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봄방학을 해서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고 있다. 이렇게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 다른 여행 계획이 없다면, 꼭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애틀랜타에 다녀 오는 것이다. 자동차로
세 시간 반을 가야 하는 거리이니 하루 나들이 정도는 된다. 애틀랜타는 미국에 와서 처음 삼 년을 산
곳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하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애틀랜타에 도착하면 얼추 점심 시간이다. 점심으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장면을 먹는다.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가족 모두 동의가 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장 보기다. 애틀랜타에는 큰 한국가게가 여럿 있어서 한국 식료품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쌀이나 라면 같은 주식 거리처럼 덩어리가 큰 것을 먼저 산다. 그리고 때론 순대나 족발
같이 지금 사는 곳에서 사먹기 어려운 음식들을 챙겨오기도 한다. 그리고 애틀랜타에서 하는 또 한 가지는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집에서 엉성하게 깎은 머리를 여러 달 하고 있다가 모처럼 대도시 미용실에서 전문가의
서비스를 받는다. 엄청 많은 미용실들 가운데 남성 헤어 컷 가격으로
8달러 받는 곳을 찾아냈다. 팁까지 계산해도 십 달러면 되니 부담 없이 머리를 깎고 온다.
이번 봄방학에도 애틀랜타나 하루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과 첫째 아이는 집에서 한 달에 한번 머리를 깎기 때문에 그런대로 머리 길이가 봐 줄만하다. 하지만 꼭 애틀랜타에 있는 미용실에 가길 원하는 둘째 녀석은 1월에
깎은 머리가 어느새 덥수룩하다. 봄방학에 머리를 다듬으면 좋겠다고 나름 속생각을 가지고 있어나 보다. 한국가게에도 들려 장도 볼 겸 애틀랜타에 갈 구실이 두루두루 생긴 것이다.
그런데 봄방학 하기 한 주 전, 남편이
통일위원회 모임을 하러 애틀랜타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몇 가지 장도 봐 왔다. 애틀랜타에서 하게 될 한 가지 일을 이미 해결한 것이다. 봄방학
동안 애틀랜타를 방문하지 않게 된다면, 첫째 아이에게는 중국집 자장면 대신 짜파게티라는 해결책이 있지만
둘째 아이 머리는 어쩌나… 머리 깎자고 왕복 일곱 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오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다. 둘째도 자기 하나 때문에 먼 길 나서길 원하지 않았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견디겠노라 했다.
고난주간과 겹친 봄방학을 심드렁하게 보내다가 부활주일 맞이 머리 단장을 하기로 했다. 첫째 아이에게 말했다.
“이번 주일이 부활주일이잖아. 머리 깨끗하게 깎고 가면 좋겠다,” 그지?”
“히~”
입술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옆으로 구부리며 귀여운 표정으로 웃는 걸 보니 좋다는
뜻이다. 토요일에 잠자리에 들 때도, 내일은 교회 가자. 잘 자, 하면 꼭 환하게 웃는다.
스물 한 살 된 청년 아이는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이 좋은가 보다.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바리깡 사용은
남편이, 가위질은 주로 내가 손이 가는 대로 정성을 다해 모양을 낸다.
뒷머리와 옆머리는 짧게, 앞머리는 이마 위로 가지런히 내리면 된다. 집에서 머리를 깎을 때마다 언제나 같은 헤어스타일이다. 머리카락의 자른 면이 일정하지도 않고,
오른쪽과 왼쪽 머리 모양이 다르기도 하고, 바가지를 엎어 놓고 자른 것 같은 모양이기도
하지만 괜찮다. 한 눈에 보아 깔끔하게 느껴지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첫째 아이의 머리 깎기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남편은 자기도 깎으려는 눈치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당신도 깎을 거야?”
“그럼!”
남편은 머리 숱이 점점 없어지는 터라 머리 깎는 시간이 아이보다 훨씬 적게 걸린다. 남편의 머리 깎기는 온전히 내 몫이다. 머리를 깎아 놓고 자꾸 웃음이
나면 그건 잘못 깎았다는 뜻이다. 남편의 짧아진 머리 모양이 산뜻해 보이니 그런 대로 안심이다.
두 사람 머리 깎기를 마치자 둘째 녀석도 머리를 디민다. 사춘기 청소년 치고는 수더분한 편이다. 멋 내는데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저 몇 달에 한 번 머리 깎는 것만 자기 마음에 드는 미용실에 가려고 하는 정도다. 나의 머리 깎는 솜씨가 우스운 것을 알기에 자기 머리를 맡기려고 하지 않았었다.
여름방학 때 애틀랜타에 갈 때까지 참는다고 하더니 무슨 마음인지 자기 머리도 깎아달라고 한다. 나
또한 열 여덟 살 고등학생의 머리 깎기에 대한 깜냥도 없이 그러자고 했다.
인터넷에서 요즘 잘나가는 남자 배우 김수현의 이미지를 검색했다. 그나마 젊은 청년의 헤어 스타일을 살펴볼 생각이 난 것이 다행이다. 뒷머리와
옆머리는 짧지만 머릿속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길이이고, 앞머리는 조금 길어서 이마가 보이게 넘어갈
정도라는 것을 되뇌며 머리 손질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다듬고 나니 웃음이 자꾸 실실 나온다. 앞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낸 것 같다. 아이가 실망할까 봐 대놓고
웃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남편이 바리깡을 들고 나섰다. 요즘은 짧은 머리가 유행이라며 머리를
점점 짧게 자른다. 어찌 어찌 이발을 마쳤다.
머리를 감으러 가는 둘째에게 헤어젤을 발라 앞머리를 뒤로 넘겨보라고 했다. 머리를 감고 머리 손질을 하고 나온 아이에게 괜찮네, 하며 바람을
잡았다. 둘째도 큰 불평이 없다. 보통 때보다 짧아진 머리가
아주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한 나절 동안 우리 집 세 남성의 부활주일 맞이 머리 손질 행사를 마쳤다. 올해 부활주일은 깔끔하고 산뜻한 모습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앞으로 둘째 녀석의 머리를 깎아줄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 지 모르겠다. 부모에게 머리 깎아달라고 부탁을 하는 아들, 내 아들이 멋있길 바라는
마음을 실은 손이 가는 대로 아이의 머리를 요리조리 만지는 부모. 서로를 의지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엄마, 아빠가
깎아준 어설픈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던 때가 부활주일 즈음이었음을 기억해주길……
***고국에서 들려온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소식에 마음 한 켠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이 소식을 함께 나눈 이민자들도 함께 울고 함께
당황스러워 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희생된 이들과 그 유가족에게 멀리서나마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실종자들도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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