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아이고, 눈물부터 난다. 요 며칠 아들 산이가 툭툭 내놓는 말들이 마음에 쌓이더니 어디론가 쏟아내야 했나 보다. 다시 눈을 감고 도대체 왜 눈물이 나는지 묻고 또 묻는다.
지난 6월 말, 우리 가족은 뉴욕주에 있는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4박 5일 동안 방문했다. 20여 년 전 책 「브루더호프의 아이들 A Little Child Shall Lead Them」에서 그 공동체를 알게 되었고, 브루더호프에서 16년 전부터 사는 박성훈 님이 지난해 발간한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를 읽고 공동체를 경험하고 싶은 구체적인 소망이 생겼다. 박성훈 님과 최순옥 님(이하 박 Park 가족)이 먼저 우리 집을 다녀갔고 이번엔 우리가 그들을 만나러 달려갔다.
브루더호프에서 지낸 며칠은 자유롭고 평화스럽고 꿈같았다. 그들은 우리 같은 손님이 그들의 일상인양 자연스럽게 대하였고 우리에게도 어떤 부담이나 꾸밈이 필요치 않았다. 소박한 생활, 각자 역할에 따른 일과 쉼, 그리고 전체 모임은 강물같이 유유히 흘러갔다.
그들은 일을 가르쳐 줄 때도, 자신을 소개할 때도, 우리에게 질문할 때도, 집 앞을 오가다 만날 때도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또한, 전체가 모일 때마다 부르는 노래의 화음은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공동체가 위치한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멀지 않은 곳에 허드슨강이 흘러 포근하면서도 멋스럽다.
브루더호프는 자급자족하기 위한 몇 가지 비즈니스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어린이 가구를 만드는 커뮤니티플레이띵스(Community Play Things)다. 나도 그 일을 경험하기 위해 거기에 갔다가 산이가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공중에 매달린 도구를 끌어다가 나사를 조이는 듯했다. 그런 일을 해 본 적 없는 녀석의 뒷모습에서 왜 그렇게 진지함이 뿜어져 나오던지 내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산이는 맡겨진 일이 할 만했는지 틈만 나면 일하고 싶다, 고 반복해 말했다. 산이가 그 일에 대해 엄청 적극적이어서 흥미로운 한편, 우리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런 일자리는 없을 테니 산이에게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삶터로 돌아와 예상치 못한 산이의 변화 때문에 마음이 먹먹하다. 산이가 혼자 살고 싶단다. 박 가족이 있는 데서 일하고 싶고 동생 윤이처럼 자기도 혼자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산이가 전에도 이런 말들을 자주 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대학 가서 따로 떨어져 살게 되자 자기도 윤이처럼 대학 가고 싶고,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했었다. 동생이 그리워서 그러려니 정도로 이해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랑 떨어져 살 수 있어?, 밥이랑 빨래랑 혼자 할 수 있어?, 라고 되물으면 산이는 아니!, 하고는 자기 말을 거두어들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산이의 태도가 바뀌었다. 엄마 아빠 없이도 살 수 있단다. 산이가 좋아하는 레고 조립하듯이 잠깐 일한 것이 재미있었다고 저렇게까지 말하는 건가, 그의 속마음이 의심스러워 나는 거듭 확인을 했다. 박 가족이 사는 곳은 몽고메리에서 아주 멀어서 자주 만날 수 없다고, 밥 보다 빵하고 채소만 먹어도 좋으냐고 물었다. 산이는 다 괜찮다고 대답한다. 산이는 그동안 잘 먹지 않던 오이나 부추, 치즈 따위를 주어도 아무 불평 없이 다 먹는다. 비빔밥을 먹게 되자 채소를 먹어야 한다며 더 넣어달라고 주문한다.
브루더호프에 박 가족이 없을 때가 있다고 해도 산이의 대답이 바뀌질 않는다. 부모 곁을 떠나도 함께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느낀 걸까.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그들의 배려를 엿보았나. 산이가 브루더호프에서 무엇을 느꼈기에 저러는지 그의 성장이 놀랍고, 지금 당장 들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안쓰럽다.
우리 부부가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산 세월이 꼭 산이 나이만큼이다. 서른 살이 된 산이에게 혼자 살고 싶은 의지가 생긴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산이와 우리 가족을 위해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묻고 있다. 그 계획을 조금만 보여주시길 말이다.
*이 글은 애틀랜타 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