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2025

평화가 온몸에 스며들다





9월의 마지막 , 우리는 뉴욕 북부에 있는 메이플릿지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했다. 나의 가족은 그곳에 번째 방문이었고, 여행을 함께 4명의 교우들은 처음 방문이었다. 2000년에 <브루더호프의 아이들> 읽고, 공동체는 아이들 교육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23, 이상향을 실제로 목격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나의 아들은 브루더호프를 경험한 이후로 거기서 일하며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이번 기회에 연세 많으신 교우들은 공동체에 사는 노인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 같았다. 우리는 브루더호프를 방문하기 전에 브루더호프와 관련된 여러 책들 권씩을 읽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책은 브루더호프를 설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공동체로 사는 이유>였다. 얇고 작은 판형의 책이지만 신앙적 영감을 주는 글들이 알차게 들어 있다.

에버하르트(1883~1935) 어릴 적부터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친구로 지냈다. 에버하르트가 열여섯 , 목사인 삼촌과 구세군의 어떤 대표자가 만나서 친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 대화 속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며, 그는 내적 변화를 겪는다. 그런 , 에버하르트는 중산층의 사교 생활을 거부하지만 브레슬라우대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에버하르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에버하르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공동체로 존재하기에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길은 현실과 인간 개성으로 인해 위험과 고난이 따른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길을 걷을 있는 힘을 얻는다. 하나님은 현실을 극복하는 사랑의 힘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은 현실 보다 강한 분이기 때문이다.

에버하르트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교를 믿고 고백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역사 속에서 짧게 존재했지만 영향력은 여러 공동체에 미치고 있다. 공동체는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 누구도 공동체의 소유가 아닌 어떤 것을 따로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공동체가 소유한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1920 독일 자네츠에서 시작한 브루더호프는 올해로 창립 105주년을 맞이했다. 브루더호프는 그동안 나치의 탄압이나 공동체 내부 분열 같은 치명적인 위험과 괴로운 고난의 걸어오면서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해 왔다. 그들은 공동체 초기부터 있었던어린이들의 공동체, 농장 , 정원 , 건축 , 수공예, 출판, 방문객과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체험하며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런 기회를 가질 있음에 감사했다. 교우들은 한결같이 속에 있다가 나온 같다고 털어놓았다.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한인 박성훈 님이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제목처럼 정말 이상한 나라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신선한 충격은 반나절도 지나 찾아온다고도 표현했다. 미국 안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다른 나라가 있는 같다고도 말했다. 점심 공동 식사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어느 공동체 멤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래였는데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자 은은한 화음이 이루어졌다. 노랫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천국의 소리가 있다면 이와 같을 거라는 소감에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교우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연세가 많으시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모습은 역시 인상적이었다. 돌보는 같지 않게 돌보는 일상의 모습.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 세밀한 보살핌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그런 모습일 없다고 우리는 얘기했다.

브루더호프는 미국, 독일, 영국 여러 나라에 3,000 정도의 멤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영월에서도 2022 브루더호프가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미국 브루더호프의 방문객 대부분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공동체에서는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브루더호프가 하나님을 믿으며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유를 조금은 것도 같다. 진정한 섬김, 나눔, 화해, 평화를 이루려는 그들의 삶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스며드니 말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9/12/2025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모든 것의 가치를 숫자로 측정하는 인간 사회에서 <자연은 계산하지 않는다> 제목은 삶의 흐름에서 잠시 멈추어 돌아보라고 채근하는 같았다. 책의 원제는 서비스베리(The Serviceberry). 서비스베리라는 이름도 처음 보았거니와 번역한 제목과 사뭇 달라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저자 로빈 키머러에 대한 소개도 눈길을 끌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엄마라는 단어. 남성에 대비되는 개념이 아닌 관계를 나타내는 어휘다. 뒤이어 아메리카 선주민 출신 생태학자라고 소개한다.

키머러는 시티즌 포타와토미 네이션의 일원인데, 그들은 서비스베리를 베리 중에 최고로 취급한다. 키머러는 맛을 이렇게 알려준다. 블루베리님 맛이 나는 열매에 사과님의 묵직한 크기, 은은한 장미 , 오도독 씹히는 작은 아몬드 씨앗을 두루 갖춘 열매. 달콤하고 낭만적인 맛일 같다. 사실 키머러는 서비스베리의 맛을 알려주려는 것보다 서비스베리가 담고 있는 의미 때문에 책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서비스베리는 포타와토미어로 보자크민이라고 부른다. 단어에는 선물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서비스베리는 대지에게서 받은 선물로, 그것을 먹고 나누는 새나 인간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이룬다. 키머러는 이러한 선물 경제의 화폐는 관계라고 말한다.

선물 경제는 감사와 나눔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자의 이웃, 샌디는 글라디올러스 줄기 조림병, 호박, 붉은감자를 공짜라는 팻말과 함께 앞뜰 탁자에 내놓는다. 다른 앞뜰에서는 자신이 필요한 양보다 많이 갖고 있는 살림살이를 나눈다. 공짜 나눔을 하는 키머러의 이웃들은 여전히 시장 경제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선물 경제에 참여하기도 한다. 키머러는 상호부조, 지역 선물 경제, 돈이 오가지 않는 품앗이, 협동 농장, P2P 대출 등은 풍요와 나눔의 기쁨을 토대로 부의 재분배 체계라고 생각한다.

키머러는 선물 경제가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나눔의 규모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경제가 여전히 작동하지만 선물 경제도 발전시킬 있다고 강조한다. 경쟁보다 협력을, 쌓아두기보다 나누기를, 선형적이 아니라 순환적인 경제를 이루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공공도서관이 있다. 키머러는 공공도서관의 개념과 실천을 숭배한다. 공공도서관은 도시 규모에서 실천되며 공동 소유 개념이 이뤄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원, 산책로, 그리고 문화 경관 등도 공공도서관처럼 소중한 공유 자원이다.

오래전부터 키머러는 기뻐하는 사람이 이긴다고 믿고 있다. 나의 이웃들도 텃밭이나 뜰에서 거둔 선물을 기쁨으로 나눈다. , 깻잎, 고추, 대추나 오디도 있다. 비록 작은 텃밭에서 거둔 열매지만 흥미롭게도 자연은 여럿이 나눌 만큼 넉넉하게 내어준다. 가게에서 배추나 무라도 필요 이상의 것은 기꺼이 나누곤 한다.

키머러의 서비스베리를 읽고 나니 나의 이웃 J 멀베리(오디) 얘기도 하고 싶다. 가지마다 오디가 주렁주렁 열리면 J 그것을 가라고 알려준다. 오디를 따는 일은 즐겁다. 통통하게 영근 오디를 먹으면 오디의 달콤한 즙이 입속에서 부드럽게 터진다. 알씩 먹기도 하고 여러 알을 모아 번에 털어 넣기도 한다. 입이 온통 자줏빛으로 물든다. 건강한 오디를 먹어 즐겁고 공짜라 즐겁다.

오디를 어느 정도 따다가 그만두려고 하면 J 바람이라도 불면 떨어지고 만다며 어서 따라고 고운 소리를 한다. 멀리서 새들이 우리를 지켜본다. 새들도 우리와 오디를 나누는데 불만이 없는 같다. 어차피 뽕나무의 높은 달린 오디는 그들의 몫이니까. J 나눠준 오디를 번에 먹을 없어서 일부를 얼려두었다. 멀리서 사는 둘째 아들에게도 얼린 오디를 나눠주었다.

아들은 멀베리(그는 멀베리라고 부르는 것이 편한가 보다) 받고 얼마 , 그의 친구들과 블루베리를 따러 농장에 갔다. 더웠을 텐데, 열린 하늘을 보며 땅을 딛고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찾아내다니 아들이 제법이다. 아들은 친구와 함께 블루베리와 멀베리로 잼을 만들었다. 나는 아들이 만든 베리베리 잼을 사진으로만 맛보아서 아쉬웠다. 하지만 아들이 그의 이웃들에게 잼을 선물하며 누렸을 기쁨을 생각하니 아쉬움보다 흐뭇함이 컸다. 풍요로운 삶의 비밀을 엿보는 같았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