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2025

부자 달리기




“아빠 요즘도 뛰어? 다른 주에 사는 둘째 아들에게서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어, 일주일에 3~4. ?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이 어떤 달리기 대회 안내문을 보내며 다시 물었다.

 “땡스 아침에 5마일 할래?

“그래 하자~ 남편은 바로 결정했다.

둘째 아들, 윤은 추수감사절에 우리 집에 와서 여러 머물다 돌아간다. 지난해 추수감사절에 윤은 운동복과 러닝화를 챙겨 왔다. 하루에 번씩 동네를 돌고, 폰차트레인 호숫가를 달리고, 시티 파크에 가서 달렸다. 쉬는 날이면 먹고 뒹굴 대던 윤이 아니어서 아주 신선했다. 윤은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그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달리기 대회에 종종 참여한다. 달리기 대회에서 완주하는 쾌감이 있는지 즐기는 같다. 올해는 뉴올리언스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윤과 남편은 함께 달리기 연습을 했다.

윤이 찾아낸 달리기 대회는 118th NOAC TURKEY DAY RACE 2025. 대회는1907년에 설립된 뉴올리언스 애슬레틱 클럽이 주최한다. 비마라톤 대회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지속적으로 열리는 경주 하나다. 추수감사절에 열리고 여러 세대가 참여한다. 대회 수익금은 루이지애나 주에서 척추 갈림증(Spina Bifida of Louisiana) 가진 개인과 가족을 위해 사용한다.

대회는 명절 아침 8 30분에 시작한다. 시티 파크에 있는 경기장 근처에서 출발하여 5마일을 달려 경기장 안에서 끝나는 경기다. 참가자가 3,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시간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벌써 주차 공간마다 자동차들이 빼곡하고 거리마다 사람들로 활기찼다. 기온이 떨어져 쌀쌀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같았다.

사람들이 점점 출발선 근처로 모여들었다. 나는 남편이 조금 걱정되었다. 남편은 평상시 3.5마일 정도를 달린다. 5마일은 달리지 않았다. 남편은 익숙한 흐름을 깨고 새로운 흐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익숙한 편안함에 저항하며 끝까지 달릴 힘을 분배하길 바랐다. 나는 남편에게 힘들다 싶으면 걸어서 천천히 오라는 말로 속마음을 전했다. 아들이 같이 달리니까 그나마 맘이 놓였다.

나는 첫째 아들, 산과 부자가 벗어 놓은 옷가지를 챙겨 경기장 안으로 이동했다. 결승선이 보이는 관중석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약속했다. 산과 슬슬 관중석 가까이로 다가갔다. 어머! 벌써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광판은 겨우 24분이 지나고 있었다. 어떻게 달렸기에… 남녀노소, 유모차를 미는 엄마 선수들이 줄지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장에는 캐스터의 힘찬 멘트가 둥둥 떠다녔다. 관중들은 선수에게 짧은 환호를 보낼 차분하게 경기를 즐겼다.

나는 경기장 입구에 눈길을 고정했다. 산에게도 아빠와 동생이 들어오나 보라고 말해 두었다. 여러 사람과 섞여 있어도 식구들 모습은 얼른 분별할 있을 거라 믿었다.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사람을 발견하고 우리 가족의 역사적 순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부자는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윤은 나를 발견하고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남편은 3마일까지는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3마일을 지나고 나니 호흡이 안정되고 리듬감이 생겼다고 했다.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남편의 유쾌감이 내게도 전해졌다. 남편은 아들이 있어서 끝까지 달릴 있었다고 덧붙였다. 윤은 달리면서 땀과 콧물까지 흘리는 아빠를 살폈나 보다. 든든한 아들이다.

추수감사절에 달리기라니, 정말 감사가 절로 나오는 조합이다. 달릴 있는 건강, 응원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으니 말이다. 어디 뿐인가. 함께 달리거나 걷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된 나무와 땅과 하늘의 응원도 있다. 부자가 달리기한 소식을 들은 몇몇 이웃은 내년에는 그들도 뛰고 싶다고 그랬다. 그들은 평상시에 몸을 단련하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므로 이런 경주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산은 자기도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래 걷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들이 뛰고 싶다니 뭐라고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걷기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으나 산에게 5마일은 너무 길다. 그래도 달리기 코스를 산과 함께 한번 걸어봐야겠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12/18/2025

낚시질



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소설 <노인과 바다> 아직, 청년이라 불리는 육십 대를 앞두고 읽었다. 소설을 영화로 봤기에 그동안 정독하려는 마음이 없었나 보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른바 세계 명작을 읽기도 하는데 그러다가 <노인과 바다> 이르렀다.

성탄절 즈음에 미국 플로리다 남단에서 섬들이 서쪽으로 이어진 키웨스트를 갔었다. 연말 해넘이를 그곳에서 보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키웨스트에서 헤밍웨이가 살던 집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멕시코만-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지명을 변경하는 행정명령을 내려서 구글 지도에는 아메리카만으로 나온다- 멀지 않은 뉴올리언스에 살게 되면서 <노인과 바다> 내게 점점 가까워졌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늙은이였다.’ 문장에서 평생을 욕심 없는 어부로 노인이 보인다. 노인이 사는 곳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 소설은 노인 산티아고가 84 동안 고기를 마리도 낚지 못하다가 85일째, 바다에서 5.5m 되는 청새치를 잡아 돌아오는 이야기다.

노인은 그의 조각배보다 청새치를 잡기 위해 사흘을 고군분투한다. 노인은 자신을 안다.  이젠 생각만큼 강하지 않을 몰라도 고기 잡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고 배짱도 있다고 확신한다. 거대한 청새치가 삼킨 낚싯줄을 풀고 당기기 위해 노인은 그의 어깨와 손을 아끼지 않는다. 아침에 마신 커피 잔이 하루의 식량 전부였고, ‘노인은 오래전부터 먹는 것을 귀찮아해서배에는 병뿐이었다. 청새치가 낚인 줄을 잠시도 놓을 없기에 낚싯줄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사용하여 미끼로 쓰려고 잡은 다랑어를 잘라먹거나 갈고리대로 해초를 건져 사이에서 떨어진 작은 새우를 먹으며 배고픔을 달랜다.

노인은 끝내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조각배에 청새치를 길게 묶는다. 노인의 집이 있는 아바나 항구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와의 싸움이 다시 시작된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상어와도 싸우지만 머리와 뼈만 남기고 청새치를 빼앗긴다. 앙상한 청새치를 가지고 아바나로 돌아온 노인은 항구에 배를 대고 돛대를 거두어 어깨에 멘다. 노인의 판잣집이 있는 언덕을 오르며 돛대를 채로 여러 쓰러지기도 하고 쓰러져 일어서지 못하기도 한다. 집에 돌아온 노인은 사자 꿈을 꾸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책을 읽는 내내 노인에게서 어부로서 노련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보았다. 반면에 어부로서 고단함과 가시지 않는 외로움도 보았다. 나는 노인이 집에 돌아왔다는 것에 무척 안도했다.  노인을 따르는 소년 마놀린이 돌아온 노인을 살갑게 챙기고, 동네 사람들이 노인의 안부를 묻는 모습은 바다에서의 거친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다시 한번 마음이 놓였다.

사실 노인이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반복해서 소리친 혼잣말이 있다. “ 소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은 소년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고 배도 같이 탔었다. 언젠가 87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3 내내 고기를 잡았을 때도 함께 있었으나, 다시 40 동안 어획량이 없자 소년은 그의 부모 뜻에 따라 다른 사람의 배를 탔다. 그래서 85일째 되는 , 노인은 혼자였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소년은 노인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노인을 돌보는 소년이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한 나는 소년에게 머리를 숙였다. 어찌 노인이 소년을 그리워하지 않을 있었을까!

우리도 낚시할 기회가 있었다. 이웃 P부부는 가슴이 답답해질 한적한 길을 달려 낚시를 하러 간다고 그랬다. P 우리 가족이 낚시에 관심 있는 것을 알고는 그들의 낚시 포인트로 바로 초대했다. 낚시 도구는 물론 미끼로 살아 있는 새우를 챙겨왔다. 하루 전에 직접 잡은 새우였다. P 처음 낚시했을 때는 서너 시간 동안 메기만 한두 마리 잡았다. 얼마 P 멕시코만에 가까운 그랜드 아일로 우리를 인도했다. 거기서는 생선 조기와 맛이 비슷한 바다 송어를 신나게 잡았다.

나는 낚시를 하러 가는 자체가 좋다. 물론 노인이 어부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고통스럽다고 말에 완전 동의하지만 말이다. 나는 고기를 잡으면 좋고 잡아도 괜찮다. 그런데 P에게서는 물고기 잡는 재미를 우리 가족과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노인이나 우리나 삶은 홀로 동시에 함께 하는 낚시질 같다.


*이 글은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