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2018

한번뿐인 것처럼





어떤 개인 주택의 수도는 건물에서 떨어져 마당이나 뒤뜰에 설치되어 있다면 지금 우리 집 같은 경우는 집 바깥벽에 두 개의 수도꼭지가 달려 있다. 양쪽 벽에 하나씩, 한 벽의 앞쪽에 그리고 다른 벽에는 뒤쪽에 설치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그 각각의 수도꼭지에다가 호스를 연결해서 사용한다. 뒤뜰에서 물을 쓸 일이 있을 때는 벽 뒤쪽에 있는 수도를 쓰는 것이 당연히 편리하다. 그 수도와 연결된 호스 끝에는 분무기가 달려 있어서 물을 흐르게 하거나 그치게 할 수 있고, 물의 세기도 조절할 수 있다. 손바닥만한 꽃밭과 텃밭, 화분에 심겨진 식물들에게 아침마다 물을 준다. 분무기로 뒤뜰에 있는 식물들에게 물주는 일이 손쉽고 재미있다.

이 분무기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시원하고 활기찬 기분이 든다. 분무기의 방향을 잘 잡으면 아침 햇빛이 물방울에 닿아 무지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일곱 가지 색깔이 흐릿하게 뭉개져 있는 무지개, 반원에서 다시 절반만 보여주는 무지개, 깜박거리는 신호등처럼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무지개…… 모두 수줍음이 많은 무지개들이다. 어떤 날에는 데이릴리 꽃 더미에, 어떤 날에는 내 발등에 무지개가 걸리기도 한다. 무지개가 시작되는 곳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동화 같은 얘기를 확 믿어버리고 싶은 순간이다.

아침부터 80(26.6)로 시작되는 요즘 같은 때는 수도요금이 얼마가 나와도 걱정되지 않는다면 혹은 물을 아껴 써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을 무시할 수 있다면, 허공을 향해 질릴 때까지 물을 뿌려본다든가 옷을 흠뻑 적셔가며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은 고맙게도 수도꼭지만 돌리면 와주는 물과 한 손 안에 들어오는 이 플라스틱 분무기만 있으면 신나는 물놀이가 가능하다. 음양오행에서는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물질로 금, , 나무, , 흙을 말한다. 그 가운데 나는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단다. 오래 전에 코칭과 관련된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알게 된 것인데 어떻게 따져보았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샤워할 때도 넋 놓고 마냥 물 세례를 받으며 그대로 있고 싶은 충동을 종종 느낀다. 하여튼 식물들한테 물 주는 잠깐 동안은 즐겁게 책임을 다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요즘 텃밭에 물 주기가 그리 흥이 나지 않는다.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열매를 얻어 보겠다고 심은 고추와 호박에게 날마다 물은 주는데 열매가 별로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집 밖의 일을 한다고 텃밭 가꾸기에 관심을 끊고 살았다. 그러다가 올해 어설프게나마 다시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하다. 씨 뿌릴 때 까먹었던 거름도 때때로 주고, 쓰고 싶지 않았지만 화학비료도 쬐끔 줘 봤는데도 신통치가 않다. 기온이 너무 높은 날에는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며 보살펴주건만 그럴 때만 반짝 살아나는 것 같다. 맛과 모양이 낯선 미국 고추 몇 개를 얻었을 뿐이다. 텃밭을 가꾸는 교인들 가운데는 호박이나 오이, 부추를 벌써 거두어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 올해 텃밭 열매가 실하다는 얘기를 전해주기도 하는데 내 식물들은 얌전하다.

그 중에서도 더 서운한 것은 호박이다. 호박이 심겨진 곳은 수도 호스가 닿지 낳는 곳이라 물통으로 물을 날라야 하지만 물 주기를 거른 적은 없다. 호박 줄기가 귀찮지 않을 정도로 잡초도 뽑아준다. 넓적한 이파리들이 달린 줄기는 쭉쭉 뻗고 꽃은 연신 피면서도 열매는 없다. 벌이 없으면 사람이 손수 꽃가루를 묻혀 수정해 주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어머님의 조언을 생각하며 관찰해보니 다행히 벌도 엄청 많다. 호박 열매가 새끼 손톱만하게 컸다가는 똑 떨어지고 만다. 많은 열매를 기대하며 씨를 뿌린 것은 아니더라도 너무한다 싶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나 아직까지 호박은 열매를 하나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위로를 주는 식물도 있다. 향기로운 로즈메리나 멀리 사는 친구가 준 바질은 쑥쑥 자라고 있다. 메리골드는 눈부신 노란색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듯 찬란하게 피어 있다. 돌보지 않아도 힘차게 자라난 돌나물과 분꽃은 고맙다. 어쨌든 이미 심겨진 것들은 열매가 있든 없든 자연스럽게 스러지기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앞으로 텃밭 가꾸기에서 재미를 보려면 몇 가지 바꿔보고 싶다. 호스가 닿을 만한 곳이면 좋겠다. 그러면 수도에서 멀리 있는 텃밭은 내버려두어야 한다. 차라리 집 가까이에 있는 꽃밭을 조금 더 넓혀서 사용하면 충분하다. 서너 가지 식물들을 심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면 된다. 모래가 많은 땅이니 흙을 더 넉넉하게 사다가 뿌리가 내릴 만큼의 두께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토양을 바꿀 수는 없으니 좋은 흙을 더 얹기라도 해봐야겠다. 그렇게 하려면 쌓인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텃밭 둘레를 나무 판자나 벽돌로 지금보다 높이 막아주어야 한다. 씨를 뿌리기 전에는 퇴비를 미리 섞어주어 흙 상태를 좋게 만들고, 좋은 퇴비 만드는 방법을 지금부터 알아봐야겠다.

지금 집에서 칠 년째 살고 있다. 처음 이사 올 때부터 텃밭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이제껏 흡족하게 만들지 못했다. 찔끔찔끔 소꿉놀이 하듯이 꽃이나 몇 개 심어 구경하고, 텃밭에서는 제대로 된 결실을 얻지 못했다. 현재 상태로라면 식물을 다시 심어도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뿌리가 내릴 만큼 양이 많고, 영양이 풍부한 흙부터 다시 준비해야겠다. 마치 내 생애에 한번뿐인 것처럼 일을 저지르지 않으면, 물 분무기로 물 장난도 한 번 신나게 못 해보고 풍성한 남의 텃밭만 부러워하다 말 것 같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텃밭을 다시 정비해야겠다. 그럼 올 여름엔 확장할 꽃밭 정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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