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님께서 심장 기능이 안 좋아져서 치료 받으시는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약물로 치료를 하다가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페이스메이커(Pacemaker)라는 심박조율기를 심장과 연결하게
되었다. 이 조그마한 장치는 집사님의 어깨 아래 피부 속에 심겨졌다.
페이스메이커에서 나온 전선은 심장에 가 닿아 있어서 심장 박동이 정상이 되도록 자극을 주는 기계라고 했다. 이런 기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연세 드신 어르신들 가운데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는
분들이 여럿 계심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자연스레 튼튼하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인공적으로 만든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라 여겨졌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면 페이스메이커는 이것을 감지하고 심장을 자극하게 되는데, 가만히 보면
일상 속에서도 안일하거나 게을러진 삶의 태도를 자극하는 여러 일들을 만나곤 한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곳 한국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로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학기에
나의 반이었던 아이들과 새로 등록한 아이들을 만나 한글 낱말들을 익히고 그 낱말들을 이용하여 문장 만들기를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매주 숙제를 내주고 받아쓰기 하는 것은 웬만하면 거르지 않는다. 집에서 쉬고 싶은 토요일에 한국어를 배우러 나온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나름 이 궁리 저
궁리 하여 학습계획안을 작성하기는 하는데, 수업이 다 끝나고 나면 부족함을 종종 느낀다.
수업 일정에는 특별활동 시간도 있어서 만들기나 노래, 소고춤, 장구춤, 그리고 케이팝을 부르며 춤을 추는 반으로 나누어진다. 나의 반 아이들은 장구춤을 추는 반에 모두 들어가 있다. 이번 학기
특별활동에서 배운 것들은 가을에 열리는 한인축제에 나가 공연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활동 내용을 좀
더 확실히 익힐 필요가 생겼고 장구춤반은 내게 맡겨졌다. 장구춤반 아이들은 다른 선생님들과 지지난 학기부터
배워오고 있었고 난 몇 번 지켜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춤 순서를 제법 외우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번 학기가 이미 시작되고 어중간하게 장구춤반을 담당하게 되었지만 복잡하지 않은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하는 춤이기에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 되리라 편안하게 생각했다.
장구춤반을 맡은 첫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아직 춤 순서를 다 외우지 못했어. 너희들이
하는 걸 먼저 볼게. 너희들이 좀 가르쳐 줘~.”
그 동안 관계를 쌓아온 나의 반 아이들이 대부분이니 반은 공손하게 반은 애교를 섞어 솔직한 부탁을 했다. 가수 윤도현이 부른 아리랑 노래에 맞추어 춤을 한 번 끝냈다. 내
눈에는 아이들에게 따로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로 잘 하였다. 춤 순서를 아직 외우지 못한 사람은 나
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잘 하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들을 두 모둠으로 갈라 서로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자고 했다. 한 모둠이
앞서 한 것처럼 잘 끝냈다. 다른 모둠이 뒤를 이어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에구, 이걸 어째! 두
번째 모둠 아이들은 춤 순서를 몰라 우왕좌왕 하면서 나를 흘깃흘깃 바라보았다. 선생인 내가 춤 순서를
지시해주길 바라는 눈길이었다.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나 역시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들은 그 동안 순서를 잘 아는 다른 아이들을 보고 따라 한 것이었나 보다. 당황스러웠다.
그때 마침 지난 주까지 장구춤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지나가시며 잘 돼?, 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우르르 그 선생님에게 몰려가 영어(!)로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저 여자는 이 춤을 혼란스러워해. 엉망이야.”
“순서 좀 틀리면 어때. 틀린 곳을 알았으니
다시 잘 배우면 되지!”
난 아이들이 쏟아놓는 불평을 듣다못해 호기롭게 말했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돈시켜 세우고 다시 한 번 음악에 맞추어 춤을 가르쳤다. 아이들에게
여유로운 듯 대꾸를 했지만 그 노래 한 곡이 끝나기까지 씁쓸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적어도 나의 반
아이들과는 친밀함을 쌓아가고 있고, 나를 도와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춤 한 판에 지들 선생을 그렇게
몰아세우다니…… 그러면서 순간, 그저 잘한다, 잘한다 하던 아이들을 평가하는 내 자신을 보았다. 사실 춤 순서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아이나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순서를 잘 모르는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불평하는
아이들은 배운지 오래 되었는데 집중하지 않아 순서를 익히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일이 자꾸 떠올랐다.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 아이들 하는 것을
보고 배우겠다고 생각하다니 너무 안일했다. 아이들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게으른 나에게 에잇, 받아라, 하며 자극을 보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내 자신을 자책하고 싶지는 않다. 가르치는
역할을 건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따끔한 자극이 온 것일 뿐이다. 어리기만 한 아이들과 어설펐던 내가
한국학교에서 즐겁고 재미있게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번 자극을 계기로 아이들에 대한 뭉뚱그린 생각이 아니라 세밀한 평가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장구춤반 선생에게 필요한 것은 춤을 잘 추는 게 우선일 것이다. 교회학교에서 율동 가르치던 실력을 오랜만에
발휘해봐야겠다.
쉬운게 없네요. 이젠 밤샘하셔야 할 듯...^^
답글삭제단순한 춤이라 다행히 쉽게 외웠어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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