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8/2005 - 모내기


밖이 우중충 합니다.
비는 오지 않으나 옅은 회색 구름이 하늘에 한가득입니다.
바로 이런 날씨가 딱입니다.
강화 망월 부모님도 "음~ 아주 좋아" 하고 계실 것입니다.
뜬금없이 흐린 날 타령을 하는 것은 커피나 한 잔 마시며 감상에 젖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날이 모내기 하기에 또는 모낸 다음에도 좋다는 농심(農心)을 흉내내 본 것입니다.

어제 그제는 망월부모님을 도와 모내기를 하였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하는 일을 오랫만에 한지라 몸이 말이 아닙니다.
허리는 말할 것도 없고 팔뚝이며 허벅지가 결리고 당깁니다.
옆집 아빠도 저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좀 어떠세요?"하고 문안을 여쭈니 "괜찮다" 하십니다.
"괜찮기는... 온몸에 파스로 도배를 하셨다" 엄마의 고자질입니다.
아빠의 딸 사랑은 대단해서 "딸이 못일어났을테니 가서 얘들 챙겨서 학교에 보내" 라고 엄마에게 부탁하셨답니다.

남편은 새로 산 이앙기에 앉아 운전하는 일을 했기에 덜(?) 힘든 것 같습니다.
남편은 이앙기 뿐 아니라 경운기, 트랙터도 잘 몹니다.

옆집 엄마는 "결혼하면서부터 해마다 이렇게 도왔니?" 물어보십니다.
"이렇게 힘든 일은 잘 안시키셔. 어쩌다 하는거지."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은 "이 사람아,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거야" 합니다.
학교에 갔더오면 쓰레질 하고 물 위에 떠있는 지푸라기 건져내는 일을 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새삼 남편이 다시 보였습니다.

아빠와 저, 남편은 몸 상태가 보통 때와 같지는 않지만 힘들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일하고 계실 망월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 초에 모내기를 하신다기에 이미 힘든 모내기를 경험해본 터라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등하교는 옆집 엄마가 맡기로 하셨습니다.
아이들 책가방이며 옷을 미리 챙겨 옆집에서 자고 학교에 가기로 했습니다.
애들은 할머니네서 잔다고 하면 그저 좋아합니다.


모내기 첫 날.
새벽기도 갔다와서 아침을 일찍 먹고 강화에 도착해 보니 아버님 어머님은 벌써 논에 나가 계셨습니다.
우리는 모판을 떼어 못자리한 논 둑에 올려놓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여럿이 할 때는 옆사람에게 넘겨주면 되니까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앙기 운전하러 가고 어머님은 떼어놓은 모판에 약주러 가시고 나머지 세 사람이 할려니까 발이 쑥쑥 빠지는 논을 헤집고 걸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장화는 왜 이리 크고 미끄러운지 논 속에 박혀 계속 벗겨집니다.
모판 나르랴, 플라스틱 판으로 모를 판에서 분리하랴 ,이앙기가 되돌아오면 올려주랴, 다 쓴 모판 날라 정리하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발만 안빠져도 좋겠는데 쓸어놓은 논을 걸어다니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결국은 논에서 걷다가 장화는 흙 속에 남아있고 발만 쏙 빠져나와 흙으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양말을 벗어버리고 장화를 신으니 오히려 덜 미끄러지고 걷기도 수월합니다.

너무 힘들어 하니까 어머님은 다른 논은 들어가지 않고 둑에서 모를 내어주면 되니 덜 힘들 것이라고 소망을 주십니다.
'그 동안 사람이 밀고 다니는 이앙기로 모를 낸 남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올 해 망월부모님은 큰 맘 잡수시고 두 집이 어울려 이앙기를 새로 장만하셨습니다.
사람이 올라 앉아 운전을 하는 것으로 운전자는 모가 모자라면 보충만 해주면 됩니다.
또 전에는 4줄 씩 모가 심겼는데 이제는 6줄 씩 심깁니다.
더 비싼 이앙기는 8줄도 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얘기나 신앙 얘기를 곧잘 들려주시는 어머님은 이앙기를 어떻게 바꾸게 되었나를 잠깐 쉬는 틈에 들려주십니다.
그런데 듣다보니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섣부를지 모르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앙기 하나 바꾸면 모판도 바꾸어야 하고 모판에 씨넣는 기계도 바꾸어야 합니다.
농사에 필요한 기계는 이것 말고도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가 있어야 합니다.
논 갈 때 트랙터를 쓰고 트랙터 한 부분을 바꾸어 벼베는 콤바인 기능을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기계를 만들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수지가 안맞아 안만드는 것인지.

점점 허리 펴기가 힘들어지고, "이럴 땐 그거 한잔 있으면 좋은데" 하시며 눈을 찡긋해 보이시는 아빠와 이앙기 위에 앉아있는 남편은 안경이 흘러내려 코끝에 걸려있는데도 올릴 생각을 안하는 걸 보니 오늘 많은 시간 일을 한듯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은 일과 관련된 말씀 밖에는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순간 내일은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이틀에 걸쳐 해야 할 일을 오늘 조금 더 하고 내일은 반나절만 하자고 하십니다.
'으아~~'

돼지갈비, 조기구이, 두부, 달걀찜, 보신탕 혹은 추어탕 혹은 조갯살 넣은 미역국-각자 선택- 따위의 단백질 식품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기운을 차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강윤이가 특종이 있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자기는 예절상을 탔고 형은 질서상을 탔다는 것입니다.
"대단한데"
"그럼 뭐 사주면 안돼?"
"뭐? 아이스크림?"
"응. 그게 내가 바라던 바야. 마음이 통했네."
남편은 전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문닫을 시간이 다 된 마트를 향해 차선을 위반해서 U턴을 합니다.
마송에서 제일 큰 마트에 정차해 남편은 선뜻 내리더니 아이스크림을 3통이나 들고 나옵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자기가 두고 먹으려는 것인지 아이들에게 안길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내기 둘쨋 날.

내일 온다는 비가 어찌 앞당겨졌는지 오늘 오후부터 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부디 비오기 전에 모내기를 끝내기를 바랐습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아버님은 먼저 모를 심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아버님은 남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아빠와 모판을 나르러 가셨습니다.

사돈지간에 이렇게 긴 시간 어울려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님은 농부로 아빠는 노동자로 생업을 삼으셨고, 아버님은 장로님이시고 아빠는 교회에 겨우겨우 나가는 초보신자입니다.
아버님은 격식을 그다지 따지지 않는 편이고 아빠는 그렇지 않습니다.
일하시는 내내 서로 예의를 지키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논에 모내기를 하고 있는데 빗방울이 제법 떨어집니다.
우리는 바람도 막을 겸해서 비옷을 챙겨입었습니다.
비가 오다 말다 합니다.
널찍 널찍 떨어진 곳에 예닐곱 사람이 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이정도 비는 아랑곳하지 않나봐요." 했더니 아빠는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했잖아" 하십니다.


못자리에서 마지막 모판을 가지고 오신 아버님은 비옷을 입은 우리를 보시더니 오히려 이런 날이 모내기에 좋다고 하십니다.
"모내고 3일은 솥단지를 끼고 도망간댜. 무슨 뜻인지나 아냐?" 아버님이 물어보셨습니다.
여직 들어본 속담에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뭐라고 뭐라고 설명은 하신는데 그 뜻이 얼른 이해가 안갔습니다.

어머님에게 다시 여쭈어 보고서야 "아하!" 했습니다.
어머님은 '모내기'를 말하자면 모가 못자리에서 논으로 시집간 거라고 하셨습니다.
모내기를 하고난 3일 동안은 옮겨 심은 모가 힘이 없고 비실비실해 보인답니다.
그런 논을 보면서 이걸로 먹고 살기는 힘들겠다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 가버린다는 말이랍니다.
그러니 모내기 할 때나 모낸 다음에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불지만 않는다면 날이 흐리거나 비가 조금 오는 것은 오히려 모에 좋다는 것입니다.


*******
아까보다 밖이 환해졌습니다.
내다보니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시원스럽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강윤이에게 물어보니 바람이 세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도 남은 일을 하고 계실 망월부모님에게 좋은 날씨가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신5:16)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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