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2024

멀어도 가까운





모처럼 아들이 사는 조지아 동쪽으로 길을 나섰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시작하여 다섯 주를 거쳐가는 여정이었다.

우리가 지나던 고속도로는 온통 베인 풀의 신선함으로 가득했다. 고속도로 갓길과 중앙 분리대 잔디 위에는 잔디 깎는 기계를 장착한 트랙터가 엄청 많았다. 어느 곳에는 여덟 대가 대씩 나란히 움직이며 풀을 깎았다

어디는 대가, 어디는 대에 개의 잔디 깎는 기계를 매달고 작업하고 있었다. 풀은 깎여 나가면서도 이렇게까지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다니, 가는 나로서는 풀과 그것을 다듬는 일을 하는 분들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아들이 사는 도시에 가까워지자 해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달큰한 꿀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유로운 기운이 가득한 듯했다.

드디어 고속도로를 벗어났고 아들 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출구 주변에서 흔히 있는 주유소가 나타났다. 친숙한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는 같아 그것 마저도 반가웠다.

날씨는 화창하고 도로는 막힘이 없어 힘들이지 않고 아들네 도착했다. 자동차로 10 시간 걸리는 거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들이 집밖으로 나와 포옹으로 아빠와 , 그리고 엄마를 맞이했다.  아들 얼굴을 보니 그냥 좋았다. 밤이 깊어져 자리에 들었는데, 낯선 자리가 주는 선잠을 피할 없었다. 하지만 정도 피로감은 아들을 만난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들네 가면서 뭔가 선물을 하고 싶어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은 실내 식물을 달라고 대답했다. 의외였다.

아들이 우리 집에서 이사 나갈 내가 키우던 식물을 준다고 했더니 질색하였다. 자신이 그것을 가져가면 죽일 것이 뻔하다며 극구 사양했다

나는 집안에 초록빛 생명이 있으면 보기에도 좋고 공기 정화도 해주어서 좋다는 이유로 아들을 설득했다. 아들은 못이기는 척했고, 나는 지지플랜트 화분 하나를 아들에게 안겨주는데 성공했다.

아들은 꼼꼼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식물을 맡겨도 걱정은 되었다. 자신이 식물을 보살피는데 서툴다는 것을 아니까 나름 키워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애쓸 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화분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새싹이 나와서 줄기가 커다랗게 뻗었는데 어떻게 세워줘야 하느냐, 화분 공간이 빽빽한데 괜찮냐며 식물 소식을 가끔 전해주었다.

아들네 도착한 다음 , 실내 식물을 사러 농원에 갔다. 아들은 나에게서 받은 지지플랜트를 분갈이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화분에 뿌리를 나누어 심고 싶은데, 엄마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나는 그래 그러자, 담백하게 대답했다. 아들의 변화를 기특하게 여기는 나의 마음은 실내 식물과 화분 갈이에 필요한 물품을 선물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나는 실내 식물을 보기에 좋은 중간 크기로 사려고 했더니 아들은 작은 것을 선택했다. 작은 것부터 키워보고 싶다며.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피스 릴리와 골든 포토스를 골라주었다.

하나 화분, 아프리칸 바이올렛도 선물했다. 이것은 전에 지인에게서 받은 것을 번식시킨 것이다

지인에게 받았을 때는 손톱만한 이파리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이 되니까 잎이 진초록이 되면서 넓어졌다. 그리고 보라색과 흰색이 섞인 꽃이 한참 동안 피어 기쁨을 주었다. 나는 화사한 기쁨을 아들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분갈이를 뒤뜰에 그늘 지는 시간을 골라 시작했다. 겨우 화분 몇개를 다루는 일이고 단순한 과정의 분갈이인데도 아들은 일에 관심있게 참여하였다. 자신의 화분이라 그런지 시켜도 투덜대지 않고 자발적으로 움직였다. 녀석의 변화에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식물을 다루는 놀이가 아주 즐거웠다. 아들도 식물을 돌보는 내내 즐겁기를 바란다. 실내 식물을 키우는 일이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지구 환경을 해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실천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가볍게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었다. 아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야 했고 남은 식구들은 뒷정리를 하고 길을 떠나기로 했다. 다음번에는 아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

8/03/2024

혼잣말이 모이는 자리




하루 동안 수많은 혼잣말을 한다. 혼잣말은 생각 속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소리 내어 말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음성으로 내뱉는 혼잣말은 에너지가 강해서인지 기억도 된다.

자동차를 타고 어느 만큼 가다가 차고문을 내렸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번은 여행을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들어서는데 차고문을 내리지 않은 같은 불안감이 갑자기 몰려들었다. 여행 내내 불쑥불쑥 떠오를 불안보다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확인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런 경우는 보통 차고문이 닫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보고 집에 돌아왔는데 차고문이 열려 있는 경우는 있어도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차고문이 닫히는 끝까지 지켜본 후에 닫았다! 소리를 내어 혼잣말을 한다. 말을 했다는 자체가 행동이 완결되었다는 신호를 뇌에 전달하고 차고문과 관련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다.

어느 이웃들과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자주 사용하는 혼잣말을 너도나도 끄집어 내었다. 혼잣말을 하는 사례가 펼쳐질 때마다 수긍하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맞장구를 치거나 박수를 치며 웃거나 비슷한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하는 표정을 보였다.

A 애완견에게 질문 형식으로 혼잣말을 퍼붓는다고 했다. 아프니? 좋아? 맛있어? 나갈까? 개가 사람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훈련된 반응이 보이면 기쁘기도 터이다. 그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감정을 순화하거나 다스리는데 도움이 같다.

B 무생물에게 말을 걸며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있다. 부엌에 가서 냄비를 찾으면서 '냄비가 어디 있지?'라고 묻는다. , 여기 있구나! 냄비를 마주하고 다시 혼잣말을 건넨다

냄비를 찾다가 보이면 주님, 그게 어디 있죠? 라고 신에게도 말을 건다. 생각을 정리해서 냄비 있는 장소를 기억하는데 도움을 주는 혼잣말이다.

혼잣말의 사례는 그뿐 아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이웃은 손님을 앞에 두고 계산하다가 받았나? 혹은 이거 얼마였지? 때가 있단다. 그러면 물건을 들어서 가격표를 다시 확인한다

이것은 상황을 얼른 환기시켜서 대처를 하려는 혼잣말이다. , 어떤 이는 해보자! 어떻게 하면 있지?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일깨우는 혼잣말을 맘속에서 되뇐다고 말을 보탰다.

세바시에 출연한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은 혼잣말이 상대를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경우는 실제 상황에서도 강요하고 조정하려는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건강한 혼잣말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건강하다는 의미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태도다.

우리들의 혼잣말은 자신을 살펴서 이야깃거리로 내놓고 함께 웃을 있으니 건강한 혼잣말 아닌가 싶다. 서로 동질감도 느끼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대화로 나아가고 있다.

C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C 평생 동안 실수한 가운데 하나가 남편과 만나서 결혼한 것이라고 이웃들 앞에서 말했다. 그의 남편이 곁에서 듣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C 혼잣말로 정리한 생각을 선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심각한 선언을 듣고도 뒤따를 이야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하루는 부부가 말다툼을 했단다. C 남편은 가출을 했다. C 날이 어두워지자 남편에게 무서워. 얼른 들어와 라고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부터 C 남편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남편은 월마트에 가서 카트를 밀고 돌아다니며 일부러 집에 늦게 들어갔다. 남편이 밤늦게 집에 도착해보니 C 대문 앞에 앉아서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남편의 혼잣말이 해피엔딩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 감탄했다. 70 중반의 부부는 서로 츤데레다. 츤데레는 상대방에게 겉으로는 엄격하지만 속마음은 애정이 넘치는 사람을 일컫는 요즘 말이다.

혼잣말이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기울이며, 혼잣말을 꺼내 놓을 때마다 동의와 지지가 담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모임이 끝나도 대화의 여운이 자꾸 미소 짓게 한다. 고독을 즐기며 혼잣말 연습하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야겠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