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2025

책, 흐르는 강물처럼






나른한 오후를 깨우려고 뉴올리언스 시티 파크를 찾았다. 400살이 넘은 참나무들과 나무마다 수염처럼 늘어진 스패니시모스는 언제 봐도 이국적이다. 참나무들은 마치 재즈바에서 느릿하게 대화를 나누는 나이든 친구들 같다.

자연스레 발걸음은 조각 공원으로 향했다. 현대 조형물들이 , , 개울, 호수와 어우러져 생동감 있는 곳이다. 참나무 숲이 노년 같다면 조각 공원은 청장년이다. 호수를 중심으로 양편으로 나뉜 조각 공원, 호수 가운데에서 물이 옹달샘 마냥 뿜어져 나온다. 물은 호수를 채우고 어디론가 흐르고 있을 터이다. 흐르는 물은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개울로 이어진다. 개울 한쪽에선 척의 카약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1 한파 때문에 열대식물인 야자수와 봄꽃인 아가판서스가 누렇게 시들었다. 안쓰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은 냉기에도 불구하고 초록 잎을 지켜내거나 새싹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린 싹들이 기특하여 가까이서 살펴보았다. 나무들마다 쌀알만한 겨울눈이 한가득이었다. 문득 얼마전에 읽은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 떠올랐다. 주인공 토리가 삶이 고되어도 때로는 순리대로 때로는 힘겹게 살아내는 모습이 겨울눈과 닮았다.

소설은 과수원 , 토리가 사랑을 하면서 소심한 소녀에서 대담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이야기이다. 열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토리는 가사를 도맡는다. 토리에게 관심이 없는 아빠, 삐딱한 남동생, 상이 군인 이모부의 뒤치다꺼리와 복숭아 수확, 판매는 토리가 일이다. 그러다 토리가 열일곱 살이던 1948, 길을 묻는 낯선 청년 윌과 사랑에 빠진다. 여성으로 사는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모르고 살던 토리는 폭풍처럼 다가온 사랑에 휩쓸려 버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토리가 나눈 사랑이 순탄치 않다. 윌은 아메리칸 원주민이고 당시에는 아메리칸 원주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아주 심했기 때문이다. 토리 가족과 동네 사람들 모두 윌을 배척한다. ! 이웃집 루비앨리스 아주머니는 윌에게 먹을 것과 이불을 준다. 루비앨리스도 동네에서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동네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윌에게 현상금까지 건다. 윌은 사람들에게 쫓기면서도 토리를 떠나지 않는다. 윌은 어디를 가든 피부색만으로 괴롭히는 사람들은 차고 넘칠 거라며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결국 윌은 토리 뱃속에 아기를 남겨둔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열일곱 토리가 마흔 살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겪으며 자기 삶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과정이 애틋하면서도 강인하다. 토리의 다음 선택이 궁금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토리는 온갖 걸림돌과 댐을 거슬러 앞으로 나아가고 흐르는 강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그저 그동안 쌓아온 가지고 계속 흘러가는 강물이 삶과 같았다 고백한다. 거센 물살 속에서도 강은 굽이치며 길을 찾아간다. 토리의 삶도 강물처럼 흐른다. 때론 막히고 때론 돌아가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 2023년에 발간되었고 셸리 리드가 50대에 데뷔작이다. 셸리 리드는 콜로라도 주민으로, 콜로라도 자연을 소설 배경으로 묘사한다. 작가가 어린 시절의 풍경은 우리를 창조한다, 나라는 존재를 형성한 고향이었다라고 것은 고향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작가의 삶을 함축하여 보여준다.

언젠가 콜로라도 덴버 주변을 여행했었다. 만년설을 로키산맥, 산을 품은 호수들, 끝없는 들판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작가는 주변환경에서 얻은 지혜를 토리의 속에 닮아낸다. 강인함은 작은 승리와 무한한 실수로 만들어진 숲과 같고, 모든 쓰러뜨린 폭풍이 지나가고 햇빛이 내리쬐는 숲과 같다. 우리는 넘어지고, 밀려나고, 다시 일어난다.

공원에서 추위를 이겨낸 연분홍 철쭉을 보고 있자니 분홍꽃이 흐드러지게 복숭아나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책에 몰입한 탓이리라. 토리네 복숭아나무는 조지아에서 가져왔단다. 조지아는 피치 스테이트 불리는 복숭아로 유명한 . 토리의 복숭아나무는 마치 윌이나 같은 이주민이 정착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상징 같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우리네 삶엔 이유가 있고, 만나야 풍경이 있으며, 견뎌야 계절이 있다. 삶이 흔들려도 흐름을 잃지 않기를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3/12/2025

뜻밖의 요청





인간 관계에서 때로는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간의 질이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미국에 사는 나의 가족처럼 서로 멀리 살아서 자주 만날 없는 관계는 더욱 그렇다.

지난 추석 어머니(남편의 엄마를 시어머니라 부르고 않고, 나의 엄마를 친정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부르다 보니 예의를 갖추면서도 관계의 거리감이 좁혀진다.) 우리 가족과 명절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뜻밖의 요청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흔들었고 설날 전후 일정으로 한국행을 결정하였다.

한국 날을 기다리던 어느 , 엄마에게 위암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초기 단계의 암이라고는 하지만 치료하는 과정에서 육체가 지칠 것이 분명하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수술을 받은 엄마는 해쓱한 얼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엄마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내가 엄마의 식사를 챙겨 보리라 생각하고 왔는데 끼부터 엄마 손을 거친 밥상을 받았다. 엄마의 상태가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치료하는 의료 기술의 발전에 놀라워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밥상에는 굴전이랑 굴무침이 보였다. 미국에선 육류를 많이 먹을 테니 굴이나 같은 해산물을 먹이려는 엄마의 계획이 보였다. 환자가 준비할 음식은 아니었다. 엄마는 이렇게 음식 만든 것을 동생네한테 비밀로 달라고 부탁했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기내식을 모두 맛있게 먹었지만 눈앞에 놓인 엄마의 밥상에 아무 주저함 없이 달려들었다.

엄마는 우리가 식사를 마치면 그제서야 두어 숟가락의 죽을 겨우 먹었다. 엄마의 끼니를 위해서는 한꺼번에 쑤어 놓은 죽에서 숟가락 덜어내어 데우는 일이 전부였다. 별다른 수고가 따르지 않았다. 한국에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그저 엄마가 부를 대답할 있는 자리에 있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순종했다. 물을 가져오라면 물을 가져오고, 설음식을 사오라면 그렇게 하고.

한국을 떠나는 아침 밥상에는 사위가 좋아하는 게찌개가 등장했다. 전날 엄마가 주방에서 한참 동안 덜그럭거리며 뭔가를 준비한 결과물이었다. 엄마는 아침 시간에 어수선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음식을 만든 것이다. 며칠 , 진한 국물의 게찌개를 정신없이 먹는 사위를 엄마는 남은 마리 게를 먹여 보내야 마음이 편할 같았단다. 엄마는 다시 헤어지는 서글픔을 몸을 괴롭히며 달랬던 것일까.

내가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나의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나는 한국에 도착했을 때와 떠나기 , 그리고 설날 앞뒤로 어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우리를 맞이하는 주름진 어머니 얼굴은 동백꽃처럼 환하게 피었다. 다만 무릎이 약해져서 계단을 어렵게 오르내리시는 모습이 낯설고 안쓰러웠다.

어머니는 하루에 시간씩 마을회관에서 다른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내신다. 어르신들은 간혹 자녀가 가져온 간식이라며 나눠 드실 때가 있단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멀리서 찾아온 아들을 핑계로 받아먹은 것을 갚을 기회로 삼으셨다.

명절 장도 풍물시장에 갔다. 어머니는 계획이 있으신 떡집에서 동부나 팥이 들어간 쑥송편과 모시송편을 푸짐하게 사셨다. 귤도 박스 사셨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우리가 드린 쿠키 상자를 마저 챙기시더니 마을회관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셨다. 떡과 귤은 명절 분위기 내기에 좋은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어르신들이 그것들을 넉넉하게 나눠 드셨다고 알려주셨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옷을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돌아다니다가 맘에 드는 옷을 사라며 크레딧카드를 주셨다. 이렇게까지 한국 옷을 입혀 보내려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온가족이 윷놀이를 하고, 설을 쇠면서 내내 즐거워하셨다.

이번 여행은 나를 고집하지 않고 부모님에게 집중하겠다고 다짐했어도 온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저 부모님 곁에 있었을 뿐이고 오히려 부모님이 사랑을 부어 주셨다. 온기가 마음 한편에 남아 오래도록 힘이 되어줄 같다.


*이 글은 앨라배마 타임즈에도 실렸습니다.

2/28/2025

맛있는 우정




  다녀온 한국 여행은 명절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지인들과는 짬을 내어 만날 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삶의 굴곡이 생길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다. 특히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털어놓고 투정을 부린다. 그들과 쌓은 우정은 우리 부부에게 자산이다.

남편과 아들과 나는 약속이 먼저 잡힌 Y부부를 만나러 갔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가족을 그들의 일터와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들은 워낙 정갈하고 세련되어서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서는데 주춤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세련됨을 엿보고 싶고, 거기서 문화적인 신선함을 발견하곤 한다.

Y부부는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일터인 교회를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여전히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고 있었다. 새로운 예배실을 꾸미는 일과 건물 유지를 위한 청소도 몸소 감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배실에 가보았다. 앞쪽에 불을 켜자 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십자가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투명하고 광택이 나는 바닥에 십자가가 어렸다.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비치는 십자가가 기도하는 사람 사람에게 흘러가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느낌을 말하자 물과 빛을 표현하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알려주었다.

며칠 ,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S부부가 일하는 교회를 찾았다. S 남편의 의형제다. 나는 7 전에 S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남편은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가보고 싶어했다. S 십자가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책을 쓰는 사람이다. S 아내 R 들꽃을 찍는 사진 작가이다. R 자신의 사진과 들꽃 이야기로 책을 펴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했다.

S 길을 걷다가도 메모를 한다고 R 알려주었다.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나 자료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S 습관과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 쓰는 솜씨를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습관의 바탕에는 관심사를 나눈 사람과의 관계를 정성스럽게 이어가는 성품이 배어 있다. 교회 개혁이나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일을 생각하고, 살고 있고, 글솜씨가 있으니 그의 글은 살아서 독자에게 닿는다. 은퇴 후에 작가로 살면서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는 S 소망은 한가로움이 아닌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부모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P부부와 만났다. P부부는 부모님을 보살피는 일들을 먼저 하라며 그런 후에 만나자고 우리를 배려했다. P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와 만난 사람의 신상을 기억하고 세세한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이어간다. P 아내 K P 사람에 대한 관심과 기억력은 하늘이 주신 거라고 말한다. P 한때 공황장애가 와서 무기력증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는 그가 공황장애로 얼마나 힘들었을 상상이 되었다.

P 건강을 회복해가는 중이고 요즘은 시니어한테 관심을 쏟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P 일하는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오케스트라, 카페, 십자가 전시관 등으로 봉사한다. 최근에는 지역내 시니어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여러 일들을 벌이고 있다. 동네를 걷다가 시니어들끼리 만나면 수다도 떨고 함께 식사도 하는 생활을 권장한다. 하루에 번씩 전화로 시니어의 안부를 챙기고 식자재와 생활용품을 나누어 쓰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시니어가 많은지라 P 실천이 같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 부부와의 만남도 빼놓을 없다. 부부는 농촌지역에서 교인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다른 부부는 도시에서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한다. 그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동기들과는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만난 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맛있다. 손수 음식을 만들든 식당을 고르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식탁이 건강하고 맛날 밖에. 우리들의 우정이 식탁에서 만들어진다고 정도다. 식탁 위에는 음식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타인을 돌보는 따뜻한 삶이 함께 차려진다. 그렇게 나누는 삶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살아갈 힘을 공급하는 맛있는 우정으로 거듭난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