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문득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합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는데 머리가 너무 덥수룩하여 더 더워 보인다며 머리를 깎아달라고 합니다.
푸하하~
남편이 뭘 믿고 저한테 머리 깎는 것을 맡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직접 깎아주기는 했어도 남편은 깎아 준 적이 없습니다.
큰 아이가 어릴 때 미용실에 가면 낯선 환경이기도 하고, 머리 깎는 기계 소리가 싫었는지 많이 울었습니다.
집에서는 울어도 남의 눈치 안 보고 맘껏 달래며 깎을 수 있어서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또 그때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 지속 가능한 자연 친화적인 삶,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하던 때라, 의식주 생활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 여러 도전을 했었습니다.
머리 깎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고, 재봉틀을 사용해서 생활 한복이나 생활 소품들을 만들어 썼고, 가벼운 병은 음식, 민족생활건강, 수지침으로 달래고, 아이들 교육도 함께 하고요.
저는 이런 정도에 머물렀지만 어떤 친구들은 더 나아가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도농(도시와 농촌) 직거래를 통한 유통, 산야초를 효소로 만들어 그 효능을 인정받기도 하고, 직접 집도 지어 마을 공동체로 나아가기도 하고, 좋은 책을 골라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열기도 했습니다.
아이고~ 말이 옆길로 샜습니다.
아직까지 나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자꾸 많지도 않은 제 나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진짜 나이 든 것이라는데 말입니다.
뭘 기록하는 것을 잘 하고 단기 기억력은 좋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까먹는 횟수가 늘어나고, 건강은 타고났나 보다 했는데 예전 같지 않은 미세한 신체의 변화들이 느껴지고, 지금처럼 주제에서 벗어나 옛날 얘기나 하고 있고요.
*^^* 이것이 지금의 나인가 보다, 하며 그저 한 번 웃고 지나갑니다.
크게 접힌 신문지 한 장의 가운데를 오려내서 아이들 머리에 쑥 끼워 목에 얹혀놓고, 솜씨는 없어도 꽤나 신중한 표정을 지어가며 머리를 깎던 재미있는 사진이 사진첩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아이들 머리를 깎였어도 남편에게 머리 깎아주겠다는 말도 안 해보았고, 남편 역시 자기 머리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저의 머리 깎는 솜씨는 누가 보아도 영 미덥지가 않았던 것이죠. ^^
그로부터 15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 남편이 먼저 나서서 자기 머리를 깎아 달라는 것입니다.
콜럼비아로 이사 오고 나서의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럽게도 간단한 머리 손질은 집에서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옛날 해 봤던 기억을 되살려 집에서 아이들 머리를 깎아줘 볼까 싶어 교회 어느 집사님에게 머리 깎는 기계를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할만하면 하나 장만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집사님은 빌려 달라고 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니, 어느 날 머리 깎는 기계를 보여주시며 이건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고 저건 저럴 때 사용하는 것인데 사용설명서를 보면 쉽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며 가져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만 보니 기계가 새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거 새것 아니에요, 하고 여쭈어보니 그냥 두고 쓰세요, 하셨습니다.
집사님 것을 빌려서 연습 한 번 해보고 어찌 할까 결정하려고 했는데 새 기계를 사주시는 바람에 오랫동안 두고 사용해야 하는 기분 좋은 부담이 생긴 것입니다.
기계도 생기고 해서 오래 전에 쓰던 가위들도 꺼내어 이번 달 초에 남편과 첫째 아이 머리를 조심 조심 깎아보았습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 깎는 것은 이제부터 저보고 하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머리를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도 멋지지 않은, 깎은 티도 안 나는 첫 번째 이발이었습니다.
이번 두 번째는….
남편이 저를 믿어주며 마구 용기를 주길래 머리카락을 팍팍 잘라내었습니다.
이상하게 잘라지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깔끔하니 머리 깎은 티가 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머리 깎기 시작할 때 마음속으로 기도도 했습니다.
예쁘게 자르도록 도와 달라구요.
두루두루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 집사님께, 남편에게.
머리 두 번 깎은 것을 핑계로 예전처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다른 힘(특히 돈)을 쉽게 빌리지 않고 얼마나 지속하고 있는가 돌아보니 많이 게을러진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 환경과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요?
생각만 하다 세월 다 보내면 안 되는데….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장26절-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