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2024

걷다 보면




폰차트레인 호수는 뉴올리언스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호수는 담수와 소금물이 섞인 소금호수로 분류되는데 미국에서 번째로 크다. 제일 소금호수는 그레이트 솔트레이크로 유타 주에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폰차트레인 호수가 가까운 줄은 알고 있는데 자동차로만 지나다녀서 거리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의 이웃집 여인은 폰차트레인 호수까지 걸어서 오가며 호숫가를 따라 쌓아놓은 둑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같이 걸읍시다, 제안했었다. 나도 걷는 좋아하지만 한여름 더위를 뒤집어쓰고 나면 맥을 뻔하므로 대꾸를 못했다. 아직도 낮기온은 초여름이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햇빛과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 드디어 함께 걷기로 했다.

걷다 보면 몸의 감각의 살아난다.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화끈거린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고 콧물도 흐른다. 그럴 때면 교회 선생님이 주셨던 자크 상페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 여지없이 떠오른다. 쉽게 얼굴이 빨개져서 곤란했던 소심한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었다.

양손가락이 구부리기에 갑갑하도록 부어오른다. 오랜만에 걸으면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경험이 있으니 그것 역시 별일 아니다.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뻐근하다. 아마도 몸이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모양이다. 앞으로는 몸의 힘을 좌우로 균일하게 분배한다고 생각하며 걸어야겠다. 걷기는 몸을 세밀하게 느끼는 시간이다.

걷다 보면 탐험가가 된다. 자동차로 빠르게 이동해서 도통 걸어볼 기회가 없던 길들을 걷는 것은 흥미롭다. 거리마다 붙여 놓은 이름을 불러가며 분위기를 음미하다 보면 거리와 친해진다. 거리의 옆으로 늘어선 집들이 가지각색이다. 1960, 70년대 지어진 오래된 집들이라 그런지 정겹다. 앞마당을 가득 채운 할로윈 유령 장식, 꽃과 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진 화단, 외벽의 이끼가 벽돌 살펴볼 것들이 잔뜩 있다. 구경만 해도 지루할 틈이 없다. 다만 남의 집을 엿보는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흘끔거려야 한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말이다.

같이 걷는 여인은 과실수에 관심이 많다. 이집에는 감나무가 있고 저집에는 대추나무가 있다고 알려준다. 길가에 서있는 일본 자두나무 앞에서는 향기가 상당히 달콤하다며 코를 들이댄다. 나도 그를 따라 나무가지를 끌어와 냄새를 맡아보았다. 피는 시기가 아니라 향기가 흥청거리지 않아 아쉬웠다. 올리브 나무도 찾아냈다. 연둣빛, 자줏빛 그리고 검은색에 이르는 올리브 열매가 졸망졸망 한가득 달려 있다. 익은 것으로 하나씩 맛을 보았다. 열매를 곱씹고 조금 지나자 익숙한 올리브 맛이 났다.

걷다 보면 소리의 존재를 깨닫는다.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가운데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한다. 현관문을 나서는데 까마귀가 거친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퉁명스럽기 짝이 없다. 까마귀들이 앞에 있는 소나무 주위를 맴돌다가 나와 마주친 것이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돌아가는 부모들의 자동차 행렬이 길다.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골목길에서도 자동차들이 쌩하고 달아난다. 할아버지가 앞에 물을 뿌려 빗질을 하신다. 깔끔한 할아버지의 손끝에서 싹싹 빗자루 소리가 리듬을 탄다.

호수길은 넓은 길과 좁은 길이 나란히 뻗어 있다. 넓은 길로는 순찰차와 자전거가 다니고 좁은 길은 사람들이 걷는 길인가 보다. 사람은 어느 길로 다녀도 상관없지만 자전거는 넓은 길로만 지나다닌다. 넓은 길을 걷다 보면 자전거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번은 빠르게 다가오는 말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았다. 자전거에 중년의 여성과 남성은 자전거 속도를 맞추어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간다. 낭만적인 소리의 여운이 길었다.

걷기는 공간과 시간을 몸에 기록하는 행위다. 사람과 자연과 주변 환경에 대한 기억이 어느 구석엔가 보일 쌓인다. 걷는 속도를 잠시 늦추어 바라본 풍경이 주는 평화와 위로를 언제든 꺼내 있다. 싱그러운 아침 햇빛이 비추는 길이든 어둠을 불러올 석양이 붉게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길이든 좀더 걷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걷기는 단순한 활동이지만, 속에 담긴 낭만과 혜택은 생각보다 크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9/30/2024

깊고 긴 호흡


@구글 이미지


이웃집 결혼식 잔치에 가야 해서 머리를 깎기로 했다. 뉴올리언스에 있는 미용실 방문은 처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한인 미용사가 있고, 한인들이 즐겨 찾는 베트남 미용사가 있다. 나는 한인 미용사에게 먼저 가보기로 했다.

한인 미용사, J 카톡으로 연락이 되었다. 나는 카톡에서 J 프로필 사진을 열었다. 굵은 물결 무늬의 머리카락과 윤이 나는 머릿결은 헤어 디자이너답다고 생각했다. 짧은 머리 커트할 약속 시간을 정하고 미용실의 이름도 알아 두었다.

오전 10 예약시간에서 15 전쯤 미용실에 도착했다. 월요일 아침이라 손님이 많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이미 머리를 깎고 있는 사람들과 대기 중인 사람들. 보행보조기를 의지한 할머니와 목발을 짚은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과 푸석한 얼굴을 아저씨들이 애용하는 오래된 동네 미용실 느낌이 들었다.

넓은 공간에서 명의 미용사가 머리를 깎고 있었다. 카톡에서 J 보이지 않았다. 미용사들이 나를 흘깃흘깃 보더니 아무도 아는 척을 해주지 않아 대기석에 자리를 잡았다. 미용실 안에 한인은 나뿐이고,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단골손님인 것처럼.

미용사가 자기 손님을 보내고는 눈짓으로 나의 주의를 끌더니 이름을 물었다. 나는 이름을 알려주고 그가 묻지도 않은 말도 덧붙였다. J에게 예약을 했다고 말이다. 나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마음이었나 보다. 그는 아무 대꾸도 없이 컴퓨터만 두드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J 아직 출근을 했거나 미용실 어딘가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예약 시간이 살짝 지났다. 내가 미용실에 있다는 것을 카톡으로 알리는 것이 좋을 같았다. 안녕하세요. 미용실에 까지 글자를 입력하다가 그만 두었다. 급한 일도 없는데 만남에서 인내심 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셀폰 화면을 끄고 대신에 깊고 호흡을 반복했다.

마음이 차분해지자 미용사들 아시안으로 보이는 사람이 혹시 J인가, 의아했다. 나는 J 카톡 프로필 사진을 다시 펼쳤다. 사진 , 미용사 얼굴 , 찬찬히 살펴보아도 J 아니었다. 미용사의 분위기로 보아 베트남 사람 같았다.

1975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남베트남이 패망하면서 거기에 살던 사람들이 미국으로도 이주했다. 뉴올리언스는 베트남과 기후가 비슷하고 바다와 인접한 곳이라 그들이 정착할 만한 곳이 되었단다. 그들 커뮤니티가 점점 커져서 지역 사회에서 그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뉴올리언스에 베트남인이 많다는 이유가 아시안 미용사를 그들 사람으로 짐작하게 했다.

아시안 미용사도 그의 손님을 보내고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J 기다리고 있다고 다시 덧붙였다. 그는 담담한 얼굴로 자기가 J라고 말했다. 미용실에 J 둘인가? 아주 잠깐 헷갈렸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그는 , 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그때까지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목소리에 공손함을 담아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J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앉을 자리로 안내했다. 앞에 있는 커다란 거울로 J 얼굴을 다시 살펴보았다. 사진에서 얼굴이 찾아지지 않았다.

, 카톡 사진과 달라 보여요 말이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실례인 알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수의 정도를 줄이기 위해 호흡을 길게 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의 질문이 재미있다는 J 곡선이 부드러워졌다. 사진 십몇 사진이라 그래요. 그리고 남편이 베트남 사람이라 한국말을 많이 잊었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이는 J 나와 비슷했다.

머리 깎는 내내 우리는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오래전 뉴올리언스로 이민와서 처음 다녔던 교회가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라고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리의 연결점이 많아졌다. J 영어 억양은 그대로라도 한국말로 점점 길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