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4/2021

내면이 풍요로운 정원사를 만나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3.


묵직하고 끈끈하던 새벽 공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손바닥만한 텃밭에 물 주러 나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봄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내주던 식물들이 부추는 씨앗으로, 고추는 열매에 고운 색을 입히며 한 주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해충 탓에 일부 이파리가 누렇게 변해가는 가지는 아직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어 애처롭다.

올해 이른 봄, 거의 일 년 만에 자동차로 두 시간 반쯤 걸리는 애틀랜타를 방문했었다. 코로나19 백신을 언제 맞게 될지 모르던 때였으니 움츠러든 몸과 마음은 큰 도시에서도 여전히 편안치 않았다. 그나마 한인마트에서 고추와 가지 모종을 만난 것은 큰 선물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보통 부활주일을 기점으로 꽃샘추위가 지나갔다고 여긴다. 그래서 채소든 꽃이나 나무든 편안한 마음으로 심어도 좋다. 그걸 알면서도 부활절이 한 달이나 남은 3월 초에 멀리서 고이 모셔온 모종을 심었다. 설마 했던 추위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정원용 천으로 모종을 덮었다 벗기는 수고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겨우겨우 살려낸 고추와 가지는 자연에 이미 적응이 되었는지 얼른얼른 자랐다. 열매도 생각보다 빨리, 많이 열리기 시작했다. S 권사님께서 백 세를 누리시고 돌아가시기 몇 년 전 고추나무 한 그루에서 3, 400개의 열매를 땄노라며 놀라워하신 적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고추나무가 권사님의 것과 같은 종류일지도 모르겠다. 가지나무도 그에 뒤질세라 열매를 바쁘게 내어놓았다. 한번 가지를 따고 이틀이 지나 돌아보면 다시 한가득 품고 있었다. 열매 거두는 재미가 쏠쏠했다.

"살아가면서 힘겨운 상황에 부닥칠 때 비로소 사람의 본성은 감춰지지 않고 드러난다. 각자가 정신적이나 이상적인 것과 맺고 있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비록 맛을 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익숙하게 뒷받침해주던 외적인 삶이 사라지거나 흔들릴 때 비로소 그 모든 것은 참모습을 드러낸다"(본문 중에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1899년부터 1955년 사이에 쓴 글들 가운데 21편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헤세는 평생 정원을 가꾸면서 영감과 쉼을 얻었다. 그는 소설가, 시인, 화가이면서 정원사로서 이사하는 집마다 정원에서 온갖 종류의 식물을 보살폈다. 헤세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그의 작품이나 반전 활동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정원이 주는 낭만과 멋을 누렸다.

나도 꽃이나 채소를 키워보고 싶어 몇 번 시도했으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 일생에 이곳이 내 집이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집에서 얼마 동안 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머무름, 지속하려는 나의 기질을 억누르며 교회를 따라 삶의 자리를 옮겨 다녔다. 헤세처럼 정원을 꾸며보고 싶다면 어느 뜰에서든 할 일을 찾아 기쁨을 누리련만 난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디 정원뿐일까. 재미는 사라지고 의무만 남은 일이.

몽고메리 집으로 이사하고는 전과 달리 나무(!)를 심었다. 늘 주저하다가 인생이 끝나버릴 것 같아서였다. 감나무, 동백나무, 배롱나무, 회양목, 뿔남천. 그것들이 잘 자라기를 바라지만 아직 연약한 상태다. 텃밭에는 교우들이 나누어준 것까지 모두 고추나무, 가지나무, 부추, 깻잎, , 방울토마토, 애플민트, 미나리가 살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때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눈이 피곤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고 맑아진다. 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사물은 설령 흥미 없게 보이거나 흉측해 보이더라도 그 나름대로 생생한 면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을 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본문 중에서).


*이 글은 모바일 앱 '바이블 25'와 인터넷 신문 '당당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