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2014

가족




"많이 돌아다닐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와."
한국으로 오기 전 남편에게 여러 번 들은 말이다. 두 번째 한국 방문이니 첫 번째만큼 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한 얘기다.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번은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고, 일 년만에 다시 오게 되었으니 반가움이 덜할 것이라고 쉽게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은 미국에 남아 있으면서 한국 방문을 하는 아내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살짝 느껴지기도 하는 말이다. 자신의 아내가 그리 번잡스러운 사람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당부의 말을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중에도 툭툭 하니 말이다.

하긴 나도 남편이 며칠 동안 외출을 하게 되면, 여행 가서 좋겠다!, 며 부러운듯한 말을 마구 던진다. 남편의 외출은 거의 교회와 관련된 모임이기에 회의나 교육 받는 시간이 대부분인 것을 안다. 그래도 일상을 떠나 낯선 장소가 주는 신선함이 있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있으니 외출 혹은 여행은 부러움을 살만한 경우들이다.

이럴 때 남편의 반응에 따라 더욱 얄미워지기도 하고 마음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회의만 하는데 뭐가 좋아, 지루하지. 집이 최고야!"
쳇, 아무렴 회의만 할까! 쉬는 시간에 수다도 떨고, 준비된 맛난 식사도 먹을 거면서.
"당신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거기 가 봐서 좋으면 나중에 같이 가자."
경험상 나중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음을 알면서도 이런 말은 집에 남겨진 사람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 가시게도 한다.

어쨌든 이번 한국 여행은 내가 집에 남겨진 남편뿐 아니라 작은아들의 부러움까지도 사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사는 곳에서 10분쯤 걸어가야 되는 곳에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계신다. 산책 삼아 나가 돌아보았는데 밭 한쪽이 온통 싱싱한 씀바귀로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뿌리째 뽑아 장아찌를 담그려고 키우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밭 주위를 지나 다니던 사람들에게도 이 씀바귀가 눈에 띄었나 보다. 어떤 사람이 씀바귀 효소를 만들면 좋겠다며 잎을 베어가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하셨단다.

하루는 이른 아침에 두 분 모두 텃밭에 나가셨는데, 아침 먹을 때쯤 아빠만 돌아오셨다. 엄마는 남아 있는 씀바귀를 모두 캐어 씻어가지고 올 거라고 아빠가 얘기해주셨다. 엄마도 씀바귀로 장아찌가 아니라 효소를 만들 작정이라면서.

조금 있다가 엄마는 젖은 씀바귀가 담긴 커다란 부대를 땀을 뻘뻘 흘리며 들고 오셨다. 엄마는 집으로 먼저 돌아오신 아빠가 계신 안방으로 곧장 가시더니 코 맹맹한 소리로 한 마디 하셨다.
"씀바귀가 많은 줄 알면 들어주러 와야지. 자전거를 가지고 오든가. 자전거 소리가 나길래 얼른 내다봤네, 에잇!"
말투는 무거운 씀바귀를 들고 오느라 힘이 들어 짜증났음을 드러내는 것 같은데, 내 귀에는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아내의 애교 섞인 투덜거림으로 들렸다. 나의 부모님은 이런 식으로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드러내고 확인시키며 사시는구나,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애정어린 부러움과 질투, 애교스런 투정은 서로의 관계가 무뎌지지 않게 하는 윤활유 같은 것들이다.

한국 방문 중인 산이와 나에게 누군가 미국에 있는 다른 가족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산이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들으며 가족에 대한 산이의 생각도 엿본다.
"아빠, 윤아, 기다려. 빨리 올게."
"미국 가서 비행기 빨리. 우리 한국 가자! 아빠랑 윤이랑 같이. 가족이니까"
"엄마는 우리 엄마. 아빠는 우리 아빠. 윤이는 뭐지?"
"내 동생." 요것은 내 대답이다.
"아빠 감기 해? 기도할게."

산이는 가족 누군가가 외출을 하게 되면 언제 오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한다. 어린 아이 같이 순수한 산이에게 가족이란 숫자 4(네 식구)인 것 같다. 우리 가족 네 식구가 늘 같이 있어서(지금까지는) 꽉 채워진 숫자 4 말이다.

가족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 가족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고 언제나 행복하고 안정된 상태로 지속된다는 말은 아니다. 때론 관계가 삐그덕거려도 사랑은 가족을 지탱하게 해준다. 난 그 사랑이 더욱 견고해지기 위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늘 가닿아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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