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2025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 제목만 봐서는 서늘한 기운이 묻어나는 가을 즈음에 읽으면 어울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펼치고 보니 여름 다섯 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은 병증이 심해져서 이상 혼자 힘으로 일상을 살아가기 힘든 아버지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아들 한스 투박하면서도 애틋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보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그랬을까. 보에 비해 나는 아직 젊은데도 어느새 보의 입장이 되어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병든 보는 화장실 사용이나 식사 준비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 혼자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반려견 식스텐 위해 산책하기도 어렵다. 한스는 아버지와 식스텐을 보호하기 위해서 식스텐을 데려가려고 한다. 하지만 보는 한스가 식스텐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해서 분노한다. 보는 편하게 사용하던 소파를 한스가 맞춤형 침대로 바꾼다고 때도 마땅치 않다. 막상 의사를 표현하려고 해도 가래가 목을 막는다. 보는 무기력하게 생각한다. “ 목소리는 그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 하늘에서 죽은 새가 떨어지듯 말은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는 곳에 떨어진 같았다.”

보는 깜빡 잠에 빠져 들고 그럴 때면 과거에서 허우적거린다. 보는 현실과 과거를 자주 오간다. 이야기 속에서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해서 읽게 만든다. 보의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 인물에 대한 표현을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당신이라는 인칭대명사는 요양원 치매 병동에 있는 보의 아내, 프레드리카를 말한다. 노인은 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그의 아버지를 지칭한다.

침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보는 한스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보는 한스가 어렸을 혼자 힘으로 물고기를 잡았을 때나 회사일이 바쁜데도 일주일에 번씩 아버지를 보러 오거나 주방에서 커피 끓이는 뒷모습 등에 마음이 뭉클하다. 그런 아들이 자랑스럽다. 보는 안간힘을 쓰며 아들에게 마음을 전한다. 아들은 아버지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한다. “잘 알고 있어요, 아버지.”그들이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는 짧은 마디로도 충분했다

작가 리사 리드센은 스웨덴 사람으로 소설로 데뷔한 문학가이다. 서른일곱 살의 리드센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처럼 보의 모습을 상세하게 표현한다. 사람이 죽을 아마도 리드센이 흐름대로 거라고 어느 정도 믿게 되었다. “주변이 너무나 어두워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중략) 안에 무슨 일이 생긴 같았다. 무언가가 방향을 바꾸는 듯한 느낌. (중략) 모든 것이 말할 없이 맑아졌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하지만 때를 모른다. 그러니 순간마다 비록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10여년 아버님은 뇌종양 수술을 받고 후유증으로 몸에 마비가 왔다. 말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져서 무척 답답해 하셨다. 아버님은 퇴원해서 집에 있기를 원하셨다. 집에서는 수시로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하셨다. 그러면 남편은 아버님을 휠체어에다 모시고 마당에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아버님은 계속 남편의 이름을 어눌하게 부르며 찾으셨고, 남편은 아버님과 산책과 화장실 오가는 일을 계속했다.

한국 방문 중인 나와 아이들은 조금 아버님 곁에 머물 작정이었고 남편은 먼저 미국으로 가야 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저녁이었다. 남편은 아버님을 모시고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화장실 앞을 서성거렸다. 화장실 문틈으로 노란 불빛과 물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참 남편은 깨끗하게 목욕을 마친 아버님을 안고 나왔다. ! 뜨거운 슬픔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무뚝뚝한 남편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드릴 있는 다정한 인사 같았다.

그로부터 4개월쯤 지나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만 급히 한국으로 향했다. 아버님은 아들과 하룻밤을 보내시고 노인과 엇비슷한 날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남편은 짧디짧은 며칠 동안 아버님의 모든 요구에 기꺼이 순종했던 순간들을 두고두고 감사한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6/07/2025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의 삶은 자체로 인터내셔널이다. 앞집에 사는 룻과 쟌은 각각 아일랜드와 독일 출신 배경을 가지고 있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시슬은 스페인어가 모국어이다. 한인 이민자의 정체성을 가진 내게 김기태 작가의 소설집 < 사람의 인터내셔널>, 제목이 눈에 띄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상황에 안테나를 높이 세워도, 한국은 이곳에서 멀다. 그런 내게 김기태의 소설은 사회 여러 분야를 새롭게 들여다볼 있는 기회를 주었다. 케이팝의 팬덤 문화, 외국인, 노동과 사랑, 교육, 노인 한국에서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맘에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먹었던 아이스크림 보석바 생각났다. 그의 담담한 문장 사이에서 보석바에 박힌 얼음 보석이 자꾸 반짝거려서.

<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는 9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가운데 개를 소개해 보련다. 세상의 모든 바다(세모바) 세계적으로 성공한 케이팝 그룹이다. 그룹을 블랙핑크 만큼 매혹적일 아니라 U2처럼 사회적인 그룹이라고 소개한다. 세모바는 여러 대륙 출신과 인종으로 구성하고 있다. 멤버들은 인권과 환경 보전을 위해 애쓰며, 그들의 실제 이야기가 가사로 쓰인다. 이런 케이팝 그룹이라면 나도 그들의 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세상의 모든 바다는 이어져 있다는 세모바의 세계관은 작가가 전체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 같다. 그리고 작가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 일상의 소중함을 기발하고, 세련되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아니, 외친다.

표제작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는 권진주와 김니콜라이가 나온다. 진주는 내국인이고 니콜라이는 고려인 4세로 외국인이다. 사람은 중학교 학교에 내야 돈을 내지 않아 교무실로 불려갔던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사람은 스물다섯 살이 되어 우연히 마주친다. 진주는 마트에서 일하고, 니콜라이는 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일한다. 사람은 동네에 아는 사람 명쯤 있는 것이 좋아 가끔 만난다. 자아실현 같은 모르겠지만 견딜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다가도 불안정한 삶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이다.

사람은 돈을 벌지 못한다. 둘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칸짜리 집으로 이사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밈을 보다가 알게 인터내셔널가를 들으면서 이삿짐을 푼다. 노래가 노동자 해방과 사회 평등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나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친한 사이 관계를 규정한다. 소설에서 사람을 엮어 그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각각의 이름이나 사람이라는 표현은 독립적인 개인을 존중하면서 둘의 연대를 응원하는 듯하다. 김기태 작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공존과 연대의 방식을 참신하고 차분하게 보여준다.

인터내셔널인 나의 이야기도 덧붙여 본다. 나에겐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들이 있다. 공교육을 마치고 십일 년째 나와 붙어 살고 있다. 아들, 산이는 요즘 일하고 싶다 혼자 살고 싶다 말한다. 산이 생각을 현실로 이루기에는 난관이 많으므로 그의 외침이 안타깝다.

하루는 산이와 함께 장보러 샘스클럽에 갔다. 금발의 수수한 여인이 다가와 산이의 나이를 물었다. 서른두 살이라고 하자 여인의 아들도 다운증후군이라고 말했다. 나이를 물은 말을 걸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여인은 지지스 플레이하우스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셀폰으로 홈페이지를 찾아 보여주었다. 정보 저장을 위해 나보고 셀폰 화면을 사진으로 찍으란다.

며칠 뒤에 코스트코에서 짧은 은발의 여인이 산이의 나이를 물었다. 여인의 아들은 마흔두 살이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다시 며칠 , 남편과 산이가 장을 다른 여인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고 한다. 천사가 찾아온 것일까.

GiGis Playhouse 다운증후군 사람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다. 지지스 플레이하우스의 여러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넣었다. 산이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의 이메일을 열어본다. 마미, 플레이하우스에서 이메일 왔어, 산이가 외쳤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와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

5/12/2025

핀란드 사람들은 왜 중고가게에 갈까?




나에게 25 넘은 재봉틀이 있다. 자급자족이 가능할까, 고민하던 때라 재봉틀이라는 도구로 의식주에서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기대했다. 사실 이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는 작고 가까운 데서 온다. 당시 몇몇 친구들이 생활한복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도 친구들의 물결에 끼고 싶어서 얼른 재봉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벌의 생활한복을 만들어 가까운 식구들과 나누어 입었다.

그리고 퀼트에 재봉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퀼트를 처음 배울 , 조각천을 손바느질로 잇는 즐거움에 빠졌다. 하루 종일 손바느질만 하면서 살면 좋을 같았다. 하긴 재봉틀을 처음 배울 때도 그랬다. 퀼트 초급 수준을 조금 벗어나자 재봉질과 손바느질을 섞어서 사용하니까 훨씬 효율적이었다. 퀼트로 생활 소품이나 이불을 만들어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제 나의 나이든 재봉틀은 바지 길이를 줄이는 단순한 재봉질에 사용된다.

한번은 이웃들과 중고 물건을 나누어 쓰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고품 중에는 옷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패션에 남다른 감각으로 옷을 다양하게 소유하고 있는 어느 이웃은 옷을 재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한발 나아가 중고 옷을 원하는 사람한테 맞춤 수선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었다. 옷수선을 재봉틀을 만져본 내가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수선할 기술이 없었다.

즈음 읽은 <핀란드 사람들은 중고가게에 갈까?> 인상적이었다. 책의 지은이 박현선은 가구디자이너다. 지은이는 환경과 소비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구디자인을 배우러 핀란드에 갔다가 중고 문화를 만난다. 핀란드는 유엔이 조사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까지 연속 7 동안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 중고 문화가 자리잡게 배경과 여러 중고 가게의 형태를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서 전략적 요충지로 취급받던 나라였다. 핀란드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다가 1917 독립한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같은 북유럽 국가는 왕족이 다스렸는데 핀란드는 왕족이 없었다고 한다. 핀란드는 보통 사람들이 만든 나라다. 생활용품도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 일반적인 생활용품이 자리잡고 있다. 국경 분쟁과 내전, 그리고 1990년대 경제 대공황을 겪기도 한다. 그들의 중고 문화는 대다수인 보통 사람들이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변화를 지체하지 않은 결과물 하나다.

나아가 환경을 생각하는 건강하고 경제적인 소비라는 생각을 근간으로 중고 문화가 성장한다. 핀란드에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역할을 하는 재사용 센터, 국민 브랜드와 협업하는 중고 가게, 시민 축제이면서 문화 공간이 되는 벼룩시장, 감성을 살린 리페어 카페 등이 있다. 핀란드에서는 낡은 물건을 고쳐 쓰거나 나누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지혜롭고 윤리적인 선택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한편, 지은이는 중고 가게와 벼룩시장이 물건을 사기 위해 물건들을 빠르게 털어버리는 배출구로 이용되는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수리와 수선을 강조한다. 트레쉬 랩이라는 행사에서는 고장 나거나 부서진 물건을 수리하고 관련 정보를 나눈다. 전문가가 직접 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조언하기도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을 아껴 쓰고 고쳐 쓰는 운동이다.

이쯤 되니, 수선에 필요한 바느질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평생 사용할 있는 기술이자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줄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익힌 바느질 기술은 사용할수록 손끝을 여물게 터이고, 나이가 들어서도 사부작사부작 즐길 있는 일이다.

오래된 재봉틀은 한국에서 샀다. 전압이 다른 미국에서는 변압기를 이용하여 그걸 여태 썼다. 많은 일을 재봉틀이 아직 살아 있지만 먹고 새로운 재봉틀을 집으로 들였다. 도구를 가지고 앞으로 25 동안 재미있게 생각을 하니 흥미진진하다. 일상에 필요한 새로운 바느질 기술을 부지런히 배우고 익힐 시간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와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