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우리 교회 |
벌써 금요일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서 성경구절을 암송해야 하는데 아직도 외우지 못했다.
수요일 저녁 예배 때, 몇몇 교우들이 성경을
얼마나 외웠는지 서로 확인하며 이번에 외워야 할 구절은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
권사님이 외운 것을 큰 목소리로 암송해 보이셨다. 아직 완전히 외워지지가 않으셨는지 중간 중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옆에 계시던 다른 교우들이 틀린 부분을 고쳐주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대신 외워주기도 하셨다. 모두가 비슷하게 암송을
어려워하는 모습에 깔깔깔 호호호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눈치를 가만히 보니 모두들 거의 다 외우신 듯
하였다. 부끄럽게도 나만 그때까지 성경을 들쳐보지도 않은 것이다.
2월에 시작된 이번 성경공부에 참여한 교우들은
한 주 한 주 시간이 흐를수록 신선한 감동을 나눠주고 계신다. 성경과 성경공부 교재를 넣는 예쁜 책가방을
서너 분이 마련하셨다. 그 다음에는 연필 서너 자루를 담은 필통을 몇 분이 보여주셨다. 성경암송이 시작되자 인덱스카드에 성경구절을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외우시는 분,
종이에 적어서 냉장고에 붙여놓고 오고 가며 외우시는 분, 성경구절을 복사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며 직장에서도 외우시는 분, 종이에 여러 번 쓰며 외우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성경공부를 여러 번 경험해 보신 분들도 있고,
처음이신 분들도 있다.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그저 좋은 분들도 있고, 하나님 ·
예수님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부분이 있어 좋다고 고백하시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성경공부에 열심을
내시는 분들은 어느 집사님과 나를 빼고는 모두 6,70대의 집사님, 권사님들이시다. 그리고 암송 숙제를 잊어버리거나 제일 늦게 외우는 뺀질이는 나 뿐이다.
우리 교회는 창립 17주년을 얼마 전에
보냈다. 교회가 창립된 지 17년 동안 열 명에 가까운 목회자가
바뀌었다. 그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목회자가 바뀌었다는 것은 교회 안에 불편하고 불안정한 일들이 많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자랑스럽지 않은 이야기들은 너무 가벼워 천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둥둥 퍼져간다. 이곳 작은 한인 공동체 안에서 우리 교회의 변화무쌍한 사정은 한인들 사이에서 늘 심심풀이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목회자들 모임에 나가보면 애틀랜타나 다른 지역에 있는 목회자들도 우리 교회 소문을 들어 알고 있는 것을 티
내기도 했다.
나의 남편인 목사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 후 지난 3 년
동안 교우들과 지역 한인들은 우리 가족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부임한 첫 해에 교우들 집집을 돌며 심방을
했었다. 심방하던 중 미국 남자 집사님은 대놓고 이렇게 물어보셨다.
“당신은 이 교회에 얼마 동안 있을 거요?”
“글쎄요.
3년, 5년……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난 얼렁뚱땅 그렇게 대답했다.
그 집사님은 의구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셨었다.
우리 교회는 ‘김씨네 교회’라는 소문도 달고 다닌다. 교우들 가운데 어느 한 가족의 구성원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나아갈 바를 정할 때에 다수인 한 가족의 의견이 힘을 가질
수 있는 구조인 것은 틀림없다. 지난 날 그들의 힘이 교회를 좌지우지 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우리 교회는 현재 어느 교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남편이 아틀란타 한인연합감리교회에 부목사로 있었던 인연으로, 아틀란타한인교회의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교회는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분리되어 창립이 되었으나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그 교단에 들어가지 못했다. 기독교대한감리교회에도 잠시 가입을 했었으나 다시 탈퇴를
하였다고 한다.
지난 날 안타까운 역사의 연장선 속에 있는 우리 교회는 부흥되는 데 걸림돌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 되신 예수님이 계시고, 교회가
교회답게 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따르는 교우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과거가 교회 부흥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과거의 아픔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과 같이 단련하는 불쏘시개로나 사용하면 된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 우리 교회는 조금씩 밝아지고 꿈틀거리고 있다.
새로운 가정들이 우리 교우가 되었다. 올해부터는 성경공부도 여러 모양으로 하고 있고, 비전세우기 세미나도 하고, 친교실과 교실을 늘리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들도 찾아보고 있다.
여전히 교우와 목회자가 서로 조심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쁘지 않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 생활 하면서 교우도 행복하고 목회자와
그의 가정도 행복해서, 그 행복의 물결이 지역 한인들에게도 가 닿기를 기도한다. 이제는 사랑으로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온 교우가 함께 기도하고 있다.
그나저나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외우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어서
찾아보아야겠다. 성경공부 모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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