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019

몽고메리에서 쓰는 이야기


<몽고메리로 이사하던 날, 휴게소에서>

지난해 9, 앨라배마주의 주도인 몽고메리로 이사를 왔다. 우리 가정이 이사를 하는 주된 이유는 남편이 목회하는 교회가 바뀔 때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콜럼비아제일교회를 사임하고 몽고메리제일감리교회(이하 몽고메리제일교회)에 부임했다.

한국 감리교단에 속한 미국 동남부지방은 6개 주를 아우르고 있다. 이 지방에는 36개 교회가 있는데 방문해본 교회가 몇 되지 않는다. 다른 교회를 방문하게 되는 대부분의 이유는 목회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지방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앨라배마주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몽고메리제일교회를 다녀가게 되었다.

한 번은 2017년 여름, 텍사스에 사는 친구를 보러 가는 길에 들러가게 되었다. 남편은 콜럼비아에서 오후에 출발하여 자동차로 여섯 시간쯤 걸리는 몽고메리에서 하룻밤 묵는 여행 일정을 짜 놓았다. 몽고메리를 거쳐 굳이 돌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대학교 후배 목사가 거기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오는 바람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 밤 아홉 시가 넘어 도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회 입구를 놓치고 몽고메리제일감리교회라고 써 있는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유턴하여 찾아 들어왔다. 어두컴컴하고 넓은 주차장 한 켠에 차를 세웠다. 교회 건물이 큼직하고 안정적이었다. 잠시 기다리니 후배 목사님 부부가 달려왔다. 남편은 그 목사님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처음 만나는 그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교회로 들어가자고 안내해 주셨다. 예배실에 들어가 먼저 기도를 드렸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기를, 담임 목회자와 그 가정을 지켜주시기를, 그리고 우리 여행에 동행하여 주시기를 호흡을 몇 번 고르며 짧은 기도를 마치고 눈을 들어보니 큰아들 산이는 어느새 드럼세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드럼 치는 것을 좋아하는 산이는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드럼 있는 곳으로 이끌려 간다. 난 그저 관심만 있지 만들어보지 않은 배너를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교회 입구에 있는 휴게실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교회를 떠났다.

다른 또 한 번은 그로부터 반 년쯤 지나 지방회에 참석하러 몽고메리제일교회를 다시 오게 되었다. 지방회가 열리는 2월 초, 그때는 일을 하고 있었고 사무실이 무척 바쁜 때라 지방회에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장로 진급 과정에 있는 장로님 한 분이 동행해주길 원하셨다. 장로님은 여성이셨는데 낯선 곳에서 하룻밤 지내야 하는 것을 불편해하셨다. 장로님과 먼 길 오가며 더 가까워질 수도 있고, 다음 번 지방회에서 두 장로님 안수식도 있으니 미리 보아두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여 몽고메리에 내려오게 되었다.

지방회에 속한 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회원들이 모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저녁을 먼저 먹고 회의는 식사 후에 열린다. 식사 시간 즈음에 도착한 우리는 교회 친교실에서 콩나물 김칫국을 먹었다. 지방회는 큰 행사이고 더군다나 안수를 받는 장로님도 있는 교회에서 잔치 음식이 아닌 간소한 상차림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교회 규모가 작지 않은 것으로 보아 먹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알뜰한 교회인가 보다 미루어 짐작했다. 음식을 나누어주는 교인들은 원피스 같은 세련된 앞치마를 한 젊은 사람들이었다. , 사십 대 젊은 교우들이 많지 않던 교회에 있었기에 부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살피게 되었다. 젊은이답지 않게 부산스럽지도 않고 밝아 보이지도 않아 이 또한 기억에 남았다.

손님으로 지나쳐 갔던 몽고메리제일교회에 대한 기억은 여기까지다. 두 번의 방문은 어두운 밤이거나 오후여서 교회 주변을 돌아보거나 할 겨를이 없었다. 다음 날들도 갈 길이 바빠 도시를 구경할 마음을 조금도 갖지 못했다. 그냥 서서히 잊혀질 단기 기억 저장소에 담긴 조각들이었다.

지방회 다녀간 때로부터 다시 반 년쯤 지나 남편은 몽고메리제일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 우리 인생의 문이 언제 어디서 닫히고 열리는 지 신비롭다. 몽고메리에서 2018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았다. 몇 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회 안팎의 행정적인 일처리를 하고,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을 보내며 교우들과 어울려 지냈다. 기쁘고 설레기도 했고, 가슴 철렁하기도 했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살펴 오래 기억될 한 편의 이야기를 써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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