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집은 여태 살아본 집 가운데 꽤 넓은 앞뒤 뜰을 가지고 있다. 뜰이 넓다는 것은 잔디를 관리하는데 그만큼 힘이 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농부들이 논의 상태를 서로 비교하며 그 집의 형편을 가늠하듯이 미국 사람들은 잔디가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가를 서로 비교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은 윤구병 님의 『잡초는 없다』나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의 글처럼 사람이 그렇듯
풀도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자라고 있으려니 했다. 풀과 나는 다양하게
자라는 모습을 호기심 있게 바라봐 주는 그저 그런 사이였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잔디보다 훨씬
잘 자라서 눈에 잘 띄는 풀은 그 순간부터 잡초가 되었다.
잡초를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잡초도
관리 안 하는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지난 이태 동안 봄이 시작되면 잔디 사이사이로
올라온 잡초를 뽑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잡초를 제거하는 화학 약품을 쓰고 싶지 않아서 시간이 날
때마다 손으로 열심히 뽑아 젖혔다. 남편도 양 옆집의 잔디에 뒤지지 않게 우리 뜰도 반듯하게 깎아 놓곤
했다. 손으로 잡초를 골라내는 수고가 헛되지 않아 처음보다는 잡초의 수가 많이 줄었다.
이른 봄, 잡초들이 슬슬 올라오려고 준비하는
낌새가 보였다. 올해는 왕성한 번식력을 가진 고것들을 어찌하나 일찍이 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풀 뽑는 모습이 동네 사람들 보기에 어떨까 싶기도 하고, 손마디에
약한 통증이 생긴 것을 고려했다. 언젠가 광고지에서 잡초를 통제하는 제품을 본 것이 기억났다. 가게에 가보니 잔디에 뿌리면 잡초가 제거되는 가루가 있었다. 정원관리
업체에서 사용하는 농약 같은 극단의 조치는 아니지만 화학 약품을 선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잡초가 다른
해보다는 훨씬 덜 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난 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잡초들이 생겨났다. 뒤뜰 한가운데에는 찔레같이 생긴 가시가 많은 넝쿨도 자리를 잡았다.
처음 그 가시 넝쿨을 봤을 때 어이가 없었다. 어디
담 밑이나 잔디밭 가장자리도 아니고 뜰 한가운데 나다니 겁도 없다. 그 넝쿨이 자라면 주변의 잔디를
못살게 굴 것이다. 나는 두어 달 전에 남편한테 그 가시넝쿨을 파내라고 하였다. 남편은 그걸 그냥 두고 있더니 며칠 전 잔디를 깎으면서 그 못된 풀을 파내지 않고 그냥 깎아놓았다. 다시 자랄 텐데 말이다. 풀들이 자라는 데는 저마다 그곳에 있을만한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잔디가 깔린 뜰 한가운데서 자라는 가시덩굴은 잔디에게나 사람에게나 그럴만한 이유를 못 찾겠다. 뜰에 나가 손이든 화학 물질이든 삽이든 사용하여 그 가시가 달린 풀을 없애야겠다,고 마음 먹고 들여다 보는데 그 풀의 가시가 내 마음을 쿡쿡 찌른다.
겉으론 평온한 듯 보여도 마음 속엔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이 가시덩굴처럼 나를 찔러댄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나라, 자국민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나라, 재난구호가 체계적인 나라라고 말하는 미국에서 7년차 살고 있는 나는
아직 이방인이다. 그 모든 수식어가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가고 있으나 태어나고 자라면서 체득한 내 나라의 것들과 달라 낯설기만 하다. 낯선
것을 감당해야만 하니 두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은 안정된 생활에 대한 갈망을 커지게 하고, 그 갈망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게 한다. 만족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
뒤뜰의 가시덩굴은 내 마음에 있는 가시덩굴도 보게 하고, 동시에 요즘 많은 생각이 집중되어 있는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자기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변에 해만 끼치는 정부 지도자들과
기업인들이 가시덩굴 같다.
어디에도 쓸 데가 없는 가시덩굴을 더 자라기 전에 뿌리 채 뽑아 버려야겠다. 뒤뜰에서도, 내 마음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 속에 박힌 가시덩굴도 뽑아내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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