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번 한국여행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산이의 치아 치료(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치료이고, 치료비용을 감안해 한국에서의 치료를 결정한 것이다)를 위한 여행으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산이의 치아 상태에 문제가 생겨 급작스레 예정보다 일정이 앞당겨졌다. 큰아들 산이와 나는 감사하게도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없는 한국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은 우리를 비행기가 출발하는 애틀랜타 공항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한국 국적 비행기이니 여러 가지 면에서 편안한 이동수단이 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긴 비행기 운항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줄 영화 목록을 살펴보았다. 보고 싶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있었다. 갑작스레 정해진 일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기까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고 영화도 볼만한 것들이 꽤 있어서 이번 여행에 대한 느낌(느낌은 변화무쌍 하다. 신뢰할만 한 것이 못 된다)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제목만 봐서는 고풍스러운 배경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근거 없는 기대가 있었던 영화였다. 비행기가 출발할 때부터 영화에 집중해서 한 시간 반 정도를 훌쩍 보내리라 생각했다. 새벽 일찍이 집을 나선 탓에 비몽사몽 오락가락 하면서 감상했어도 어쨌든 시간이 그럭저럭 흘러갔다.
한국 비행기 기내식의 대표 음식인 비빔밥을 점심으로 먹고, 저녁으로는 불고기와 밥을 먹었다. 당황스러운 사건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얼마 뒤에 시작되었다.
산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기침이 그치지 않았고 그 소리가 점점 목구멍을 거칠게 훑고 나오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이때부터 평온한 여행에 대한 느낌은 쨍, 하고 깨져 버렸다. 산이가 기침을 힘들게 하기 시작하면 겁이 난다. 기침을 하다가 속을 싹싹 다 비울 때까지 토하기 때문이다.
기침한다고 승무원이 와주지 않을 것 같아 얼른 일어나 승무원들이 있는 공간으로 나아갔다. 냅킨을 좀 달라고 했다. 서너 장을 건네 받았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자 산이는 울컥 게웠다. 체한듯 싶었다. 승무원을 부르는 벨을 눌렀다. 내 마음이 급한 것인지 벨을 잘못 누른 것인지 승무원이 오는 기색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벨을 눌렀다. 승무원들이 잠시 머무는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가 있었다. 그제서야 승무원은 뭘 도와 드릴까요, 물었다.
"우리 아이가 토해서요..."
승무원은 물티슈 여러 개와 두 개의 비닐 쇼핑백을 들고 와서 쇼핑백의 입구를 벌리며 내밀었다. 내 손에 들린 지저분한 냅킨을 넣으라는 신호인듯 하여 그리 했다. 나는 그 쇼핑백이 필요할지도 몰라 달라고 해서 발 밑에 두었다. 승무원은 가지고 온 또 하나의 쇼핑백을 벌려 아무 말없이 또 내 앞에 내밀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몰라 물었다.
"담요 넣으시라구요."
토한 것이 살짝 묻어 뭉쳐놓은 담요가 내 무릎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잊고 있었다. 순간 승무원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승무원은 돌아 갔고 승객이 덥고 있던 담요를 가져갔으면 새 담요를 가져다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소식이 없었다. 받으러 갈까 하다가 승무원 부르는 벨을 눌렀다. 왜 불렀냐는 표정이었다. 담요가 필요하다고 했다.
난 어둑한 실내등 불빛을 찾아 손을 쳐들었다. 손목시계의 바늘을 정확히 보기 위해 눈을 찡그렸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려면 여섯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제발 이대로만 버텨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산이는 기침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혹은 피곤하게 비행을 하고 있는 다른 승객들에게 엄청 미안했다. 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면 고집스러워지는 산이는 화장실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 멈추지 않는 기침을 하면서 화장실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난 다른 승객들에게 큰 민폐를 끼치는 것인줄 알면서도 원하지 않는 기침을 하면서 괴로워 하는 산이의 편이 되기로 했다. 등을 쓸어주며 기도하는 것 밖에는 해줄 것이 없었다. 이 상황이 오래 지속 되면 승객들에게 같이 기도해 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이는 몸을 떨며 토하기를 두 번 더 했고, 자신도 괴로운지 끝내는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 그러는 동안 승무원은 벨소리를 듣고 온 것과 소화제를 요청하여 가져다 준 것을 빼고는 다시 오지 않았으며, 우리 옆을 지나치면서도 괜찮냐고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우리 모자는 비행기 안에서 공공의 적이었던걸까.
산이에게 울지 말라고 달래는데, 도리어 날 달래듯이 산이가 이젠 괜찮아, 했다. 속이 좀 편안해졌다는 소리로 들렸다. 감사, 또 감사했다. 기다렸다는듯이 피곤이 마구 몰려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깜빡 들었다.
어수선한 움직임에 눈을 겨우 떠보니 승무원 세 사람이 눈 앞에 있었다. 우리 바로 앞에는 두 아들과 엄마가 앉아 있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작은 아들이 코피가 난 모양이었다. 알콜솜의 냄새가 잠을 확 달아나게 했다. 이미 가지고 온 얼음 봉지가 모자란 지 한 승무원은 작은 지퍼백에 담긴 얼음을 짤랑거리며 다시 달려왔다. 좁은 통로에 모여 있는 승무원의 뒷모습은 보란듯이 내 시야를 다 가리고 있었다. 한참을 아이와 눈빛을 마주하고 속삭이던 그들이 물러갔다. 내가 앉은 통로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승무원들도 오고 가며 아이의 안부를 계속해서 물었다.
아, 외롭게 겪은 산이의 소동에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산이를 위한 승무원의 서비스가 이해되지 않았어도 그날의 사건은 여럿에게 불편함을 끼친 죄인의 심정으로 미안함만 기억되었을 것을. 산이와 앞자리의 아이를 대하는 다른 태도를 보고 있자니 심장이 벌벌 떨리고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 같았다. 오, 주여...... 내가 모르는 승무원의 행동 수칙이 있을 거라고, 그래서 승무원들은 그 규칙을 따랐을 뿐일 거라고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따끔따끔거리는 마음으로 인천공항에 다다랐다. 산이 옆에 앉아 있던 청년 승객에게 불편함을 줘서 미안했다고 말했다. 청년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춰 서고 승객들은 부산스럽게 짐을 꺼내 빠르게 통로를 꽉 채웠다. 우리도 일어섰다. 복잡한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멀리서 길고 흰 팔이 우리를 불렀다. 앉았던 통로 쪽에서 제일 많이 봤던 승무원이었다. 통로를 가득 메운 승객들 사이에서 산이를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날 바라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마치 변명할 기회라도 얻은 사람처럼 아까는 화장실로 갈 상황이 안 되었다고 빠르게 덧붙였다. 비행기를 빠져나오는 동안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하는 승무원들의 인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평상시와는 달리 그들의 인사에 도통 대꾸할 수가 없었다.
속상한 마음이 내 안에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풀어놓았다. 동시에 이 낯설고 강렬한 경험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고 했다. 어린 아이처럼 장애인 역시도 연약함을 가지고 있어서 관심 있는 돌봄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 묻고 협력하면서 그 돌봄의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피상적인 돌봄에 그치기 쉽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할 때 연약한 이들을 진심으로 돌볼 수 있는 지혜가 열릴 것이다. 산이를 아들로 주시고 가까이서 돌보게 하심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글로만 읽는 사람도 분이 스르르 올라 오는데 맘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다른 이유보다 고국을 방문하면서 많은 교포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겪어보니 항공사서비스 친절함의 수위가 미국인, 한국인, 미국인이 아닌 외국인, 맨 마지막에 미주교포인 것 같이 느낀답니다. 오직하면 고국에 가면 미국거지들 왔다고 하겠어요. 한국에서 이민온지 며칠 안되는 분들도 제 차림새등 아래위로 딱 한 번 스캔하고선 사귈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바로 결정해 버리는 듯 하더군요.
답글삭제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있을때마다 하나님앞으로 나가는 산이어머님 모습에 그게 정답임을 늘 깨닫고 갑니다. ^^
Oldman님, 안녕하세요?
답글삭제미국교포에 대한 그런 얘기 처음 들어 봐요. 이해도 안 되고... 서글프기도 하네요.
그저 주님의 이름으로 항공사 직원들의 평안을 빌어 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