꽤 큰 기쁨입니다.

영화관은 Buford Hwy와 Sugarloaf Pkwy가 만나는 곳에 있는 우리 집입니다.
영화 제목은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영화가 다 끝났을 때 조용한 바닷가에 서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한가한 시간에 영화를 천천히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느낌들이 남길래 제 블로그에 사용해볼 요량으로 마음에 남는 대사나 요리 이름들을 레터 용지 앞뒤로 빡빡하게 적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이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하는지 궁금해서 검색창에 영화 제목을 쳤습니다.
그러자 영화, 책, 블로그 따위를 통해 이미 많은 소개와 영화평이 나와 있었습니다.
에이~

밀알에서 만난 어느 엄마가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었습니다.
보통 때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데 그냥 가서 마음 편하게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구 흘려 써서 어떤 것은 무슨 글자인지 모를 그 영화에 대한 메모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덴마크 시골 섬마을에 자신의 시간과 적은 수입으로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두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내전으로 오갈데 없는 바베트라는 여인이 이 자매를 찾아옵니다.
바베트는 급료없이 자매들을 섬기는 조건으로 14년 동안 같이 살게 됩니다.
바베트에게는 작은 희망이 있었는데 프랑스 복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복권이 당첨되어 바베트는 만 프랑-그 당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인지 모르겠지만-을 타게 됩니다.
자매들은 돈이 생긴 바베트가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권이 당첨되었을 즈음 두 자매는 자신들의 아버지였던 그 지역 목사님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초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베트는 자매의 계획을 알고 자기가 목사 탄신일 만찬을 프랑스 정식(French Meal)으로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바베트는 초대된 10명의 마을 사람들과 젊은 시절 자매 가운데 언니를 연모(戀慕)했던 장군과 그 숙모를 위해서 모든 재료를 프랑스에서 구하고 정성껏 요리하여 대접합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나서 여기서 나오는 요리들은 한때 프랑스에서 실제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저절로 들었답니다.
특히 와인 블리니스 데미도프(?)-1860년산 베우브 클리쿼트, 메추라기 요리 카이유 엉 사코파쥬, 이름도 알 수 없는 과일과 커피에 곁드린 비에 마크 샴페인.
초대된 손님 가운데 프랑스에 가본 적이 있는 장군은 지금 자신들이 먹고 있는 요리가 파리에 있던 “카페 엉글레”에서 먹었던 요리에 뒤지지 않는다며 놀라워합니다.
바베트가 마련한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서로 오해하고 질투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고 사랑을 회복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 자매는 바베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파리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바베트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요리 재료로 만 프랑을 다 써버린 것입니다.
바베트는 자신이 카페 엉글레의 수석 요리사였음을 밝히며, 카페 엉글레에서는 12명 식사값이 만 프랑이라고 알려줍니다.
“마님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예요.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죠.”
알고 보니 바베트는 다부지고 멋있는 예술가였던 것입니다.

요리가 예술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한국에서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食客)”이 드라마로 방송되고 있는데 저의 엄마는 열심히 보고 계신 모양입니다.
식객은 이미 21권 연작 만화책으로 나와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바베트의 만찬”에서처럼 재료와 음식에 마음이 담기고 정성이 들어갈 때 예술이 되는가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식객”의 내용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도 제대로 하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막12:30)” 하라고 하신 모양입니다.

날마다 가족을 위해서 식탁을 준비하는 아내나 남편의 손길에 사랑이 보태진다면, 또한 밥상을 나누고 싶어 손님을 초대한 주인의 손길에 사랑이 묻어있다면 그 음식은 아름다운 예술일 것입니다.
저는 음식을 잘 못하나 무엇이든 맛있게 먹습니다.
요즘 먹었던 어울려 먹자고 만든 닭조림, 새롭게 배워 만든 생선초밥, 급하게 끓였어도 맛있기만 한 부대찌개, 달걀물에 묻혀 따뜻하게 지져낸 하루 지난 깁밥... 모두 예술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

8/27/2008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강산이를 태운 스쿨버스가 오면 빨리 나가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예요>

어제부터 강산이가 스쿨버스를 탑니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는 시간이 6시15분으로 정해졌습니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될 것 같습니다.
강산이는 스쿨버스를 탄다는 새로운 사실에 어제, 오늘 아침 시간을 잘 지켜주었습니다.

아직 어둑한 새벽에 소리 없는 사이렌 불빛 같은 것이 번쩍거리면서 길모퉁이를 돌아오는 스쿨버스가 보입니다.
버스 기사와 강산이의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입니다.
버스 기사 아줌마와 “Good morning" 인사하면 기분이 더욱 좋습니다.

일이 하나 하나 해결되어 나가니 또한 좋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하다고 얘기해야 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하면 잘 써서 갖다 내야하고, 또 여기에 교우들의 도움이 보태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그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 때문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하나님께 그리고 같은 신앙의 길을 가는 교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우리 교회) 교사로서 이력서를 내야 했습니다.
이력서를 언제 써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저의 경력을 소개하면서 어떻게든 제 부족함을 메꾸어 보려고 이것저것 적어 넣었습니다.

삶을 수직적인 연대기로 살펴보는 이력서를 쓰면서 몇 년 전에 Hi Family의 가정사역 아카데미에 다닌 것도 적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성격 심리” 과목이 끝날 때 A4 한 장 반에 제출했던 짧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 글대로 살지도 못하고 있고 그렇게 살아갈 자신도 점점 없어질 뿐 아니라 다분히 선언적인 느낌까지 나는데 왜 생각났는지....
상대적으로 제가 누리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조화로운 삶
“성숙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받고 내내 무엇일까, 무엇일까를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조화로운 삶이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과 조화로운 삶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를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나 스스로가 성숙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늘 가까이에 두고 빛으로 삼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삶은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며 모범으로 삼기도 하니 저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헨리 나웬, 마더 테레사와 티벳의 라다크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살았던 흔적을 잠시 살펴보며 제가 생각하는 성숙한 삶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헨리 나웬 (1932-1996)

나웬의 인생은 화려한 경력들이 많습니다. 화란에서 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에서 가르쳤으며, 평균 일년에 한 권 이상씩 책을 썼고,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그의 경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웬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의 여정에 있습니다.
나웬은 명문대학의 종신 교수직을 버리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라쉬(L'Arche Community)의 상주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곳은 데이브레이크(Daybreak)라는 곳이었습니다. 정신지체인들의 공동체인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로 살아갑니다. 나웬은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을 부른다고 느낍니다. 나웬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기 위해서, 그리고 넘쳐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데이브레이크에서 아담이라는 청년을 돌보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아담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20대의 중증장애인 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명예를 가진 나웬은 모두가 식물인간,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한 젊은이를 위해 사역했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 대부분의 유익을 얻는 것은 아담이 아니라 나웬 자신이었음을 점차 깨달아 갔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통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마더테레사 (1910-1997)

사람들은 마더 테레사를 ‘살아있는 성인’ ‘캘커타의 성인’ ‘사랑의 심장과 철의 의지를 가진 사람’ 이라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가 가난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산 삶을 보면 노력해서 애써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흘러 넘치는 능동적인 사랑이기에 감동적입니다. 마데 테레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1백만 달러를 준다 할지라도 나병환자를 만지고 싶지 않다’고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돈 때문이라면 2백만 달러를 준다 할지라도 지금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기쁘게 그 일을 합니다.”
한번은 마더 테레사가 일본에 가서 강연을 합니다. 큰 감동을 받은 자원봉사자가 캘커카에 가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봉사하기 위해 일부러 캘커타까지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들 이웃에 캘커타가 있으니 그 캘커타를 위해 일해 주십시오.”
마더 테레사는 종종 “가정 안의 캘커타”는 없는지 살펴보라고 일깨워 줍니다. 사랑은 가정에서 시작하고 가정에서 지속되며 가정에는 사랑할 영역이 항상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실천할 첫 번째 활동분야가 가정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라다크 사람들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다크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천년 넘게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 왔는데, 그것이 깊은 생태적 지혜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제 마음을 잡고 있는 부분입니다. 라다크 사람들은 낭비란 없이 모든 것을 재순환 시킵니다. 다 낡아 바느질도 할 수 없는 옷은 진흙에 뭉쳐서 수로의 약한 부분에 끼워 넣어 물이 새지 않도록 합니다. 또 설거지 한 물도, 잡초들도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공동체로 살면서 개인적 억압을 느끼기 보다는 깊은 안정감을 주는 곳,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무도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 곳, 적은 자원으로 완전에 가까운 자립 생활 등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영적인 깊이를 더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라쉬같은 장애우 마을 공동체 이루는 것을 올해 우리 가족의 사명으로 선언했습니다. 나웬과 함께 했던 아담과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우리 아이가 있는 한 오랜 동안 그 사명을 간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헨리 나웬이나 마더 테레사나 라다크 사람들 마냥 그들을 흉내 내며 살다보면 지금 보다 성숙한 삶을 살게 될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12월 2002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막9:35)

8/20/2008

기억 속의 그 향기를 또 다시 맡다



새벽 5시 30분.
"Get Happy" 라는 휴대폰 리듬을 듣고 침대에서 내려옵니다.
자는 것인지 조는 것인지 기도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자세로 반시간을 보냅니다.

적어도 6시에는 강산이를 깨워야 합니다.
마음이 내키고 의미가 부여가 되어야 움직이는 강산이를 잘(!) 깨워야 합니다.
“오늘 점심에 강산이 뭐 먹을 거야?”
“이따 학교 갔다 와서 아빠랑 수영하러 가자!”
“엄마가 써준 편지 선생님 보여드려야지?”
“저녁 때 수요 예배 갈 거지?”
강산이가 좋아할만한 일들을 골라 슬쩍 던져 놓고 강산이 방을 나옵니다.

쉐이커에 먼저 우유를 따르고 다음에는 미숫가루를 넉넉하게 덜어 넣고 거기에 꿀을 달달한 맛이 나도록 넣어 흔들어 섞으면 강산이가 먹을 아침이 준비됩니다.
준비된 것을 가지고 강산이 방으로 올라가면 잠이 덜 깬 얼굴로 침대에 앉아있습니다.
이 정도면 강산이 등교시간에 맞추는데 성공입니다.
강산이 손에 미숫가루 탄 것을 쥐어주고 나오면 그 다음에는 강산이가 알아서 씻고 옷 입고 내려옵니다.

6시 35분쯤 집을 나서면 아주 적당하게 학교에 도착합니다.
아이들이 개학한 지난 주에는 남편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느라 제가 강산이 등하교를 도왔습니다.
이번 주에는 학교 가는 길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제가 맡았습니다.
강윤이는 이 시간에 자고 있습니다.
강윤이 말로는 형 깨우는 소리에 자기도 깬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된 강윤이가 스쿨 버스 타는 시간은 8시40분입니다.
초등학생이 7시20분쯤에 가니까 아침 시간은 중학생이 가장 여유롭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순서도 학교에 간 차례대로 입니다.
이 등하교 시간은 카운티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스쿨 버스 타는 것과 시간이 결정되면 집 현관문 앞에서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장애우 친구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다만 아침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멀리 사는 친구들은 5시 45분에 스쿨 버스를 타기도 한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스쿨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고 부모가 출근하면서 학교에 내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강산이를 데려다주는 것이 마음이 편한 면도 없지 않습니다.
강산이 기분에 따라 학교 갈 준비하는 시간이 많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 시간에 오는 스쿨 버스를 타려면 꼭 시간을 맞추어야 되니 은근히 스트레스가 됩니다.
알아서 척척 하는 강윤이가 고마워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어쨌든 늦여름답게 서늘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파랗게 밝아오는 새벽길을 달리는 기분도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지난 월요일 강산이가 다닐 고등학교에 처음 데려다주러 갔을 때입니다.
어디다 차를 세워야할지 몰라 앞 차를 따라가 세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차할 사람이 정해져 있는 학생 주차장이었습니다.
이런 이런....
개학 첫 날부터 자기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주차했어야 할 학생에게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주차장에 주차하는 바람에 자기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과 길게 늘어선 스쿨 버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 틈에 강산이와 저도 끼게 되었습니다.

새 학년을 시작하기 위해 학교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아이들, 그들을 비추는 노란 가로등과 연이어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불빛은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입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품어내는 향기도 언젠가 맡아본 것입니다.
......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레임, 기대, 긴장, 두려움, 낯설음.
바로 6개월 전 어둑해지는 초저녁 아틀란타 하츠필드 공항에 내렸을 때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것들입니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서 왔기에 긴 시간 비행했음에도 긴장되어 피곤함을 느낄 겨를이 없던 남편과 저.
여행하러 온 것인지 살러 온 것인지 모르는 강산.
부모가 가야한다고 하니 묵묵히 따라나선 강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여러 개의 살림살이 짐을 찾고, 얼굴도 모르지만 마중 나온 사람들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가 남편 이름을 알고 있는 목사님 한 분과 교우를 만났을 때 얼마나 고맙고 마음이 놓이던지요.
공항 건물을 비추고 있는 노란 불빛과 헤드라이트를 켜고 사람을 찾아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 틈에서 교회에서 내준 자동차에 오르기까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보았던 풍경과 이전에 맡아보지 못했던 야릇한 그 향기는 오랜 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중학교에서 배움을 시작하는 첫 날, 더욱이 이른 아침 시간에 하츠필드 공항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 긴장감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2-16)

8/12/2008

어머님, 엄마, 어머니

<동생이 보내 준 사진-올 아버님 생신에 다시 뭉치신 어머니, 엄마, 어머님>


“엄마, 할머니한테 전화 안 해?”
“니가 좀 먼저 해 봐.”
“싫어. 엄마가 해.”

막상 할머니들과 통화할 때는 “네” “네” “아니요” 밖에 말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전화 하는 것을 꼭 챙깁니다.
남편이 쉬는 월요일이면 저녁 먹고 나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문안 전화를 드리곤 합니다.

전화는 싸고 통화 품질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폰으로 합니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연결음이 들리면 “엄마 빨리 와” 합니다.
제 목소리 보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불러드리면 더 좋아하실 텐데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아직 어린가 봅니다.

시댁 전화번호를 먼저 누릅니다.
통화가 될 확률은 절반 입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이른 아침이 아니면 통화가 어렵습니다.

어렵게 연결이 되면 “어머님, 저예요.”
“응 그래. 모두 잘 지내지?”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어머님은 남편에게는 교회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는 지를 물으시고 저를 꼭 바꾸라고 하십니다.
“야, 목사 교회에서 잘 하고 있냐? 많이 바뻐?”
“네. 일이 많은가 봐요. 잘 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버님은
“바쁜 게 나아. 그럼 바쁘게 일 해야지” 하시고, 어머님은
“그렇지 뭐. 걱정할까봐 어려운 얘기 하겠냐, 니가? 그래도 바쁠수록 건강 조심해야 된다. 먹는 것 잘 챙겨 먹고” 하십니다.
“기도 밖에 없어. 우리가 뭘 의지 하겠냐?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되잖아? 사모가 기도해야 된다. 니가 기도해야 돼. 우리도 기도하니까.” 이 말씀을 잊지 않고 하십니다.
제 기도는 어머님이 하시는 기도 분량만큼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자신 없는 대답을 “네” 합니다.

전화 내용은 늘 비슷합니다.
아이들 학교는 잘 다니는지, 많이 컸는지, 김치는 떨어지지 않고 담궈 먹는지, 음식은 제대로 해 먹는지....
아이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할 이야기들이 그런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한국 마트들이 많아서 먹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상상이 잘 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도 미국에 와 보기 전에는 그리고 아틀란타에 오기 전에는 아무리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이곳 사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이번에는 엄마네 전화를 합니다.
“엄마, 나야.”
“호호호, 그래. 그렇지 않아도 전화 올 때가 됐는데 했지.”
엄마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전화가 오면 새까맣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며 적어놓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처음부터 막힘이 없이 소식을 전할 때는 아마도 적어 놓은 것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ㅋㅋㅋ
엄마는 은행 갔던 얘기, 앞 동네 권사님이 파 캐서 주신 얘기, 오이지 보내면 어떻겠냐... 시시콜콜 하고는 아빠가 노인회 사무장을 맡으셔서 우리 가족 생각 덜 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얘기와 함께 살고 있는 동생 얘기를 해주십니다.

깔깔 웃으면서 얘기하다가 며칠 전에는 강윤이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봤다며 울먹울먹 하십니다.
엄마한테는 딸네가 가까이서 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어머니가 또 한분 계십니다.
동생의 어머니입니다.
응~,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동서의 어머니입니다.

미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한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라고 시작된 편지였습니다.
멀리 떨어지고 보니 마음으로는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는 따뜻한 편지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형님으로서 동서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도 저같이 무심한 사람을 언니 삼아 주겠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한국을 떠나올 때에 가장 오래 동안 힘있게 저를 안아준 사람도 그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은 무남독녀로 어머니가 늦게 얻은 귀한 딸입니다.
이곳에 와서 어머니와 잠깐 통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이고마 큰 집은 잘됐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건강하시죠?”
“내사마 늘 그렇죠, 뭐. 야야 전화 받아라.”

어머니는 특수교육 교사인 동생이 방학 중이라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무릎 관절 수술을 하셨답니다.
어머니 무릎이 더욱 든든해지는 기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어머니를 잘 보살피는 동생과 서방님-서방님은 그냥 서방님!-이신지라 걱정이 되진 않습니다.

세 어머니께서 돌아오는 겨울에 저희 사는 곳을 보러 오시겠다고 합니다.
미국 여행 주동자인 어머님은 농한기에 오시면서 엄마와 어머니도 꼭 같이 가셔야 된다고, 같이 어울려 가야 더 좋지 않겠냐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들 볼 날이 기대가 됩니다.
형편이 되는대로 오시게 되겠지요.
모두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뵙기를 기도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