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8/2013

멋진 힘 조절


아틀란타한인교회 마당에서.


동남부 한인연합감리교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에 갔었다. 2 3일을 미국에서 고향 같은 애틀랜타에서 보내면서 반가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 얼굴을 익히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수련회 둘째 날, 한인연합감리교회(아래 연감)와 기독교대한감리회(아래 기감) 목회자들의 친선 경기가 아틀란타 한인교회에서 열렸다. 경기 종목은 탁구, 족구와 배구였다. 목회자 아내들은 경기가 열리는 동안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하도록 허용되었다. 덕분에 아틀란타 한인교회 근처에 있는 한인 마트를 어슬렁대다 돌아왔더니 탁구와 족구 경기는 끝나 있었다. 경기 결과는 연감과 기감이 1:1 상황이었다. 마지막 종목인 배구 시합은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구경하기로 맘 먹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친선 경기이니 누가 이겨도 좋겠으나 남편이 연감 쪽 선수로 뛰게 되었으니 당연히 연감을 응원했다.

9명의 선수가 참여하는 9인제 배구가 시작되었다. 배구공이 날아가고 튕겨지는 곳으로 눈길이 바쁘게 따라다녔다. 목사님들이 재주가 많으신지 배구도 잘 하셨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팀이니 팀 플레이 보다는 각자가 열심히 경기하는 모습이었고, 그 중에서 좀 더 기술적으로 잘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빠르고 힘차게 날아온 공을 가볍게 받아서 공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때론 힘차게 내리꽂거나 때론 살짝 네트를 넘겨 점수를 획득할 때마다 구경꾼들은 환호와 박수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공을 살려낼 때도, 갑자기 자기 앞으로 날아오는 공을 민첩하게 받아낼 때도 선수들은 박수를 받았다. 선수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3 세트 경기를 했고, 연감이 이겼다. 올해 수련회 친선경기에서는 전체적으로 연감이 이기게 되었다.

구경꾼들은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하고 선수들은 물을 마시며 흩어지려고 하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40, 50대 나눠서 경기해 보자고 제안하셨다. 이 제안은 연감과 기감 목회자들이 섞여서 경기하자는 말씀의 다른 표현이었던 것 같다. 경기가 재미있게 진행되었다. 연령대가 높으신 목사님들은 배구 기술이나 경기에 임하는 열정이 젊은 세대에 뒤지지 않으셨다. 하지만 힘은 좀 부치시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공이 네트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옆에서 50대 목사님 편을 응원하시던 사모님 한 분이 경기를 하고 있는 젊은 목사님께 애교 섞인 항의를 하셨다.

살살 좀 하셔~”
이건 경기에요.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거에요.”

젊은 목사님께서 짐짓 진지하게 대꾸하시는 모양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았는데 다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젊은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귀에 쏙 들어왔다.

힘 조절 하는 것도 능력이에요.”
맥락 없이 들린 말이긴 한데 이 말이 자꾸 되뇌어졌다.

공을 잘 받아내는 상대 선수를 향해서는 강한 스파이크로 공격하고, 연세 많으신 선수를 향해서는 퉁퉁 튕겨 공중에 띄워 힘 빠진 공을 넘겨주기도 하고, 공을 서비스 할 때도 점수를 내기 위해 잘 받아내지 못하는 선수 쪽으로 스리슬쩍 보내기도 하고…… 이런 걸 두고 힘 조절 잘 한다고 하는 것이리라.

내 눈에는 배구 경기를 하고 있는 양팀 선수 열 여덟 명 모두 힘 조절하는 능력은 다르지만 힘을 다해 경기를 하고 있었다. 심판은 어느 팀이 이겼는지 정확한 판가름을 하려고 힘을 다하고 있었다. 환호하는 구경꾼들은 경기에 집중하면서 선수들을 응원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주변을 맴도는 구경꾼들도 저마다의 이유에 힘을 쓰고 있었다. 운동신경이 둔하고, 융통성이 없고, 순발력이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무기력해 보이고 존재감 없는 나라는 사람은 구경꾼으로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데다가 힘을 싣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쓸데없는 군더더기 힘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힘을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어딘가에 사용하고 있었고, 적어도 그 시간은 각양 각색의 힘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멋지다!

2013년 세밑이다.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는 어디에 힘을 쏟아야 할까…… 

12/19/2013

믿고 기다리는 연습




몇 주 전 아침이었다. 뒤뜰이 내다보이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여는데 이상한 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뭐지?, 하며 얼굴을 창문 가까이에 대고 좌우로 살펴보았다. 이런! 옆집 J 아주머니네 울타리 일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그 울타리는 왕복 2 차선 도로 쪽에 쳐진 것으로 우리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울타리가 하나로 쭉 연결되어 있으나 집집마다 자기 땅에 해당하는 부분의 울타리를 각각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이 있는 쪽은 동네를 둘러싼 울타리만 있을 뿐, 집과 집 사이 경계되는 곳에 울타리를 치지 않고 산다. 그래서 뒤뜰에 나가면 옆집 뒤뜰과 다 연결되어 있어 엄청 넓어 보인다. 그래도 남의 집 뒤뜰로 걸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J 아주머니네 울타리가 부서져 크고 작은 나무 조각들이 우리 뒤뜰에까지 날라온 것이다. 그리 굵지 않아도 제법 잎이 많이 달리던 나무 하나도 부러졌다. 길가 쪽에 서 있는 전봇대 보호판도 부서져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울타리와 나무, 그리고 전봇대 보호판까지 상한 걸 보면 바람에 넘어진 것 같지는 않다. 이곳에 그리 오래 산 것은 아니나 그렇게 심한 바람이 부는 걸 아직 보지 못했다. 남편은 밖에 나갔다 오더니 자동차가 들이받은 것 같다고 했다.

옆집 J 아주머니는 홀로 사시는데 몸이 많이 아프시다. 이웃이 되어 처음 만났을 때 지팡이를 많이 의지하고 계셨고 말소리에도 힘이 없으셨다. 그런데 요즘에는 몸이 더 안 좋아지셨는지 간호보조사들이 돌아가면서 거의 24 시간 아주머니를 돌보고 있다. 병원도 자주 가시는 듯 하다. 그런데 집 울타리까지 말썽이다. 아주머니가 많이 속상하실 것 같았다. 경찰이나 보험회사 직원들도 만나야 할 테고…… 아니면 아프신 분이니 누군가 돕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국 생활이 몸에 베인 내가 느끼기에 미국 사람들은 일을 서둘러 하지 않는 것 같다. 일을 처리 하는 기간이 명시된 것은 그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다. 별 거 아닌 일로 판단하고 일찍 일이 해결될 거라고 기대했다가는 속만 태우기 십상이다. 정해진 시간을 다 채운 후에야 일이 마무리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한편, 일 처리 기간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는 경우는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 잊어버리고 있어야 한다.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여기는 비가 많이 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에도 꽤 굵은 비가 심심치 않게 내렸다. 그러다 보니 뒤뜰 한 쪽에 빗물이 땅 속으로 미처 빠지지 못해 웅덩이가 길게 생겼다. 웬만하면 하루 정도 지나서 물이 빠지고 잔디가 원래대로 회복이 된다. 그런데 올 여름에는 비가 연이어 내린 탓인지 배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물웅덩이가 생기는 것을 알고 있는 친절한 A 아주머니는 동네 관리하는 업체에서 사람이 오기로 했다고 전해주셨다(A 아주머니는 동네 일을 보고 계신 듯하다). A 아주머니에게 그 얘기를 듣고 비가 몇 번이 더 왔는데 관리 업체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물웅덩이는 점점 커졌고 며칠을 지켜보아도 물이 빠지지 않았다. 둘째 아이도 물웅덩이가 눈에 거슬리는지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는 모기 같이 생긴 벌레들이 많다고 걱정을 했다. 나는 물웅덩이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동네 관리하는 곳에 이메일을 보냈다.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면 연락 달라고 했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면서 비는 자주 내리지 않았고 물웅덩이도 점차 줄어들어 흔적이 없어지도록 그것을 살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홍수가 난 것도 아니고, 비록 오랜 시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인 빗물이 사라지기는 했으니 관리 업체에 독촉하기가 어정쩡해졌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남편은 기다려 보라, 고 하니…… 이메일을 보내놓고 물웅덩이가 그대로 있는 동안은 이메일의 받은 편지함을 확인할 때마다 약간 짜증이 났었다.

어느 날 운동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웬 청년들 서넛이 우리 집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동네 관리하는 사람들이 온 것이다. 관리회사에 이메일을 보낸 지 두 달 반이 지난 때였다. 자기네는 배수관을 살펴보러 온 사람들인데 어디에 물이 제일 많이 고이냐고 물어왔다. 이 사람들을 반갑다고 해야 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될지……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좋은 사람은 내 쪽이기에 찍어둔 사진을 얼른 보여주었다. 리더인듯한 청년은 사진이 있어서 문제가 무엇인지 얼른 알 수 있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물웅덩이가 생기는 곳에 배수관을 새로 묻어 빗물이 동네 도로 쪽으로 빠지게 공사하겠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앳돼 보이는 젊은이가 상냥한 태도를 보이는 바람에 어이없던 마음은 정말 어이없게도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일이 이런 식으로 아주 더디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들을 몇 차례 경험한 바가 있는지라 J 아주머니네 울타리는 언제쯤 고쳐지려나, 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저 성탄절 전에 울타리가 복구되어 아주머니에게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사고가 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전봇대를 교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주민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빠르게 일을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한 열흘쯤 지나고 나서는 넘어진 울타리와 나무를 치우고, 또 며칠이 지나 새로운 울타리가 뚝딱 생겨났다. 예상보다 일찍 울타리가 복구되어 내 기분이 다 좋았다. 아주머니의 마음도 편안해지셨을지……

삶을 정성껏, 천천히살아가고자 하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편인데 요즘은 조급증이 생긴 것 같다.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 호르몬이 바뀌어 그런지 모르겠다. (주로 나와 가족과 관련된 일- 이렇게 사족을 달아놓고 보니 비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우주가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을)이 내 맘처럼 진행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짜증이 난다. 마음이 불안하고 화를 내도 일이 해결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줄 알면서도, 부정적인 감정들을 들쑤셔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호르몬이 바뀌어서 그런 거라면,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조절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봐야겠다. 삶의 자리가 바뀌어서 조급증이 생겼다면, 이곳의 문화와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응급상황이 아니라면 믿고 기다리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 일이 처리되는 과정을 다 알 수 없어도 해결될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마음은 평안할 것이다

12/12/2013

엉성하고 느슨한 성탄축하예배


2012 성탄축하예배






추수감사절이 지나자마자 라디오에서는 캐럴을, 텔레비전에서는 성탄이 소재가 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어떤 채널에서는 이런 것들을 하루 종일(!) 듣거나 볼 수도 있다. 내가 사는 미국 동남부,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눈을 거의 볼 수 없고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면 겨울철인가 보다 할 정도의 날씨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카푸치노가 담긴 컵에 손을 녹이며, 커다란 창 밖으로 내리는 함박눈 속에서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친근한 눈길로 바라보며, 아련히 들려오는 캐럴이 성탄절기를 보내고 있으며 곧 한 해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은 영화 속에나 등장할 법하다. 같은 동부인데도 북쪽은 요즘 눈 폭풍이 휩쓸고 있고 정부가 셧다운할 정도라고 하니, 눈이 마냥 낭만적이지 않고 재해인 곳도 있어 안타깝기도 하다. 하여튼 추운 계절에 듣는 캐럴은 기분을 달뜨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지난해에도 올해처럼 캐럴을 즐겨 들으며 성탄 장식이 자주 보이는 미국 영화도 가끔 찾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골 교회에서 성탄절 연극(?)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내레이터가 성경 본문을 읽으면 교인들이 그걸 몸으로 표현했다. 말은 필요치 않았다. 아주 소박해 보이는 성탄극이었다. 하지만 극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맞는 의상을 그럴듯하게 차려 입었고 소품도 아기자기 하게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연극이라는 것이 대사를 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대사가 없는 연극이라니 우리 교회에서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성탄을 기뻐하는 마음을 담아, 성경 말씀을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의미를 두고 진행이 되었다. 목사님은 성탄과 관련된 성경 본문을 찾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셀별로 이야기를 나누어 맡았다. 영화에서처럼 대부분 내레이터가 본문을 그대로 읽어주면 셀원들은 몸으로 본문을 표현했다. 때로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간단한 대사가 들어가기도 했다.

몸으로 표현하는 성탄이라는 의미를 계속 강조했으나 성탄 때마다 들어온 말씀을 그대로 읽고 표현하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성극인데 잘 참여하시려나 아주 조금 걱정했다. 그런데 성극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60 , 70 세 넘으신 분들이 맡은 역할을 잘 표현하기 위해 서로 조언해주며 하하 호호 즐겁게 극을 꾸며갔다. 96 세나 되신 할머니 권사님께서도 참여하셨다. 와우! 극중 의상도 솜씨 좋은 분들은 만들기도 하고, 언젠가 성극할 때 입었던 옷을 찾아오신 분도 있고, 이집트 여행할 때 사두었던 옷을 가지고 오신 분고 계셨다. 성극에 참여하지 않는 교인들은 대부분 찬양이나 연주 등으로 준비를 했다.

성탄주일 예배는 우리가 준비한 모든 것을 발표하는 것으로 드려졌다.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예배를 드리다가 자기 순서가 되면 무대에 나가서 자기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었다. 연습한 시간도 길지 않았고 대사도 없는 성극은 예상대로 어설펐다. 무대 위에 올라가 서로의 자리를 정하느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내레이터 맡으신 어느 집사님은 평상시에도 혼자 잘 웃으시는데, 이 날 어떤 장면에 눈길이 가셨는지 웃음을 참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셨다. 교인들 모두가 미소를 머금은 채 예배를 드리는 동안 성탄의 기쁨이 슬그머니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듯 했다. 이 날 성탄예배는 엉성하고 느슨하면서도, 화목한 분위기로 드려졌다.

올해 성탄축하예배는 지난해와 구성은 비슷하나 성극이 대사가 많아졌다. 이번에도 주인공들은 60 대 중반 되신 권사님들이다. 지난해보다는 각자 좀 더 열심히 준비 중이신데 서로 만나서 연습하는 시간이 적은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느 권사님은 대사를 못 외우면 극본을 보고 하면 되고, 틀리면 그게 더 재미있는 거라고 하신다. 연세 많으신 권사님들이 성탄 축하에 기꺼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성탄예배가 좀 엉성하고 느슨하면 어떤가! 그 엉성하고 느슨한 빈 틈을 따라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곳으로 인도할 유난히 밝고 시린 별빛이 흘러 들어오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 별빛을 따라 거친 들판을 걸어가는 목자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다.   

 




12/05/2013

영혼의 불꽃을 일으킨 한 단어, 순수


즐겨 걷는 길가에 서있는 오래된 참나무(Oak)다. 
나무 이름이 참(!) 좋다.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주일에 교회를 거의 안 빠지고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선생님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 했다. 성경 구절을 외우라면 외우고, 찬양을 예쁘게 부르라고 하면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교회 선생님들은 나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고 나는 더 열심히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따랐다. 어린 나에게 교회는 유익하고 즐거운 놀이터였다.

교회 선생님으로부터 성경 말씀과 그들의 신앙 태도를 여전히 배우면서, 중학교 2 학년 때부터 나도 교회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어서 청년들도 많았는데 어린 나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어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고 그 맡겨진 일을 얼마나 잘 감당했을까, 돌아보니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늘 흥분되고 도전이 되었다. 아마도 교회는 나에게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꾸게 해준 곳이었던 것 같다.

교회 안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귀찮은 일들이 있다. 행사준비, 청소, 식사준비, 설거지, 예배 후 뒷정리…… 난 무슨 생각이었는지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마치 나의 일인 양 참 잘도 했다. 그때의 마음을 기억해보면 칭찬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생색을 내려고 한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냥 남들이 잘 안 하려고 하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되는 것이고 그런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었다. 개신교와 천주교, 뭐 이런 개념이 없던 어린 시절에는 난 수녀가 되어야 하나 보다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이 밖에도 나의 모교회는 내 삶의 태도나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고등학교 3 학년이 되어 가고 싶은 대학을 고르기 전까지 신학대학이라는 학교가 있는 줄 몰랐다. 난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세상 지식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신학대학이라는 존재를 알고 나서 어떤 길이 하나님을 위해 더 잘 일할 수 있는지, 일 년 동안 밤 9 시만 되면 교회 있는 곳을 향하여(왜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더 정성스럽다고 여겼는지…… 나의 과거지만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물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 더 헌신하길 원하시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 증거로 대입 학력고사 점수를 몇 점을 달라고 내 맘대로 정했다. 학력고사 결과가 나왔는데 점수는 기도하던 것에서 일 점도 어긋나지 않는 딱 떨어지는 그 점수였다. 난 망설임 없이 신학대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일반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던 기대를 저버린 딸에 대한 부모님의 분노도, 친척들과 친구들이 찾아와 신학대학 가는 것을 말리는 충고도 이미 확실한 증표를 가진 내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면접이 있었던 날이다. 교수님은 왜 신학대학을 왔냐고 물으셨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하나님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 라고 대답했다. 난 교회가 좋고 교회를 위해서 뭔가 더 잘 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원서 접수를 할 때 신앙고백을 적어 내는 것이 있었다. 난 거기에 사도신경을 적어서 냈다. 그 보다 더 좋은 신앙고백문이 있을 수 없다는 고매한 생각에서가 아니라 신앙고백이라고는 사도신경 밖에 몰라 그걸 적은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 보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교수님은 내 대답과 신앙고백문을 보고 어찌 생각하셨는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웃으시며 나중에 교수님 자신의 아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셨다(교수님의 두 아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을 통해 그 아들을 소개받는 일은 없었지만 교수님은 재미있는 기억 하나를 만들어 주셨다). 신학과 180 명 신입생 가운데 다섯 번째의 꽤 괜찮은 성적으로 입학을 했다.

성실한 교회 언니에서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고, 20 여 년 전부터 목사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교회와 더불어 신앙생활 하면서 기쁘고 은혜롭고 감사한 일들과 슬프고 황당하고 괴로운 일들이 참으로 많이도 찾아왔다가 사라지곤 했다.

숲길을 걸으며 남편과 새해에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 이야기 하게 되었다. 야트막한 산 속을 한 시간 반 이상 걷다 보면 수다를 많이 떨게 된다. 이 날은 이야기가 흘러 흘러 교회와 관련된 나의 어린 시절을 더듬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남편은 당신의 순수함을 보시고 이 길로 이끄셨나 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이 발에 밟혀 부스러지는 나뭇잎 소리에 섞여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남편은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신의 그 순수함을 회복해야 될 때 같은데.”
순수함?’
머릿속에서 반짝하는 불꽃이 튀었다. 일정한 주제도 없이 떠들어댄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나의 순수함을 읽어준 남편이 예뻐 보였다. 동시에 미국으로 와서 느슨해져 있던 기도의 끈을 다잡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이가 어리든 나이가 들어가든 순수하게 살 수 있다. 어릴 때는 세상에 물들지 않아 그 자체로 순수한 상태라면 나이가 들어서도 사사로운 욕심이나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는 순수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미국으로 온 뒤로 난 자꾸 순수와는 거리가 먼 속물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낯선 현실이 불안하게만 여겨졌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성경 가방 속 깊숙이 밀어두고, 한 달의 수입과 지출에 맞추어 모든 것이 숫자로 표현되었다.
당신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아니야,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떡할 거야!”
남편과 이런 주제로 때때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나에게도 순수한 구석이 있었노라 남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동안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을 때의 마음가짐도 보통 때보다 순수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불안과 걱정, 지식과 경험, 선택과 방법, 손해와 이익 계산을 다 떠나 보내고, 앞으로 열려질 모든 가능성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그 어떤 것을 주셔도 그것은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모형인 가족과 교회를 위한 응답을 바라는 마음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해주시리라 믿고 마음을 텅텅 비우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시켜 주셨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드릴 기도의 키워드를 찾아냈다. 바로 교회다. 미국에 온 뒤로 목사는 교회라는 일터에서 월급 받는 고용인 같다는 느낌이 많았다. 난 그 고용인의 월급으로 살림을 사는 아내일 뿐이고 말이다. 누구도 이렇게 얘기한 사람은 없다. 그냥 나의 시답잖은 느낌이다. 이런 느낌도 불필요한 것이므로 흘러 보내려 한다. 그저 나는 교회를, 교인을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 말대로 혹여 교회를 사랑하는 나의 순수함을 보시고 지금의 자리로 이끄셨다면, 그래서 빈 마음으로 다시 교회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우리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 소망이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