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하면서도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옅은 파란색이었고, 햇볕은 서해의 탁한 바닷물 위로 맑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설레는 하루가 시작되기에 괜찮은 날씨였다.
바다 쪽을 바라보고 길게 자리잡은 횟집과 카페들도 장사를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손님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날은 요즘처럼 화려한
월미도가 되기 훨씬 전이었다. 1980년대 초반이었나……
H와 만났다.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어색했다. 서로 별 말 없이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만 힐끔거리며 걷고 있었다. 카페들이 많은 거리의 중간쯤에 이르러 H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말인가 몇 마디 주고 받은 것 같다.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 나왔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앞의 카페에서 음악을 거리 쪽으로 틀어놓은 모양이었다.
“sing a song sweet music
man~”
“어,
이 곡은……”
H는 그냥 웃었다.
H는 팝송을 많이 알고 있었다. H는 팝송 중에서 10 여 곡을 선정하여 녹음 테이프에 담아 나에게
선물을 했었다. 지금 들어도 멋지고 낭만적인 옛 팝송들이다. 그
중 첫 번째 곡이 Kenny Rogers의 “Sweet Music
Man”이었다. 그런데 그 노래가 우리가 우연히 멈춰선 그 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참으로 오묘하고 풋풋해서
잊을 수 없는 기억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H와는 가끔 만났어도 오랫동안 편안한 친구로 지냈다.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이 여럿 있다. H는 인천 출신
밴드 “들국화”의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밴드 형님들과 알고
지냈다. 자신의 꿈은 배를 직접 만들어 세계여행 하는 것이라고 하더니 대학도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다. 어느 날 송도 어디로 초대를 해서 가보았더니 요트 클럽을 오픈 하는 자리였다.
그 클럽은 각자 소유의 요트가 있는 사람이 회원이었을 것이다. 배를 만들면 나도 태워달라고
했는데,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던 H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문득 궁금하다.
월미도 카페에도 아는 형님이 있다고 했던가? 그럼
월미도에서의 “Sweet Music Man”은
요즘 말로 H의이벤트였나,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 교회와 사귄 지 꽉 찬 삼 년이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기 보다는 마음의 자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내어주고 있다. 우린 둘 다 참으로 소심한가 보다. 사람 관계에서 겪었던 상처가 많아서 그런가...... 그래도 정성껏,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만남 속에 오래도록 기분 좋게 기억될 이야기들이 많기를 바란다. 두고 두고 얘기해도 빛바래지 않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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