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 목사님이 설교했던 기념교회(사바나,조지아주) |
마지막 날, 그 날, 혹은 최후 심판이 있음을
성경을 통해 알고 믿으면서도 구체적인 성경 구절이 마음에 새겨지지가 않았다. 심판이 먼 훗날에 있을
일이고 두렵기 때문인가 자문해 보았다. 아마도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무게중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루 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여기고, 결과가
그렇지 않더라도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다는 자기변호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빠진 느낌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린도전서 3:10-15)
어느 교우와 신앙 생활에 대해 재미나게 얘기하다가 그이로부터 이 말씀을 듣게 되었다. 전반부는
익숙한데 후반부의 낯선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교우는 마지막 날에 보석으로 남고 싶다고
부끄러운듯이 말했다. 나의 신앙생활은 불로 테스트를 한 후에 남는 것이 있을까. 영적인 생명은 있으나 공적이 없어 다 불타고 없어질 나무나 풀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나무나 풀은 생명조차 없는 짚이나 매한가지로 모두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긴장되었다.
이 공적은 교회와 연결되어 있다. 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그 수고가 열매 맺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기대나 믿음으로 가득 차서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자신만 주목
받기를 바라는 것은 영원한 것에 속하지 못한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세워주며, 예배와 기도와 성경을 가까이하도록 서로 권면해야 한다.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는 공적, 사랑의 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둔 소망을 가지고 인내(데살로니가전서 1:3)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불을 통과해도 정결한 금, 은, 보석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 그 날(13절)은 바로 오늘이다. 지금 이곳에서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신실한 사람이고
싶다. 그냥 좋은 사람은 엄청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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