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1/2008 - 마지막을 사는 사람처럼



온라인 책방에 들렸는데 처음 화면 한 모퉁이에 청소년 성장소설 <리버보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리버보이?
제목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그 책이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는 것에 관심이 갔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책 사주고 싶은 마음에서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언제부턴가 내용을 살피곤 했습니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미 구입한 몇 권의 성장소설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읽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읽고는 혼자 감동받아 가슴 먹먹해 하곤 했습니다.

일단 책 제목에 마우스를 들이대고 클릭을 합니다.
“1997년 해리포터와 함께 영국 카네기 메달 상에 후보로 노미네이트 됐으며, 풍부하고 서정적인 묘사와 깊은 주제의식으로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메달을 수상했다”는 책 소개가 나옵니다.
그 동안 해리포터 6탄까지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치밀한 전개에 엄청 재미있게 읽어온지라-영국 문화도 잘 모르고 내용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그 해리포터를 제쳤다는 말에 책 내용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청소년 성장소설이고 해리포터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책이라니 다시 생각할 여지없이 신청을 했고 해마다 그렇듯이 별일 없이 조용한 새해 둘째 날 쭉 읽어내려 갔습니다.

<리버보이>의 주인공 제스는 열다섯 살의 소녀입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살면서 자신의 버팀목이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슬픔을 겪게 됩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 계획된 가족 휴가를 할아버지 뜻에 따라 강행하게 됩니다.
휴가를 가기로 한 곳은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크지 않은 강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스는 화가인 할아버지가 강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완성하도록 돕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영을 좋아하는 제스는 강에서 리버보이(River-boy)라는 신비로운 한 소년을 만나게 되고 제스와 할아버지와 리버보이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소설 거의 끝 부분에 보면, 제스와 소년은 강이 시작되는 계곡 높은 곳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소년은 제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강은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거리만큼 흘러가지.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곧게 때로는 구불구불 돌아서,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바다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거야. 난 이 모든 것에서 안식을 찾아.”
또 “삶이 항상 아름다운 것은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채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이 없어.”라고 말합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리버보이>를 읽고 마음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유골을 강물에 흩뿌리며 할아버지의 영혼이 할아버지를 아는 모든 사람들 안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제스가 겪는 이별의 슬픔도 삶의 한부분이 되어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제가 결혼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고 철도 들지 않아 제대로 섬겨드리지도 못한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던 그 때 그리고 지금도 제스와 비슷한 생각입니다.
함께 살면서 줏대 있게 살라고 늘 말씀하시며 최고의 축복을 해주시고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셨던 할머니가 엄청 보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제스는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빠져버린 할아버지의 팔이 되어 마지막 작품을 마무리 하도록 도우며, 할아버지는 손녀를 의지하여 최후의 그림 “리버보이”를 완성합니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그림에 보이는 강물이 바다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 멈추지 않도록 돕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림을 완성한 그날 밤 할아버지와 제스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마지막 삶을 채워가는 그들을 보며 애틋한 사랑과 신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금요 속회를 마칠 즈음이었습니다.
“용서받은 죄인과 하나님 사랑”에 대해 말씀과 삶을 입으로 나누는데 마음속에서는 자꾸 뜨뜻한 기운이 올라옵니다.
말씀의 적용에 쓰여 있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 비위를 상하게 하는 친척, 귀찮은 이웃, 불쾌감을 주는 동료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를 읽고 나서, 우리도 용서받은 죄인인데 그리고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늘 마지막을 사는 사람처럼 사랑하며 살도록 기도하자고 제안합니다.

새벽부터 마음에 맴도는 생각들 때문에 그렇게 기도를 제안한 것 같습니다.
제 삶이 어떤 안락과 고난에도 멈추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흘러갈 것이라는 것과 삶의 끝을 사는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사는 사람이라면 용서하고 용납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우리 속도원들은 생각을 같이 했습니다.
우리 속도원들은 함께 기도하며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각자의 연약함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마나 기도에 집중했던지 기도가 끝나자 분위기가 짧은 시간 동안 가라앉는 듯 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다시 마주보는 순간 웃음이 얼굴에 가득 찹니다.
즐거운 교제 시간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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