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아래인 어린 아이들을 보면 참 귀엽다. 나의 아들들은 미국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곧 졸업할 나이다. 아들들을 그 나이만큼 키워봐서 그런지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아들만 키워봤으니 딸이나, 저마다
다른 성격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적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을 보면 그냥 귀엽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이 성가대를 다시 시작했다. 그 동안 아이를 키우는데 더 집중하다가
기회가 되어 성가대에 합류하셨다. 집사님과 아이는 주일 예배 때 적어도 성가대 찬양 시간이 지나기까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예배 시작하기 전이나 끝난 다음에 하는 성가 연습 시간에도 아이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어느새 아이가 꽤 자라서 엄마와 분리되어 잘 지내는 듯하다.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의 시간을 가질 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시간이 주어지는 때가 되었나 보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예배를 드렸을 아이는 “아멘”이라고
말하는 타이밍을 아주 잘 안다. 찬송 부를 때 마지막 절을 어떻게 아는지, 마무리 되는 부분에서 맑고 힘찬 목소리로 “아~멘~”을 음 높이에 맞추어 부른다.
또 기도가 끝나는 시점에서도 역시 티 없이 맑은 아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아이의
깨끗한 “아멘”은 자주 들을 수는 없다. 아이는 예배실 밖에서 엄마와 다른 아기 엄마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가끔 그 아이의 아멘 소리를 들을 때면, 처음 듣는 곡조의 특별 찬양을 한 곡 들은 것처럼
신선하다.
이번 주일에는 점심 먹고 성가 연습을 하는데 엄마 곁에서 슬그머니 잠드는 그 아이를 보았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성가 연습만 하려는 엄마에게 잠투정을 할만도 한데 말이다. 이불도 없이 딱딱한 긴 의자
위에서 어느새 잠든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또 다른 젊은 집사님은 주일 예배 때 몇 주 동안 신시사이저를 연주하게 되었다. 집사님에게는
어린 자녀가 둘이 있다. 아직은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제일 편안해 하는 나이라,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엄마와 떨어져 있을 수 있으려나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예배는 시작되어 집사님은 예배실에서 연주를 하고, 아이는 친할머니께서 돌봐주시기로 했다. 예배 시간이 꽤 흘러 집사님이 반주하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를 찾아왔다. 집사님은
아이와 더불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도록 나에게 기도를 부탁했었다. 그 집사님과 가까운 거리에 앉아
있던 나는 그 모자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부끄러움을 잘 타는 집사님은 얼굴이 벌써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오셔서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셨지만 아이는 싫다고 했다. 아이는 그저 엄마 옆에 있고 싶은 것 같았다. 집사님은 할머니께 그냥 두시라고 눈짓을 보냈다. 아이는 엄마의 몸에
기대었다. 그 뿐이었다. 자기를 떨어뜨려 놓은 엄마를 원망하며
칭얼거릴 만도 한데 말이다. 그리고 집사님은 예배 끝부분에 있는 결단의 찬송가를 연주하셨다. 허리를 구푸려 엄마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엄마가 연주하는 찬송 소리를 듣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만약 아이들이 엄마가 성가대 연습하는 동안 엄마를 찾아대거나, 성가대 자리에 있는 엄마를
찾아 강단 위에 올라오거나, 엄마가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게 울거나 한다면……. 그런 아이들이 예배를 소란스럽게 할까 봐 애가 타는 사람은 누구보다 부모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부모만큼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아이들이
더욱 자라서 스스로 예배를 드릴 때까지 부모가 즐거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도 그냥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나는 여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낼 것이다. 또, 예배 드리기를 사모하는 부모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빌 것이다. 예배에
집중하는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나의 아이들도 많이 컸고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아기들이 예쁘게 보이는 것이지, 나의
아들들이 어렸을 때는 이렇게까지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둘째 아이가 여섯 살쯤이었나……
첫돌을 맞은 아이를 축하하기 위해 교우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 교우 집에는
친척들도 초대하여서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이십 여명이 되었던 것 같다. 생일 축하 예배를 드리려고 넓은(거의 45평(?) 아파트) 거실에 둥글게 앉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가 갑자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가운데 텅 빈 공간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웬
장난?, 이라고 생각하면서 누워있는 아이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었다. 그랬더니
다시 꿈틀꿈틀 등으로 밀어 가운데 빈 공간으로 가는 것이다.
‘아니, 이 녀석 왜 그래!’
다시 아이의 발목을 잡아 당긴다. 그리고는 가운데로 가지 못하게 꼬옥 끌어 안는다. 그러면 몸부림을 치며 내 팔을 벗어나 또 가운데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예배는
시작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장난인지 심술인지,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아이의 손목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려고 나름 애썼다. 집에
도착하여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대답이 없다. 더 어이가
없었다. 말에 화를 실어 야단을 한참 쳤다. 이유도 모르면서
뭐라고 야단을 쳤는지 모르겠다. 예배 드리는데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뭐 그랬을 것이다.
그 상황이 벌어진 당시의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는 도시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었다. 그
교회에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또래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른들 예배 시간에 아이들끼리 잘 어울려
놀았다. 그러다가 새로 부임한 작은 교회는 또래 아이들도 별로 없고,
놀 공간도 작았고, 아이들을 따로 돌볼 여력이 없었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는 것은 남편인 목사가 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신경 써야 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방해 받지 않기 위하여 예배 시간에 조용히 하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무조건 조용히만 하라는 내게 유치원에서 배운 욕을 종이에 써서 주기도 했다(지금도
그 종이를 보관하고 있다. 재미있어서). 또 한 동안은 예배가
시작되려고만 하면 괜한 짜증을 내어서 힘든 때도 있었다. 추측해보건대 아마 돌집에서 벌어진 일도 이런
일련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힘겨운 시절이 어느새 흘러가고 아빠의 설교에 대해 코멘트도 하고,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지 함께 얘기할 만큼 아이들이 자라났다. 큰 아이는 교회 어르신들의 배려로 주일 예배가 끝나면 노트북,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정리하고, 모아진 헌금도 사무실로 나르고, 목사님의 성경과 설교 원고도 정리하여 목사님 방에 갖다 놓는다. 작은
아이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예배 찬송과 성가대 찬양을 돕는다. 작고 어설픈 일이지만 아이들은 기쁘게
감당하고 있다.
우리 교회 어린 아이들도, 내 아들들도 계속 자라면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 드리며,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길 바란다.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던 부모님의 신앙을 떠올리며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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