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보내 준 사진-올 아버님 생신에 다시 뭉치신 어머니, 엄마, 어머님>
“엄마, 할머니한테 전화 안 해?”
“니가 좀 먼저 해 봐.”
“싫어. 엄마가 해.”
막상 할머니들과 통화할 때는 “네” “네” “아니요” 밖에 말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전화 하는 것을 꼭 챙깁니다.
남편이 쉬는 월요일이면 저녁 먹고 나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문안 전화를 드리곤 합니다.
전화는 싸고 통화 품질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폰으로 합니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연결음이 들리면 “엄마 빨리 와” 합니다.
제 목소리 보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불러드리면 더 좋아하실 텐데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아직 어린가 봅니다.
시댁 전화번호를 먼저 누릅니다.
통화가 될 확률은 절반 입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이른 아침이 아니면 통화가 어렵습니다.
어렵게 연결이 되면 “어머님, 저예요.”
“응 그래. 모두 잘 지내지?”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어머님은 남편에게는 교회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는 지를 물으시고 저를 꼭 바꾸라고 하십니다.
“야, 목사 교회에서 잘 하고 있냐? 많이 바뻐?”
“네. 일이 많은가 봐요. 잘 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버님은
“바쁜 게 나아. 그럼 바쁘게 일 해야지” 하시고, 어머님은
“그렇지 뭐. 걱정할까봐 어려운 얘기 하겠냐, 니가? 그래도 바쁠수록 건강 조심해야 된다. 먹는 것 잘 챙겨 먹고” 하십니다.
“기도 밖에 없어. 우리가 뭘 의지 하겠냐?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되잖아? 사모가 기도해야 된다. 니가 기도해야 돼. 우리도 기도하니까.” 이 말씀을 잊지 않고 하십니다.
제 기도는 어머님이 하시는 기도 분량만큼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자신 없는 대답을 “네” 합니다.
전화 내용은 늘 비슷합니다.
아이들 학교는 잘 다니는지, 많이 컸는지, 김치는 떨어지지 않고 담궈 먹는지, 음식은 제대로 해 먹는지....
아이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할 이야기들이 그런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한국 마트들이 많아서 먹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상상이 잘 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도 미국에 와 보기 전에는 그리고 아틀란타에 오기 전에는 아무리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이곳 사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이번에는 엄마네 전화를 합니다.
“엄마, 나야.”
“호호호, 그래. 그렇지 않아도 전화 올 때가 됐는데 했지.”
엄마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전화가 오면 새까맣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며 적어놓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처음부터 막힘이 없이 소식을 전할 때는 아마도 적어 놓은 것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ㅋㅋㅋ
엄마는 은행 갔던 얘기, 앞 동네 권사님이 파 캐서 주신 얘기, 오이지 보내면 어떻겠냐... 시시콜콜 하고는 아빠가 노인회 사무장을 맡으셔서 우리 가족 생각 덜 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얘기와 함께 살고 있는 동생 얘기를 해주십니다.
깔깔 웃으면서 얘기하다가 며칠 전에는 강윤이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봤다며 울먹울먹 하십니다.
엄마한테는 딸네가 가까이서 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어머니가 또 한분 계십니다.
동생의 어머니입니다.
응~,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동서의 어머니입니다.
미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한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라고 시작된 편지였습니다.
멀리 떨어지고 보니 마음으로는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는 따뜻한 편지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형님으로서 동서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도 저같이 무심한 사람을 언니 삼아 주겠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한국을 떠나올 때에 가장 오래 동안 힘있게 저를 안아준 사람도 그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은 무남독녀로 어머니가 늦게 얻은 귀한 딸입니다.
이곳에 와서 어머니와 잠깐 통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이고마 큰 집은 잘됐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건강하시죠?”
“내사마 늘 그렇죠, 뭐. 야야 전화 받아라.”
어머니는 특수교육 교사인 동생이 방학 중이라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무릎 관절 수술을 하셨답니다.
어머니 무릎이 더욱 든든해지는 기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어머니를 잘 보살피는 동생과 서방님-서방님은 그냥 서방님!-이신지라 걱정이 되진 않습니다.
세 어머니께서 돌아오는 겨울에 저희 사는 곳을 보러 오시겠다고 합니다.
미국 여행 주동자인 어머님은 농한기에 오시면서 엄마와 어머니도 꼭 같이 가셔야 된다고, 같이 어울려 가야 더 좋지 않겠냐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들 볼 날이 기대가 됩니다.
형편이 되는대로 오시게 되겠지요.
모두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뵙기를 기도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엄마, 할머니한테 전화 안 해?”
“니가 좀 먼저 해 봐.”
“싫어. 엄마가 해.”
막상 할머니들과 통화할 때는 “네” “네” “아니요” 밖에 말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전화 하는 것을 꼭 챙깁니다.
남편이 쉬는 월요일이면 저녁 먹고 나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문안 전화를 드리곤 합니다.
전화는 싸고 통화 품질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폰으로 합니다.
아이들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연결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연결음이 들리면 “엄마 빨리 와” 합니다.
제 목소리 보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불러드리면 더 좋아하실 텐데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아직 어린가 봅니다.
시댁 전화번호를 먼저 누릅니다.
통화가 될 확률은 절반 입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이른 아침이 아니면 통화가 어렵습니다.
어렵게 연결이 되면 “어머님, 저예요.”
“응 그래. 모두 잘 지내지?”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어머님은 남편에게는 교회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는 지를 물으시고 저를 꼭 바꾸라고 하십니다.
“야, 목사 교회에서 잘 하고 있냐? 많이 바뻐?”
“네. 일이 많은가 봐요. 잘 하고 있어요.” 그러면 아버님은
“바쁜 게 나아. 그럼 바쁘게 일 해야지” 하시고, 어머님은
“그렇지 뭐. 걱정할까봐 어려운 얘기 하겠냐, 니가? 그래도 바쁠수록 건강 조심해야 된다. 먹는 것 잘 챙겨 먹고” 하십니다.
“기도 밖에 없어. 우리가 뭘 의지 하겠냐?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되잖아? 사모가 기도해야 된다. 니가 기도해야 돼. 우리도 기도하니까.” 이 말씀을 잊지 않고 하십니다.
제 기도는 어머님이 하시는 기도 분량만큼 되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자신 없는 대답을 “네” 합니다.
전화 내용은 늘 비슷합니다.
아이들 학교는 잘 다니는지, 많이 컸는지, 김치는 떨어지지 않고 담궈 먹는지, 음식은 제대로 해 먹는지....
아이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할 이야기들이 그런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한국 마트들이 많아서 먹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늘 말씀드리지만 상상이 잘 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도 미국에 와 보기 전에는 그리고 아틀란타에 오기 전에는 아무리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이곳 사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으니까요.
이번에는 엄마네 전화를 합니다.
“엄마, 나야.”
“호호호, 그래. 그렇지 않아도 전화 올 때가 됐는데 했지.”
엄마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전화가 오면 새까맣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며 적어놓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처음부터 막힘이 없이 소식을 전할 때는 아마도 적어 놓은 것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ㅋㅋㅋ
엄마는 은행 갔던 얘기, 앞 동네 권사님이 파 캐서 주신 얘기, 오이지 보내면 어떻겠냐... 시시콜콜 하고는 아빠가 노인회 사무장을 맡으셔서 우리 가족 생각 덜 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얘기와 함께 살고 있는 동생 얘기를 해주십니다.
깔깔 웃으면서 얘기하다가 며칠 전에는 강윤이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봤다며 울먹울먹 하십니다.
엄마한테는 딸네가 가까이서 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어머니가 또 한분 계십니다.
동생의 어머니입니다.
응~, 상식적으로 말하자면 동서의 어머니입니다.
미국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한테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라고 시작된 편지였습니다.
멀리 떨어지고 보니 마음으로는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는 따뜻한 편지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형님으로서 동서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도 저같이 무심한 사람을 언니 삼아 주겠다고 하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한국을 떠나올 때에 가장 오래 동안 힘있게 저를 안아준 사람도 그 동생이었습니다.
동생은 무남독녀로 어머니가 늦게 얻은 귀한 딸입니다.
이곳에 와서 어머니와 잠깐 통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이고마 큰 집은 잘됐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건강하시죠?”
“내사마 늘 그렇죠, 뭐. 야야 전화 받아라.”
어머니는 특수교육 교사인 동생이 방학 중이라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무릎 관절 수술을 하셨답니다.
어머니 무릎이 더욱 든든해지는 기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어머니를 잘 보살피는 동생과 서방님-서방님은 그냥 서방님!-이신지라 걱정이 되진 않습니다.
세 어머니께서 돌아오는 겨울에 저희 사는 곳을 보러 오시겠다고 합니다.
미국 여행 주동자인 어머님은 농한기에 오시면서 엄마와 어머니도 꼭 같이 가셔야 된다고, 같이 어울려 가야 더 좋지 않겠냐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머니들 볼 날이 기대가 됩니다.
형편이 되는대로 오시게 되겠지요.
모두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뵙기를 기도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시19:8)
강산이네 가족 미국 오심을 환영합니다.
답글삭제새로운 도전은 힘들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미국서 시작하는 제 2의 인생 더욱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엘파소별, 심용섭 목사
아래는 저의 블러그입니다.
http://blog.daum.net/truechrist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