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2011

식물에 담아 보는 땡큐


우리 교회에는 여기 한인사회에서 연세가 제일 많으신 어르신이 계십니다.
95 세이신 할머니 권사님이십니다.
권사님은 작은 체구에 힘이 없으실 것 같은데, 말씀도 똑 부러지게 잘 하시고, 몸도 부지런히 움직이십니다.
목사 취임예배가 있던 날도 예배가 끝나고 식사하는 시간에 교회 안팎을 계속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런 권사님이 눈에 띄길래 슬쩍 다가가 권사님, 식사하시죠, 라고 했더니 오신 손님들 가운데 혹시 식사를 안 하고 가실까 봐 살피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손님을 그냥 가시게 하면 예의가 아니라면서요.
아마 그 날도 행사가 다 끝나고 식사를 하신 것 같습니다. (식사하셨나요, 진짜? 생각이 가물가물.)

권사님은 언제부턴가 목사님이 새로 이사 오셨는데 가 보지도 못했다며 한 번 가봐야 되는데, 라고 하셨습니다.
이전에 계시던 목사님들이 이사 오는 날이면 이사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시곤 하셨답니다.
목사네 집 방문을 벼르고 계시던 권사님께서 드디어 이번 주에, 역시나 연세가 많으신 따님들과 함께 찾아주셨습니다.
권사님은 손수 키우시던 산세비에리아도 지난번에 주셨고, 이번에는 채송화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권사님네 뜰에 채송화가 있다고 하셔서 가지러 가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시고 여러 개 화분에 정성껏 심어 주신 것입니다.

채송화 화분은 집 현관 앞에 두었습니다.
언제나 꽃이 피려나, 얼른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집을 드나들 때마다 기분이 밝아질 것 같습니다.
땡큐, 권사님.


또 다른 권사님, 음~ 이번엔 중년의 권사님이 수요예배에 오시면서 들깨와 고추 모종을 가져오셨습니다.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라면서요.

그런 거 심어서 먹어보는데 관심은 있으나 슬픈 기억이 있어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살던 집에서 들깨 모종을 뒤뜰에 심어놓은 적이 있는데, 잔디 깎는 사람이 자취도 없이 깎아 버린 가슴아픈 사건이 생각나서…. ^^
화분에 심어보라고 하시는데, 심을만한 화분도 없고, 화분을 사자니 이사할 짐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들깨와 고추 모종을 하나씩 집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주인이 가꿔놓은 듯한 화단이 뒤뜰에 있는데, 거기는 잔디가 안 깔려 있으니까, 뭘 심어도 깎일 것 같지 않다는 판단으로 말이죠.
이 동네의 다음 잔디 깎는 날이 지나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모종을 심어 놓았거던요.

더운 여름 날, 깻잎에 밥 한술 얹고, 고추에 고추장 푹 찍어 함께 얹어 쌈 싸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요?
거기에 돼지불고기 반찬이라도 있으면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미리 땡큐, 권사님.


같은 날 수요예배 때 젊은(저와 나이가 같으니 젊다고 해야 될 것 같아서. ^^) 집사님 한 분은 집에서 거둔 배추를 한~ 소쿠리 가져오셨습니다.
겉절이를 하든지, 김치를 담그든지, 드시라면서요.
여러 교우가 나누어 가졌는데, 저한테는 어찌어찌 하여 두 뭉치를 주셨습니다.
저는 배추를 데쳐서 된장국 끓여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져온 배추는 데쳐서 한 덩어리는 얼려놓고, 한 덩어리는 된장국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집사님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텃밭에 식물들을 심어 가꾸시며 집사님에게 밭일을 때때로 시키셨답니다.
그때는 왜 귀찮게 이런 일을 시키시나 했는데, 지금은 집사님이 아버지처럼 텃밭을 돌보고 있노라고 하셨습니다.
집사님은 부지런히 채소도 잘 기르시고, 음식도 잘 하신다고 교회 어른들 칭찬이 많은 분입니다.

오늘 우연히 스페인 음식 문화를 소개한 영상을 보면서 집사님이 거기 나오는 요리사 가운데 한 사람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작은 어촌, 산 폴 델 마르라는 곳에 있는 산 파우 식당(RESTAUTANT SANT PAU)의 수석 요리사 카르멘 루스카예다.
그는 유럽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뽑히는 여성 요리사라고 합니다.
카르멘은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계절마다 유기농으로 농산물이 재배되고 길러지는 것을 지켜본 것이, 제철 식물과 식물의 색깔 등을 잘 사용하는 일류 요리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도 카르멘 같은 요리사니,
곁에서 어슬렁 대다가 맛난 음식 얻어 먹을 생각에,
땡큐, 집사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세기 1장29-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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