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 산이와
6주 동안의 한국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내가 할 일들이 가득하다. 봄에 만들어 놓은 손바닥만한 텃밭에 물주는 일을 둘째 아이에게 맡겨 놓았는데 책임감 있게 감당한 듯 하다. 하지만 오로지 물만 주었지 다른 것엔 도통 손을 대지 않아 심어 놓은 식물과 풀들이 사이좋게 섞여 있었다. 나중에 해도 되련만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집으로 돌아온 첫 번째 할 일로 풀 뽑기를 선택했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많이 머무르는 주방 곳곳에 낀 물때도 닦아냈다. 교회와
관련된 일도 몇 가지 하고 나니 이틀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내가 원래 살던 자리로 돌아온 것이긴 하나
여행의 여운을 즐길 틈도 없이 너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나마 여행하는 내내 누렸던 여유로운
시간 동안 새로운 경험과 만남들에 대해 되새겨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것은 사랑과 우정을 키운
일이다. 앞일은 알 수 없으나 가족과는 다음에 만나기까지 좀 긴 시간이 걸릴 듯싶은 마음에 더욱 애틋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자녀, 교회, 시대적인 문제 같은 주제들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며 격려하는 편안한 자리였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친절함도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글 쓰는 일로
만난 사람들, 선배 목사님들 교회에 주일 예배 드리러 갔다가 만난 사람들, 산이의 긴 치과 치료 기간 동안 만난 사람들……
돌이켜 보니 이번 여행 동안 만난 사람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 위해 시간과 정성이 보태어져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로가 자기 시간의 일부를 내어주고,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도록 진실되고 성실하며 친절한 모습이었다.
그리운 사람들을 뒤로 하고 미국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리 가족은 “한반도 평화 행진과 기도회”에 참여하기 위하여
워싱턴 D.C.를 향해 자동차로 8시간을 달려갔다. 한인연합감리교회
통일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기독교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가 참여하는 초교파적인 행사였다.
한국전쟁 정전 61주년이라는 것과 이제는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뀔 때라는 글이 쓰여진 흰색 티셔츠를 입은 기독교인들의 무리가 파운드리연합감리교회(Foundry UMC)에서
백악관 앞까지 2 km 정도를 행진했다. 유모차에 타고 있는
어린 아이들, 청소년, 교인들, 목사들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걸어 나갔다. 백악관 정면에
있는 뜰에 이르러서는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인 관계를 맺고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구호도 외치고 기도도
했다.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두 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키는 진지한 모습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몇 곡의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도 들어 있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고등학생인 둘째 아이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나 이 노래 몰라, 했다. 모국의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노력이 나의 둘째 아이에게도 이어지도록 집에 돌아가면 이 노래를 꼭 함께 불러보아야겠고 생각했다. 모국을 위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소수의 무리가 부르짖는 평화의 외침이 이 소식을 들어야 할 모든 사람들의 귀에
들려지길 빌었다.
한국 여행 동안 사랑과 우정을 만들어 가는데 시간과 정성이 보태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음을 떠나지 않는데, 이번 평화 행진에서도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나의 가족이 먼 길을
달려 평화 행진의 한 구탱이를 차지하고 목소리를 보탠 것은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도 시간과 정성이 깃들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