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 다운타운을 지나 셀마로 가는 80번 국도로 들어서면 곧 몽고메리 지역 공항이 나온다. 공항 근처에는 M교회가 리트릿센터로 꾸며지길 바라는 빈 땅이 있다. 그곳은 바로 옆에 자리한 한인 기업이 30에이커 땅을 사면서 10에이커는 M교회에 기증한 땅이다. 기증자들은 그들의 땅을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해 땅을 고르고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면서 리트릿센터 부지에도 똑같은 작업을 말없이 진행해왔다.
게다가 그들은 얼마 전부터 리트릿센터 부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먼저 감나무 200여 그루를 심었다. 감나무는 관리하기가 수월하고, 농약을 안 쳐도 괜찮고, 몽고메리 기후에서 잘 자라는 수종이란다. 매실, 백도, 자두, 대추, 복숭아, 밤나무도 30그루를 심었는데, 이러한 나무들은 키우기가 까다로워서 개수를 점차 늘릴 계획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M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나무 심을 기회를 주기 위해 단감나무 85그루를 남겨놓았다. M교회의 일원인 나는 이 행사에 슬쩍 끼었다. 꽃샘 추위가 찾아오는 3월에 초여름 같은 날씨라니, 변덕스럽기도 해라! 그늘 없는 땅에서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그날의 하늘은 명랑했다.
기증자들은 친절하게도 나무 심을 구덩이를 적당한 간격으로 파놓았고 구덩이 안에는 거름도 넣어 놓았다. 한 분이 나무 심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묘목에는 뿌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접붙인 흔적이 보였다. 그 접붙인 부분이 땅 위로 조금 올라오게 심어야 하니 구덩이 옆에 있는 흙으로 높낮이를 조절하라고 일러주셨다. 묘목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물을 2갤런 정도 붓고 물이 스며들도록 기다렸다가, 그 위에 다시 흙을 덮고 발에 적당한 힘을 주어 꼭꼭 눌러주면 된다고 하셨다.
감나무는 씨를 심어 키우면 열매가 시원치 않으므로 반드시 접붙여서 키워야 함을 알게 되었다. 접붙일 때 뿌리 쪽 나무를 대목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감나무의 대목으로 열매가 풍성하고 잘 자라는 고욤나무를 많이 쓴단다. 우리가 심은 감나무의 대목은 어떤 종류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부디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주기를 바랐다.
나무 심기를 제안하신 분들은 나무 하나하나에 물을 주며 제대로 심었는지를 확인하셨다. 흙을 충분히 덮어주지 않거나 물을 주지 않은 묘목들이 발견되었다. 정성을 다해 심었어도 이런 일이 생겼다. 심는 것보다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는 말씀이 실감 났다. 얼마 동안은 열흘에 한 번 물을 줘야 한다는 말씀에 우리 가족이 한 달에 한 번쯤 물 주기를 담당하면 어떨까, 생각만 하다가 끝내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나무를 심는 일은 꽤 멋있어 보인다. 나무를 심으려고 흙을 만지던 어느 분은 행복하다, 고 고백했단다. 생업에 종사하면서는 지난 10여 년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고 한다. 나무가, 자연이 주는 위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이야기였다.
그뿐 아니라 정겨운 물물교환 이야기도 들었다. 넓은 부지 곳곳에는 검은 더미들이 커다랗게 쌓여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게 다 소똥 거름이었다. 그 거름은 회사 가까이에 사는 지역 주민에게서 얻은 것으로, 그 집에 불필요한 나무들을 잘라준 대가로 받았단다. 사이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모습이 그려져 훈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일나무를 심는 사람은 느긋한 마음의 소유자다. 적어도 2~5년을 기다려야 제대로 된 열매를 얻는다고 하니 나무 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대단하다.
나는 막대기 같이 가녀린 나무들 사이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사람들이 신선한 공기를 가득 품은 초록 나뭇잎과 열매들 사이를 거닐다가 어느 나무 아래 무심코 놔둔 낡은 의자에 앉아 쉬어 가겠지. 시원한 물 한 잔 건네는 손에게 고마움을 전하겠지. 가지가 휘어지게 열린 열매를 이웃과 나누며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확인하며 기뻐하겠지.
한 분이 160그루를 기증하고, 또 어찌어찌 80그루를 사들여서 과일나무를 연이어 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글은 애틀랜타중앙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