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2026

밝은 밤





새해 첫 소설책으로 <밝은 > 읽었다. 책을 선택한 이유가 가지 있다. 첫째는 <쇼코의 미소> 최은영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쇼코의 미소> 지난해 읽은 소설로, 희로애락을 다양한 미소로 표현해서 흥미로웠던 책이다. 둘째는 여성 4대에 걸친 이야기라는 소개가 마음을 끌었다. 여성으로서 공감하는 이야기일 같았다. 셋째는 표지 때문이다. 일몰의 분홍빛으로 물든 바다 풍경이 나의 삶터와 닮았기에 눈길이 머물렀다.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 강과 호수 습기가 많은 곳이라 물방울에 반사된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 표지의 빛이 눈에 익숙했다.

이야기는 바닷가 작은 도시, 희령에서 시작한다. 소설 , 지연은 작년에 이혼을 했다. 짙은 어둠과 같았던 곳을 뒤로 하고 그는 희령 천문대로 일자리를 찾아간다. 그렇게 지연은 희령의 아파트에 살게 되고 거기서 할머니를 만난다. 엄마와 함께 만났던 할머니를 서른두 살이 되어 다시 만난다. 지연과 할머니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서로를 알아본다.

할머니는 지연이가 그의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며, 자연스럽게 지연의 증조할머니의 삶을 들려준다. 증조할아버지는 박해 받았던 천주교 신자였고 증조할머니는 백정의 딸이었다. 시대에는 부부가 되기 어려웠던 사람은 고향을 떠나 개성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이웃인 새비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있다. 증조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는 똑같이 딸을 낳는다. 여인의 자매애는 그들의 딸들이 노인이 때까지 이어진다.

가족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피난하면서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증조할머니 가족은 희령에 정착하고, 새비아주머니는 대구에 살면서 관계를 이어간다. 지연은 할머니 기억 속에 담긴 오랜 이야기를 들으며, 멀고 답답하게 느꼈던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이해한다. 관계에는 시대의 흔적이 깊게 남아있음도 알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쇼코의 미소>에서 미소로 인생을 표현했다면, <밝은 >에서는 기억이 그것을 담아낸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없는 것처럼 사람의 안에도 측량할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가족의 역사를 듣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이민자로 살면서 가족을 만날 기회가 적다 보니 바람이 바람으로 끝나버리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소설에서 이웃과의 깊은 관계가 인상적이었다. 그런 친한 이웃은 친절과 헌신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 알려주었다. 생활에서는 이웃이 관계의 거의 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교회와 지역 한인사회 안에서 만나는 이웃이 소중하다. 하지만 소설 증조할머니와 새비아주머니처럼 관계의 밀도가 높은 이웃을 사귀는 것은 꿈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이웃을 만났다.

뉴올리언스로 이사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여러 사람이 있었다. 앞집 아주머니 가족이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을 환영한다는 인사를 건네며 종이 쪽지를 나에게 건넸다. 가족 구성원의 이름과 애완견 마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전화번호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국에서 주문한 교회 달력이 우리 집으로 배달된 적이 있다. 룻은 무거운 것을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도록 현관 가까이 옮겨 놓았다. 우리 가족이 집을 비운 같으면 거리에 내놓은 우리 쓰레기통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집을 나서다 마주치면 손을 들어 소리로 인사를 한다. 룻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우리에게 다가와 뺨을 맞대고 인사를 나눈다. 나의 아들에게는 이름을 불러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룻의 푸근한 다정함은 오래 기억될 같다.

감사하게도 나의 이웃들 중에는 룻처럼 다정한 한인들이 있다. 내가 아는 그들은 하늘의 빛을 닮아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어우러져 살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고 미국의 밤도 밝힐 있다면 좋겠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12/19/2025

부자 달리기




“아빠 요즘도 뛰어? 다른 주에 사는 둘째 아들에게서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어, 일주일에 3~4. ?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이 어떤 달리기 대회 안내문을 보내며 다시 물었다.

 “땡스 아침에 5마일 할래?

“그래 하자~ 남편은 바로 결정했다.

둘째 아들, 윤은 추수감사절에 우리 집에 와서 여러 머물다 돌아간다. 지난해 추수감사절에 윤은 운동복과 러닝화를 챙겨 왔다. 하루에 번씩 동네를 돌고, 폰차트레인 호숫가를 달리고, 시티 파크에 가서 달렸다. 쉬는 날이면 먹고 뒹굴 대던 윤이 아니어서 아주 신선했다. 윤은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그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달리기 대회에 종종 참여한다. 달리기 대회에서 완주하는 쾌감이 있는지 즐기는 같다. 올해는 뉴올리언스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윤과 남편은 함께 달리기 연습을 했다.

윤이 찾아낸 달리기 대회는 118th NOAC TURKEY DAY RACE 2025. 대회는1907년에 설립된 뉴올리언스 애슬레틱 클럽이 주최한다. 비마라톤 대회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지속적으로 열리는 경주 하나다. 추수감사절에 열리고 여러 세대가 참여한다. 대회 수익금은 루이지애나 주에서 척추 갈림증(Spina Bifida of Louisiana) 가진 개인과 가족을 위해 사용한다.

대회는 명절 아침 8 30분에 시작한다. 시티 파크에 있는 경기장 근처에서 출발하여 5마일을 달려 경기장 안에서 끝나는 경기다. 참가자가 3,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시간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벌써 주차 공간마다 자동차들이 빼곡하고 거리마다 사람들로 활기찼다. 기온이 떨어져 쌀쌀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같았다.

사람들이 점점 출발선 근처로 모여들었다. 나는 남편이 조금 걱정되었다. 남편은 평상시 3.5마일 정도를 달린다. 5마일은 달리지 않았다. 남편은 익숙한 흐름을 깨고 새로운 흐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익숙한 편안함에 저항하며 끝까지 달릴 힘을 분배하길 바랐다. 나는 남편에게 힘들다 싶으면 걸어서 천천히 오라는 말로 속마음을 전했다. 아들이 같이 달리니까 그나마 맘이 놓였다.

나는 첫째 아들, 산과 부자가 벗어 놓은 옷가지를 챙겨 경기장 안으로 이동했다. 결승선이 보이는 관중석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약속했다. 산과 슬슬 관중석 가까이로 다가갔다. 어머! 벌써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광판은 겨우 24분이 지나고 있었다. 어떻게 달렸기에… 남녀노소, 유모차를 미는 엄마 선수들이 줄지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장에는 캐스터의 힘찬 멘트가 둥둥 떠다녔다. 관중들은 선수에게 짧은 환호를 보낼 차분하게 경기를 즐겼다.

나는 경기장 입구에 눈길을 고정했다. 산에게도 아빠와 동생이 들어오나 보라고 말해 두었다. 여러 사람과 섞여 있어도 식구들 모습은 얼른 분별할 있을 거라 믿었다.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사람을 발견하고 우리 가족의 역사적 순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부자는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윤은 나를 발견하고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남편은 3마일까지는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3마일을 지나고 나니 호흡이 안정되고 리듬감이 생겼다고 했다.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남편의 유쾌감이 내게도 전해졌다. 남편은 아들이 있어서 끝까지 달릴 있었다고 덧붙였다. 윤은 달리면서 땀과 콧물까지 흘리는 아빠를 살폈나 보다. 든든한 아들이다.

추수감사절에 달리기라니, 정말 감사가 절로 나오는 조합이다. 달릴 있는 건강, 응원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으니 말이다. 어디 뿐인가. 함께 달리거나 걷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된 나무와 땅과 하늘의 응원도 있다. 부자가 달리기한 소식을 들은 몇몇 이웃은 내년에는 그들도 뛰고 싶다고 그랬다. 그들은 평상시에 몸을 단련하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므로 이런 경주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산은 자기도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래 걷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들이 뛰고 싶다니 뭐라고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걷기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으나 산에게 5마일은 너무 길다. 그래도 달리기 코스를 산과 함께 한번 걸어봐야겠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