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2010

오늘이 주는 행복


요즘 주일 장년 성경공부 시간에 사도행전을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18장에 보면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는 장면이 있습니다.
나실인의 법을 보면 서원을 했던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 의식을 행하는데 그 가운데 머리털을 미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민수기6:13-21).
바울도 서원했던 기간이 찼는지 머리를 깍았다고 나옵니다.

서원했던 무엇이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고, 마음에 정한 그 때쯤(?) 머리를 깍을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남편이 머리를 기르더라도 좀 다듬어 보면 어떻겠냐며, 좀 산뜻하게 하고 있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말을 남기고 출근을 했습니다.
거울을 이리 보고 저리 보다가 마음에 살짝 품었던 생각을 싹 지워버리고 남편의 말을 핑계 삼아 서둘러 미용실을 다녀왔습니다.
ㅋ ㅋ ㅋ
연약한 인간 같으니라구….

미용실에 앉아 지난 달에 발행된 여성 잡지를 보고 있는데 이해인 수녀님에 대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요즘 삶과 신간 『희망은 깨어 있네』(마음산책, 2010)를 소개하면서 그 책에 실려있는 시 한편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행복 "

오늘은 나에게 펼쳐진
한 권의 책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오늘 이 시간 속의
하느님과 이웃이
자연과 사물이
내게 말을 걸어오네

시로 수필로
소설로 동화로
빛나는 새 얼굴의
첫 페이지를 열며
읽어달라 재촉하네

때로는 내가 해독할 수 없는
사랑의 암호를
사랑으로 연구하여
풀어 읽으라 하네

아무 일 없이
편안하길 바라지만
풀 수 없는 숙제가 많아
삶은 나를 더욱
설레게 하고
고마움과 놀라움에
눈뜨게 하고

힘들어도
아름답다
살 만하다
고백하게 하네

어제와 내일 사이
오늘이란 선물에
숨어 있는 행복!

머리 하러 미용실에도 가고, 다른 손님들과 몇 마디 말도 나누며 다른 모습의 삶도 엿보고, 잡지도 읽으며 잡다한 정보들을 얻기도 하고, 어쩌다 메모 하고 싶은 좋은 내용의 글들도 만나게 되는, 오늘의 행복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시였습니다.
이해인 수녀님, 강건하세요.
편찮으시다고 해서요.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더라”(사도행전18:18)

3/19/2010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

<지인의 집 앞에서.... 아직 갈색인 잔디 위에 한 무더기 초록빛이 반갑습니다.>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표시들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새들의 지저귐도 한층 수다스러워진듯 하고, 서둘러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들도 보게 됩니다.

동네 입구마다 짙은 색 꽃들이 가지런히 심겨지는 모습도 새봄을 맞는 풍경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은 아직도 서늘한데 스쿨버스 운전기사님은 오늘 낮 기온이 70℉(21℃) 쯤 될거라고 알려주시면서 반팔 셔츠 입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봄의 문턱에서 계절의 끝과 시작을 다시 한번 경험하며,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알려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창세기1:14/표준새번역)

3/12/2010

셀폰의 옆모습을 바라본 순간

<그 날 밤을 재현해 보았습니다. 호호호>

지난 주 화요일쯤인가요.
늦은 저녁,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셀폰이 빠꼼히 옆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셀폰은 삼성 제품으로 검은색 슬라이드형이었습니다.
이동통신 회사를 바꾸어 새로 가입하면 쓰던 번호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조금 유행이 지난 모델의 셀폰을 거저 주는 행사 때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 때 받은 셀폰이 유행이 지났다고는 하나, 한국 셀폰은 새 모델이 빨리 빨리 나오기 때문에 출시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 셀폰의 단순한 외형, 편리함-계속 삼성 제품만 사용했으므로 사용방법이 거의 비슷해서-, 글자체, 다운받아 깔아놓은 벨소리와 통화연결음 따위가 제가 썼던 셀폰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오느라 얼마 사용하지 못하고 놓고 오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와서는 셀폰을 구입하려면 재정 상태에 대한 크레딧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 기록이 없으므로 셀폰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두 달 정도는 남편이 출근하면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습니다.
늘 사용하던 집전화나 셀폰도 없고, 어딜 갈 수도 없고요.
사실 요즘도 어쩌다 보면 하루에 한 통화도 안 하는 날도 있는데….
하긴 언제든 전화하고 싶으면 할 수 있고, 차를 타고 나갈 수도 있게 되었으니 심정적으로 갑갑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런 상황을 아신 어느 권사님께서 어찌어찌 하여 셀폰을 한 달 동안 빌려주셨는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 정착하는데 참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은 분들에게 받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 권사님께 셀폰을 돌려드리면서 남편은 저의 셀폰을 마련해 가지고 왔습니다.
참 사람 마음이 이상하죠?
셀폰이 생긴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데, 새 셀폰을 받아들고 이리 보고 저리 돌려보아도 모양이며 색깔이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 셀폰에 정이 들만도 한대, 그걸 볼 때마다 공짜로 받아서 얼마 쓰지도 않은 한국 셀폰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빠른 시간 안에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을 편안한 쪽으로 가닥을 잡는 편인데, 새로운 셀폰에 대해서 만큼은 제 마음도 맘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주 어느 날 늦은 밤에 바지 주머니를 비집고 나와 있는 셀폰의 옆모습을 무심코 내려다보게 된 것입니다.
셀폰을 바라보는 몇 초 아니 순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분한 듯 세련된 은색의 몸체와 버튼과 선들. 내 셀폰이 이렇게 세련되었었나. 이런 훌륭한 셀폰을 나 같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니, 이런 제품을 사용해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맘에 들어 하지 않던 셀폰을 보고 이런 과장된 듯한 생각을 왜 했는지….
셀폰에 두었던 눈길을 거두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별 시답지 않은 소리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죽음에 대한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오래 오래 살아서 적어도 강산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다가 남편이 나이가 많지(?) 않아 죽게 된다면 담담히 받아들이겠노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알 듯도 하면서 무책임하고 허황된 얘기라고 면박(面駁)을 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10년 전쯤 대장암으로 수술하신 어머님과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그 병을 이기며 살아오셨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 철이 없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니까요.(영양제-Fe-를 잘 안 챙겨 먹어서 그런가??? ㅋㅋㅋ)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말하던 대로 강산이는 강산이의 삶이 있는 것인데, 제가 오래 살아야 될 이유를 강산이의 삶에 기대어 찾을 것이 아니로구나, 는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로는 그렇다 여겨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이었는데, 그날 밤 날숨과 함께그런 마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맘에 들든 그렇지 않든 셀폰을 비롯하여 지금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많으므로, 감사한 마음에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다고 여겼나 봅니다.
늘 감사해도 이렇게 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런 마음은 자꾸 더 가지고 싶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의 반작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또 하나는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 흔쾌한 느낌이 아니었는데 그저 삶의 일부려니 싶으면서, 주님은 참 대단하시구나 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과 함께 하시니 말입니다.
이미 주신 것에 죽어도 좋을 만큼 감사하다면,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 주님께서 기뻐하실 행복한 모습 보여드려야지요.

지난 주 어느 늦은 밤의 생각들을 그냥 접어두려다가 자꾸 떠올라 정리를 해보긴 했는데 꿈보다 해몽인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시편63:3,4)

3/05/2010

회복시키는 찬양

<유은성 전도사님, 우리 교회 누나와 함께>

수요일 예배 때 한국에서 찬양 사역을 하시는 유은성 전도사님의 찬양 집회가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찬양을 은혜스럽게 부르셨고, 영상과 말씀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유은성 전도사님의 찬양 CD 2집과 3집을 판매하면서 사인도 해주셨습니다.
낮에 먼저 전도사님을 잠깐 뵐 기회가 있었는데, 강산이를 기억하고 전도사님의 찬양 CD를 한 장 더 주셨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마침 가방에 늘 담고 다니는 사진기가 있는 것이 생각나서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그날 생긴 두 장의 찬양 CD는 물론 강산이가 온전히 자기 것으로 챙겼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강산이가 학교에 간 시간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찬양을 들으며 살펴보니, 최근 나온 3집 "회복시키소서"에 12곡이 들어있는데 그 가운데 7곡이 전도사님이 작사, 작곡한 곡입니다.
찬양만 잘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드는 귀한 재능을 가지신 분이시더라구요.
3집 앞부분에 나오는 3곡이 좋았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의 가사를 옮겨보겠습니다.

"예수님처럼"-유은성 작사/작곡

내가 초라한 것이 연약한 것이 모두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주님만을 바라보게 되죠
내가 모자란 것이 부족한 것이 모두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주님만을 닮아가길 원하죠

예수님처럼 겸손한 삶 나는 없고 오직 십자가만 드러내는 삶
나의 삶도 십자가 뒤에 가리우고 예수님만 드러내길 원해요
예수님처럼 섬기는 삶 나는 없고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는 삶
내 삶 속에 하나님으로 가득차는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해요

"주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유은성 작사/작곡

비록 너무 많이 지치고 삶의 의욕이 없어서
숨쉬는 것조차 힘이 들지만 나는 괜찮아요
비록 앞이 보이지 않아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괜찮아요

주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임을 나는 잘 알아요
잠시 아파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주님을 신뢰해요
주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임심을 나는 믿어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을 의지해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사도행전 17:24-27)