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2004 - 목사 새끼, 새끼 목사

목사 새끼? 새끼 목사?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을 가리켜 하는 말인듯 싶은데 귀로 들어만 봤던 말을 막상 글로 옮겨보니 그 말의 느낌이 참 강하네요.

"아유, 내 새끼 장하다" 할 때는 정겹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목사 새끼, 새끼 목사'는 목사 자신이 자기의 자녀를 속마음과는 다르게 속되게 표현한 말 같습니다.
그 말에는 뭐랄까, 목회자 부인인 제 편에서 볼 때 안쓰러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우리 가정에도 목사 새끼가 둘 있습니다.
열 두살 강산이와 아홉살 강윤이.
지난 주에 강윤이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에서 발표회가 있었습니다.
강윤이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발표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온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멋진 연주를 해냈습니다.

강윤이가 피아노 치는 것을 처음 보신 할머니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지셨습니다.
둘레둘레 찾아보니 학원 아이들끼리 앉아있는 강윤이에게로 어느새 다가가 뭔가 속삭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발표회가 다 끝난 다음에도 "우리 강윤이 근사하다. 제일 멋졌어!"하며 얼굴을 보듬어 주십니다.
강윤이는 자판기 음료수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조금 참았다가 집에가서 물 먹자'고 했을텐데 "그래? 얼마야? 500원? 600원?" 합니다.
할머니, 아빠, 엄마가 동시에 주머니와 지갑을 뒤지며 동전을 찾습니다.

"우리 저녁 뭐 먹을까?"강산이와 강윤이는 입을 맞추어 "피자!" 합니다.
"좋아, 할머니가 강윤이 축하하는 기념으로 피자 산다!"

강윤이가 피아노 배운 지 2년 남짓.
지난 달에 바이엘 끝내고 체르니 100번을 시작했습니다.
4권으로 된 바이엘을 마쳤을 때에도 떡과 요구르트를 사들고 학원으로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책떨이를 했었습니다.

강윤이가 피아노 레슨받고 발표회 하는 것을 맘껏 지지해 주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강윤이가 뭔가를 '꾸준히' 배우고 익혀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그저 대견해서,그리고 피아노를 배우는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그 목표는 바로 예배를 돕는 피아노 반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이 다음에 되고 싶은 꿈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려온 그림은 뜻밖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있는 한 사람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어림잡아 알듯도 했으나 강윤이에게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그것도 몰라! 넥타이 매고 있는 거 보면."
"목사님?"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옆으로 흘겨보며 "...."

강윤이의 표현대로 장래희망이 목사랍니다.
내 표현대로 하자면 우리 집에 새끼 목사가 하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에서 어느 누구도 강윤이에게 목사가 되라고 한 사람이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윤이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습니다.

일년 반 전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남편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목사가 될 거야. 두고 봐."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있는 남편의 모습이 좋아 보이면서도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목사 둘 다 남편의 영향이 미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강윤이가 상장을 받아왔습니다.
'봉사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시켜서 한 것인지 지가 스스로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리가 아픈 친구를 날마다 도와주었나 봅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한 아들 강윤이와 형 강산이를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이들의 엄마로서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는 사람되도록 양육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목사 새끼로, 새끼 목사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목사 가정에 태어난 아이라고 해서, 꿈이 목사라고 해서 항상 점잖고 겸손하며 무엇이든지 양보하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열 두살, 아홉살 된 꿈많고 개구쟁이인 사내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라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갈 때, 하나님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과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끈기있게 나아가는 사람이 되길, 조용히 기도로 돕는 어미가 되고 싶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 119: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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