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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많았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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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제 사진기는 너무 낡아서...>

올해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인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큰 변화가 있었던 해입니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 전혀 낯선 나라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어 당황스럽고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알게 된 교우들과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데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과 조금 특별한 강산이 덕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아주 잠깐 동안 같아서, 정말 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후회가 덜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 마무리 될 때든지, 요즘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라야 정신 차리고 이런 다짐도 해보지만 마음과는 달리 생활 속에서 느슨해질 때가 많습니다.
뭔가 보려고 길을 나섰으나 정확히 무엇을 보고자함인지 모르거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자신과 자주 마주치는걸 보면 그렇습니다.

성탄절 아침입니다.
딱히 무엇을 할 계획이 없는지라 잠 자리에 그저 누워있었습니다.
남편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서야 몸이 움직여졌습니다.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일을 하는 동안 이번엔 반대로 남편이 곤한 잠에 빠졌습니다.
강산이는 자기 방에서 음악 듣느라 보이지도 않습니다.
언젠가 강산이에게 CD에 담긴 찬양을 맘대로 들을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사주마 약속했던 것을 이번 성탄에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소유의 조그만 CD 플레이어를 가지고는 한나절 동안 방에서 나오질 않습니다.
강윤이는 컴퓨터 게임.
언제나 봐왔던 것과 비슷한 성탄절 풍경입니다.

어느 정도 잤는지 남편은 점심 먹고 어디든 나갔다오자며 스모키 마운틴을 제안합니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러자 했습니다.
점심 먹고 탁자 위에 놓인 과자, 쵸코파이, 바나나 2개, 그리고 물과 쥬스를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성탄절에는 식당이나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고…

빈 마음으로 맞이하는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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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가 교회 Jubilee에서 만든 카드입니다.>

곧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빨강과 초록빛의 성탄 장식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오심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은 좋은 소식을, 큰 선물을 주실 것을 바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미 많은 선물을 주셨고, 새롭고 놀라운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넉넉한 분임을 믿기에 언제나 이 맘 때가 되면 들뜨는가 봅니다.
또 그 선물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풍성하게 여겨집니다.

아기 예수님이 찾아오실 수 있도록 마음 한 구석 치워놓으려 합니다.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구주의 나심을 전해주었을 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아기 예수님을 찾아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모두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2:15,16,20)

저는 어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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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가정, 직장, 교회, 친구, 동호회 따위에서 그 역할에 맞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런데 여성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합니다.
여성학, 여성신학, 여성해방에 관심이 있을 때는 그리고 결혼해서도 한참 동안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이기보다 의식적으로 제 이름을 사용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팔,구년 전쯤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을 읽을 즈음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몇 번을 읽는 동안 내가 목사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엄마이고 교회에서 사모인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축복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걸 상담에서 사용하는 "통합(integration)"의 과정이라고 쳐주신다면 제가 그 언저리쯤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어제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강산이가 흥얼흥얼 찬양을 합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 주를 찬양하리
햇빛 찬란한 낮에 주를 찬양하리
별빛 반짝일 때에 주를 찬양하리
캄캄한 밤에도 주를 나 찬양하리라”
한국에서 할머니들 오시면 불러드리겠답니다.

오늘은 “일어나라 일어나라” 해도 꿈지럭대더니 결국은 스쿨버스를 놓쳤습니다.
버스 기사에게 먼저 가라 했더니 “~bring him" 뭐라고 합니다.
나보고 데리고 오겠냐고 하는 것 같아 “그러겠다”고 얼떨결에 대답했습니다.

버스가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텐데 강산이 방에 가보니 부시럭 부시럭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모른 척하고 “너 오늘 학교 안가지?” 하고는 켜있던 전등을 다 껐습니다.
그런데 계속 소리가 들리는걸 보면 먹고 씻고 입고 있나 봅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소리, 차고로 나가는 문 여는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 날까 싶어 얼른 뒤따라 내려가며 ‘이걸 그냥.... 아까 버스 기사한테 대답만 안했으면...’ 해봅니다.

아침 나절…

수다스럽고 뇌쇄적인 여행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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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보면 꿈만 같습니다.

이 곳에 오면서 여러 가지 기대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에서도 가까이 지내던 친구네 가족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나 아이들까지도 모두 똑같이 “만남”에 대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으면 찾아가면 되겠지만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에서 그 집까지 가는데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운전하는 여건이 좋을 경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서 10시간 정도의 운전은 할만한 것이라고 합니다.

남편들끼리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주고 받다가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가네 그들이 오네 했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그 친구네가 플로리다로 여행을 가면서 가고 오는 길에 우리 집에서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게다가 더욱 먼 곳에 사는 친구도 함께 플로리다로 여행을 하기 위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풀어 있었는데, 플로리다에서 머무를 집에 방이 여럿이라며 여건이 되면 여행을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나게 좋은 제안이었지만 혹시라도 가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할 수 있는 3일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얼씨구!!! ㅋ ㅋ ㅋ’

친구네 두 가족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함께 먹을 것들을 사서 먼저 플로리다로 출발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늦게 그들과 합류할 예정입니다.

그날 저녁...
남편은 교회에서 무슨 교육이 있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이들과 저는 저녁을 먹고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새벽 일찍이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짐 챙겨서 교회로 9시까지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강윤이가 바라던 대로 밤에 출발할 모양입니다.

우리는 밤10시 가까이 되어서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소풍 떠나는 들뜬 마음이 차 안 가득합니다.
자야할 …

작은 승리의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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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아 스쿨버스 오고 있어.”
어디쯤 오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말입니다.
“시간 다 됐어. 이거 봐. 빨리 해야 돼.”
시간이 나오는 쪽을 보여주며 셀폰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서두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이렇게 재촉을 할 때는 정말 스쿨버스 올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강산이는 자기 리듬대로 움직입니다.
해뜨는 시간이 늦어져 새벽 어둠이 더욱 짙어서 그런지 강산이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더욱 어려워합니다.
밤에 늦어도 9시면 자도록 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이쯤 되면 제 속이 한번 홀딱 뒤집어집니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스쿨버스를 꼭 타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접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태워다 주자.”
이 생각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쯤 학교에 못가는 것을 경험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학교 못갔다고 강산이가 그걸로 자극을 받을지, 늦으면 아빠차 타고 가면 된다는 생각이 혹시라도 있는지...

이런 긴장 속에서 강산이가 학교 가는 스쿨버스를 타고 나면 하루의 1/3은 성공한 듯이 여겨집니다.
길을 돌아 나가는 스쿨버스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도 선생님, 친구들, 버스 기사와 행복하고 유익한 하루되길 바라는 마음을 주님께 살짝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나면 날마다 시간을 지켜서 스쿨버스를 타는 이 경험들이 소중한 것이고 이 성공의 경험들이 쌓이면 조금 더 어렵고 큰일에도 도전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강윤이에게도 마찬가지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자기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에 관심 가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도 배우고 있으며, 또 열심히 해서 교회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도 함께 연주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숙제를 하려면 강윤이와 제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사전을 찾아가며 긴 시간을 써야했습니…

아닌 척 하지만...

휴우~
밤 10시나 11시쯤 잠이 들었다가 새벽 2, 3시에 깨서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에는 거의 날마다 새벽에 깨서 뒤척이곤 했습니다.
잠 잘 자는 것이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축복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나름대로 판단하기는 낮에 집 안에 있다 보니 운동량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다행히 언제부턴가 그런대로 잘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잠이 깨서 한참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잠 들어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만 가지 생각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가 합니다.
지금 돌아보니 들락날락 하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아직 하지 못해서 해야 할 일들이거나 마음속에 꺼림칙하게 남아 있던 기억들인 것 같습니다.
결론도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다가 몸이 지쳐 버릴 때쯤 되어서야 저를 놓아줍니다.
겨우 잠들었나 싶다가 강산이 학교 갈 시간이 되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오죽하면 오늘은 강산이 스쿨버스가 오는 6시10분쯤 깨는 바람에 스쿨버스를 타지 못했습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여섯 주가 지났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들을 배울 때마다 이것을 사용해서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얼마나 착한 학생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모르는 단어나 숙어를 사전에서 찾아놓고, 조금 긴 내용은 미리 읽어보고, 문제가 나오면 몇 개 풀어놓기도 하고 말이죠.
그날 배운 어휘를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보는 숙제나 workbook 숙제도 빠트리지 않고 해갑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이 보통 하는 말이 제게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이렇게 했으면 하버드 갔겠다.”

그러나 지난날 시험 치기 위해 배운 것과는 달리 생활 속에서 사용할 언어를 배워가는 것이 무슨 차이인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한걸음에 달려가 영어를 정복해야겠다는 부질없는 생각 같은 것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지금 기회가 주어졌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정도의 …

여러가지 빛깔을 가진 가을의 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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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서 아침에 찍은 사진. 다른 곳에서도 찍고 싶었는데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요즘은 단풍든 나무들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식탁에 앉아있어도, 차를 타고 달려도, 교회를 가도, 공부하는 곳 언저리에도 여러 가지 색깔의 나뭇잎들이 온통 제 마음을 빼앗습니다.
나뭇잎 색은 어찌 그리 다채롭고 신비한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정말 솜씨가 좋으신 것이 분명합니다.

차를 타고 달리며 보았던 불타듯 빨간 빛의 나무와 신비로운 주홍빛이 쏟아져 내리는 키가 엄청 큰 나무가 자꾸 떠올라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집니다.
그러다 중간시험 공부해야 하는 것이 생각나거나 공과금 내야 할 날짜가 생각나거나.... 하면 정신이 바짝 듭니다.
어느 때보다 요즘 살아가는 삶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잘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새 시간은 저 멀리 가있고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살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 때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오늘은 한국으로 들어가시는 어느 사모님과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사귐도 많지 않았지만 가신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입니다.
만나고 헤어지고, 시작하고 끝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색깔의 삶을 만들어내는가 봅니다.

오래 전 대학 입학시험을 치루고 어느 길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 시를 하나 적어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새로운 사역의 길 떠나시는 그 사모님에게 들려드리고 싶어서 적어봅니다.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F. R. Havergal

어두운 후에 빛이오며
바람분 후에 잔잔하고
소나기 후에 햇빛나며
수고한 후에 쉼이있네.

연약한 후에 강건하며
애통한 후에 위로받고
눈물난 후에 웃음있고
씨뿌린 후에 추수하네.

괴로운 후에 평안하며
슬퍼한 후에 기쁨있고
멀어진 후에 가까우며
고독한 후에 친구있네.

고통한 후에 기쁨있고
십자가 후에 면류관과
숨이진 후에 영생하니
이러한 도는 진리로다.
(찬송가535장)

“사랑하는 자여…

쥬빌리(JUBILEE)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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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동생에게

지난 주일에는 우리 교회 장애우 사역팀 쥬빌리(JUBILEE)에서 드림랜드(DREAM LAND)로 소풍(FIELD TRIP)을 갔다 왔어.
동생에게 아직 쥬빌리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우리 교회 쥬빌리에서는 주일마다 장애우 친구들과 함께 예배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있어.
선생님들은 일찍 오셔서 2부(9:45) 예배를 드리고 우리 친구들을 맞이하셔.
얼마 전부터 11시에 모여서 음악 치료도 하고 만들기 시간도 갖고 있어.
아마 요즘은 그 시간에 성탄절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 뭔가 준비하는 것 같아.
나도 무척 궁금한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줄게.

동생도 알다시피 우리 쥬빌리에 나오는 친구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깨끗하고 신비로운 녀석들이야.
우리 친구들 가운데 20대 청년이 4명이 있고 3명은 중,고등 학생이야.
또 전도사님과 일곱 분의 선생님이 계시는데 장애우 사역의 전문가들이고 사랑과 능숙한 솜씨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셔.

선생님들은 우리 친구들에게 예배하는 것과 성경에 대해 잘 가르치려는 열정이 대단하셔.
설교할 때도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 시청각 자료들을 사용해보기도 하고, 올 가을 성경공부는 내용을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젝트 학습을 하고 있어.
12주 동안 출애굽기에 대해 배우고 활동한 자료를 친구들마다 한 권의 책으로 만들기로 했어.
우리 친구들이 자기가 만든 책을 언제고 펴보면 출애굽기의 말씀이 생각나길 바라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활동이야.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활동한 자료를 전시(?)해서 쥬빌리 사역에 대해 더욱 알릴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어.
감사하게도 이 프로젝트 활동을 위해서 몇 분의 선생님과 교우들이 따로 수고를 하고 계셔.

강산이가 쥬빌리에 함께 하면서 존중받는 예배자의 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예배하길 원하는 다른 장애우들도 이렇게 예배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
쥬빌리 소개가 길었지?
이번 소풍은 우리 교회에서 올해 새로 사들인 꿈의 땅 “드림랜드”로 갔어.
교…

"내가 말을 잘 못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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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에서 지난 3월에 찍은 사진입니다.^^>

엊그제 수요일 예배 때 남편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목회/선교 비전 트립과 서울 창천교회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남편이 수요 예배 인도와 설교 때문에 주일 저녁부터 긴장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설교를 워낙 은혜롭고 감동있게 하시는 터라 금방 비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처럼 설교하는 기회이니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편은 나름 고민을 하다가 가을이고 하니 시와 노래가 있는 예배는 어떨까 묻습니다.
“글쎄....”
이러면 어떨지 저러면 어떨지 물어올 때마다 저는 대답을 선뜻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왠지 모험하는 것 같아 불안했고, 또 예배 준비에 대해 저에게 물어봐 주는 것이 고마워서 남편 마음 상하지 않게 대답하려니까 자꾸 “글쎄”만 나왔습니다.
남편 덕분에 저도 덩달아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지 않은 체하고 있었습니다.

수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자리에 앉고 보니 슬슬 긴장감이 더해 옵니다.
“하나님 오늘 김성은 목사가 설교를 합니다.
예배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성령께서 붙잡아 주셔서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려는 주님의 말씀이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전해지게 도와주세요.
사람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있게 해주세요.”

남편의 마음도 헤아리려 하고 남편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려 하니 이쯤 되면 괜찮은 아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배가 시작 되면 목사님의 말씀을 기도한 것처럼 은혜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꾸 반복하는 말들, 잘못 사용된 단어나 조사(助詞) 같은 것들을 더 크게 듣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더 조마조마 해집니다.
기도 따로, 흘러가는 제 마음 따로의 모습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자기 오늘 어땠냐고 또 묻습니다.
주제넘게 얘기하자면 전하고자 했던 설교의 내용도 …

호랑이 그리는 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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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4일째.
그래도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Community College-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단과대학인가요 아니면 전문대학?-의 평생교육(Continuing Education)원에서 하는 영어반에 들어갔습니다.
큰맘 먹고 일주일에 4일이나 가야하고 교육비도 어느 정도 내는 반에 다니고 있습니다.
9월 중순에 받은 레벨 테스트(Level Test)에 따라 회화반과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반에 이틀씩 나가게 됩니다.

가을 학기(Fall Quarter)가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조금 일찍 도착해서 교실에 가보았더니 두어 사람만 와 있었습니다.
어디에 앉을지 교실을 둘러보면서 보통 때는 눈에 띠지 않을만한 자리를 골랐을 텐데, ‘뒤로 물러서지 말자’ 하며 선생님 책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영어를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 어눌하기에 회화를 많이 하는 반이 필요할 것 같았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기에 그다지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이 시작되고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보니 문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기 표현을 다들 잘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저렇게까지 못하는데.’
거기서 기가 한번 죽었습니다.

선생님이 부르는 차례대로 자기 소개를 다들 마치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나를 부르겠구나. 기죽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을 자신 있게 하자’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바로 코앞에 앉은 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째 이런 일이...’
저는 다시 용기를 내어 “Excuse me" 하고 아직 내 소개를 하지 않았다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그랬냐며 얼굴 표정으로 해보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름 목소리를 보통 때보다 크게 하여 서너 문장으로 제 소개를 해보았습니다.
소개를 마치자 선생님은 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젠장. 다른 사람한테는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만...’
선생님이 …

강산이도 추남(秋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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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도 가을을 타는지 “비행기 타고~ 한국 가면~” 이라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찬양을 부르다가 할머니들이 좋아하셨던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이 나오면 그러고, 어린이 가요를 듣다가 삼촌하고 기타치고 싶다고 그러고, 음식을 먹다가도 그럽니다.

어제도 강산이가 한국 가고 싶다고 하길래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강산이 **** 하이 스쿨 좋다고 했잖아. 영어도 배우고 농구도 하고 공원도 가고. 한국 가면 **** 하이 스쿨 못가는데 괜찮아?”
“.....”
뜻밖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래도 한국 좋아”라고 하든지 선택하기 어려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르든지 할텐데 생각해 보더니 아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올 2월 이곳에 와서 학교에 갔을 때는 5월에 학사일정이 끝나니까 학년 끝자락에 편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7학년 특수학급에 들어갔습니다.
정말 정말 낯선 교육 환경에 전이해(pre-understanding) 없이 놓여지게 된 것이죠.
말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부부도 이곳 교육 현장을 경험한 바가 없기에 ‘어디가나 진실하려는 마음은 마음과 통하게 돼있다’는 어줍잖은 신념만 가지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짧은 몇 주 동안 강산이가 학교에서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와 의사소통은 잘되지 않았고 어줍은 신념 한쪽 귀퉁이는 깨어지고 그랬습니다.

어쨌든 며칠 밖에 다니지 않은 중학교이지만 고등학교에 적응하는데 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이곳 학교 환경을 경험하는 기회였고 개별교육프로그램(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IEP)을 위한 평가도 때에 맞게 되었습니다.
한국 생활 경험이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도 만나서 강산이가 학교에 대해 마음을 여는데 큰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개학하고 두 주 동안 통학을 도우며 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 버스 기사들을 멀리서 볼 기회가 되었는데 친밀감있고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아닌 선생님들도 강산이나 저에게 늘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감사한 …

"왜 에덴의 동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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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드라마를 보고 나서 강윤이가 무심코 한 말입니다.
강윤이에게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강윤이가 드라마에 열중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그 드라마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 컸나 싶기도 합니다.
“야아~ 그 정도야?”
사실은 저도 다음 내용이 엄청 궁금하면서도 짐짓 아닌 척 한마디 해봅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방송을 다(?)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위성방송으로 시청이 가능하고 위성방송을 설치해 주는 곳에 신청을 하면 되나 봅니다.
저도 유선 방송으로 미국 방송만 볼 것인지 위성을 연결해 한국 방송도 볼 것인지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유선 방송을 선택했습니다-이것이 맞는 말인지....
어쨌든 한국 방송을 연결하면 아무래도 텔레비전 보는 시간도 많아질 것 같고 또 영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것 같아서입니다.
그리고 정말 보고 싶은 한국 방송이 있으면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요즘 한국 방송을 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웃기 위해서입니다.
“무한도전”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거의 빼놓지 않고 봅니다.
보면서 눈물이 날 지경으로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손뼉도 치면서 즐거워합니다.
그 방송의 기획이나 캐릭터들이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작가들의 설정에 의해 꾸며진 내용이라 해도 웃기로 작정하고 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을 보며 웃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영어가 주는 긴장감을 풀고 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영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영어 한마디라도 건져볼까 싶어 미국 드라마나 만화 영화를 포함한 영화를 나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보다보면 어느 때는 짜증이 확 몰려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드라마 분위기로 내용을 때려 맞추며 극 전개의 실마리가 될 만한 말을 들어보려고 집중하다보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를 보면 그런 노력 필요 없이 극중 인물들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끼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니 …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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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생활방식에 따라 세탁기와 건조기가 늘 함께 있습니다.>

쿵덕 쿵덕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아래층에서 들으면 마치 방앗간 떡 찧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습니다.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이 더운 날 오후가 되면 세탁기가 있는 위층이 더욱 더워지고 올라가기 싫어집니다.
그러기 전에 모아진 빨래를 해치우려고 세탁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엊그제 추석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늘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명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부설 기관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유치원, 방과 후 학교, 노인 대학, 한국학교...
에~, 또...
토요일에는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에서 추석 행사를 했습니다.
제기 차기, 송편 만들기, 민요 배우기와 민속 춤, 사물놀이 공연도 있었습니다.
주일 점심 식사 때는 송편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한국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이한 것이 있었다면 주일 저녁 집에 들어온 남편이 먼저 인터넷 전화를 연결한 것입니다.
“추석인데 한국에 전화했어?”
아직 안했을 거라는 확신과 더불어 주일이 주는 긴장감이 해소되는 주일 저녁에 느껴지는 피곤과 짜증이 말 속에 묻어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하는 시간은 주로 월요일 아침이나 저녁이고 그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저인데 이럴 땐 그 공(功)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명절을 함께 보내던 자녀들 없이 쓸쓸한 명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모님에 대한 염려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월요일마다 전화를 드렸다 하더라도 명절이니 그 당일에 전화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면서 계속 느끼는 것인데, 일이 생기면 그 일을 빨리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남편과 일이 주어지면 꾸준히 해나가는 저와 천생연분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같이 살면서 남편은 저에게서 성실함을 배우고, 저는 남편에게…

value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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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째 한쪽 귀가 은근히 불편합니다.
다른 곳이 아프면 그런가 보다 할텐데 귀가 아프니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그 귀는 팔년 전쯤 크게 치료한 경험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요즘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귀가 아픈 쪽 잇몸과 눈도 덩달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다가 증상이 확실히 드러나면 일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약을 먹든 병원을 가든 빨리 상황을 개선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주말에 아프면 병원에도 갈 수 없다며 남편이 서두르는 바람에 지난주에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
다른 데는 아무 이상이 없고 입 안에 피곤하거나 하면 생기는 궤양 때문에 다른 곳에 통증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진찰 결과가 나왔습니다.
입 안 상처를 치료하는 처방전도 받아왔습니다.

입 안에 생기는 상처쯤이야 수없이 겪어본 것이라 약이 굳이 필요할까 싶어 약을 사지 않고 주일을 넘겼습니다.
말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상처가 따끔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귀도 편안치가 않습니다.
결국은 어제 남편이 출근하면서 처방전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귀만 아프지 않았으면 버틸 수 있었는데....’

어제 점심때가 조금 지나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약값이 원래 이렇게 비싼거야?”
“얼만데?”
“44불이 넘어.”
“어 이상하다. 선생님이 4불쯤 할거라고 그랬는데. 벌써 계산했지?”
약국에 가서 다시 물어볼 처지도 아니고 처방전에 따라 준 약은 환불이 안될거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좋은 약을 쓰게 되었습니다.
잠자기 전 이를 닦고 튜브에 담긴 그 약을 짜내어 잇몸과 혀의 상처에 바르는 순간 마취가 되면서 통증이 바로 사라졌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약을 또 발라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참 신기합니다.

이곳 병원비와 약값이 엄청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비단 그것 뿐만 아니라 한국 물건을 파는 마트에 가도 한국 가격보다 한배 반이나 두배 가량 비싼 것을 보게 됩니다.
책값도 만만…

예술이 되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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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편이 영화를 보자고 합니다.
세미나 갔다 오다가 어느 목사님이 괜찮은 영화라고 소개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 OK입니다.
쉬는 날이나 시간의 짬이 생겨도 특별한 놀거리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는 영화 보는 것이 꽤 큰 기쁨입니다.

영화관은 Buford Hwy와 Sugarloaf Pkwy가 만나는 곳에 있는 우리 집입니다.
영화 제목은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영화가 다 끝났을 때 조용한 바닷가에 서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한가한 시간에 영화를 천천히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느낌들이 남길래 제 블로그에 사용해볼 요량으로 마음에 남는 대사나 요리 이름들을 레터 용지 앞뒤로 빡빡하게 적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이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하는지 궁금해서 검색창에 영화 제목을 쳤습니다.
그러자 영화, 책, 블로그 따위를 통해 이미 많은 소개와 영화평이 나와 있었습니다.
에이~

밀알에서 만난 어느 엄마가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었습니다.
보통 때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데 그냥 가서 마음 편하게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구 흘려 써서 어떤 것은 무슨 글자인지 모를 그 영화에 대한 메모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덴마크 시골 섬마을에 자신의 시간과 적은 수입으로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두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내전으로 오갈데 없는 바베트라는 여인이 이 자매를 찾아옵니다.
바베트는 급료없이 자매들을 섬기는 조건으로 14년 동안 같이 살게 됩니다.
바베트에게는 작은 희망이 있었는데 프랑스 복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복권이 당첨되어 바베트는 만 프랑-그 당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인지 모르겠지만-을 타게 됩니다.
자매들은 돈이 생긴 바베트가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권이 당첨되었을 즈음 두 자매는 자신들의 아버지였던 그 지역 목사님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초대…

조화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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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를 태운 스쿨버스가 오면 빨리 나가기 위해 기다리는 곳이예요>

어제부터 강산이가 스쿨버스를 탑니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는 시간이 6시15분으로 정해졌습니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될 것 같습니다.
강산이는 스쿨버스를 탄다는 새로운 사실에 어제, 오늘 아침 시간을 잘 지켜주었습니다.

아직 어둑한 새벽에 소리 없는 사이렌 불빛 같은 것이 번쩍거리면서 길모퉁이를 돌아오는 스쿨버스가 보입니다.
버스 기사와 강산이의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입니다.
버스 기사 아줌마와 “Good morning" 인사하면 기분이 더욱 좋습니다.

일이 하나 하나 해결되어 나가니 또한 좋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하다고 얘기해야 하고, 서류를 작성해야 하면 잘 써서 갖다 내야하고, 또 여기에 교우들의 도움이 보태질 때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그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목회자 가정이라는 것 때문에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아 하나님께 그리고 같은 신앙의 길을 가는 교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우리 교회) 교사로서 이력서를 내야 했습니다.
이력서를 언제 써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저의 경력을 소개하면서 어떻게든 제 부족함을 메꾸어 보려고 이것저것 적어 넣었습니다.

삶을 수직적인 연대기로 살펴보는 이력서를 쓰면서 몇 년 전에 Hi Family의 가정사역 아카데미에 다닌 것도 적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성격 심리” 과목이 끝날 때 A4 한 장 반에 제출했던 짧은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 글대로 살지도 못하고 있고 그렇게 살아갈 자신도 점점 없어질 뿐 아니라 다분히 선언적인 느낌까지 나는데 왜 생각났는지....
상대적으로 제가 누리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조화로운 삶
“성숙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받고 내내 무엇일까, 무엇일까를 되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

기억 속의 그 향기를 또 다시 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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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Get Happy" 라는 휴대폰 리듬을 듣고 침대에서 내려옵니다.
자는 것인지 조는 것인지 기도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자세로 반시간을 보냅니다.

적어도 6시에는 강산이를 깨워야 합니다.
마음이 내키고 의미가 부여가 되어야 움직이는 강산이를 잘(!) 깨워야 합니다.
“오늘 점심에 강산이 뭐 먹을 거야?”
“이따 학교 갔다 와서 아빠랑 수영하러 가자!”
“엄마가 써준 편지 선생님 보여드려야지?”
“저녁 때 수요 예배 갈 거지?”
강산이가 좋아할만한 일들을 골라 슬쩍 던져 놓고 강산이 방을 나옵니다.

쉐이커에 먼저 우유를 따르고 다음에는 미숫가루를 넉넉하게 덜어 넣고 거기에 꿀을 달달한 맛이 나도록 넣어 흔들어 섞으면 강산이가 먹을 아침이 준비됩니다.
준비된 것을 가지고 강산이 방으로 올라가면 잠이 덜 깬 얼굴로 침대에 앉아있습니다.
이 정도면 강산이 등교시간에 맞추는데 성공입니다.
강산이 손에 미숫가루 탄 것을 쥐어주고 나오면 그 다음에는 강산이가 알아서 씻고 옷 입고 내려옵니다.

6시 35분쯤 집을 나서면 아주 적당하게 학교에 도착합니다.
아이들이 개학한 지난 주에는 남편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느라 제가 강산이 등하교를 도왔습니다.
이번 주에는 학교 가는 길은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제가 맡았습니다. 강윤이는 이 시간에 자고 있습니다. 강윤이 말로는 형 깨우는 소리에 자기도 깬다고 합니다. 중학생이 된 강윤이가 스쿨 버스 타는 시간은 8시40분입니다. 초등학생이 7시20분쯤에 가니까 아침 시간은 중학생이 가장 여유롭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순서도 학교에 간 차례대로 입니다. 이 등하교 시간은 카운티(county)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스쿨 버스 타는 것과 시간이 결정되면 집 현관문 앞에서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장애우 친구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다만 아침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멀리 사는 친구들은 5시 45분에 스쿨 버스를 타기도 한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스쿨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하고 부모가 …

어머님, 엄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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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할머니한테 전화 안 해?”
“니가 좀 먼저 해 봐.”
“싫어. 엄마가 해.”

막상 할머니들과 통화할 때는 “네” “네” “아니요” 밖에 말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전화 하는 것을 꼭 챙깁니다.
남편이 쉬는 월요일이면 저녁 먹고 나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문안 전화를 드리곤 합니다.

전화는 싸고 통화 품질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폰으로 합니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연결음이 들리면 “엄마 빨리 와” 합니다.
제 목소리 보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불러드리면 더 좋아하실 텐데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아직 어린가 봅니다.

시댁 전화번호를 먼저 누릅니다.
통화가 될 확률은 절반 입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이른 아침이 아니면 통화가 어렵습니다.

어렵게 연결이 되면 “어머님, 저예요.”
“응 그래. 모두 잘 지내지?”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어머님은 남편에게는 교회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는 지를 물으시고 저를 꼭 바꾸라고 하십니다.
“야, 목사 교회에서 잘 하고 있냐? 많이 바뻐?”
“네. 일이 많은가 봐요. 잘 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버님은
“바쁜 게 나아. 그럼 바쁘게 일 해야지” 하시고, 어머님은
“그렇지 뭐. 걱정할까봐 어려운 얘기 하겠냐, 니가? 그래도 바쁠수록 건강 조심해야 된다. 먹는 것 잘 챙겨 먹고” 하십니다.
“기도 밖에 없어. 우리가 뭘 의지 하겠냐?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되잖아? 사모가 기도해야 된다. 니가 기도해야 돼. 우리도 기도하니까.” 이 말씀을 잊지 않고 하십니다.
제 기도는 어머님이 하시는 기도 분량만큼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자신 없는 대답을 “네” 합니다.

전화 내용은 늘 비슷합니다.
아이들 학교는 잘 다니는지, 많이 컸는지, 김치는 떨어지지 않고 담궈 먹는지, 음식은 제대로 해 먹는지....
아이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할 이야기들이 그런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한국 마트들이 많아서 먹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상상이 잘 되시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