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9/2007 - 엠마오에 다녀와서


“SWE 15기 마리아 테이블 이은주 자매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아래에는 엠마오라 할게요)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는 마지막 멘트였습니다.

우리 가족을 사랑과 친절로 늘 보살펴 주시는 목사님의 추천으로 엠마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가고 싶은 사모님이 있으면 추천해 보라고 하셔서 서너명 알아보았더니 이미 경험을 했거나 전도사인데 사모가 아닌 친구이거나 시간이 없거나....
그래서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또 추천해 주신 목사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남편이 데려다 준다고 하여 엠마오가 열리는 감리회 교육훈련원인 일영연수원에 도착해 보니 1시간쯤 시간이 남아있었습니다.
요즘 남편이 공부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아내 이야기 1시간 들어주기가 있었는데 그 동안 저에게 이야기 듣는 것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야기할 마음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숙제하듯이 들이대서 제가 얄밉게 거절하곤 했습니다.
남편은 1시간의 여유를 확인하고서는 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엠마오에 오면서 평안, 행복 담을 넉넉한 마음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 터라 웃음 한번 웃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5년 단위로 끊어 25살까지 이야기를 엮다보니 45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남편은 시계를 보고 있었는지 그 다음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라고 합니다.
기억을 되짚어가며 얼굴 벌개지며 얘기하고 있는데 나중에 듣자고 하니 조금 맥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모임에 늦지않게 마음을 쓰고 있던 남편의 배려와 엠마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을 얼른 바꾸고는 배낭을 메고 연수원 건물 앞쪽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건물을 돌아서는 순간 그 낯설음이란....
군데군데 사람들이 모여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건물을 따라 늘어놓은 의자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죽 앉아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 등록하는 곳까지 2,30미터 걸어가는 동안 아주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배정된 방에다 가방을 두고 나와서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어찌나 서먹서먹 하던지요.
‘아, 이래서 같이 갈 사람 있느냐고 하신건가? 이 낯설음을 어쩌지? 건물 뒤편으로 다시 가있을까? 시간이 다된 것 같은데’ 하고 있는데 저쪽에 몇 번 뵈었던 목사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번 영성훈련의 첫 번째 과제는 낯설음을 극복하기다.
아니 사람들과 친밀해지기다.’
그 목사님에게 다가가서 혹 나를 기억 못하실까 싶어 내가 누구인지를 알리자 기억을 더듬어 알아보십니다.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물어주시고 현재 장애우와 관련된 사역하고 계심도 차분히 설명해주셨습니다.
장애우와 함께 하는 사역은 우리 부부의 꿈이기도 한데....
그래서 내 걸음이 목사님에게 끌린 것 같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강화에서 목회할 때 같은 지방에 계시던 목사님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사모님과는 학교 다닐 때부터 잘 아는 사이인지라 얼른 가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엠마오 기간 동안 그 사모님을 뵐 수도 있다고 하시니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제 수첩에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 ‘적극적인 나’가 주는 기쁨 누리기”라고.

엠마오로 가는 길을 함께 갈 테이블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둘러보니 테이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여성 이름들로 되어 있고 마리아 이름도 있습니다.
얼마 전 여성회관에서 영어 회화 공부할 때 닉네임을 만들라고 하여 마리아로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마리아” 하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어머니로서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며 한편으로는 성령으로 잉태되는데 기꺼이 응답한 당당한 여성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또 영어 회화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마리아가 얼마나 자주 나오던지 부르기 편한 이름인 것도 분명합니다.
이래저래 마리아에 마음이 끌리고 있는데 그 테이블에 속한 사람 가운데 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날 묵상 시간에 마리아에 대한 본문을 읽어주실 때는 마치 저의 영혼을 깨우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첫째 날을 시작하여 시간 시간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사랑과 섬김이 이어졌고 엠마오 72시간이 물 흐르듯이 지나갔습니다.

엠마오를 마무리 하는 시간에는 아직도 주님께 저를 고스란히 내어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얼마나 울었던지 이번에는 울지 않고 웃으면서 은혜를 경험해 보자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동이 살짝 살짝 밀려왔지만 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깨물었습니다.(웃음 조금)
그러나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완악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울든지 웃든지 은혜 주시는대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을 제 멋대로 은혜를 편집한 것입니다.
고집스런 제 모습을 또 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고 다듬어 주시며 끝까지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엠마오 여정이 끝날 무렵 15기 팀멤버들로부터 받은 메세지는 저를 설레이게 했습니다.
사랑으로 축복하는 메세지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앞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봐주신 목사님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후배로 기억해 주신 분과 오랜만에 만난 선배 부부의 따뜻한 격려에 제 가슴은 벌렁벌렁 했습니다.
영성훈련이라는 귀한 사역을 하시는 분들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요.
또 다른 사역의 비전을 보여주시는 것인지....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설레임은 쉽게 가라앉질 않습니다.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긴 호흡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겸손히 그리고 남편과 협력하여 순종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1: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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