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2009

비스킷 구우며


다음 주가 봄방학이라는 얘기를 다시 한번 기억나게 해주자 잠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나 학교에 가는 강산이를 저도 기분 좋게 배웅하고 들어왔습니다.
아침에 먹을 빵(biscuit)을 구워보려고 합니다.

지난 주 한국학교 교사들 아침 간식으로 조그맣고 동그란 빵을 주셨습니다.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나고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으면 맛있다며 선생님들이 두어 개씩 가져가셨습니다.
저도 빵에 잼을 대충 발라 교실로 가져와서는 수업이 끝나면 먹으리라 생각하고 한쪽에 밀어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 올 때까지 자료를 정리하며 수업 준비하고 있는데 빵 냄새가 얼마나 맛있게 나는지 밀어둔 그릇을 다시 끌어왔습니다.
하나를 뚝딱 먹고는, 하나 더 가져올 걸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1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은 특별활동 하러 다른 장소로 갑니다.
그 시간에 우리 잎새반 선생님들과 조교들이 한 교실에 모여 수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 교실에 갔는데 비스킷이 또 눈에 띄었습니다.

옆에 계신 선생님께 빵 맛이 괜찮다 했더니 집에서 구워먹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요?”
그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 가운데 더 신기한 것은 반죽이 다 되어있어서 오븐용 쟁반에 떼어 놓고 굽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 음식 가운데는 요리하기 편하게 되어있는 상품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빵 반죽도 있다니 빵 좋아하는 저에게는 솔깃한 정보입니다.
이곳 사정에 밝지 않은 저를 위해 어디서 팔며 상점의 어느 위치에 가면 있을 거라는 자세한 설명도 해주셨습니다.

아침에 얼른 잠자리에서 일어나지지 않을 때 빵하고 커피 마실 생각을 떠올리면 잠을 깨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오늘은 특별히 미국 마트인 크로거(Kroger)에 가서 사온 비스킷을 굽고 막 내려 만든 커피를 마시려고 합니다.

비스킷 반죽이 들어 있는 캔 표지를 살펴보니 오븐을 375℉로 예열한 후에 11~15 분쯤 구우라(bake)고 써 있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오븐은 어떻게 예열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뉴얼도 없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갈비를 한번 오븐에 구워본(broil)적이 있어 비슷한 방법으로 버튼을 눌러보았습니다.
bake 버튼을 누르자 온도가 100℉부터 시작을 합니다.
동그란 밀가루 반죽을 하나씩 떼어 담은 쟁반은 오븐 안에서 맛있는 비스킷이 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금 지나니 온도가 점점 올라갑니다.
‘아, 저렇게 온도가 높아지는구나’ 하는데 오븐 위로 연기가 솔솔 올라옵니다.
조금 이상합니다.

오븐을 열고 보니 비스킷 아래쪽이 벌써 검어졌습니다.
예열이 충분히 되고 나서 쟁반을 들여놨어야 하는데, 온도가 오르면서 열기가 올라오는 비스킷 아랫부분이 다 타버렸습니다.
웃음이 납니다.
조그만 빵 이름이 비스킷 이라는 것도 알고, 가게에 가서 사와서, 오븐을 사용할 줄 몰라 다 태워먹고 이른 아침에 우두커니 그걸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잠깐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꼭 시커먼 제 마음 속 같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여느 때와는 달리 점점 말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먼저 하고 말하려고 해보지만 어느 상황에서는 정리되지 않고 걸러지지 않은 생각들을 말하게 됩니다.
남들과 비교 하는 말들, 의심, 미움, 물질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 명예욕....
점잖은 척 어디 구석에 가라앉혀 놓았던 것들이 대화 가운데 한 번씩 휘저어 주면 여지없이 떠올라 제 마음뿐 아니라 관계까지도 시꺼멓게 할 가능성이 많은 말들입니다.

이미 타버린 빵을 어쩔 수 없듯이, 말도 입술을 떠나면 다시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븐을 예열해서 그 열을 적절하게 사용하듯 자신의 생각을 잘 읽어서 고마움이나 기쁨, 슬픔이나 분노도 표현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되려나 봅니다.
다행인 것은 제 안에 남아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알아채니 감사할 뿐입니다.

한 면이 타버린 비스킷을 뒤집어 마저 구워봅니다.
다 익혀서 타지 않은 비스킷 안쪽을 떼어 먹어보니 먹을만 합니다.
남편은 더 적극적으로 탄 것을 잘라버리고 남은 것에 잼을 발라 먹습니다.
고맙습니다.
먹을 곳이 남아 있는 비스킷이 고맙고,
그걸 찾아내 먹어주는 남편이 고맙고,
이 상황을 고마워하는 저한테 고맙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