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2008

"왜 에덴의 동쪽이야?"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드라마를 보고 나서 강윤이가 무심코 한 말입니다.
강윤이에게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강윤이가 드라마에 열중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그 드라마의 내용을 이해할 만큼 컸나 싶기도 합니다.
“야아~ 그 정도야?”
사실은 저도 다음 내용이 엄청 궁금하면서도 짐짓 아닌 척 한마디 해봅니다.

이곳에서도 한국 방송을 다(?)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위성방송으로 시청이 가능하고 위성방송을 설치해 주는 곳에 신청을 하면 되나 봅니다.
저도 유선 방송으로 미국 방송만 볼 것인지 위성을 연결해 한국 방송도 볼 것인지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유선 방송을 선택했습니다-이것이 맞는 말인지....
어쨌든 한국 방송을 연결하면 아무래도 텔레비전 보는 시간도 많아질 것 같고 또 영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 것 같아서입니다.
그리고 정말 보고 싶은 한국 방송이 있으면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요즘 한국 방송을 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웃기 위해서입니다.
“무한도전”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거의 빼놓지 않고 봅니다.
보면서 눈물이 날 지경으로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손뼉도 치면서 즐거워합니다.
그 방송의 기획이나 캐릭터들이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작가들의 설정에 의해 꾸며진 내용이라 해도 웃기로 작정하고 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을 보며 웃었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영어가 주는 긴장감을 풀고 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영어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영어 한마디라도 건져볼까 싶어 미국 드라마나 만화 영화를 포함한 영화를 나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보다보면 어느 때는 짜증이 확 몰려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드라마 분위기로 내용을 때려 맞추며 극 전개의 실마리가 될 만한 말을 들어보려고 집중하다보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를 보면 그런 노력 필요 없이 극중 인물들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끼며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니 행복해지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배경으로 나오는 곳곳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엄청난(^.^) 이유를 달고 일주일에 한두 번 보는 한국 방송인데 어느 날 남편이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마 남편이 보기에 드라마 내용이 시답지 않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가만히 있을 저와 강윤이가 아닙니다.
남편 자신이 재미있는 방송은 어떻게 해서든 보면서 우리한테 그럴 수는 없지요.
다다다다~
남편이 우리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주전 알게 된 드라마를 남편이 열심을 내어보는 것입니다.
물론 저나 아이들도 함께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같이 보는 날이면 강윤이는 학교 갔다 와서 숙제를 다 해놓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날도 그렇게 일찍 할 일 끝내놓고 놀면 좋으련만....
그리고는 강윤이는 아빠가 집에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의리없게 혼자 보기 없기”를 제가 선언했거든요.

어제 밤 “에덴의 동쪽”을 열심히 보는데 강윤이는 모르는 단어를 자꾸 물어봅니다.
“엄마 진골, 성골이 뭐야? 열외가 뭐야?”
“몰라, 몰라.”
드라마가 뭐라고 아이가 물어보는데 대답도 해주지 않고 그냥 봅니다.
그랬는데도 한편이 다 끝나고 나니까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며 재미있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묻습니다.
“왜 에덴의 동쪽이야? 동쪽에 뭐가 있어?”
“쫓겨난 사람들이 동쪽에 살았나보지” 남편의 말입니다.
“아냐, 그쪽에 선악과가 있었나? 생명나무는 동산 가운데 있고” 제 말입니다.
푸하하하.
성경을 찾아보고 “아빠 말이 맞네” 합니다.
“그러면 남쪽 북쪽 서쪽에는 사람들이 안살았어?”
“어 그게 아니고 우리 사람들이 사는 곳을 상징적으로 에덴의 동쪽이라고 한 것 같애. 우리는 다 죄인이잖아.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잖아.”
강윤이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아 덧붙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동철이도 회장도 다 죄를 짓잖아. 엄마도 너도. (남편을 가리키며) 목사님도 말이야.”
그러자 “그래도 목사님은 아니잖아” 합니다.
웃기기도 하고 설명이 길어질듯도 하여 적당히 얼버무려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드라마 한편으로 이렇게 심오한(?)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다음 주 살아갈 것을 기대하기도 하니 이것이 뭔 사치스러운 행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8-9)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3-24)

9/17/2008

살면서...

<이곳 생활방식에 따라 세탁기와 건조기가 늘 함께 있습니다.>

쿵덕 쿵덕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아래층에서 들으면 마치 방앗간 떡 찧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 같습니다.
세탁기에서 나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이 더운 날 오후가 되면 세탁기가 있는 위층이 더욱 더워지고 올라가기 싫어집니다.
그러기 전에 모아진 빨래를 해치우려고 세탁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엊그제 추석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늘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의 명절을 보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부설 기관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유치원, 방과 후 학교, 노인 대학, 한국학교...
에~, 또...
토요일에는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와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학교에서 추석 행사를 했습니다.
제기 차기, 송편 만들기, 민요 배우기와 민속 춤, 사물놀이 공연도 있었습니다.
주일 점심 식사 때는 송편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한국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이한 것이 있었다면 주일 저녁 집에 들어온 남편이 먼저 인터넷 전화를 연결한 것입니다.
“추석인데 한국에 전화했어?”
아직 안했을 거라는 확신과 더불어 주일이 주는 긴장감이 해소되는 주일 저녁에 느껴지는 피곤과 짜증이 말 속에 묻어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하는 시간은 주로 월요일 아침이나 저녁이고 그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저인데 이럴 땐 그 공(功)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명절을 함께 보내던 자녀들 없이 쓸쓸한 명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부모님에 대한 염려가 있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월요일마다 전화를 드렸다 하더라도 명절이니 그 당일에 전화하는 것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면서 계속 느끼는 것인데, 일이 생기면 그 일을 빨리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남편과 일이 주어지면 꾸준히 해나가는 저와 천생연분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같이 살면서 남편은 저에게서 성실함을 배우고, 저는 남편에게서 뛰어난 능률(能率)을 배울 수 있으니 참으로 환상적인 부부입니다.ㅋㅋㅋ

명절을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싶습니다.
때가 되면 으레 치루고 지나가는 명절은 별로입니다.
부모님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만나서 음식 만들어 먹으며 사는 얘기 나누고 친척과 이웃들에게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담아 선물도 하는, 마음이 담긴 명절이라야 제 맛이 납니다.
가족과 친척과 이웃이 서로 배우고 감싸주면서 “우리” 가족, “우리” 친척, “우리”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명절이 주는 의미도 가볍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가족은 명절 지내는 재미를 느끼려는 순간 한국을 떠나온 것 같습니다.
동생들네나 우리네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저들끼리 잘 어울려 놀고, 가족이 모여 할 수 있는 재미난 일도 만들어 해볼 수 있는 참에 헤어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더 큰 것을 도모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여기며 나라와 나라를 넘나들면서 가족 간의 정이 더욱 두터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곳에서 처음 명절을 보내면서, 조금은 쓸쓸했을 부모님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시댁에서 음식 만드느라 혼자 애썼을 동생과 보나마나 형의 빈자리가 표나지 않게 하려고 많이 웃고 떠들었을 서방님과 예희, 예람이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그리고 아빠 칠순 잔치 준비하는데 누나 대신 책임져야할 부담을 떠맡은 막내 동생과 동생댁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영어를 아주 잘한다는 일곱 살 된 준서와 준민이도 보고 싶고.

"너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오르고 있는 동안 사람은 정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낀다. -모파상이 한 말이래요.

9/10/2008

value free


일주일째 한쪽 귀가 은근히 불편합니다.
다른 곳이 아프면 그런가 보다 할텐데 귀가 아프니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그 귀는 팔년 전쯤 크게 치료한 경험이 있어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 증상도 없었는데 요즘 자신의 존재를 이렇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귀가 아픈 쪽 잇몸과 눈도 덩달아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보다가 증상이 확실히 드러나면 일을 처리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약을 먹든 병원을 가든 빨리 상황을 개선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주말에 아프면 병원에도 갈 수 없다며 남편이 서두르는 바람에 지난주에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
다른 데는 아무 이상이 없고 입 안에 피곤하거나 하면 생기는 궤양 때문에 다른 곳에 통증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진찰 결과가 나왔습니다.
입 안 상처를 치료하는 처방전도 받아왔습니다.

입 안에 생기는 상처쯤이야 수없이 겪어본 것이라 약이 굳이 필요할까 싶어 약을 사지 않고 주일을 넘겼습니다.
말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상처가 따끔거리는 것은 물론이고 귀도 편안치가 않습니다.
결국은 어제 남편이 출근하면서 처방전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귀만 아프지 않았으면 버틸 수 있었는데....’

어제 점심때가 조금 지나 남편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약값이 원래 이렇게 비싼거야?”
“얼만데?”
“44불이 넘어.”
“어 이상하다. 선생님이 4불쯤 할거라고 그랬는데. 벌써 계산했지?”
약국에 가서 다시 물어볼 처지도 아니고 처방전에 따라 준 약은 환불이 안될거라는 주변의 충고도 있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그 좋은 약을 쓰게 되었습니다.
잠자기 전 이를 닦고 튜브에 담긴 그 약을 짜내어 잇몸과 혀의 상처에 바르는 순간 마취가 되면서 통증이 바로 사라졌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여전히 약을 또 발라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참 신기합니다.

이곳 병원비와 약값이 엄청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비단 그것 뿐만 아니라 한국 물건을 파는 마트에 가도 한국 가격보다 한배 반이나 두배 가량 비싼 것을 보게 됩니다.
책값도 만만치 않아서 책 사는 즐거움도 접어두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쑥날쑥 할 때는 한국을 떠나올 때 선배 목사님이 말씀해 주신 “value free”가 기억납니다.
아마도 한국과 미국 살림살이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테니까요.

남편과 함께 코칭 세미나에 한번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사람의 의식과 능력이 발전하는 단계에 대해 들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무의식 무능력 상태로 있다가(무의식/무능력),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식이 생기나 아직은 무능력 상태로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타보겠다는 의식은 있는데 자전거를 운전할 줄 모르는 때입니다(의식/무능력).
의식한대로 연습을 열심히 해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의식/능력).
그러다 몸에 익숙해지면 자전거를 잘 타보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무의식/능력).

이곳 살림살이는 의식/무능력 상태이면서 동시에 의식/능력 단계로 올라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바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자동으로 한국과 가격 비교가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이런 상황을 미리 아시고 한 말씀이겠거니 하면서 마음을 넉넉히 가져보아도 말입니다.
이제 반년쯤 지내고 보니 한 걸음 한 걸음 뒤뚱뒤뚱 이곳 형편에 맞게 살림이 꾸려지는 듯도 합니다.

한편 살림이야 제게 주어진 고유한 영역 안에 있는 것이라 그렇다 쳐도 다른 일에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릴 때가 많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능력을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국인으로서 이곳에서 사는 것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의 존재 가치는 변함이 없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님, 이럴 때 해주실 무슨 말씀 없으세요?”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찌라도 /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9-14)

9/03/2008

예술이 되는 요리


언젠가 남편이 영화를 보자고 합니다.
세미나 갔다 오다가 어느 목사님이 괜찮은 영화라고 소개하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 OK입니다.
쉬는 날이나 시간의 짬이 생겨도 특별한 놀거리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는 영화 보는 것이 꽤 큰 기쁨입니다.

영화관은 Buford Hwy와 Sugarloaf Pkwy가 만나는 곳에 있는 우리 집입니다.
영화 제목은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
영화가 다 끝났을 때 조용한 바닷가에 서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한가한 시간에 영화를 천천히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느낌들이 남길래 제 블로그에 사용해볼 요량으로 마음에 남는 대사나 요리 이름들을 레터 용지 앞뒤로 빡빡하게 적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이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하는지 궁금해서 검색창에 영화 제목을 쳤습니다.
그러자 영화, 책, 블로그 따위를 통해 이미 많은 소개와 영화평이 나와 있었습니다.
에이~

밀알에서 만난 어느 엄마가 점심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었습니다.
보통 때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데 그냥 가서 마음 편하게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구 흘려 써서 어떤 것은 무슨 글자인지 모를 그 영화에 대한 메모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덴마크 시골 섬마을에 자신의 시간과 적은 수입으로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두 자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내전으로 오갈데 없는 바베트라는 여인이 이 자매를 찾아옵니다.
바베트는 급료없이 자매들을 섬기는 조건으로 14년 동안 같이 살게 됩니다.
바베트에게는 작은 희망이 있었는데 프랑스 복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 복권이 당첨되어 바베트는 만 프랑-그 당시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것인지 모르겠지만-을 타게 됩니다.
자매들은 돈이 생긴 바베트가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권이 당첨되었을 즈음 두 자매는 자신들의 아버지였던 그 지역 목사님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어 마을 사람들을 초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베트는 자매의 계획을 알고 자기가 목사 탄신일 만찬을 프랑스 정식(French Meal)으로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바베트는 초대된 10명의 마을 사람들과 젊은 시절 자매 가운데 언니를 연모(戀慕)했던 장군과 그 숙모를 위해서 모든 재료를 프랑스에서 구하고 정성껏 요리하여 대접합니다.
영화가 상영되고 나서 여기서 나오는 요리들은 한때 프랑스에서 실제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저절로 들었답니다.
특히 와인 블리니스 데미도프(?)-1860년산 베우브 클리쿼트, 메추라기 요리 카이유 엉 사코파쥬, 이름도 알 수 없는 과일과 커피에 곁드린 비에 마크 샴페인.
초대된 손님 가운데 프랑스에 가본 적이 있는 장군은 지금 자신들이 먹고 있는 요리가 파리에 있던 “카페 엉글레”에서 먹었던 요리에 뒤지지 않는다며 놀라워합니다.
바베트가 마련한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서로 오해하고 질투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고 사랑을 회복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 자매는 바베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파리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바베트는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요리 재료로 만 프랑을 다 써버린 것입니다.
바베트는 자신이 카페 엉글레의 수석 요리사였음을 밝히며, 카페 엉글레에서는 12명 식사값이 만 프랑이라고 알려줍니다.
“마님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예요.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죠.”
알고 보니 바베트는 다부지고 멋있는 예술가였던 것입니다.

요리가 예술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한국에서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食客)”이 드라마로 방송되고 있는데 저의 엄마는 열심히 보고 계신 모양입니다.
식객은 이미 21권 연작 만화책으로 나와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바베트의 만찬”에서처럼 재료와 음식에 마음이 담기고 정성이 들어갈 때 예술이 되는가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식객”의 내용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도 제대로 하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막12:30)” 하라고 하신 모양입니다.

날마다 가족을 위해서 식탁을 준비하는 아내나 남편의 손길에 사랑이 보태진다면, 또한 밥상을 나누고 싶어 손님을 초대한 주인의 손길에 사랑이 묻어있다면 그 음식은 아름다운 예술일 것입니다.
저는 음식을 잘 못하나 무엇이든 맛있게 먹습니다.
요즘 먹었던 어울려 먹자고 만든 닭조림, 새롭게 배워 만든 생선초밥, 급하게 끓였어도 맛있기만 한 부대찌개, 달걀물에 묻혀 따뜻하게 지져낸 하루 지난 깁밥... 모두 예술입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