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로 이사오기 일주일 전 방문했을 때> |
겨울방학이라고 둘째 아들 윤이가 집에 왔었다.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열흘. 성탄절 행사가 있던 시기라 윤이에게도 크리스마스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그밖에 집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심심하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누굴 만나러 나간다고 알려왔다. 교우들과도 이번에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낯선 몽고메리에 아는 사람이 없을텐데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한술 더 떠 친구란다.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온라인게임에서 알게 된 이들 가운데 앨라배마 사람도 있다고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누구? 게임?”
“응.”
“여자? 남자?”
“여자.”
나의 말끝은 올라가 있고 윤이는 덤덤하게 대꾸를 했다.
“너 연애하냐?”
“아냐! 그냥 오래 전부터 알던 누나야!”
내 말끝에 힘이 좀 빠지는 듯하니 윤이 대답이 되레 퉁명스러워졌다.
온라인게임에서 만난 누나를 2년 전 한국에 여행갔을 때도 만났다고 한 것 같은데, 아마도 같은 사람인 듯싶었다. 게임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 좀처럼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정보를 캐낼 속셈으로 관심 없는 척 지나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여기서 만나...”
윤이의 대답도 나긋나긋해졌다. 단순한 녀석. 그 누나의 부모님 집이 몽고메리에 있고, 이곳 주립대학을 졸업한 후 타주에 있는 대학원을 진학하였는데 방학이라 잠시 내려와 있다는 얘기를 주절주절 주워섬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우리교회도 다녔었대 얼마 전까지. 부모님도 같이.”
교회 얘기가 나오자 '누나'에 대한 의문이 거의 사라지는 듯했다. 엄마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 지 아는 것이다. 영특한 녀석. 지난해 교인들 일부가 다른 교회로 수평이동을 할 때 그 누나네 가족도 거기 속해있었나 보다. 청년도 30 여명이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모두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러 교우들에게서 들었던 얘기가 오래되어 사라진 옛 것이 아님을 윤이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나의 관심은 굳건하게 교회를 지키고 있는 대부분의 교인들이다. 어쨌든 그 누나에 대한 관심 역시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윤이는 집에 있는 동안 수요예배에도 같이 갔다. 예배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데, 집사님 한 분이 자신의 아들과 윤이를 가리키며 야, 너네들 어제도 같이 만났다며? 하셨다. 집사님의 아들, 환이도 방학이라 잠시 집에 온 것이다. 착하고 듬직해보이는 환이는 대답 대신에 수줍게 웃었다. 윤이는 그 누나만 만난 것이 아니었다. 환이와 누나의 애인까지... 그 애인도 우리교회 다니던 청년이라 집사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집사님은 이 아이들이 만난 지 꽤 되었고, 어떤 게임인지도 알고 계셨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다른 예를 들어 재미있게 얘기해주셨다. 온라인게임에 대해 고리타분한 내 성향이 티가 났나 보다. 집사님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러니까 착하게 살아야 돼, 라며 시원한 웃음을 날려주셨다.
그러나 저러나 전혀 만나지 않을 것 같은 관계들이 몽고메리에서 자꾸 교차되고 만나게 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남편이 교회에 부임하기 일 주일 전, 장로님들과 권사님 한 분을 뵈러 왔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김장로님이 먼저 오셔서 함께 다른 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권사님이 도착을 하셔서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이어가는데 자꾸만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면에 실례가 될 수도 있어 망설이다가 고향과 살았던 동네를 물어보니 생각했던 그 아이(!)가 맞았다. 바로 옆집 언니의 남동생이었다. 그 고향 동네를 떠난 지 거의 40 여년만에 몽고메리에서 대학 교수가 된 옆집 아이를 권사님과 목사의 아내로 만난 것이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 어떻게 어릴 적 모습으로 지금의 권사님을 알아봤는지 모르겠다. 권사님과 공유하는 옛 기억은 없으나 한 동네 이웃으로 삼, 사 년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반가웠다. 우린 점잖게 놀라워했다. 권사님도 이 일이 흥미로우셨던지 교회 임원 단체 카톡에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일했던 사무실에서 몇 년 전에 일했던 분과 김포에서 살 때 윤이한테 피아노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을 남편이 부임 첫설교를 하기도 전에 만났다.
게다가 이사하기도 전에 만남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 분도 있었다. 김포지방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고촌교회 박정훈 목사님께서 안식월을 미국에서 보내시면서 우리와 연락이 닿았다. 새로운 사역을 위해 몽고메리제일교회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드렸다. 그랬더니 박목사님은 고촌교회 어느 장로님의 아드님 가족이 몽고메리에 살고 있다면서 알아보셨다. 그들은 바로 우리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이 연구한 6단계 분리이론에 따르면 여섯 단계만 거치면 사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소셜미디어가 발달되어 4.74단계, 한 국가로 한정하면 3단계로 줄어든다고 한다(http://socialcomputing.tistory.com).
그런데 우리 가족이 몽고메리제일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는 조건이 붙기는 해도 이렇게 한꺼번에 바로 연결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몽고메리로 이사 와서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일련의 만남들은 교회와 우리 가족이 더욱 친밀하고 안정감 있게 연결되도록 돕는 분이 계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런 흥미로운 조합을 만드는 큰 손은 하나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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