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2007 - 가만히있으렵니다/친구들에게 감사를


어느새 세밑에 와 있습니다.
돌아오는 주일부터 대강절이 시작되면 곧 성탄절이 되고, 거기서 몇 일이 더 지나면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될 것입니다.
시간의 끝과 시작을 예배로 모이는 송구영신 예배 순서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올 해의 말씀'을 뽑는 시간이 있습니다.
문득 지난 3년 동안 제게 주신 말씀을 보니 모두 사랑과 관련된 구절들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요일3:18/05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06년)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1:22/07년)

제비 뽑듯 많은 말씀 카드 가운데 내 손에 잡힌 말씀이기에 그 의미를 나름 헤아려 보곤 하면 늘 두렵게 느껴졌습니다.
제 사랑의 그릇이 작음을 알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다가오거나 이런 저런 관계가 이어지다 보면 친밀해지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제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어디쯤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저에게 “사랑하라”는 말씀을 주실 때마다 사랑의 그릇을 넓히라는 명령처럼 들렸습니다.
살아온 대로 살지 말고, 애쓰고 힘써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부담스러웠습니다.

얼마 전 대학 여동기 모임이 있어 갔더랬습니다.
목사가 된 친구들은 주로 기관에서 일하고 있고,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공부를 더 하는 친구도 있고, 목사인 남편과 더불어 동역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데 목사 남편과 동역하면서 자신의 달란트대로 어린이 부흥강사를 하는 친구가 껄껄 웃으며 한 마디 합니다.
“나 같은 게 사모 안했으면 어땠을까 몰라. 교회 안에서 저 잘났다고 잘난 척만 하고 목사한테 들이받기나 하고. 그래서 사모 시키셨나봐.”
아무도 거기에 대꾸하는 친구가 없습니다.
저마다 마음에 품은 이런 고백들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사모된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쨌거나 매일 새벽기도도 하고 예배 시간마다 예배하니 말이예요. 아마 사모 안됐으면 게을러서 그렇게 못했을거야” 하는 어느 사모님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면 저한테는 사랑하라고, 뜨겁게 사랑하라고 목사 아내 되게 하셨나본데 아직도 저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는지 몰라 헤매고 있나 봅니다.
목회 생활 17년차가 되다 보니 조금 나아진 면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차분하다, 조용하다, 침착하다, 소극적이다....
이런 평가에 익숙한 제가 목사 아내가 되어 제일 어려웠던 것은 교우들에게 전화하는 것입니다.
교우들의 개인적인 일이나 교회 일과 관련된 것이나 일일이 만나는 것도 아니고 전화로 확인하고 권면하고 하는 것인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전화해서 안부 묻는 것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일 얘기만 딱하고 끊기도 그렇고, 기도 부탁 받으면 뭐라고 권면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목회 초기에 비해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교우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고, 한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지체로 느껴보고, 얘기를 잘 들어주되 마음으로 해보려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제가 해 놓고도 여전히 겸연쩍은 것들도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먼저 아는 체하기, 눈 마주치고 인사하기, 궂은 일 마다하지 않기 따위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즐겁게 하고 그 뿐이라 여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반응이 차갑게 느껴질 때는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어디 구석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관계 맺음이 어려울 때도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돼 있다’ 믿으며 친절함을 잃지 않으려 했고, 이런 것들이 저의 1차 집단인 교회 안에서 사랑함이었습니다.

지나간 몇 달을 돌아볼 때 저에게 주신 사랑하라는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명령처럼 여겨져 지켜야만 하는 의무였나 봅니다.
더 사랑하지 못함에 자의 타의로 느끼는 죄의식과 내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상대방을 사랑한답시고 미워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런 제 자신을 관찰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제 자신을 변호하려는 욕망이 일어남을 봅니다.
인격의 성숙, 그거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만히 있기로 마음먹습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일이 되는대로 잠자코 따라가 보렵니다.
한편 가만히 지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기대해봅니다.
어느 목사님이 쓰신 책에 심리학자 롤로 메이(Rollo May)가 말한 것이 여러 번 인용되어 있어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것이 다 지나가지 않고 새 시대가 도래하지 않은 전환기에 필요한 것은 창조하는 용기(Courage to Create)"라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창조하는 용기를 갖기 위해 순결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든 저기든, 마른 자리건 진 자리건, 하라시는대로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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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살아갈 힘을 준 모든 친구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지난 10월 끝자락부터 보름 동안 미국에서 만났던 오랜 벗들-정확히 말하면 제게는 거의 선배님이시죠-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그 곳에 있는 동안 받은 환대는 오랜 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식사, 편안한 잠 자리, 추억에 담아갈 곳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려는 열의, 멋진 노래, 조금은 외로워 보였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들....
지금 생각해도 눈물나도록 감동입니다.




그리고 20대 전반에 배움을 함께 했고 삶의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긴 설명 필요없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학 동기들이 있어 고맙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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