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2018

강화 종합시장 횡단보도 사건




여름이 시작되는 때다. 낮 기온이 93-95(34-35)는 보통이다. 그래도 요즘 이른 아침 시간에는 바람이 살랑거려, 마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봄의 손끝이 빠르게 달궈지는 여름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새벽 기도가 끝나고 잠시 걷기에 좋은 시간이 계속 허락되고 있다. 손이 옷 주머니 속을 자연스럽게 찾아 들어가는 쌀쌀한 봄 언제부터 새벽 기도가 끝나고 교회 주차장을 남편과 함께 돌고 있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며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을 되밟으며 여러 번 걷는다.

어느 날 새벽녘, 윗옷 위에 겉옷을 한 겹 겹쳐 입고도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교회 문을 나서서 몇 발을 떼지 않았는데 남편은 내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손을 잡혀줄지 거두어 들일지 빠른 판단을 위해 얼른 남편을 쳐다보았다. 내가 쳐다보는 눈길을 느끼면서도 앞만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옆얼굴에 멋쩍음이 가득했다. 예전 같으면 남편의 기분은 안중에도 없이 왜 그러시나? 하던 대로 하셔, 하면서 잡힌 손을 다시 빼내 왔을 것이다. 짧은 순간이라도 자신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남편은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런 남편의 태도와 약간 늘어진 볼살 위에 거칠게 솟아나온 수염마저도 안쓰러워 보였다.

신혼 때는 첫 목회지인 강화에서 살고 있었다. 강화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를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장을 보려면 신혼집에서 강화읍까지 버스로 30분을 가야 했다. 현재 강화터미널이 사용되기 전에 있던 옛날 강화터미널에 조금 못 미쳐 종합시장이라는 건물이 두 동인가 있다. 흔히 알고 있는 재래시장이 아니라 건물 안에 여러 종류의 가게들이 들어가 있어 종합시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종합시장의 정면에는 강화 양사면에서 시작되어 서울 세종로까지 이어진 48번 국도가 지나간다. 남편의 손이 미덥지 않다고 각인되던 그 사소한 일이 있었을 때는 왕복 2차선 도로였고 신호등 없이 횡단보도만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우리 일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그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생겼다.

읍에 장을 보러 간 것인지 약속이 있었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터미널 전 정거장인 종합시장 맞은 편에 서 있었다. 종합시장 건물 쪽으로 도로를 건너야 했다. 넓지 않은 도로이므로 자동차를 피해 이쪽저쪽 잘 살피고 건너면 되었다. 난 좀 겁이 많은 편이라 신호등이 없는 길을 혼자 건너길 꺼려했다. 동행을 의지하든지, 아무도 없을 때는 누군가 길 건너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슬쩍 묻어서 건너곤 하였다. 강화에서 믿을 사람이라고는 남편 밖에 없는데 그 남편이 옆에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더욱 안전하게 길을 건너려는 순간에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남편이 손을 비틀어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손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말이다. 누가 보면 어떡하냐, 고 남편이 말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조금 보태 삼십여 년 전만 해도 환한 대낮에 길거리에 손잡고 다니는 연인이 별로 없었다-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젠 확실치가 않다. 나같이 소심한 인간은 생각도 못할 행동이었다.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남편보다 내가 더 강함을 남편이 잘 알고 있다. 겁이 많은 것도 남편은 알고 있었고 길을 건널 때도 그렇다는 걸 말한 적도 있었다. 신혼이라 서로를 가까이서 겪어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해도, 알고 지낸 지는 꽤 여러 해가 지났었다. 연애할 때는 어떻게든 손이라도 잡아보려고 애쓰던 남편이었는데 결혼식이라는 형식적인 행사를 치룬 이후로는 고리타분한 남성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구태의연한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의식을 진보적으로 새롭게 하고 헌신할지언정 가부장제의 타파나 양성평등은 관념에 머물러 있었다. 남편은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을 남편도 이럴 때 사용한다. 어쨌든 난 강화 종합시장 횡단보도 사건 이후로 길에서 남편의 손을 잡는 일은 혹은 잡혀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나에게도 옹졸하고 완고하기가 보통을 넘는 구석이 있다.

부부로 살면서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풀지 못한 매듭들을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하다. 굳이 그 매듭들을 드러내고 싶지 않거나, 막상 드러내도 해결할 자신이 없거나 확신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늘 성찰하는 삶을 산다고 해도 모든 관계의 매듭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해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성경에 비추어 살펴보기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땐가 풀리는 매듭도 있으리라. 그날 새벽 시간이 바로 그 때였나 보다. 내 손을 잡은 남편은 최근 몇 년 전 나로부터 횡단보도 사건을 듣고 그럴 리 없다며 부인했었으나 그 매듭을 벌써 풀어 놓고 있었다. 온전히 풀리지 않은 매듭의 한 쪽은 내 몫이었다. 나도 어색함을 극복해야 했다. 남편 손 안에 내 손을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럴 땐 추운 게 낫군.”

남편은 친절하게도 자신과 나의 멋쩍음을 대신할 말을 찾아주었다.

이번 주 초반, 잠 자리에 들려는데 아랫배가 따끔거렸다. 한두 번 그러는 걸 느끼다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 날 새벽이 되어 교회에 가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기도 드리기가 끝나고 힘이 좀 없었지만 그래도 걷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아주 더워지면 이른 아침 시간도 걷기에 불편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걸을 만할 때 걷자는 마음이었다. 뭘 잘못 먹어 배탈이 났나 남편과 함께 되짚어보았다. 점심에 교회 야외예배 때 쓰고 남아 냉동해 두었던 삼겹살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 때는 친구가 준 바질을 텃밭에 심었는데 새로운 잎들이 돋는 것이 싱싱해 보여 이파리 여러 장을 땄다. 바질이 토마토와 잘 어울린다기에 토마토와 치즈 위에 얹어, 오랜만에 구운 스콘과 함께 저녁거리로 삼았다. 보통 때와는 다른 특별한 끼니를 먹기는 했으나 상할 음식들이 아닌 것 같아 의아했다. 화장실을 휴게실로 쓸 만큼 화장실과 친한 남편도 같은 음식을 먹었으나 멀쩡했다.

뭘 잘못 먹었다면 장이 예민한 당신이 먼저 탈났겠지!”

남편에게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음식 때문에 배탈이 난 게 아닌 확실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니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남편의 약한 곳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클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떠올리고 감격해 하다니 유치하다.

세상에서 당신 장이 예민한 거 아는 사람 몇 명이나 돼?”
많지 뭐!”

당신 밖에 없다는 낭만적인 말을 조금 기대했으나 역시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남편다운 대답이었다.

부모 곁을 떠나 긴장된 타국에서의 생활이 십여 년 지나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다. 늘 가까이에 두고 보호해야 할 자녀가 남아 있으나 또 다른 자녀는 자신의 길을 찾아 점점 더 멀리 떠나가고 있다. 서로 의지하고 보살펴야 할 가족과 함께 부드럽게 손을 마주 잡고 천천히 걸어 나가야지. 황금색 빛으로 헤치고 나오는 햇살이 어스름한 새벽 속에서 제일 또렷하게 보여주는 형체는 다름 아닌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손을 잡고 있는 남편이다. 강화 종합시장 횡단보도 사건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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